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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식히려 무작정 발리로 떠났다가 그녀에게 생긴 일

조회수 2020. 9. 22. 15:4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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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하나 들고 놀러 간 발리 풀빌라서 만든 이 앱, 350만이 다운 받았습니다
이미지 관련 스타트업 픽소 최한솔 대표
세무회계 배우다 20대 초반에 쇼핑몰 창업
직업전문학교서 디자인 배운 ‘디지털 노마드’
상상력 훼손될까 우려에 투자 제의도 거부

2년 전 애플 앱스토어 메인에 ‘로고 메이커 샵(Logo Maker Shop)’이라는 애플리케이션이 추천 앱으로 소개됐다. 디자인을 잘 모르는 일반 사용자도 자신이 만들고 싶은 로고를 손쉽게 직접 디자인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앱이다. 한국인 두 명이 합심해서 만든 이 앱은 대박이 났다. 전 세계에서 450만명이 이 앱을 다운 받았다. 국내 스타트업 픽소(PIXO)의 작품이다. 이외에도 베이비그램(Baby Story), 포커스 키퍼(Focus Keeper), 슬립튠(Sleeptune) 등의 앱들을 히트시키며 누적 다운로드 숫자 1000만을 앞두고 있다. 해외 시장을 주로 공략한 결과 사용자 90% 이상이 외국 사람들이다.

최한솔 대표

픽소를 창업해 앱의 디자인을 담당하고 있는 최한솔(34) 공동대표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노트북 하나만 들고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자유롭게 일하는 ‘디지털 노마드’였다. 실제로 350만명이 내려받은 인기 앱 ‘베이비그램’은 발리의 휴양지에서 만들었다고 한다. 그에게 이야기를 듣기 위해 서울 연남동 픽소 사무실을 찾았다.


- 회사가 분위기가 밝고 자유로워 보인다. 픽소는 어떤 회사인가. 


“직원들 간에 자유롭게 의견을 내고 언제든 소통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그래서 자리 배치나 사무실 분위기도 밝고 개방적으로 만들었습니다. 픽소는 애플리케이션을 만드는 회사에요. 디자이너인 저와 개발자 김상원 대표가 공동으로 창업했어요. 5년 전부터 둘이서 작업하며 앱을 만들어 오다가, 좀 더 대중적이고 퀄리티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앱을 개발하기 위해 1년 전 직원들을 채용했어요. 현재는 팀원들과 함께 대중적인 새로운 앱의 출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 그럼 지금까지 만들었던 앱은 모두 두 사람이 만들었나.


“둘이 처음으로 프로젝트를 함께 했던 게 2015년이었어요. 특이한 점이 있다면 당시 두 사람 모두 ‘디지털 노마드’였어요. 노트북 하나만 들고 해외를 돌아다니며 온라인을 통해 일하는 사람들이었는데, 디자이너와 iOS 개발자로 만나서 처음 프로젝트를 공동으로 진행한 거죠. 각자의 자리에서 온라인으로 소통하며 앱을 만들었습니다. 그때부터 ‘로고 메이커 샵’이나 ‘베이비 그램’ 등 주요 앱들은 저와 공동 창업자가 협업해서 만든 결과물이에요.”

출처: 최한솔씨 제공
싱가포르에서 일하던 시절

- 언제부터 앱 디자인을 하기 시작했는지 궁금하다.


“대학에서 전공이 세무회계학이었어요. 디자인과는 전혀 관계없는 학과였죠. 전공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20대 초반에 친구와 함께 의류 쇼핑몰을 만들었어요. 동대문에서 옷을 도매로 구입해서 옥션에 판매하는 형식이었는데, 옷을 워낙 좋아하기도 했고 물건을 사고파는 일을 직접 해보고 싶은 호기심에 시작했습니다. 차가 없어서 옷 꾸러미가 든 대형 비닐봉지를 힘겹게 끌고 다니던 기억이 생생해요. 당시 옷을 팔기 위해서 쇼핑몰을 꾸며야 했는데, 옷 사진에 포토샵으로 글씨를 넣고 쇼핑몰 화면을 꾸미기 시작했어요. 쇼핑몰은 1년 만에 접었지만, 그때 포토샵이라는 프로그램을 처음 만져봤고 그것이 디자이너가 된 계기가 됐습니다.” 


- 디자인을 하기 위해서는 전문적인 교육이 필요했을 것 같은데. 


“본격적으로 웹 디자인을 배워보고 싶었어요. 홈페이지에서 디자인을 하려면 HTML부터 배워야 했습니다. 학원을 다니고 싶었는데 부모님은 좀 뜬금없다고 생각하셨나 봐요. 학원비 지원을 안 해주셨죠. 그래서 어떻게 배워야 하는지 알아보던 중 직업전문학교를 발견했어요. 구직자가 사회에 진출할 수 있도록 교육해주는 학교였습니다. 차비와 점심 비용 정도를 지원받으면서 아침부터 오후까지 학교에 나가 포토샵과 일러스트, HTML을 차근차근 배우기 시작했어요. 평소 공부에는 관심 없던 저였는데, 6개월 과정을 마쳤을 때는 우수 학생상을 받을 정도로 열심히 공부했어요. 직업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전문적인 분야에서 일해보고 싶어서 웹 에이전시 입사를 위해 구직 활동을 했어요. 제가 공들여 만든 포트폴리오를 좋게 봐줬던 한 대형 웹 에이전시에 입사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프로젝트의 작은 부분부터 시작해서 점차 비중 있는 일을 맡아 나갔어요. 그곳에서 일하는 동안은 밤낮없이 사무실에서 먹고 자면서 일했습니다. 거기서 일하며 배웠던 것들이 제 인생의 전환점이 된 것 같아요. 좀 더 제 자신을 성장시키고 싶어서 2년 후에 회사를 그만두고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활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출처: 최한솔씨 제공
프리랜서를 하면서 주로 해외에서 작업한 최한솔 대표. 왼쪽부터 싱가포르, 태국, 발리에서 작업하다가 찍은 사진이다

- 프리랜서를 하면서부터 주로 해외 사람들과 작업하기 시작했다고.


“전 세계에 이름 있는 앱 디자이너들이 활동하는 ‘드리블(Dribbble)’이라는 커뮤니티가 있어요. 아무나 가입할 수는 없고, 이미 활동 중인 디자이너에게 초대장을 받아야 가입할 수 있는 커뮤니티에요. 전 세계 디자이너들이 활동하기 때문에 그곳에서 제 디자인을 보여주면 해외 프로젝트를 맡아서 작업할 기회가 늘어날 거라 생각했어요. 수소문 끝에 겨우 초대장을 받아서 그 커뮤니티에 가입했습니다. 그때부터 해외의 사람들과 작업하기 시작했어요. 해외 작업을 하며 좋았던 점은 디자이너들에 대한 대우가 한국과는 달랐어요. 서로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전문가로 대우해줬죠. 예를 들어 디자인 프로젝트 제의가 들어오면 제가 하루에 2시간씩 일해서 3주 만에 완성할 수 있다고 이야기해요. 그러면 일하는 시간에 따라 높은 시급을 지급해줬어요. 하루에 일하는 시간을 정해놓고 하다 보니 동시에 여러 프로젝트를 맡을 수 있었습니다. 영어가 익숙하지 않았던 초기에는 번역기를 돌려가며 일하기도 했지만, 저를 성장시킬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 픽소 창업 이전에 스타트업을 했던 경험이 있는가. 첫 스타트업은 어땠나. 


“프리랜서로 한창 일하던 도중에 드리블 커뮤니티를 통해서 어느 한국인에게 연락이 왔어요. 한류 스타들의 트위터를 전 세계 언어로 번역해주는 서비스를 만드는 스타트업을 하는 분이셨죠. 함께 일해보자는 제안을 받고 2년 동안 함께 일했어요. 그런데 스타트업이란 게 생각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몇 가지 이유로 어려움을 겪다가 결국 완성된 서비스를 출시하지 못했어요. 실패한 거죠. 2년 동안 일한 것에 대한 결과물이 나오지 못한 것이 너무 아쉬웠는데, 돌이켜보면 스타트업을 할 때 주의해야 할 사항에 대해서 배울 수 있었어요. 우선 거창한 완성품보다는 작은 결과물이라도 빨리 내놓아서 사람들의 피드백을 듣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피드백에 적극적으로 응답하면서 개선해가고 반응이 없는 것은 일찍 버리는 거죠. 때론 창업자의 굳은 신념이 위험 요소가 될 때도 있어요. 사람들의 취향과 생각은 모두 다를 수 있으니까요.” 

최한솔 대표

- 이후로 해외를 다니며 ‘디지털 노마드’ 생활을 했다고 들었다. 그 와중에 지금 공동창업자를 만났다고.


“처음부터 디지털 노마드를 해야겠다고 작정하고 떠난 건 아니었어요. 머리를 식히고 싶었어요. 무작정 발리로 떠났습니다. 그때 알고 있던 프리랜서 앱 개발자에게 연락이 왔어요. 그 사람이 지금 공동 창업자 김상원 대표였죠. 앱을 만들고 있는데 도와달라고 요청해서, 저는 발리에서 노트북을 들고 온라인으로 소통하며 함께 앱을 만들었어요. 그게 우리가 협업한 첫 번째 프로젝트였습니다. 이후로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발리, 싱가포르, 태국 등을 돌아다니며 각자의 장소에서 온라인으로 협업하며 프로젝트를 진행했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디지털 노마드 생활을 하게 됐습니다. 주로 현지에 있는 코워킹 플레이스에서 일했어요. 각국에서 온 디지털 노마드가 모여있는 곳이죠.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며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일하다 보면 생각지도 못했던 아이디어가 떠오르곤 했어요. 작업 능률도 좋았습니다. 350만명이 다운로드한 ‘베이비그램’ 앱은 수영장이 있는 발리의 풀빌라에서 3주 만에 만들어낸 결과물이에요.”

출처: 최한솔씨 제공
2015년 당시 발리 코워킹 스페이스에서 일하고 있는 모습

- 어떤 앱들을 만들었나. 앱의 반응도 궁금하다.


“발리에서 처음 협업해서 만든 앱이 ‘커버(Cover)’ 였어요. 누구나 쉽게 사진 위에 스티커를 붙여서 꾸밀 수 있는 앱이에요. 처음으로 애플 앱스토어 메인 화면에 소개됐습니다. 일주일 만에 유료 앱을 10만명 넘게 다운로드했어요. 첫 스타트업을 했던 2년 동안 못 이룬 꿈이 이뤄진 순간이었죠. 그 깐깐한 애플이 우리 앱을 골라서 소개해줬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도 있었고, 우리가 생각하는 방향이 시장에서 고객들이 요구하는 방향과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짜릿했어요. 이후로 우리가 만드는 앱마다 앱 스토어 메인에 소개되고 반응도 폭발적이었어요. 아이의 성장과정을 사진으로 기록하고 공유하는 포토 앱 ‘베이비그램(Baby Story)’과 손쉽게 로고를 디자인하는 걸 도와주는 ‘로고 메이커 샵(Logo Maker Shop)’의 반응이 가장 뜨거웠습니다.”


- 앱 다운로드의 90%가 해외에서 이뤄진다고. 처음부터 해외시장을 목표로 앱을 만들었는지. 


“공동 창업자가 미국의 회사에서 1년 정도 일한 경험이 있어요. 그때 미국 사람들이 아이폰을 사용하며 유료 앱을 위해 쉽게 결제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앱을 만든다면 외국 시장을 공략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해요. 한국보다는 해외 시장의 규모가 훨씬 크다 보니 국내를 타깃으로 하기보다는 영문 앱을 출시했습니다. 현재 우리가 만든 앱의 사용자 중에 미국 사람이 제일 많아요. 최근에는 중국에서 발생하는 다운로드 숫자도 많이 늘고 있습니다.”

출처: 최한솔씨 제공
'WWDC 2019 (애플 세계 개발자 회의)'에서 팀 쿡이 애플에서 선정한 앱들을 소개하고 있는 모습. 로고샵 아이콘이 등장했다

- 둘이 일하다가 공동으로 픽소를 창업하게 된 계기는.


“최근 앱들은 사용자들이 요구하는 퀄리티가 무척 높아졌어요. 그러다 보니 완성도 높은 앱을 만드는데 두 사람의 힘으로는 부족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회사를 만들고 직원들도 채용하기 시작했어요. 이전에 출시했던 앱이 특정 사용자들을 겨냥했던 앱이라면, 이번에는 대중적인 앱을 만들고 있어요. 누구나 캐주얼하게 사용할 수 있는 사진 꾸미기 앱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 전 세계에서 몇 명이 앱을 다운로드 받은건가. 매출 규모도 궁금하다. 


“현재까지 누적 다운로드 숫자가 ‘로고 메이커 샵(Logo Maker Shop)’이 450만, ‘베이비그램(Baby Story)’은 350만이 넘었습니다. 다음 달쯤 누적 다운로드 숫자가 1000만을 넘을 것 같아요. 올해 새로 출시하는 앱은 iOS 버전과 함께 안드로이드 버전까지 출시할 예정입니다. 올해는 목표 매출을 100억원으로 잡고 있어요.”

최한솔 대표

- 이 정도의 실적이면 투자 제안도 많았을 텐데.


“투자 제안을 받기도 했어요. 하지만 투자자가 있으면 우리가 하고 싶은 대로 사업을 하기에는 제약이 있을 것 같아서 정중히 거절했습니다. 제가 하는 일이 자유롭지 않으면 이미 내려놨을 거예요. 자유로운 상상력을 발휘하며 마음껏 일해보고 싶어요. 우리만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꿔보고 싶습니다.” 


- 픽소만의 강점이 뭐라고 생각하는지. 


“픽소 구성원들 내에서 늘 수평적인 조직 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픽소 팀원들 모두가 함께 참여하는 발표회를 통해 프로젝트에 대해 자유롭게 토론하고 서로의 진행 상황을 체크해주고 수정하면서 목표를 공유하는 문화가 우리의 강점인 것 같아요. 사장 중심의 수직적인 문화가 생기면 옆자리에 앉아 있어도 소통이 단절될 위험이 있어요. 하나의 프로젝트를 하면서 같은 맥락을 보지 못하는 단점이 생기죠. 우리는 누구나 문제 제기를 할 수 있고 건전하게 토론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 늘 노력하고 있습니다.”

출처: 최한솔씨 제공
픽소의 자랑인 연남동 맛집 정복하기 문화

- 일하는 게 즐거워 보인다. 현재 본인의 모습에 만족하는지.


“고등학교 때 공부를 안 했어요. 공부 잘하고 잘나가는 친구들을 보며 박탈감을 느끼기도 했죠. 제가 좋아하는 일을 찾은 이후부터는 나만의 길을 열심히 걸어왔다고 자부해요. 일하는 게 즐거웠기 때문에 남들보다 치열하게 살아왔어요. 그래서 지금은 저를 부러워하는 친구들이 무척 많아요. 자유로우면서도 열정적으로 일하는 지금의 삶이 무척 행복합니다.”


- 취미가 무엇인가.


“여행을 다니며 좋아할 만한 것들을 찾으러 다니는 걸 좋아해요.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도 즐기고요. 바다를 무서워하지만 스노클링에 도전하기도 하고, 고소공포증이 있어도 패러글라이딩에 도전했어요. 최근에는 자기개발서 위주로 책을 많이 읽고 있어요.” 

출처: 최한솔씨 제공
스위스에서 패러글라이딩

- 꿈이 있다면.


“늘 삶을 즐기고 행복하게 사는 게 꿈이에요. 사업이 커져도 행복하지 않으면 지금처럼 즐겁게 일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우리가 만든 앱이 세상 어딘가에 있는 사람의 불편함을 해결해주고 즐거움을 주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그 또한 행복으로 다가오기도 해요. 지금은 이 일을 하며 행복을 느끼고 있습니다.”


글·사진 오종찬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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