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원들이 기피한다는 서울의 주상복합은 어디?

조회수 2020. 9. 24. 10:3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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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새난다, 배달원들 화물용 엘리베이터 타라"
합정동 고급 아파트 일부 주민 “배달음식 냄새난다”
배달원에 화물용 승강기 타게 해 ‘배달 갑질’ 논란
국회의원회관도 화물용 이용케 했다가 철회

방송인 장성규가 출연하는 유튜브 채널 ‘워크맨’ 운영진은 장씨가 배달 체험에 나선 영상을 11월 23일 삭제했다. 장성규 씨가 배달 체험을 하면서 일어난 에피소드를 담은 영상이었다. 이 영상은 300만 뷰 이상 조회수를 올릴 정도도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그러나 일부 네티즌들은 장성규 씨가 배달한 서울 합정동의 한 고급 아파트에서 ‘배달 갑질을 한 것 아니냐’는 논란을 제기했다. 논란이 가열되자 제작진은 영상을 삭제하고 공식 해명을 내놨다.


방송인 장성규씨는 11월22일 유튜브 채널 ‘워크맨’에서 배달 애플리케이션 라이더 체험에 나선 모습을 공개했다. 이날 장씨는 합정동의 고급 주상복합 메세나폴리스 아파트 단지에 배달 주문을 받았다. 아파트는 보안이 철저해 입구부터 헤매는 모습이 그려졌다. 건물 입구에 들어선 장성규는 목적지인 13층으로 올라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탔다. 그러나 엘리베이터는 3층까지만 운행해 당황하며 다시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방송인 장성규씨가 출연하는 유튜브 '워크맨' 채널에 올라온 '길치가 배달알바하면 생기는 일' 캡처

장씨는 다시 주민이 이용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배달층을 눌렀지만 애초에 카드키 없이 해당 층수를 누를 수 없는 시스템이었다. 우연히 만난 25층 주민의 도움을 받았다. 장씨는 25층에서 내려 13층까지 비상구로 걸어내려와 결국 배달 임무를 완수했다. 해당 영상은 ‘길치가 배달 알바를 하면 생기는 일’이라는 제목으로 유튜브 채널에 올라왔다. 이를 본 네티즌 중 일부는 장성규씨가 길을 헤맨 이유는 그가 길치여서가 아니라 아파트 엘리베이터가 잘못된 시스템이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댓글에는 실제 배달원들의 경험담도 뒤따랐다. 한 네티즌은 “나도 처음 메세나폴리스 배달 갔을 때 한참 헤맸다”며 “나올 때도 카드키가 필요한 아파트라 40분간 갇혀있었다”고 증언했다. 또 다른 배달원은 “오토바이로 아파트 입구까지 못간다”며 “합정 지역에 배달하는 사람들은 다 저 아파트 기피한다”고 불편함을 토로했다.

유튜브 댓글 캡처

이슈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커지자 워크맨 제작진 측은 사태 진화에 나섰다. 제작진은 “예상치 못한 논란으로 의도치 않게 피해가 생겨나 해당 부분을 삭제하고 다시 올리기로 결정했다”며 “구독자분들께 혼란을 드려 죄송하다”고 밝혔다. 또 “배달원 전용 출구를 몰라 일어난 해프닝”이라는 해명을 덧붙였다.


◇작년 12월엔 배달원이 시위까지 벌였던 아파트 


해당 아파트에서 배달원을 받는 시스템은 작년 말에도 논란이 일었다. 인근 배달원들이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까지 벌이기도 했다. 그러나 약 1년의 시간이 지났는데도 아파트 거주민 측은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 


“우리는 화물이 아니고, 손님은 귀족이 아닙니다” 


2018년 12월20일 서울 합정역 사거리에 헬멧과 마스크를 쓴 8명의 라이더들이 플래카드를 들었다. 배달업체 종사자 모임인 ‘라이더유니온’ 회원들이었다. 앞서 이 아파트는 11월 6일 입주자대표회의를 열어 원칙적으로 음식 배달을 금지하되 어쩔 수 없이 배달 음식을 시켜야 하는 경우 배달원이 비상용 승강기를 이용하도록 합의했다. 배달원이 주민용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면 냄새가 나기 때문에 타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대신 평소 사용이 적은 화물용 승강기에 배달원들을 태우자 합의했다. 이날 시위에 나선 한 배달원은 “화물용 엘리베이터는 환풍기가 가동되지 않아 악취가 나는 데다, 청소도 안 돼있다"라며 “이걸 타고 있으면 내가 짐짝이 된 기분”이라고 심경을 밝했다.

출처: 라이더유니온 제공
배달업체 종사자 모임인 '라이더유니온' 회원들이 주민용 엘리베이터 사용 금지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2018년12월20일 열었다. '우리는 화물이 아니다'라고 적힌 손팻말이 들려있다.

아파트 측은 “냄새가 심하다는 대다수 입주민의 의견 때문에 음식 배달을 금지했으나 일부 주민이 반대해 비상용 승강기를 이용하게 했을 뿐”이라며 “배달원을 입주민과 동승하지 못하게 하려는 취지가 아니다”라고 했다. 또 문제가 된 비상용 승강기를 청소해 배달원들이 불쾌감을 느끼지 않게 하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이 사건이 발생한지 1년이 지났다. 여전히 이 아파트로 음식을 배달하는 배달원들은 주민용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수 없다. 이 과정이 알려지자 네티즌 사이에서 ‘갑질 논란’이 확산된 것이다.


◇22층 부산호텔에선 ‘계단 이용해라’, 코리아나 호텔도 마찬가지··· 


작년 여름 부산의 한 호텔에서도 배달원들에게 ‘계단을 이용하라’고 안내해 비난 여론에 휩싸였다. 2018년 8월 16일 기록적인 폭염이 있던 날이었다. 부산 해운대해수욕장 앞 22층의 한 호텔 엘리베이터 앞에는 ‘승강기가 혼잡하니 외부 음식을 배달하는 분은 내려올 때 계단을 이용해달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음식을 배달할 때는 엘리베이터를 타도되지만 내려갈 땐 걸어가라는 내용이었다. 호텔 관리부 측에선 “배달 음식 냄새에 대한 민원이 많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또 호텔 이용객이 많은 성수기에만 한정된 조치였고 앞으로는 이 같은 사용 제한을 없을 것이라고 했다. 

출처: SBS뉴스 캡쳐(왼쪽), jobsN(오른쪽)
부산에 위치한 22층짜리 호텔(왼쪽)과 서울 중구 코리아나호텔에 써붙여진 안내문.

그러나 앞뒤가 맞지 않는 해명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이 지역 배달을 맡았던 배달원은 “음식을 들고 올라갈 때는 엘리베이터 사용을 허용하면서 음식을 건넨 뒤 내려갈 때는 계단을 사용하라는 말이 어불성설”이라고 밝혔다. 네티즌 사이에서도 비난이 커졌다. “배달 끝내고 나가는 길에 계단을 이용하라는 말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 “투숙객이 1층에 내려와 직접 받아 가면 되지 않나” 등의 의견이 달렸다.


서울 중구에 위치한 코리아나호텔에도 비슷한 안내문이 걸려있다. 코리아나호텔은 사무실동과 호텔동이 나뉘어 있다. 두 동을 연결하는 1층 복도문에는 ‘화물(배달) 출입 금지. 화물운반 시 지하1층 화물엘리베이터를 이용하세요’ 라는 공고가 붙었다. 2019년 12월 4일까지 호텔측은 이 안내문을 철수하지 않은 상태다.


◇화물용 승강기 사고 발생 시 사망률 40% 이상 높아 


‘청소노동자·배달기사님들이 의원회관 일반용 승강기를 이용 시 작업용 물품 및 화물 운반 등으로 인해 불편하다는 민원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작업용 및 화물 운반 시 비상용 승강기를 이용해주면 감사하겠습니다.’


2년 전 국회 내부 직원 게시판의 공고문이다. 국회의원회관에서도 청소노동자와 배달기사에게 일반 엘리베이터 사용을 금지시켰다. 국회 관리국 설비과는 갑질 논란이 일자 변경된 안내문을 다시 올렸다.

작업용 물품이나 화물 운반 시 ‘화물용 승강기'를 이용해 달라는 문구로 바꿨다. 관리국 측은 "엘리베이터 크기가 작아 작업자분들이 이용하는데 불편함이 있을 것 같아 화물용 엘리베이터 사용을 권고하고 있다"고 12월4일 밝혔다.

출처: 국회 내부직원 게시판 자료
국회 내부직원 게시판에 올라온 승강기 이용 안내문. 논란이 일자 국회 관리국 설비과에선 해당 안내문의 문구를 수정하고 '모든 분들이 이용하실 수 있다'는 공고문을 올렸다.

그러나 화물용 승강기 사용 권고에도 문제는 있다. 대부분의 화물용 승강기는 관리가 잘 안돼있다. 뿐만 아니라 화물용 엘리베이터는 완충재 등의 장치를 잘 갖춰놓지 않아 사고 발생 시 탑승자 사망률이 일반 엘리베이터보다 40% 이상 높다. 또 일반 엘리베이터와 달리 구조나 비상벨이 없어 안전에 위험하다.


한국승강기안전관리원이 2015년 12월 발간한 ‘승강기 사고 원인 분석 및 안전대책’을 보자. 국내엔 15년 이상 사용중인 노후화된 화물용 승강기가 그렇지 않은 승강기보다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화물용 승강기는 사고 발생 시 사망률이 40% 이상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화물용 승강기가 추락하는 경우 충격을 완화하는 장치 등이 없기 때문에 일반용 엘리베이터보다 훨씬 위험하다. 보고서에 따르면 사고 발생 시 화물용 승강기가 승객용보다 사망률이 2배 더 높다는 결과가 나타났다. 


송인한 연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갑을 관계란 우월한 지위를 이용한 부당한 관계로 정의된다"며 "배달기사에게 승강기 사용으로 차별하는 것은 돈으로 산 물품과 서비스를 넘어 사람까지 샀다고 착각하는 갑질이다"라고 말했다. 송 교수는 "갑질은 사회 시스템과 개인의 인격이 공범으로 만들어낸 악으로 사회 구성원 모두가 개선에 힘써야 한다"고 덧붙였다. 


글 jobsN 김지아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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