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락한 신발의 도시 부활시킬 사장님들의 아이디어

조회수 2020. 9. 22. 17:5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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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로 무슨 혁신 하냐고? 보소 '신발인가배' 와보소

1990년 1123개 달하던 부산 신발업체 지금은 200개 남짓… 

디자인, 소재, 건강, 친환경, 물류 내세운 신발 스타트업 둥지

노동집약적 제조기지에서 첨단 신발도시로 변화 시도 

 

 

부산은 ‘한 때’ 신발의 도시였다.

1950년 6·25 때 부산에 온 피란민들은 노동집약적 신발 산업을 태동케 했다. 1970년대 운동화 기술과 설비가 도입되며 대량생산 체제가 구축됐고, 1980년대 나이키·리복 등 미국 브랜드의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으로 신발을 만들며 부산은 세계적인 신발 생산기지로 성장했다. 1990년 기준 부산의 신발 업체 수는 1123개에 달했다.

영광의 스토리는 여기까지다. 인건비가 상승하며 중국·동남아에 물량을 족족 뺏겼다. OEM에 의존하며 브랜드화에 공을 들이지 않은 탓에 세계적인 브랜드도 양성하지 못했다. 지금 부산의 신발 업체 수는 200개 남짓이다.  


그럼 부산은 더 이상 신발의 도시가 아닌가? 지난달 부산 사상구 감전동에 문을 연 신발 스타트업 전문 보육공간 ‘신발인가배’에 모인 신발 창업가들은 오히려 “지금부터 혁신적인 신발의 도시로 나아갈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부산경제진흥원 신발산업진흥센터는 액셀러레이터(스타트업 육성 기업)인 ‘에이블벤처스’와 손잡고 국내에서 처음으로 신발 액셀러레이팅 공간을 열었다. 21일 찾아간 신발인가배엔 흥미로운 신발이 한가득이었다. 


◇엄마와 딸을 위한 콘셉트화, 세상에 하나뿐인 커스텀화로 차별화

‘DH인터네셔널’의 박관선 대표가 엄마와 딸 콘셉트의 신발을 들어보이고 있다. /jobsN

‘DH인터네셔널’의 박관선 대표가 똑 닮은 성인 신발과 아동용 신발을 나란히 들어보였다. “엄마처럼 되고 싶어하는 딸들을 위한 신발”이라고 했다. ‘엄마와 딸이 함께하는 경험이란 콘셉트’의 수제화다. 제작은 부산에서 40여년간 수제화를 만들어온 신발 장인들의 손을 거친다. 작년 8월에 시작했는데, 기술력을 인정받아 부산경제진흥원으로부터 우수신발지원사업에 선정되기도 했다.

‘지엠글로비즈’ 정길모 대표의 커스텀화들는 하나하나가 세상에서 하나 뿐인 디자인을 가지고 있다.  /jobsN

‘지엠글로비즈’ 정길모 대표는 신발 하나하나가 제각각의 디자인을 가진 커스텀화를 선보였다. 평범한 신발이지만, 디자이너가 그 위에 그림을 그려넣으면 세상에서 하나 뿐인 신발로 거듭난다. 정 대표는 “1만~2만원짜리 신발이 커스텀 공정을 통해 10만원대 신발로 재탄생하는 구조”라며 “대량생산에만 익숙한 부산 신발 산업에 커스텀화가 새로운 활력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애니메이션 제작자가 만든 신발, 염소가죽 소재 신발…

씨지픽셀스튜디오의 박동주 대표가 내놓은 애니메이션 '콩콩랜드' 캐릭터를 형상화한 신발들. /jobsN

씨지픽셀스튜디오의 박동주 대표는 새 부리 모양을 형상화한 어린이 신발을 들어보였다. 애니메이션 제작자인 박 대표가 만든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캐릭터를 형상화한 신발이다. 만화 속 독수리 캐릭터를 형상화한 신발은 앞부분이 새 부리처럼 뾰족 나왔다. 박 대표는 “기존의 신발에 캐릭터를 그려 넣는 것이 아니라 신발 형태 자체가 캐릭터화된 상품”이라고 했다.

‘마우’의 문민경 대표는 염소 가죽이라는 소재를 활용해 가죽 신발인데도 기능성 운동화 수준의 경량 제품을 내놓았다. /jobsN

‘마우’의 문민경 대표가 개발한 스니커즈화는 가죽 소재인데도 한 족의 무게가 250에 불과했다. 기능성 운동화의 무게 정도인 것이다. 대기업 디자인실장 출신인 문 대표는 ‘소재’를 통해 차별화를 꾀했다. 염소 가죽은 얇고 튼튼하면서도 통풍이 잘 된다고 한다. 문 대표는 “특화 소재에 디자인을 입혀 부산을 대표하는 신발 브랜드로 성장하는게 목표”라고 했다.

 

◇”신발 도시에서 시너지를” 부산 찾아온 기업도

'파이널스타디움' 안태훈 대표가 신발 바닥의 혈점 자극 지점을 가리키고 있다. /jobsN

이날 경기도 파주에 있는 신발 업체 '파이널스타디움' 안태훈 대표도 신발인가배를 찾았다. 그는 조만간 회사를 이곳 신발인가배로 옮길 계획이다. 안 대표는 ‘건강을 책임지는 신발’이란 콘셉트로 족저근막염, 무지외반증 등 발바닥 통증을 없애주는 신발을 개발했다. 신발의 바닥면이 이용자의 발바닥 혈점을 자극하도록 설계한 것이다. 실제 인슐린 분비를 촉진해 당뇨병 예방 효과가 있는 러닝화를 내놓아 지난해 열린 국제당뇨산업전에서 호평을 받기도 했다. 안 대표는 “부산에는 다양한 신발 인프라가 있고, 적극적인 지원도 기대할 수 있어 회사를 옮기기로 했다”며 “특히 이종(異種)의 신발 스타트업과의 교류를 통해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신발 첨단 물류, 친환경 신발 내놓은 업체도

'코봇랩'의 물류 로봇이 신발 소재가 담긴 박스를 스스로 옮기고 있는 모습. /코봇랩 제공

신발 회사들만 밀집한 신발인가배에 대형마트 카트만한 크기의 물류 로봇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코봇랩’이 내놓은 소형 제조업체를 위한 물류 로봇으로 아파트형 공장 입구에 있는 로봇에 새로 입고된 신발 소재를 싣자 해당 공장 앞까지 스스로 찾아갔다. 민병후 대표는 “부산에 신발 회사가 많다보니 물류 로봇을 구상하며 자연스럽게 소형 신발공장을 모티브로 삼았다”며 “이곳 신발인가배에서 시스템을 더욱 정교하게 가다듬어 다른 산업 분야로도 확대하고 싶다”고 했다.

‘CPS테크놀로지’의 실험영상. 산화성 분해 촉매를 넣어 만든 비닐이 22개월만에 대부분 분해가 된 모습. /CPS테크놀로지 제공

현재 입주 대기중인 ‘CPS테크놀로지’의 이승엽 대표의 콘셉트는 친환경이다. 신발 소재에 산화성 분해 촉매를 넣어 자연계에서 분해되는 속도를 수십 배 빠르게 한다. 이 대표는 “우리가 쉽게 사고 쉽게 버리는 패션 상품 하나가 자연에서 분해되는데는 수백년이 걸린다”며 “이 소재를 통해 부산을 친환경 신발의 메카로 만드는데 일조하고 싶다”고 했다.


신발인가배를 기획한 성상기 에이블벤처스 대표는 “조선업 쇠퇴로 파산 직전까지 갔던 스웨덴의 말뫼가 로봇 산업의 메카로 부활한 사례를 언급하며 “신발인가배가 노동집약적인 신발 산업에 의존하던 부산을 혁신 신발산업의 공간으로 탈바꿈하는 신호탄이 될 것”이라며 “소재·디자인·물류 등 다양한 혁신성으로 글로벌 신발 시장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을 것”이라고 했다. 

 

글 jobsN 김충령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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