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힐 신고 뛰어다니는 남자의 등엔 이런 글씨가..

조회수 2020. 9. 24. 10:2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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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갤럭시 만들던 제가 왜 수제 구두에 꽂혔냐고요?"
어썸에프엔씨 백승민 대표
자체개발 깔창에 성수동 제화장인과 협업
발 편한 뾰족구두 등 하이힐 개발
“운동화보다 편한 구두 만들고 싶어”

“회사에 다니며 많은 아이디어를 냈는데 사장되는 것을 보고 직장생활에 회의를 느꼈어요.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히는 것을 느꼈죠. 또 당시만 해도 업무 강도가 높았던 때라 회사에 계속 다니면 제 삶을 찾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회사 다니며 힘들어 쓰러져 죽거나, 회사를 그만둬서 굶어 죽거나 비슷할 것 같다는 생각에 퇴사를 결심했습니다.” 


어썸에프엔씨 백승민(35) 대표는 2014년 삼성전자를 퇴사했다. 백 대표는 세종대학교 컴퓨터소프트웨어학과를 졸업한 뒤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소프트웨어개발팀에서 개발자로 근무했었다. 지금은 근무환경이 많이 달라졌겠지만, 당시만 해도 업무 강도가 높았다고 한다. 반면 회사 규모가 커서 자신이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기여도가 낮은 것 같았다고 한다. 결국 회사에서 자신이 원하던 미래를 그릴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삼성을 박차고 나와 현재는 ‘운동화처럼 편한 구두’를 만들겠다는 목표로 여성 구두 브랜드 쓰담슈즈를 운영하고 있다.

출처: 어썸에프엔씨 제공
어썸에프엔씨 백승민 대표.

◇주차장 정보 앱 만들면서 창업에 대한 꿈 키워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였으면 소위 말해 ‘잘나가는 삼성맨’이었는데. 


“회사에 다니면서 크게 재미를 느끼지 못했어요. 해보고 싶은 게 있으면 당장 실행해보자는 게 제 인생 최우선의 가치인데, 막상 일해보니 저는 삼성이라는 거대한 회사에서 작은 하나의 부분만을 담당하고 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우연히 마음 맞는 친구들과 주차장 정보를 제공하는 앱인 ‘주차 프라이스’를 출시했어요. 일주일에 두세 시간 밖에 못 자면서 틈만 나면 현장에 나가 주차장에 대한 자료를 모으고 주차요금 등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습니다. 비록 몸은 힘들었지만 내 손으로 무엇인가 가치 있는 것을 만들어 가는 것에 재미를 알게 됐어요. 그래서 ‘내 사업을 한 번 해보자’하는 마음에 회사를 나왔습니다.” 


-어썸에프엔씨가 두 번째 창업이라고. 


“퇴사 후 웨딩홀 예약 서비스를 하는 스타트업 ‘맵피타이저’를 세웠습니다. 기존 웨딩 시장이 투명하지 않은 부분이 많았는데요. 예비 신혼부부들이 더 합당한 가격에 웨딩홀을 예약할 수 있도록 투명하게 가격 정보를 공개하는 스타트업이었어요. 이후 저희와 비슷한 서비스를 하는 웨딩 스타트업과 2015년 M&A(기업 인수·합병) 했습니다. 두 회사가 함께 더 많은 서비스를 해볼 수 있겠다 해서 합병을 결정한거죠.”

삼성 갤럭시 만들던 제가 왜 수제 구두에 꽂혔냐고요?

-소프트웨어 개발과 웨딩은 구두와 관련이 없어 보이는데 왜 하필 구두를 택했나. 


“합병 이후 회사를 그만두고, 잠깐 지인의 회사 일을 도와줬는데요. 당시 그 회사가 비즈니스 캐쥬얼을 입어야만 하는 회사였어요. 다들 기본적으로 정장을 입고 구두를 신어야 했는데, 여성분들이 출근할 때는 힐을 신고 오고 점심을 먹으러 밖에 나갈 때는 슬리퍼를 신고 다니는 모습을 자주 봤어요. 의아하다고 생각했죠. 구두를 신는 게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래서 왜 슬리퍼를 신고 다니냐 물어봤더니, 모든 분의 대답이 똑같았어요. ‘불편하다’는 거였죠. 생각해보니, 저도 구두를 신었을 때 불편했던 경험이 있었어요. 그래서 구두 시장에 관심을 갖게 됐죠.” 


-구두 시장 변화가 크지 않은 보수적인 시장이다. 뭘 믿고 구두 시장에 진입했나. 


“보수적인 시장일수록 오히려 더 시장 안에서 발전 가능성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처음 창업을 했던 웨딩 시장도 보수적인 시장이었는데요. 오히려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면서 웨딩 시장이 더 성장하고, 변화하고 있는 모습을 봤어요. 그래서 구두 시장도 충분히 변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또 구두는 어쩔 수 없이 신어야만 하는, 꼭 필요한 물품인 만큼 확실한 수요가 있다고 판단했어요.”

출처: 어썸에프엔씨 제공
쓰담슈즈에서 만들고 있는 스틸레토 앵클 부츠와 스틸레토 힐.

◇구두 사이즈 추천 쇼핑몰로 시작해 ‘쓰담슈즈’ 브랜드 런칭


백승민 대표는 2017년 여성 구두 사이즈 추천 쇼핑몰 어썸에프엔씨를 창업했다. 지인들에게 창업 계획을 말했고, 뜻이 맞았던 3명이 합류했다. 이들은 직접 고객이 있는 집, 사무실 등으로 찾아가 발 치수를 재고, 이를 바탕으로 맞춤 수제화를 주문할 수 있는 쇼핑몰이었다. 사업은 나름대로 여성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지만, 실제 구두를 받은 고객들의 후기가 좋지만은 않았다. 


“‘치수를 재서 만들었는데도 왜 불편하냐’는 분들이 많았어요. 고객분들의 후기를 보면서 원인이 뭘지 고민했죠. 그러다가 ‘구두 자체가 불편한데, 과연 사이즈가 맞는다고 편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편한 구두를 만들어보자 했죠. 그렇게 쓰담슈즈가 탄생했습니다.” 


쓰담슈즈의 가장 큰 특징은 인솔(깔창)이다. 어썸에프엔씨가 자체 개발한 인솔은 발 모양에 맞춰 인솔에 쿠션을 넣어 하이힐을 신었을 때 앞으로 쏠리는 무게중심을 발뒤꿈치로 이동시켰다. 덕분에 발가락에 가해지는 압력을 줄여 높은 굽을 신더라도 피로감을 덜 느끼게 했다. 인솔 제작은 전문 인솔 제작 업체가, 구두 제작은 쓰담슈즈와 계약을 맺은 성수동 수제화 장인 분들이 담당한다. 중간 유통 과정을 줄여 가죽 수제화임에도 가격은 13만원대다. 

출처: 어썸에프엔씨제공
(좌) 자체 개발한 인솔 (우) 인솔을 붙였을 때 구두 단면 차이.

-계속 신어보면서 비교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을 것 같은데.


“인솔을 1년 넘게 개발했어요. 쿠션을 이곳에도 넣어보고, 저곳에도 넣어보고, 변형하고 또 변형해보는 시행착오를 거쳤어요. 저희 구두 디자이너분이 남성분이신데, 계속해서 직접 신고 테스트를 하셨어요. 공원을 뛰어다니고, 계단을 뛰어다니고 하면서 편안한 신발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또 저희 직원들 말고도 모르는 사무실 들어가서 여성분들께 신어 봐 달라, 불편한 점을 말해달라 하면서 계속해서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출처: 어썸에프엔씨 제공
남자 디자이너가 직접 힐을 신고 착화감 테스트를 하던 모습.

어썸에프엔씨에는 현재 구두 디자이너 2명을 포함해 10여명이 근무 중이다. 가장 잘나가는 신발은 앞코가 뾰족한 스틸레토(뾰족구두) 7cm다. 날렵한 디자인을 살렸음에도 착화감이 좋아 여성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2018년 9월 출시 이후 스틸레토 단일 상품만 5000켤레 이상 팔렸다. 판매량이 증가하면서 2019년 2월 네오플라이, 매쉬업엔젤스로부터 투자를 유치하기도 했다.


-다른 기능성 구두와 쓰담슈즈의 차별점은. 


“편하면서 디자인도 예쁜 구두를 만들고 있습니다. 초기에 편한 구두를 만들어 출시했는데, 다들 편하다고는 했지만, 구매를 안 하셨어요. 이유는 단 하나였습니다. ‘디자인이 안 예쁘다’였죠. 결국에는 아무리 편해도 디자인이 예쁘지 않으면 구매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죠. 그래서 예쁘고 편한 구두를 만들자 했어요. 편한 구두는 예쁘지 않다, 예쁜 구두는 편하지 않다는 관념을 깨고자 하고 있습니다. 쿠션이 두껍게 들어가면서도 투박한 디자인이 아니라 날렵한 디자인이 나올 수 있도록 디자인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출처: 어썸에프엔씨 제공
쓰담슈즈 쇼룸 사진.

◇운동화보다 편한 구두 만드는 게 목표


-회사를 그만두고 창업을 한 선택을 후회하지는 않나. 


“후회를 아예 안 한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하지만 크게 후회한다기보다는 회사에 다녔으면 이런 걱정은 안 할 텐데, 이런 건 고민하지 않아도 될 텐데 하는 수준이에요. 그리고 저는 후회하는 게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자극제가 되는데요. 제가 후회를 하면 제 선택이 잘못된 거라고 인정하는 꼴이잖아요. 오히려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더 열심히 해서 제 선택을 잘한 선택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목표는. 


“지금은 운동화처럼 편한 구두를 만들고 있지만, 최종 목표는 운동화‘보다’ 편한 구두를 만드는 것입니다. 말도 안 된다,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사실 저희도 지금은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저희가 계속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목표가 없으면 현재 상태에 만족하고, 더 노력하기보다는 현실에 안주할 가능성이 있으니까요.


저희 브랜드를 떠올렸을 때 ‘쓰담슈즈 구두는 편하니까 디자인만 고르면 돼, 편한 건 신경 안 써도 돼’하는 브랜드로 만들고 싶습니다. 현실에 만족하지 않고, 구두에 대해 계속 연구하고 운동화보다 편한 구두 만들 때까지 노력하겠습니다.”


글 jobsN 박아름 인턴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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