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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사진속 서울대생은 한국의 살아있는 역사가 됩니다

이 분이 한국 클래식 대중화 40년 역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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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간 100회 넘게 공연하는 지휘자 금난새 씨
한국인 최초 카라얀 콩쿠르 입상
해설이 있는 공연 열어 클래식 대중화
음악과 경영 함께하는 벤처 오케스트라 고안

내년이면 데뷔한 지 40주년이다. 한국인 최초로 카라얀 국제 지휘자 콩쿠르에서 입상한 금난새(72)씨가 주인공이다. 그는 정기 연주회뿐 아니라 청소년 음악회, 해설이 있는 음악회 등으로 한국 클래식 대중화에 크게 기여했다. 국내 최초로 벤처 오케스트라인 ‘유라시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현 뉴월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창단하기도 했다. 벤처 오케스트라는 지자체 지원에 기대지 않고 기업처럼 직접 운영하는 걸 의미한다.


새로운 시도와 도전으로 매년 100회 넘는 공연을 해왔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이 중 80% 이상이 초청 연주라고 한다. 그만큼 청중도 그의 음악을 찾는다는 뜻이다. 70세가 넘었지만 뉴월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음악감독이자 성남시립예술단 예술 총감독 겸 상임 지휘자로 활동하고 있다. 여전히 현장에서 지휘봉을 잡고 오케스트라, 그리고 청중과 소통하는 금난새씨를 성남 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에서 만났다.

금난새 지휘자

출처본인 제공

◇지휘하고파 앙상블 만들어 


금난새씨와 네 형제는 작곡가인 아버지 밑에서 항상 음악을 접했다. 1962년 TV에서 우연히 번스타인의 청소년 음악회를 보고 지휘자에 관심이 생겼다. 고등학교 3학년 때는 작곡가 아버지의 배려로 오케스트라와 한 곡 호흡을 맞춰본 경험을 통해 지휘를 더 배워보고 싶었다. 그러나 지휘과가 없어서 서울대학교 작곡과에 진학했다.


"작곡을 배우면서 지휘를 독학했어요. 지휘를 하고 싶은데 오케스트라가 없었습니다. 없으면 만들자는 생각에 서울예고 동창을 모아서 서울 영 앙상블을 만들었죠. 연습할 곳이 없었습니다. 미국 문화원장에게 찾아가 비어있는 강당을 쓰고 싶다고 말했어요. 처음엔 난처한 표정을 짓더군요. 그래서 강당을 쓰는 대신 무료로 공연을 하겠다고 설득했습니다. 베토벤, 모차르트뿐 아니라 미국의 작품도 선보이겠다고 했죠. 장소는 물론 공연 기회까지 얻었습니다. 공연 반응이 좋자 문화원은 광주, 대구, 부산 문화원에서도 공연을 해달라는 제안을 했습니다. 지휘자로서 현장 경험을 쌓았던 좋은 기회였죠."


학교가 아닌 현장에서 지휘 경험을 쌓으면서 학교에 다녔다. 졸업 후 세계 청소년 음악연맹 국제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떠난 독일에서 그의 인생을 바꾼 선생님을 만났다. 스톡홀름에서 열린 국제회의 일정이 끝나자 그는 베를린 음대로 향했다.

1966년 서울 예고 졸업사진. 졸업 후 서울대학교 작곡과에 진학했다.(좌), 독일에서 금난새에게 지휘를 가르쳤던 라벤슈타인 교수(우)

출처본인 제공

◇한국인 최초 카라얀 콩쿠르 입상


학교에 도착해서는 무작정 지휘과를 찾아가 교수님 연락처를 물었다. "두 명의 연락처를 받았고 한 명에게 전화를 걸어 '나는 한국에서 왔고 지휘를 배우고 싶다'고 했어요. 교수는 한국이 어딘지도 모르지만 내일 집으로 와보라고 하더군요. 그분이 제게 지휘를 가르쳐 준 라벤슈타인 교수예요. 교수님 집에서 피아노 연주와 지휘를 했고 대화를 나눴어요. 희한한 나라에서 온 녀석이라면서 자기가 가르쳐주겠다고 하더군요. 그렇게 베를린 음대 시험을 보고 입학했습니다."


당시 모든 학비는 무료였다. 레슨비도 마찬가지였다. 금씨가 왜냐고 물으니 교수는 국가에서 월급을 받기 때문에 학생에게 개인적으로 돈을 받을 이유가 없다고 답했다. 그는 이런 이상적인 사회가 있다는 걸 처음 느꼈고 또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모습에 충격이었다. 그는 독일에서 기술적인 것도 배웠지만 준비된 사람에게 기회를 주는 사회를 몸소 경험한 것이 더 컸다고 한다. 6년 동안 무료로 공부한 고마운 마음을 돌려주고 싶어 한국에 돌아와 서울예고 교장으로 재직할 때 받은 연봉을 모두 학교에 기부했다.


1977년에는 카라얀 지휘자 콩쿠르에 참가했다. 카라얀 지휘자 콩쿠르는 세계적인 지휘자들이 참가에 실력을 겨루는 장이다. 금난새씨는 한국인 최초로 입상했다. "수상한 사람은 보통 심사위원의 추천서를 받아 해외로 갑니다. 저 역시 해외로 나갈 생각이었는데 심사위원은 다른 말을 하더군요. '한국에서 일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한국 음악이 발전할 때, 네가 거기에 있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1999년 12월 31일 포스코 로비에서 열린 제야 음악회

출처본인 제공

◇유라시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창단


수상 소식을 들은 KBS 교향악단은 금난새씨를 지휘자로 영입했다. 그렇게 한국에서 지휘 활동을 시작한 그는 1980년부터 12년 동안 KBS에 머물렀다. 그리고 수원 시향 악단으로 거처를 옮겼다. 주변 사람들은 이를 보고 대기업에서 중소기업으로 이직했다고 표현한다. 6년 뒤 그는 또다시 새로운 일에 도전한다. 유라시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창단했다.


"대부분 오케스트라는 지자체 지원을 받아 운영합니다. 안정적인 수입이 있으니 안주하게 됩니다. 오케스트라가 발전하면서 관객에게 좋은 연주를 들려줄 수 있는 법을 찾았습니다. 그것이 '벤처 오케스트라'예요. 자립하는 거죠. 1999년 출범 후 첫 연주회는 포스코 제야 음악회였다. 연주를 위해 강남 포스코센터 대강당을 대여하고 싶었지만 일정이 꽉 차 있었다. 그때 높은 천장이 특징인 넓은 로비가 눈에 들어왔어요. 여기서 하면 좋겠다 싶었죠. 1999년 12월 31일 밀레니엄 제야 음악회를 열었고 이후 포스코 로비에서 매년 연주를 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삼성, CJ 등 기업과 협업을 진행하면서 오케스트라를 하나의 기업체로 운영했어요."


그러면서 대중에게 더 다가가기 위해 노력했다. 국립 중앙 도서관 강당을 연습실로 제공 받으면서 한 달에 한 번씩 도서관에서 연주회를 열었다. 또 청소년을 위한 음악회, 해설이 있는 음악회 등을 기획했다. "저 역시 번스타인의 청소년 음악회를 보고 지휘자를 꿈꿨습니다. 아이들의 음악적 경험을 위한 음악회를 열고 싶었고 실천에 옮겼죠. 처음엔 무료로 했지만 표 사는 연습을 위해 저렴한 가격에 표를 판매하고 있어요."

◇청중의 입장을 배려하는 오케스트라


금난새씨는 뉴월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성남시립예술단 두 곳에서 활동 중이다. KBS 교향악단을 지휘 할 때만 해도 지휘자는 한 곳에만 묶여있어야 했다. 시간이 갈수록 자유로워져 한 오케스트라의 일정이 없을 땐 요청이 들어오는 곳에 가서 활동할 수 있었다. 그렇게 경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대전 시립 교향악단 등을 지휘했다. 누구보다 바쁘게 생활하다 탈이 난 적도 있었다.


“모교인 서울예고에서 교장직을 제안했어요. 1년에 100회 이상 연주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거절했죠. 그랬더니 이사장님은 지휘자로 할 일은 하고 나머지 시간에 아이들을 맡아달라고 부탁하시더군요. 1년에 3번만 나와도 되니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줄 수 있는 교장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수락했죠. 실무적인 건 현장을 잘 아는 교감 선생님께 맡기고 연주도 하면서 학교에 나가 아이들 지휘도 봐줬습니다. 그러던 중 누군가 행정업무를 소홀히 한다며 민원을 제기했습니다. 저 역시 지휘자로서 학교에만 있을 수 없어 올 8월 사임 후 명예 교장으로 있습니다.”


지난 18일 책 ‘아버지와 아들의 교향곡’도 출간했다. 금난새씨의 아버지이자 작곡가 금수현씨가 쓴 수필 75편과 본인의 수필 25편을 합친 에세이다. 책이 아이들에게 영감을 주면 좋겠다는 의미에서 1000권 정도를 학교에 기증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런 그의 목표는 자신만의 철학으로 음악계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예술가는 청중의 입장도 늘 생각해야 합니다. 예술가는 본인이 좋아하는 걸 하다보니 자기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봐요. 그러다 보면 이솝우화의 ‘여우와 두루미’처럼 됩니다. 주둥이가 긴 친구에게 납작 접시를 주고, 주둥이가 짧은 친구에서 긴 호리병을 주는 셈입니다. 청중 입장에서 내 음악을 이해하기 쉽게 만들어서 보여드려야 우리를 찾아옵니다. 그 결과 3년째 인터파크의 ‘골든 티켓 어워즈’에서 상을 받고 있습니다. 티켓 판매량, 판매 랭킹 점수로 수상자를 선정하는 상인데, 다른 어떤 상보다 좋습니다. 청중이 주는 상이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도 대중에게 먼저 찾아가는 음악을 할 것입니다.”


글 jobsN 이승아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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