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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믿고 따라와” 패럴림픽 출전하는 유일한 비장애인 ‘가이드러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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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잘 보이지 않는 시각 장애인에게 스키를 타고 설산을 내려오는 일은 불가능한 도전에 가깝다. 코스를 이탈할 경우 큰 부상을 당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두려움을 딛고 스키 폴을 잡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시각장애인 스키 선수들이다. 현재 국내에선 3명의 국가대표 시각장애인 스키 선수가 활동하고 있다. 이외에도 약 10여명의 시각장애인 스키 선수들이 있다.


시각장애인 스키 선수들이 안전하게 슬로프를 내려오기 위해선 이들의 눈 역할을 해주는 존재가 필수적이다. 이 때문에 패럴림픽(장애인 올림픽) 대회에선 알파인 스키 종목에 한해 비장애인이 장애인과 함께 경기에 출전하는 것을 허락하고 있다. ‘가이드러너(guide runner)’는 시각장애인 스키 선수들의 눈 역할을 해주는 코치 겸 선수를 가리키는 말이다. 가이드러너는 시각 장애인 선수와 함께 2인 1조로 경기에 참가한다. 언덕에서 형광색 조끼를 입은 가이드러너가 먼저 출발하고 뒤따라 시각장애인 선수가 스타트라인을 통과한다. 시각장애인 선수는 가이드러너가 입은 형광색 조끼의 희미함을 쫓아 가이드러너가 들려주는 무선 블루투스 신호에 의지해 일정한 간격을 두고 결승선까지 달린다. 둘 사이가 일정 간격 이상으로 벌어지면 실격 처리 되기 때문에 상당한 수준의 팀워크가 필요하다. 3위안에 들 경우 메달도 함께 받는다.

평창패럴림픽에서 양재림 선수의 가이드러너로 활동했던 고운소리 선수

출처고운소리 선수 제공

이화여대에 재학 중인 고운소리(25) 선수는 작년 3월 평창에서 열린 평창패럴림픽 대회에서 국가 대표로 알파인 스키 종목에 출전한 양재림(30) 선수의 가이드 러너로 경기에 출전했다. 고운소리와 양재림은 2015년부터 약 3년간 동고동락하며 훈련에 매진했다. 이들의 이야기는 SK텔레콤의 ‘연결의 힘’ 브랜드 캠페인 영상으로 제작돼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기도 했다. 서울 신촌에서 고운소리 선수를 만나 가이드러너로 활동한 이야기와 현재 근황을 들어봤다.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린다.


“지난 평창패럴림픽 대회에서 양재림 선수의 가이드러너로 출전했던 고운소리입니다. 현재 이화여대 건강과학대학 체육과학부에 재학 중입니다.” 


-가이드러너는 아직 사람들에게 생소한 개념인데. 


“쉽게 말해 시각장애인 스키 선수들의 눈 역할을 하는 코치 겸 선수라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2인 1조로 함께 경기에 출전해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며 결승선까지 내려옵니다. 알파인 스키에는 8가지 종목이 있는데 종목마다 조금씩 룰이 달라요. 예를 들면 슬로프를 내려오며 뛰어야하는 점프 횟수나 코스 회전 방식이 조금씩 다릅니다. ‘회전’ 종목의 경우 시각장애인 선수와 가이드러너의 간격이 두 게이트(깃발) 이상 벌어지면 실격이 되고, ‘대회전’ 종목은 하나 반 이상 벌어지면 실격이 됩니다. ‘활강’ 종목은 한 개 이상 벌어지면 실격이예요.” 


-경기 도중에는 무선 블루투스 기기와 형광색 조끼를 착용한다고. 


“가이드러너가 시각장애인 선수에게 코스를 설명하고, 자세를 지시하는 용도로 블루투스 기기를 이용합니다. 시각장애인 선수는 인이어 스피커를 착용하고, 가이드 러너는 마이크를 추가로 착용합니다. 이를 통해 코스 설명을 합니다. 형광색 조끼의 정식 명칙은 ‘가이드 빕(bib·스포츠 경기 때 가슴과 등에 다는 번호판)’입니다. 대부분 주황빛 형광색 빕을 착용하지만 선수들마다 잘 보이는 색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노란색이나 다른 색 계열의 빕을 착용하기도 합니다.”

양재림 선수와 고운소리 선수의 팀워크를 소재로한 SK텔레콤 '연결의 힘' 브랜드 홍보 영상

출처SK텔레콤 제공

-가이드러너가 되기 위해선 어떤 과정을 거쳐야하나.


“시각장애인 스키 선수 수가 워낙 적기 때문에 아직 가이드러너가 되기 위해 정식으로 일정한 자격 요건을 갖춰야하는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보통 선수 출신들이 가이드러너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단순히 스키를 좋아해서 잘 타는 사람들이 시각장애인과 함께 경기에 출전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고운소리 선수도 본래는 스키 유망주였다고. 


“어렸을 때 아버지가 경기도 남양주에 있는 천마산 스키장(현재의 스타힐 리조트)에서 스키 장비 샵을 하셨어요. 오빠도 국가대표 상비군 출신으로 스키 선수 생활을 일찍부터 시작했고요. 이런 영향으로 저도 여섯살때부터 자연스레 스키를 타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가 오빠 경기장에 쫓아다니는게 부러워 ‘나도 스키 선수하고 싶다’고 고집을 부렸고, 아버지가 마지못해 ‘그럼 딱 1년만 해보자’라고 허락해주셨죠. 그게 지금까지 이어진 셈이에요. 재능이 있었는지 초등학교 때부터 연령별 대표팀을 두루 거쳤어요. 고등학교 때 청소년 국가대표로 발탁되기도 했고 성인 국가대표 상비군에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유일하게 국가대표로만 선발되지 못했어요. 대학 신입생 때는 스페인 그라나다에서 열린 유니버시아드 대회에 출전하기도 했습니다. ” 


-가이드러너로 변신한 이유는 무엇인가. 


“제가 재림 언니의 가이드러너가 된 것은 2015년 9월부터지만, 그해 4~5월달까지만해도 국가대표 후보팀 소속이었어요. 하지만 선수 생활을 그만둘까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가족으로부터 지원을 받지만 스키를 타는게 돈도 많이 들고, 국가대표가 과연 될 수 있을까 생각을 많이 하던 시기였어요. 그런 와중에 대한 장애인 체육회에서 가이드러너 지도자를 뽑는다는 소식을 듣게 됐어요. 사실 이전부터 시각장애인 스키 선수에 대한 궁금증을 갖고 있었어요. ‘우리 선수들도 타기 힘든 코스를 어떻게 눈이 잘 안보니는 시각장애인 선수들이 탈 수 있을까?’라는 일종의 경외심을 갖고 있었죠. 가족들과 상의 끝에 새로운 분야에 도전해보자 결심을 했습니다.”

평창패럴림픽 당시의 고운소리 선수

출처고운소리 선수 제공

-일반 선수시절과 비교했을 때 가이드러너로서 경기에 출전할 때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인가?


“아무래도 책임감의 차이가 가장 크죠. 나 혼자 스키를 탈 땐 실수를 하더라도 ‘다음에 잘하면 돼’하고 넘길 수 있어요. 하지만 가이드러너가 실수하면 선수에게 굉장히 큰 영향이 가요. 저 때문에 경기를 망칠수도 있을 뿐더러 가이드러너가 시야에서 사라지면 큰 부상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더 큰 책임감을 갖고 경기에 임하게 되더라고요.” 


-서로간의 호흡을 잘 맞추기 위해 연습말고 평소에도 가깝게 지내나. 


“그럼요. 재림 언니와 평창패럴림픽까지 약 3년간 같이 지냈는데 1년 365일중 약 360일은 늘 같이 생활했어요. 아무래도 둘이 성격적으로도 잘 맞아서 그럴 수 있었겠죠. 연습이 없는 날도 자연스레 만나서 스키 이야기하고 ‘이번 대회에서 1등하자’ 이야기하고 재밌게 지냈어요. 비시즌에는 제주도로 여행도 같이 가고요. 이번에 패럴림픽 끝나고 재림 언니와 일본 여행도 함께 다녀왔어요. 재림 언니는 패럴림픽을 끝으로 선수 생활을 은퇴했지만 지금도 자주 연락하고 있어요.” 


-평창패럴림픽에서는 회전 종목 7위로 아쉽게 메달을 따지 못했다. 


“정말 많이 아쉬웠어요. 패럴림픽 전에 있었던 세계 대회에서는 2등도 하고 메달 전망이 밝다고 생각했거든요. 둘 다 홈그라운드에서 열리는 경기다 보니 압박감이 있었던 것 같아요. 저희 이야기가 매스컴에 소개되면서 저희가 경기 출전하는 날에는 매번 관중석이 매진 됐었어요. 좀 더 잘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던 게 결과적으로는 성적에 도움이 되지 않았던 것 같아요. 7위는 정말 저희도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였어요. 끝나고 재림 언니와 껴안고 펑펑 많이 울었어요. 시원섭섭했지만 정말 많이 아쉬웠어요. 지금와서 돌이켜보니 ‘그 때 왜 좀 더 즐기지 못하고 부담감을 느꼈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해외 전지훈련에서 산에 오른 고운소리 선수

출처고운소리 선수 제공

-평창패럴림픽 이후에는 어떻게 지냈나?


“올해 3월까지 다른 고등학생 시각장애인 선수의 가이드러너로 활동했습니다. 최사라-길라 쌍둥이 자매 선수 중 동생인 길라 선수와 1년간 호흡을 맞췄어요. 더 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저도 학업을 마쳐야하고, 안정적으로 오랫동안 가이드러너를 해 줄 사람이 더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앞으로의 꿈과 계획은? 


“지금은 학교 열심히 다니면서 새로운 분야로의 도전을 준비하고 있어요. 속도를 겨루는 일반 엘리트 시합이 아니라 기술과 자세 등을 겨루는 ‘인터 스키’ 종목으로 전공을 바꿔 이 쪽 분야에서 활동할 생각입니다. 지금까지 스키를 탔던 것과는 완전히 분야가 다르기 때문에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해요. 올 겨울에 인터스키를 배울 수 있는 스키 스쿨에 들어갈 예정이예요. 궁극적으로는 대한스키지도자 연맹이 인정하는 최고 레벨 지도자인 ‘데몬스트레이터’가 되는 게 꿈입니다. 데몬은 해마다 연맹이 30명씩 뽑는데 정말 스키를 잘 타야돼요. 앞으로도 계속 스키장에서 구슬땀을 흘려야 할 것 같습니다.” 


글 jobsN 이준우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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