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는 과학'이란 말에 반기든 고대 문과생들이 벌인 일

조회수 2020. 9. 24. 10:2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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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킨지 나와 매트리스 만듭니다. 잠이 블루오션이거든요"
메모리폼 매트리스를 만드는 슬라운드 용현석 대표
매트리스는 과학이 아닌 수학, 수치로 증명 가능
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브랜드 되고파

‘슬리포노믹스’란 신조어가 있다. 수면을 뜻하는 'sleep'과 경제학 'economics'를 합친 말로, 바쁜 현대인이 숙면을 위해서 많은 돈을 지불하면서 숙면과 관련된 산업이 성장하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특히 수면의 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매트리스, 기능성 침구류 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수면 산업의 성장에 맞춰 ‘한국의 템퍼(메모리폼 매트리스로 가장 유명한 글로벌 업체)’를 목표로 메모리폼 매트리스 분야에 뛰어든 스타트업이 있다.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동기였던 용현석(33) 대표와 손종화(34) 이사가 2017년 세운 슬라운드다. 슬라운드는 스프링 침대가 주류인 한국에서 메모리폼 매트리스를 만들고 있다. 맥킨지 컨설팅에서 전략컨설팅을 담당했던 용현석 대표는 메모리폼 매트리스 산업이 성장하면서 기존 매트리스 시장을 바꾸는 모습을 보고, 이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용 대표는 대학 동기였던 손 이사에게 사업을 같이하자고 제안했고, 생활용품회사 P&G에서 브랜드 영업 기획을 담당하던 손 이사와 함께 슬라운드를 창업했다.

출처: 슬라운드 제공
슬라운드 공동 창업자인 손종화 이사, 용현석 대표.

◇제조 공장 찾는 데만 꼬박 3개월 걸려


슬라운드는 메모리폼 매트리스를 만든다. 스프링 매트리스는 내구성이 강하고 가격이 저렴하지만, 스프링 사이사이 공간이 비어있다. 엉덩이 등 특정 부위에 체중이 몰린다. 반면 메모리폼 매트리스는 메모리폼이 몸 전체를 감싸기 때문에 체중이 골고루 분산되는 게 장점이다. 쿠션감이 좋지만, 스프링 매트리스보다 비싸다. 슬라운드 메모리폼 매트리스의 판매 가격은 싱글 사이즈 기준으로 99만원이다.


-경영학과 동기 두 명이 전혀 연관 없는 매트리스 산업에 뛰어들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용) “사업을 해보고 싶어 퇴사를 결정했어요. 사업 아이템을 찾던 중에 영국에서 경험이 떠오르면서 메모리폼 매트리스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영국에서 근무할 기회가 있었는데요. 살림을 장만하면서 친구들한테 가구는 뭘 사야 하냐고 물어보니까 온라인 브랜드를 알려주더라고요. 신선했어요. 한국은 아직 가구를 살 때 대부분 가구거리를 가거나 오프라인 매장을 방문해서 구매하니까요.


식품을 이제 온라인으로 사는 것처럼 매트리스도 온라인으로 구매하는 게 시대적인 흐름이 되겠다 싶었어요. 또 컨설팅 일을 하면서 매트리스 시장이 성장하고 있는 모습을 보기도 했고요. 그래서 손 이사에게 같이 사업을 해보자고 제안했습니다.”

출처: 슬라운드 제공
슬라운드 매트리스.

-한국에서 아직 메모리폼 매트리스가 생소한데.


(용) “한국에서 메모리폼 매트리스 보급률이 5% 정도입니다. 영국이나 미국이 30~50% 가까이 되는 것에 비하면 초기 단계라고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소득이 오르면서 먹는 것도 유기농 제품을 찾는 사람이 늘듯이, 수면과 관련해서도 고급 제품을 선호하는 분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돈 더 쓰더라도 잠에 투자하는 시기가 아닐까 싶어요. 그래서 스프링보다 메모리폼 매트리스를 찾는 분들이 더 늘어나고 있기도 하고요.”


스프링 침대가 침대 시장의 95%를 차지하고 있는 만큼, 개발 과정부터 난관이 많았다. 창업을 결심하고 나서 메모리폼 매트리스를 ‘제대로’ 만들 수 있는 공장을 찾기까지만 꼬박 3개월이 걸렸다.


-제품을 만들 공장을 찾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손) “매트리스 공장들을 검색해 찾아다니기 시작했어요. 한 3개월 동안 약 100개 업체를 찾아다녔습니다. 그러면서 느낀 건 메모리폼 매트리스를 제대로 만드는 공장이 ‘없다’는 거였어요. 노래방 방음벽으로 쓰이는 스펀지 등을 가공해서 매트리스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용) “공장을 다니면서 들었던 생각은 하나였어요. ‘한국에서 만들 수가 없구나’였죠. 그렇게 이곳저곳을 찾아다니다 미국 1위 메모리폼 매트리스 브랜드에서 사업 초기부터 제품 개발을 담당하시고, 한국에 돌아오신 분을 소개받았어요. 메모리폼 매트리스의 원천 기술을 알고 계신 분이었죠. 처음 같이 만들자고 제안했을 때는 거절 당했어요. 당시 사업자 등록증도 없고, 홈페이지도 없는 상황이었거든요. 하지만 계속 찾아가서 설득한 끝에 함께하게 됐습니다. 같이 힘을 합쳐서 좋은 매트리스를 만들어보자고 약속했죠.”

출처: 슬라운드 제공
메모리폼 매트리스라고 해서 방문한 공장에서 공동 창업자가 발견한 폐기물 스펀지들.

-매트리스 개발 과정은.


(용) “저희는 ‘반값 템퍼’를 만들고자 했어요. 메모리폼 매트리스 하면 템퍼가 가장 유명하니까요. 그런데 공장 사장님께서 반대하셨어요. 템퍼가 유럽 브랜드다 보니까 유럽인 체형에 최적화되어 있고, 한국인 체형에는 맞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죠. 저희는 제품을 빨리 출시하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그래서 당시에는 사장님 이야기가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어요.


하지만 실제 템퍼를 사용하신 분들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몸이 너무 푹 잠겨서 불편하다는 분들이 많았어요. 또 여름에 템퍼 매트리스를 쓰면 더 덥다는 후기도 있었고요. 그래서 한국인에 맞는 매트리스를 만들자고 했어요.”


(손) “낮에 메모리폼 재료를 조합해보고, 밤에 그 위에서 자면서 사용감을 비교했어요. 재료 조합에만 6개월이 걸렸어요. 사무실에 매트리스만 놓고 계속해서 실험을 해봤어요. 겉으로 보기에는 다 같은 메모리폼이어도 소재를 뭘 쓰고 배합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사용감이 다르거든요. 맨 위에는 구멍이 송송 뚫린 소재를 사용해 여름에도 바람이 통할 수 있게 했고, 겨울에는 매트리스 위에 전기장판을 써도 괜찮도록 제품을 만들었어요. 자체 실험과 타 매트리스와의 블라인드 테스트를 거친 끝에, 2018년 가을 정식으로 제품을 출시했습니다.”

출처: 슬라운드 제공
매트리스를 개발했던 당시 사진.

◇유해물질 등 제품에 대한 정보 투명하게 공개해


한국의 라돈 침대 사태처럼, 몇 년 전 유럽에서는 ‘TDI(touene di-isocyanate) 사태’가 발생했다. TDI는 메모리폼의 원료 중 하나다. 메모리폼은 폴리올과 이소시아네이트의 화학 반응으로 만들어지는데, 이소시아네이트가 원료에 따라 TDI와 MDI(methyle di-p-phenylene)로 나뉜다. TDI는 가격이 저렴한 대신 유해물질인 휘발성유기화합물(VOCs)이 많이 검출된다. 2016년 독일에서 TDI에 대한 유해성 논란이 제기됐고, 이후 유럽 브랜드들은 TDI 사용을 전면 중단했다. 슬라운드는 안전한 제품을 만들기 위해 원가 부담이 커도, TDI가 아닌 MDI를 택했다. 대신 중간유통 과정을 생략하고 유통구조를 단순화했다.


-라돈 침대 사태 이후 유해 물질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용) “처음 제품을 개발할 때부터 안전한 원료를 사용하자고 했습니다. 특히 손종화 이사가 창업 이전까지 P&G에서 패브리즈와 다우니 등 브랜드를 운영하면서 제품 안전성이 중요하다는 것을 경험했기에 해외에서 이슈가 되면 분명 한국에서도 문제가 생길 거라고 했죠. 가격이 비싸지더라도 제대로 만들자 해서 MDI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매트리스 원료나 화학 물질 등에 대해서 잘 몰라서 힘들었을 것 같은데.


(손) “아무래도 어려움이 많았어요. 특히 원료에 대해 잘 몰라서 힘들었는데, 찾아보려고 해도 잘 안 나오더라고요. 공장에서 숙식하다시피 하면서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떤 배합과정을 거치는지 등을 눈으로 보면서 배웠어요. 판매하는 사람이 모르면 제대로 제품을 설명할 수 없으니까요. 화학 공식으로 보는 것보다 직접 보면서 쉽고 재미있게 배울 수 있었습니다.”


(용) “저는 매트리스가 과학이 아니라 수학이라고 생각해요. 내구성이나 단단한 정도 등을 다 수치로 환산할 수 있거든요. 수치를 바탕으로 다양하게 분석하고 테스트하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고객들에게 설명할 때도 수치, 객관적 사실에 근거해 말할 수 있게 됐죠.”


-제품을 개발하면서 가장 중요시했던 점은.


(용) “제품에 대한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할 수 있을 만큼 제대로 된 제품을 만들자고 생각했어요. 매트리스를 만드는 과정에서 유해 물질이 9개 정도 나올 수 있는데, 대부분 인증 마크 하나 붙여놓고 안전하다고 광고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저희는 투명하게 공개하자 했고, 9개 유해 물질의 수치를 각각 다 공개하고 있습니다.”


◇제품 체험해볼 수 있는 쇼룸도 운영


-홈페이지에 제품 개발기를 연재하는 점이 흥미로웠다.


(용) “초기에 제품 배송까지 직접 했는데, 손 이사가 1종 면허가 있어 트럭을 몰아 제품을 배송했어요. 대신 사무실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하다가 제품 개발기를 연재하기 시작했죠. 의외로 반응이 좋았어요. 한 번은 저희 제품 개발기를 읽고 허리디스크가 있는 의사가 제품을 구매하신 적이 있는데, 써보고 좋으셨는지 개발기와 함께 제품을 한 커뮤니티에 소개를 해주셨어요. 그 후로 생각보다 많은 분이 제품 개발 과정에 관심을 가져주신다는 걸 알게 됐고, 계속해서 제품을 만드는 과정 등을 올리고 있습니다.”


-고객들이 제품을 체험해볼 수 있도록 슬립 라운지(쇼룸)을 운영하고, 100일 무료 체험을 진행하고 있다고.


(용) “무료 체험은 2018년 가을에 처음 제품을 출시하면서 시작했는데요. 제품 개발기만 보고 한번 써보고 싶다 하시는 분들이 많아서 30일 체험으로 진행하기 시작했어요. 고객의 휴대폰 정보만 갖고 물건을 보내줬는데, 생각보다 체험 후에 반품하는 비율이 그렇게 높지 않았어요. 당시 한 10% 정도였어요. 현재는 100일 체험 후 반품률이 3% 정도입니다.”


(손) “체험과 함께 한 시간 동안 직접 매트리스 위에 누워볼 수 있도록 서울 청담동에서 예약제로 쇼룸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정식 명칭은 청담 슬립 라운지인데요. 온라인으로 제품을 판매하기 때문에 오프라인에서 고객분들이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저희만의 방법을 고안한 거라고 할 수 있어요.


‘100일 체험과 쇼룸 중 하나만 해도 되는 거 아냐?’ 하시는 분들도 있는데요. 온라인이 제품을 구매하는 공간이라면 오프라인은 브랜드를 경험하는 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제품이 총 3가지가 있다 보니까 다 체험해보고, 어떤 제품이 더 맞는지 직접 선택하고 싶어하시기도 하고요. 앞으로도 쇼룸을 슬라운드라는 브랜드를 경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운영하고 싶습니다.”

출처: 슬라운드 제공
예약제로 운영하는 슬라운드 쇼룸(슬립 라운지) 내부.

-앞으로의 목표는.


(용) “수면에 관한 관심이 높아졌지만, ‘잠’이라고 했을 때 딱 떠오르는 브랜드는 아직 없는 것 같아요. 휴대폰 하면 삼성 혹은 애플, 운동화 하면 나이키 하는 것처럼 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브랜드로 자리매김하고 싶어요. 또 제품이 좋고, 신뢰할 수 있는 브랜드가 되고 싶습니다. ‘더 좋은 잠, 더 좋은 삶’이라는 슬로건을 실현하는 회사가 되겠습니다.”


글 jobsN 박아름 인턴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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