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건오 학교 보낼 때까지..매일 기적을 꿈꿉니다"

조회수 2020. 9. 24. 10:1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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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살배기 아들 초등학교 갈 때까지라도.." 기적이 간절한 말기암 작가
인스타그램 암 투병기 연재 윤지회 동화작가
거짓말 같이 걸린 말기암 환자 일상 담아
암 투병 중에도 동화책, 동시집도 펴내

“하느님 부처님 예수님, 나 못 죽어! 우리 건오 20살 될 때까지 살아야 해. 엄마, 아빠, 시엄마, 시아빠 빚 갚아야 하고, 남편한테도···. 그러니까 난 살아야 해. 딱 20년만 살려줘. 난 못 죽어. 그런 줄 알아.”


인스타툰(인스타그램에 연재되는 웹툰) ‘사기병’의 주인공이 한 말이다. 웹툰 속 주인공은 위암 4기 투병 중이다. 위암 4기 환자의 5년 이상 생존율은 7%라고 한다. 똘똘 뭉쳐 항암 공부에 나선 가족들, 네살배기 아들과 평범하지만 소중한 일상, 수술과 항암 치료로 힘겨워하는 모습, 그런데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씩씩한 모습까지 암 환자의 일상이 담겨있다.  


‘사기병’을 연재 중인 윤지회(40) 작가. 그는 ‘사기병’의 작가이자 웹툰 속 주인공이다. 그는 자신의 암 투병 이야기를 그림에 담고 있다. 수많은 사람이 그의 투병기에 응원 댓글을 남긴다. 사람들은 자신의 이야기와 경험담을 전하며 서로를 위로하기도 한다.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는 13만명이 넘는다. 페이지 누적 조회 수만 5000만뷰에 달한다. 


윤 작가는 인터뷰를 한 다음 주에 항암치료에 들어간다고 했다. 컨디션 조절을 위해 대면 인터뷰 대신 전화 통화로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출처: 본인 제공
윤지회 작가

-자기소개를 해주세요.


“그림책 작가로 15년째 활동하고 있는 윤지회입니다. 책 ‘사기병’, ‘우주로 간 김땅콩’, ‘뿅가맨’, ‘엄마 아빠 결혼 이야기’, ‘방긋 아기씨’, ‘구름의 왕국 알람사하바’, ‘몽이는 잠 꾸러기’를 출간했습니다. 지금까지 그림 작가로 참여한 작품 수는 100여권입니다. 지난 2월부터 인스타그램에 웹툰 ‘사기병’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국민대학교 회화과를 전공한 윤 작가는 2004년 출판사인 문학동네가 주최한 ‘제5회 서울동화일러스트레이션’ 공모전에 당선돼 동화작가로 데뷔했다. 


‘몽이는 잠 꾸러기’, ‘구름의 왕국 알람사하바’, ‘방긋 아기씨, ‘엄마 아빠 결혼 이야기’, ‘뿅가맨’ 등을 펴내며 동화작가로서 탄탄대로를 걷던 그에게 갑자기 ‘사기(詐欺)’ 같은 일이 벌어졌다. 2018년 3월 위암 판정을 받은 것이다. 


“처음에는 그냥 속이 쓰린 정도였습니다. 통증이 계속돼 병원에 갔는데 위암 4기 말기 판정을 받았어요. 바로 수술을 받았고, 항암 치료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수술로 위 80%를 절제했습니다. 소화가 힘든 상태라서 음식을 잘 먹지 못하고 있어요. 몸무게가 많이 줄었습니다. 10kg 정도 빠졌어요. 


그러던 중 지난 9월 난소에 암이 전이됐다는 말을 들었어요. 항암 치료를 다시 시작해요. 항암 치료가 가장 힘듭니다. 치료를 받는 동안에는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습니다. 말을 하기에도 힘들어요.”  


-많이 놀라셨겠어요. 


“갑자기 큰일을 당하다 보니 정신이 없었습니다. 세상을 원망할 겨를도 없더라고요. 수술하고 치료받는 데에 급급했습니다. 가족도 다 놀랐죠. 상황이 좋지는 않아요. 체력적, 정신적으로 힘든 상태입니다.”

출처: '사기병' 인스타그램 (@sagibyung) 캡처
웹툰 '사기병'

-투병기를 웹툰으로 그리게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하루아침에 암 환자가 됐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것도 모르겠더라고요. 아무 정보가 없어서 막막했습니다. 누가 알려주면 좋을 것 같았어요. 암 환자가 어떤 과정을 겪고,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투병기를 기록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어요. 


또 저와 비슷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이 만화를 보고 위로를 얻었으면 했어요. 많은 사람이 삶에 대한 소중함과 감사함을 느끼길 바랐습니다. 아프니까 사소한 것들도 다 감사하게 느껴지더라고요.

출처: '사기병' 인스타그램 (@sagibyung) 캡처
웹툰 '사기병'

처음에는 만화를 그리는 게 익숙하지 않았어요. 그림책과 만화는 작업 방식이 달라요. 그림책 작업은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보통 책 한 권을 만드는 데에 2~3년이 걸려요. 내용을 계속 압축해나가는 작업입니다. 약 20페이지 안에 모든 내용이 담겨야 해요.


웹툰은 한 에피소드에 대해 10컷 이내로 그림을 그려요. 좀 더 편하게 그릴 수 있었습니다. 또 독자와 바로 소통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아요. 지난 2월부터 인스타그램에 웹툰 ‘사기병’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내 인생에 갑자기 일어난 ‘사기(詐欺)’ 같은 병이라는 뜻이에요. 또 위암 4기라는 사실이 ‘사기’였으면 하는 마음에서 지었어요. 최근 웹툰과 일기를 엮어 책으로도 출간했습니다. 위암 4기 선고를 받은 날부터의 기록이 담겨 있어요. 더 많은 사람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고 싶었습니다.” 


-기억나는 댓글이 있나요. 


“체력적으로 힘들다 보니까 정신적으로도 많이 지쳐요. 안 좋은 생각을 할 때도 있습니다. 많은 분이 응원과 위로를 해주세요. 사람들의 댓글을 보고 위안을 받고 용기를 얻습니다. 힘들다가도 응원 메시지를 보면 정말 감사하고 힘이 납니다. 많은 분이 응원해주는 걸 보면 우울했다가도 ‘정신 차려야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100% 다 나을 테니 걱정 말라’는 댓글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자신의 느낌이 한 번도 틀린적이 없다고 하시더라고요. 제가 그분을 ‘도사님’이라고 불러요. 꼭 완치할 거라고 힘줘서 말씀해주시는 게 참 감사했습니다. 우울하고 절망적인 상황도 잊게 해주셨어요.”

출처: 본인 제공
윤지회 작가

-투병 중 6번째 그림책인 ‘우주로 간 김땅콩’과 그림에 참여한 동시집 ‘꽈배기 월드’가 출간됐어요. 어떻게 작업하셨나요.


“암 판정을 받기 전부터 작업하던 책이었습니다. 채색 작업만 남겨두고 있었어요. 80% 정도 완성한 상태였죠. 갑작스럽게 위암 선고를 받고, 마무리하지 못한 채 수술과 항암 치료를 받았어요. 마음 한켠에 숙제처럼 남아 있었습니다. 꼭 완성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수술과 항암 치료를 받으니 연필 잡을 힘도 없더라고요. 작년 겨울, 항암 치료를 받던 중 약이 하나 줄어든 시기가 있었어요. 일상생활을 조금씩 할 수 있었어요. 그때부터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손이 떨려서 전처럼 쉽지 않더라고요. 한 장을 채색하는 데에 보통 3~4일 정도 걸리는데 2달이 걸렸습니다. 온 힘을 다해 그렸어요. 한 장씩 완성할 때마다 정말 뿌듯했습니다.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었어요. 독자분들이 많이 좋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출처: 본인 제공
윤 작가는 최근 책 '사기병'을 출간했다.

-현재 가장 바라는 게 무엇인가요.


“동화 작가로 15년간 일하면서 꾸준히 작업을 해왔어요. 작업한 양이 많은 편이에요. 아프기 전까지는 대기업 과장 정도 벌었습니다. 지금은 과거 작업한 책 인세로 수입을 얻고 있어요. 생활비 정도를 벌고 있습니다. 인스타툰으로 버는 돈은 없어요.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 시작한 일이라서 괜찮습니다.”

출처: '사기병' 인스타그램 (@sagibyung) 캡처
윤 작가와 아들 건오 군.

‘가족여행 가기, 남편과 댄스 배우기, 엄마·시엄마 생일상 차려드리기, 아들과 야구장·워터파크 가기, 아들과 내 그림책 읽기, 아들 초등학교 보내기···.’ 


‘사기병’ 속 윤 작가의 버킷리스트다. 윤 작가에게 현재 가장 바라는 게 무엇인지 물었다. 


“밥을 잘 먹는 것과 아들을 제 손으로 키우는 겁니다. 위를 절제한 상태라서 음식을 잘 못 먹고 있어요. 또 아들 건오를 제 손으로 키우고 싶어요. 암이 난소에 전이돼 수술 받았을 때 아들을 시댁에 보낼 수밖에 없었어요. 세상이 원망스러웠습니다. 아들은 내 손으로 꼭 키우고 싶은데 왜 상황이 이렇게 되나 싶었어요. 저에겐 가장 고마운 존재입니다. 아들 덕분에 웃을 일이 많이 생겨요. 아들과 이야기하고 함께 노는 게 좋아요. 또 아들을 꼭 안고 잠들 때가 가장 행복합니다.  


다음 주부터 항암치료를 다시 시작해요. 많이 힘들겠지만, 힘을 낼 겁니다. 아프지 않고 살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아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으면 좋겠어요.” 


글 jobsN 임헌진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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