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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 쓰고 웃다가 얻은 병, 전 여기서 고치고 살아났죠

조회수 2020. 9. 24. 11:1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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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시달린 '가면의 삶', 이 직업이 나를 살렸습니다
2019 아시아프 히든아티스트 프라이즈 홍승희씨
서비스직에 일하면서 ‘가면의 삶’
미술치료사 늦깎이 공부로 인생역전

사람은 누구나 마음속 동굴을 품고 산다. 동굴의 한쪽에는 어둠이, 다른 한쪽에는 빛이 든다. 그러나 안으로, 더 안으로 들어가면 빛과 멀어진다. 빛이 보이지 않는 순간 어둠은 마음을 덮어 자신도 모르는 사이 동굴 안에 갇히게 된다.


홍승희(43) 씨의 동굴은 깊어만 갔다. 어려서부터 늘 밝고 명랑한 성격이 독이 됐다. 우울한 기분이 들어 넋 놓고 있으면 다그침을 받았다. 그럴수록 마음속 어둠을 표출하지 못했다. 그는 대신 가면을 쓰기로 했다. 밝은 모습을 연기하면 적어도 주변의 우려는 피할 수 있었다.

홍승희씨

◇ 백화점, 음식점, 카페... 감정노동에 지쳐 공황장애


성인이 돼서도 가면 쓰는 삶은 계속됐다. 백화점, 음식점, 쇼핑몰, 카페 등에서 일하며 항상 미소를 유지해야 했다. 감정노동은 힘들었다. 속으로는 울면서도 겉으로는 웃어야 늘 웃어야 했다. 타인의 시선에 비친 그는 에너지가 넘쳤으나 정작 마음은 힘들었다. 그의 가면은 더 두터워졌다. 결국 탈이 났다. 어느 순간 숨만 쉬어도 눈물이 났다. 집 밖으로 발걸음을 떼는 게 겁이 났다. 타인에게 늘 밝고 좋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노력한 게 한계에 봉착한 것이다.  


“어려서부터 가면 쓰는 일에 익숙했어요. 다른 사람은 항상 저를 에너지 넘치는 사람으로 보고 좋아했으나 사실 저는 힘들었던 거죠. 얼굴에 경직이 될 정도로 웃어주면서도 힘들었어요. 그런데 멘탈이 불안정해지며 공황장애가 온 거예요.”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그의 마음 상태를 심각하게 진단했고, 상담을 꽤 오랜 기간 했지만 나아지지 않았다. 마음속 동굴에 실낱같은 빛이 들어오려면, 에너지가 필요했다. 그는 낙서를 떠올렸다. 어려서 기분이 좋지 않을 때 공책에 끼적이면 마음이 개운해지던 기분이 생각났다. 

홍승희씨

홍승희 씨는 가죽공예 제품에 작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단순하던 가죽 제품은 그림이 덧입혀지자 새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손을 움직이자 기분도 한결 좋아졌다. 그는 수제 캔들, 석고 방향제 등도 만들었다. 그의 손을 거친 제품을 지인들에게 선물하면서 보람을 느꼈다. 동시에 평소 말하지 않았던 주변인들의 심적 아픔·고통이 보였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혼자 삭히곤 했어요. 속으로 참고 또 참는 과정이 스스로를 괴롭힌 거죠. 그림으로 쏟아내면 개운해졌어요. 미술은 저에게 숨 쉬는 통로예요.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미술이란 매체를 통해 도와주고 싶었어요.”


◇‘비주얼 디렉터’로 일하며 사이버대 입학 


취미로 그림을 시작한 홍승희 씨는 갈증이 커졌다. 그림으로 다른 사람의 마음을 보듬는 일, 미술치료사가 되고 싶었다. 체계적으로 공부하기 위해서는 대학에 진학해야 했지만 마흔이 넘은 나이, 도저히 수능을 봐서 입학할 자신이 없었다. 그때 지인이 사이버대학교를 권했다.  


국내에는 약 20개의 사이버대학이 있었다. 그가 가장 중요하게 여긴 기준은 학과였다. 미술에서 받은 위안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줄 수 있는 과를 찾았다. 예술치료학과, 상담심리학과, 놀이치료학과 등 가운데 미술치료학과가 눈에 띄었다. 미술이란 장르로 정신건강을 치료하는 과정으로 미술 재활사, 미술치료사, 청소년상담사 등 전문 인재를 양성하는 곳이었다. 


입학을 준비하며 그는 미술치료사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위해 미술심리상담사, 심리분석사, 노인심리상담사, 진로직업상담사 등 12개가량의 자격증을 취득했다. 이후 입학지원서를 작성하고 자기소개서·학업계획서를 제출했다. 관심 분야에 대한 사전 준비 덕분에 학업수행 검사(입학시험)도 어렵지 않게 치를 수 있었다. 그는 한양사이버대학교 미술치료학과 19학번이 됐다.

출처: 홍승희씨 제공
홍승희 씨는 미술치료사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위해 미술심리상담사, 심리분석사, 진로직업상담사 등 12개가량의 자격증을 취득했다.

사이버대학교의 장점은 학업과 일을 병행할 수 있다는 점이다. 여성의류 쇼핑몰에서 비주얼 디렉터로 일하고 있어 업무 시간이 불규칙하지만 상관없었다.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장소에서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수업을 잘 이해하지 못할 때면 반복해서 들을 수 있어 더 좋았다. 마흔 살이 넘어 선뜻 용기 내기 어려운 그에게 진입장벽도 높지 않았다.

 

물론 쉽지는 않았다. 첫 실습 작품을 제출하던 때, 정식으로 그림을 배워본 적 없던 그는 처음으로 붓을 들었다. 그림을 그린다는 게 다소 막막했지만 진심을 다해 캔버스를 채웠다. 그림 속에는 어린 시절 외롭고 두려움에 울던 그의 모습이 있었다. 홍승희 씨는 그렇게 ‘보랏빛 하늘’ ‘because’ ‘It’s me’ 등에 현대 여성들의 고통스러운 삶의 단면을 담았다.  


“미술치료를 하면 한 사람의 인생에 깊이 관여해야 하잖아요. 어려운 길이지만 저 또한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시간을 극복하며 가졌던 기쁨을 다른 사람과 나누고 싶어요. 저의 삶의 이력이 미술치료에 도움이 될 거예요.”

출처: 홍승희씨 제공
2019 아시아프(ASYAAF)에서 히든아티스트 프라이즈 부문을 수상한 홍승희 씨가 전시를 준비하고 있다.

◇‘2019 아시아프 히든프라이즈’ 수상


그는 세 작품을 아시아 대학생·청년작가 미술축제 ‘2019 아시아프(ASYAAF)’에 출품했다. 미술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 경험 삼아 출품한 터였다.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담아 표현한 작품에 대한 주변의 평가가 궁금했다. 심사위원들은 “참신하다” “기본기가 부족하다”로 입장이 팽팽하게 갈렸다. 그에게 힘을 준 건 관객의 반응이었다.  


“전시를 보러 온 모녀가 있었어요. 그림을 보면서 ‘그림에 감정의 기가 담겼다’며 울더라고요.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들의 삶도 힘들었겠구나, 짐작할 수 있었어요. 그림 안의 마음 상태가 전달된 것 같아 제가 더 위로받는 순간이었죠.”

출처: 홍승희씨 제공
2019 아시아프(ASYAAF)에서 히든아티스트 프라이즈 부문을 수상하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심사위원도 그의 가능성을 높이 샀다. 홍승희 씨는 만 36세 이상의 작가가 참여하는 ‘히든아티스트 프라이즈’ 부문에서 수상했다. 그의 인생에 찾아온 기적 같은 순간이었다. ‘미술치료사’이자 ‘미술작가’로서 새로운 길에 들어섰다. 늦었다고 생각한 자신의 꿈에 한 발자국 더 다가가는 순간이었다.


“늦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내라고 말하고 싶어요. 나중에서야 ‘해보고 싶었는데’ 할 게 아니라 기회를 찾고 직접 해봐야죠. 늦은 나이에 미술치료사가 된 것이 오히려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살아온 세월을 바탕으로 내담자에게 더 공감하고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요?”

홍승희씨

이제 홍승희 씨의 마음속 동굴에는 어둠보다 빛이 차지하는 공간이 커졌다. 모두 그림 덕분이다. 그는 다른 사람에게도 미술을 통해 빛을 전하고 싶다. 어딘가에서 마음속 동굴이 깊어지는 사람들을 위해 손 내밀고자 한다. 한 발 한 발 향해가는 홍승희 씨에게 그날이 멀지 않았다.


글 jobsN 선수현 

사진 jobsN 서경리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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