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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가 커서..모델학원 등록 3개월만에 깨닫고 바꾼 길

조회수 2020. 9. 23. 17:3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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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30도 못 받고 허드렛일하다 회사 차리니 '패션계 박진영' 됐네요"

에스팀 그룹 김소연 총괄대표

장윤주·한혜진·송경아 소속 모델

직원 4명서 시작한 회사서 뉴욕 진출까지


“똑바로 안 해? 그렇게 힘없이 걸어서 옷이 눈에 들어오겠어? 눈빛을 살리란 말이야 눈빛을!”


2020 S/S 미스지 컬렉션 리허설장. 대한민국 대표 패션 디자이너 지춘희 선생의 무대 연출을 맡고 있는 김소연 에스팀 대표가 무대 한가운데 서 있다. 에스팀은 대한민국 최고의 모델을 기획·관리하는 매니지먼트다. 뿐만 아니라 패션쇼를 비롯한 관련 콘텐츠를 기획·연출하는 일도 맡고 있다. 

출처: 에스팀 제공
에스팀 김소연 대표.

◇"무대에 청춘 다 바쳐···대충 하는 태도 용납 못해”


김소연(47) 대표는 20년 넘게 국내 메이저 패션쇼를 진두지휘해왔다. 평소 털털하고 친근한 성격의 그녀지만, 패션쇼장에서만큼은 그 누구보다 깐깐하고 엄격하다. 오랜 세월을 함께해 온 한혜진·장윤주 등 프로 모델들도 긴장할 정도다. 아직 담력을 키우지 못한 신인 모델들은 김 대표를 만나면 벌벌 떤다.


김 대표는 패션업계에서 ‘이수만·박진영’이라 불린다. 이수만과 박진영이 프로듀서 1세대로 K팝을 전 세계에 전파한 것처럼, 김 대표 역시 한국 모델을 글로벌 무대에 진출시켰다. 해외 탑 디자이너들의 사랑을 받는 모델 수주·정호연·노마한 등은 에스팀을 발판으로 외국에 얼굴을 알렸다. 또 ‘아이엠어모델’, ‘도전! 슈퍼모델 코리아’ 등 패션 전문 방송 프로그램을 기획하기도 했다. 정윤기 스타일리스트, 박태윤 디자이너 등 패션계 숨은 셀러브리티들이 대중에게 알려진 기회가 됐다. 에스팀은 모델 매니지먼트·아티스트 매니지먼트·패션콘텐츠 제작·이벤트 연출 등을 담당하는 패션 업계에서 독보적인 회사다.

출처: KBS '사장님 귀는 당나귀귀' 캡처
에스팀에서 운영하는 모델 아카데미 이스튜디오에서 신인 모델을 가르치고 있는 김소연 대표.

모든 콘텐츠의 시작은 모델이었다. “모델이야말로 이 시대 만능 아티스트”라 말하는 김소연 대표 역시 모델 출신이다.


“키가 크면 동네에서 꼭 듣는 얘기가 있죠. 모델 해보라는 이야기요. 저도 175cm가 넘거든요. 남들이 해보라는데 해볼까,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패션계에 들어섰어요. 스물두살, 모델 학원을 다닌 지 3개월만에 깨달았죠. ‘아 나는 머리가 커서 모델로 성공하기란 도저히 불가능하겠다.’ 그런데 어떡하나요. 주변 사람들에게 다 말하고 다녔는데. 그냥 그만두는건 부끄럽잖아요. 한번 시작한 이상 지푸라기라도 잡아야겠어서 패션쇼 무대를 밤낮으로 쫓아다녔습니다. 운전하기, 짐 나르기, 바닥청소 등 온갖 허드렛일을 했죠.”


◇프로답게, 제대로 일하고 싶어 매니지먼트 설립


김소연 대표는 1996년 고려대학교 미술교육학과를 졸업하면서 본격 패션업계에 뛰어들었다. 이 시기 대다수 사람들은 모델이라는 직업을 잘 몰랐다. 패션쇼 역시 일반 공연 무대와 기준이 불분명하기는 마찬가지였다. 10인 미만 규모의 영세한 무대 기획사들이 연출과 섭외를 도맡았다. 업계 유명한 누구누구 선생님을 따라 전국을 돌며 공연을 하는 수준이었다, 전문 업체도, 인력도 없었다. 김 대표도 그렇게 일을 배웠다. 아침에 눈뜨면 디자이너에게 달려가 옷을 받아다 쇼장에 전달했다. 하루 종일 쇼장에서 바닥청소, 음향 설치, 도시락 배달 등의 일을 하다 밤늦게서야 집에 들어갈 수 있었다. 주말도 없었다. 약 30만원 미만의 월급은 늘 밀렸다. 이마저 한 해에 정상입금된 날은 몇 없었다. 그가 입사했던 영세 공연 회사들은 1년을 못 가고 망하기 일쑤였다.

출처: 에스팀 제공
에스팀웍스(ESteem WORKS)는 다양한 패션 이벤트를 기획·제작·연출·홍보 등의 업무를 담당하는 패션전문 프로덕션이다. 김소연 대표가 연출한 패션쇼장의 모습.

“모델을 하려다 온갖 무대의 심부름꾼을 자처하면서 인생이 알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갔어요. 매니지먼트를 운영하는 사업가를 하겠다는 거창한 목표가 있어서 에스팀을 만든 게 아니었죠. 처음에 이 일을 배울 땐 ‘제대로 일하고 싶다’는 마음뿐이었죠. 제대로 일한다는 건 간단해요. 함께 일한 사람들과 보수를 정확하게 나누고, 시간 약속을 엄수하는 등 기본을 지키는 거죠. 그때만 해도 무대감독이라는 사람이 모델을 술자리에 끌고 가 횡포를 부리는 일도 빈번했어요. ‘못 참겠다, 그만둬야지’ 하고 회사를 나왔는데 동료들이 따라나왔어요. ‘제대로 된 패션 이벤트 기획 회사 만들어보자. 김소연 대표라면 믿고 계약할 사람들 많다.’ 그 말을 듣고 31살에 에스팀을 설립했어요.”


◇방송 기획안 작성, 음반 제작사 미팅, 로드매니저···김대표가 하는 일


2004년 창업 자본금 3000만원. 직원 5명이 함께였다. 압구정동에 작은 사무실 하나를 마련했다. 김소연 대표가 모델 매니지먼트 회사를 차렸다는 말을 듣고 모델 장윤주가 따라나섰다. “윤주가 여태껏 같이 고생했으니 자기를 책임지라고 했어요. 제 어떤 점을 보고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사람들은 제가 탑모델들을 발굴해내는 눈썰미가 있다고들 하는데, 사실 전 모델들에게 선택받은 사람이에요."

출처: KBS '사장님 귀는 당나귀귀' 캡처
17년째 인연을 함께 해오고 있는 모델 장윤주와 김소연 대표.

“저는 모델들이 하고 싶은 거 다 하게 해주거든요. 음반 내고 싶다, 해외 무대 진출하고 싶다, 연기해보고 싶다 등 인지도 키울 수 있는 일이라면 어떻게 해서든 기회를 만들어요. 그런데 하고 싶은 일 하면서 돈 버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 줄 다들 아시잖아요. 그것도 제가 직접 하는 게 아니라 소속 아티스트들이 가능하도록 만드는 일입니다. 방송 관계자 만나 방송 프로그램 기획안 제출하고 음반 관계자 미팅하고... 말 그대로 맨땅에 헤딩하는 거죠. 송경아가 뉴욕에 진출할 땐 제가 직접 뉴욕 에이전시를 이잡듯 뒤져 하루 종일 캐스팅 담당자를 찾아다녔어요. 그렇게 일이 끝도 없이 펼쳐졌죠. 이 직업이 할만하다, 재밌다 느낀 건 마흔다섯 지나서예요. 그전까진 내일 진짜 그만둘 거야, 하면서 달려왔죠.”

출처: 에스팀 제공
압구정에 위치한 에스팀 그룹 사옥

◇21세기 아티스트, ‘스스로 한계 두지 말기’


에스팀은 모델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아티스트들의 예술 활동을 지원해주는 크리에이티브 콘텐츠 회사로 성장해다. 스타일리스트 한혜연, 작가 허지웅 등도 에스팀 소속이다. 에스팀 임직원은 110명, 매출은 350억원 정도다. 국내 메이저 엔터테인먼트와도 긴밀히 협업하고 있다. 2015년 SM그룹과 전략적 제휴(MOU)를 맺었다. SM그룹의 자회사 SM엔터테인먼트·미스틱스토리·키이스트 등이 관계사다.


“모델의 수명은 길지 않아요. 35살 정도라 생각합니다. 보통 그 나이면 사회에서 한참 일할 때잖아요. 열다섯, 열여섯살에 만난 친구들이 20년간 활동하다 사라지고 마는 게 안타까웠어요. 모델의 방송활동을 더 적극 지원할 방법을 찾다 SM그룹과 제휴를 맺었죠. 지금은 아티스트들과 직원들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각자 자리에서 최고의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생각해요. 올해 중순, 에스팀은 뉴욕에 진출했어요. 계획을 세워 간 건 아니었어요. 그동안 에스팀 모델의 일을 봐줬던 뉴욕 모델 에이전시 매니저가 퇴사하게 되면서였죠. ‘큰일났다, 어떡하지?’ 하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우리가 하나 차리자’ 하면서 사무실을 만든 겁니다. 첼시에 있는 자그만 오피스인데 그곳에서 또 새로운 역사가 쓰일 것 같아 기대가 돼요.”

출처: 에스팀 제공
뉴욕 첼시에 문을 연 에스팀 뉴욕 법인 사무실.

“에스팀 인재상이요? 스스로를 너무 쉽게 정의 내리거나 한정 짓지 않는 아티스트요. 직원을 채용할 때도 마찬가지죠. 신입사원의 지원서를 받아보면 거짓말 같을 때가 많아요. ‘저는 이 회사에 들어와 마케팅을 할 거고 영업을 할 거고...’ 뭐가 많더군요. 그런데 그걸 본인이 정말 하게 될지 어떻게 아나요? 에스팀은 부서 이동이 잦아요. 자기가 해보고 싶은 게 있다면 일단 시도해보고 거기서 답을 찾았으면 해요. 그 길의 끝에 무엇이 있을지는 아무도 몰라요. 자기 인생은 스스로 개척해나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남이 간대로, 주어진 대로 걷지 말고 자신만의 선택으로 인생 살기. 앞으로의 시대는 이런 크리에이터들이 훨씬 많은 기회를 가질 거라 생각합니다.”


글 jobsN 김지아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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