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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사 동생 안나 뒤엔 천문학도 38살 한국여성 있었다

조회수 2020. 9. 24. 11:2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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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민 월트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슈퍼바이저
이현민 월트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슈퍼바이저
‘곰돌이 푸’, ‘주토피아’ 모아나’, ‘페이퍼맨’ 등 참여
‘겨울왕국2’ 안나 전담해 표정·손짓·포즈까지 연구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5년 만에 돌아온 ‘겨울왕국2’가 개봉 6일차에 5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엘사와 안나의 모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 이번 작품은 전편보다 다채로운 소재와 볼거리를 선보인다는 평을 받는다. 주인공 안나는 언니 엘사처럼 마법 능력은 없지만, 고난이 찾아와도 좌절하지 않는 의지를 가진 인물이다. 그리고 안나를 스크린에서 살아 움직이게 만든 이가 바로 한국인이다.


이현민(38) 월트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슈퍼바이저는 텔레비전에서 디즈니 만화영화가 나오면 누구보다 먼저 TV 앞으로 달려간 아이였다. 2007년 디즈니 재능계발 프로그램에 합격해 ‘꿈의 직장’에 입사했다. 말하자면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서 성공한 ‘성덕(성공한 덕후)’인 셈이다. 이번 작품에서 그는 안나를 총괄하는 역할을 맡았다. 안나만 보면 고등학교에 다니던 옛 모습이 떠오른다는 이현민 슈퍼바이저의 인생 여정이 궁금했다.

출처: jobsN
포시즌스호텔서울에서 만난 이현민 슈퍼바이저.

-관객 반응이 뜨겁습니다. 소감이 어떤가요.


“정말 감사하죠. 저와 동료들에게는 안나와 엘사를 비롯한 모든 캐릭터가 자식 같고, 친구 같고, 가족 같아요. 이렇게 사랑해주시니 제 가족을 예뻐해 주시는 것처럼 기뻐요.”


-이번 작품에서는 어떤 역할을 맡았나요.


“안나 캐릭터를 총괄했습니다. 디즈니에선 많은 일이 협업을 통해 이뤄져요. 캐릭터는 감독이 구상하지만, 캐릭터·의상 디자이너, 성우, 애니메이터 등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탄생하죠. 저는 애니메이터로서 안나의 내면이나 성격을 어떤 표정이나 몸짓을 통해 구현할 지 연구하고 캐릭터를 구축했어요. 슈퍼바이저라 다른 애니메이터보다 1년 먼저 작품에 참여했습니다. 감독님을 포함해 캐릭터·의상 디자이너와 함께 안나의 움직임이 의상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어떤 장면에선 무슨 표정을 지으면 좋을지 등에 관해 논의하고 방향을 잡아요. 여러 사람이 함께 작업하기에, 한 사람이 만든 것처럼 통일된 모습으로 다듬는 것도 제 일입니다.”


-슈퍼바이저라는 직급이 따로 있는 건가요.


“스튜디오마다 다릅니다. 디즈니에선 작품을 할 때마다 슈퍼바이저를 새로 뽑아요. 승진 개념은 아니고, 직원의 장점을 최대한 살릴ㅋ 수 있는 방향으로 인력을 배치해요. 80~90명가량 애니메이터 모두 실력이 뛰어나지만, 강점이나 개성이 다르거든요. 그래서 개봉 1~2년 전 슈퍼바이저 지원 신청을 받아요. 감독이나 프로듀서와 인터뷰를 거쳐 선발합니다. 작품이 끝나면 다시 애니메이터로 돌아가요. 이번 작품에선 슈퍼바이저 6명이 힘을 모았죠.”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디즈니에는 어떻게 합류했는지 궁금합니다.


“어릴 때부터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열성 팬이었어요.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는데, 처음엔 취미로만 할 생각이었습니다. 수학과 과학을 좋아해 고등학교 때는 이과였고, 대학도 천문학과로 진학했거든요.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미술을 하고 싶은 마음이 커졌고, 대학교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미국 유학길에 올랐어요. 코네티컷 웨슬리언 대학교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칼 아츠(California Institute of the Arts·CalArts) 대학원도 나왔어요. 2007년 졸업 후 인턴십 개념의 디즈니 재능계발 프로그램에 합격했는데, 멘토로 제 우상이던 ‘포카혼타스’ 감독 에릭 골드버그를 만났어요. 6개월 동안 트레이닝을 받았는데, 이때 정말 많이 배웠죠. 이후 디즈니 애니메이터로서 경력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지금껏 어떤 작품에 참여했나요.


“디즈니에서 처음 맡은 프로젝트는 아카데미상 후보에 오른 ‘공주와 개구리’(2009)였어요. 재즈를 연주하는 악어 루이스 캐릭터를 담당했죠. 이후 ‘곰돌이 푸’, ‘주먹왕 랄프’, ‘겨울왕국1’, ‘빅 히어로’, ‘주토피아’, ‘모아나’ 작업에도 참여했어요. 2013년 아카데미 단편 애니메이션 작품상을 탄 ‘페이퍼맨’ 프로젝트도 했고요. ‘겨울왕국1’에서 엘사가 처음 ‘렛 잇 고(Let it go)’를 부르는 장면 애니메이션도 제가 담당했습니다.”

출처: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애니메이션 작업을 하고 있는 이현민 슈퍼바이저.

-’겨울왕국2’가 애니메이션 슈퍼바이저로서 첫 작품인 셈이네요.


“맞아요. 애니메이터로 작품에 참여할 땐 길어도 1~2분 분량만 맡았어요. 거기에만 집중하면 제 역할은 끝이었죠. 그런데 슈퍼바이저는 달라요. 어깨가 무겁죠. 제가 맡은 안나가 나오는 장면은 모두 신경 써야 하죠. 체력적인 한계 탓에 힘들 때도 있었지만, 그만큼 보람도 컸어요. 여기저기 관여한 데가 많아 누가 어떤 장면을 맡았고, 다른 버전으로는 뭐가 있는지까지 훤히 들여다보잖아요. 그래서 영화를 감상하는데 가족 앨범을 보는 기분이었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을 꼽는다면요.


“엘사가 ‘쇼 유어셀프(Show yourself)’를 부르는 장면이요. 자신이 힘을 갖게 된 근원이 어머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부분이에요. 저에게도 어머니가 매우 큰 존재였어요. 애니메이터가 되고 싶다고 했을 때 믿고 응원해주신 것도 어머니였어요. 고등학생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어요. 제가 꿈을 이루는 걸 못 보셨죠. 그래도 멀리서 항상 지켜보고 계신다고 생각해요. 영화를 보면서 ‘아, 우리 어머니도 저렇게 날 보고 계시겠지’ 싶었어요.”


안나가 ‘더 넥스트 라잇 띵(The next right thing)’을 부를 때는 고등학생 때 제 모습이 생각났어요.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는 가족끼리 돈독하게 지내면서 어디든 항상 함께 다녔어요. 그런데 유학을 떠나면서 태어나서 처음 혼자 지내게 된 거죠. 이 장면은 안나가 가족이 곁을 떠났다고 느낄 때 극복하려는 의지를 보이는 부분인데요. 고등학생 때 제가 했던 노력이 떠올라 뭉클했어요.”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디즈니에서 일하는 건 어떤 느낌인지도 궁금합니다.


“어릴 때부터 디즈니를 꿈의 직장으로 여겨온 직원이 많아요. 디즈니 작품의 팬이 모였다는 건 말할 필요도 없죠. 다들 디즈니랜드를 제집처럼 드나들고, 디즈니 작품에 나온 OST를 듣고 자랐어요. 그만큼 회사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을 느끼고 일하는 동료가 많죠. 제가 디즈니 작품을 보면서 긍정적인 영향을 받은 만큼, 양질의 작품을 만들어 후대에 남겨줘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어요. 이런 면에선 다들 같은 마음인 것 같아요.


항상 새로운 걸 발견하고 추구해 나가야 한다는 기업 문화가 있어요. 창업자인 월트 디즈니는 성공한 뒤에도 안주하지 않고 도전 정신을 이어가려는 의지가 강했거든요. 지금도 새로운 사람이 오면 반겨주고, 동료의 아이디어를 경청하는 분위기에서 일해요. 세계 25개국에서 온 직원들이 모여 일하는 만큼 다양성도 존중하고요. 물론 한국인도 몇 분 계시죠. 다들 회사에 애정이 있어서 무조건 동료와 경쟁해 이기겠다는 생각보다는, 서로 힘을 모아 더 좋은 결과를 내자는 긍정적인 협동심이 발휘되는 것 같아요.”


-힘들거나 아쉬운 부분은 없나요.


“어렸을 때는 디즈니 만화가 개봉한다고 하면 소리 지르며 극장에 달려갔어요. 아무런 생각 없이 스크린을 보면서 순수한 즐거움을 느꼈죠. 그런데 막상 제작에 참여하니 이런 재미는 덜해요. 가족 앨범을 보는 듯한 다른 즐거움은 있지만, 가끔 아쉬울 때도 있죠.”

jobsN

-디즈니에서 꿈을 펼치고 싶어 하는 청년에게 해줄 말이 있다면요.


“애니메이션을 사랑하고, 직접 제작하고 싶은 학생이라면 작은 것에 얽매이지 말고 뭐든지 자유롭게 표현해보라 말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을 온전히 즐겼으면 좋겠어요. 디즈니 스튜디오에서는 두어 달에 한 번 동료들끼리 모여 자신의 인생 여정을 소개하는데요, 저마다 걸어온 길이 정말 제각각입니다. 배관공으로 일하면서 독학해 입사한 사람도 있어요. 저도 천문학과를 나오려던 이과생이었잖아요. 그 어떤 길도 틀리지 않고, 어떤 시기도 늦지 않아요. 그러니까 더 자신감을 느끼고, 무엇보다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꿈이 뭔가요.


“사실 지금도 행복해요. 디즈니 작품을 보면서 자란 제가, 디즈니에서 캐릭터 작업을 하고 있어요. 또 많은 분이 캐릭터와 작품을 사랑해주고 계시고요. 이루고 싶은 거창한 목표가 있다기보단, 평생 이 일을 하면서 살면 행복할 것 같아요. 제작에 참여한 작품이 개봉하면 극장 구석에 숨어 관객들의 반응을 지켜봐요. 이런 데서 오는 재미도 있고요.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살 수 있다면, 더는 바랄 게 없을 것 같아요. 그래서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요.”


글 jobsN 송영조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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