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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괴롭힘 방지법' 4개월.."대체 괴롭힘 기준이 뭐냐"

조회수 2020. 9. 24. 11:3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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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내 괴롭힘 1호 사건' 두고 오락가락.. 정작 괴로운 사람은
직장 내 괴롭힘 시행 130여일
괴롭힘 기준 모호하다는 지적
고용부, 1호 사건도 오락가락
암참 회장 “한국은 투자하기 안좋은 나라”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 시행된 지 130여일이 지났다. 올해 7월부터 시행된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란 직장 상사가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 법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를 금지하는 법이다. 고용노동부 근로 기준정책과 이영기 사무관은 “직장 내 괴롭힘 신고 건수는 지난 10월 31일 기준 총 1321건 접수됐다”고 했다. 고용부가 지난 8월 발표한 신고 건수는 총 379건이었다. 두달여 만에 900건 이상 신고가 늘어난 셈이다.


◇어디까지가 ’괴롭힘’인지···고용부, 1호 사건도 입장 번복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 시행 첫날 고용노동부가 접수한 1호 사건은 MBC 계약직 아나운서들의 진정서였다. MBC 16·17사번 계약직 아나운서를 대리하는 법률사무소 휴먼의 류하경 변호사는 7월 16일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을 시행하는 날 MBC 계약직 아나운서들의 사정을 해당 법 위반 1호 사건으로 진정한다”고 말했다. MBC는 2016년과 2017년 11명의 1년 전문 계약직 아나운서를 뽑았다. 특별 채용 1명을 제외한 나머지 10명은 계약 만료를 이유로 2018년 계약 해지 통보를 받았다. 서울서부지방법원은 지난 5월 MBC 해고 아나운서를 임시로 근로자 지위를 보전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노동위는 이를 부당 해고로 판정했다. 법원은 해고무효확인소송에 앞서 지난 5월 아나운서들의 근로자 지위를 임시로 인정했다. 16·17사번 계약직 아나운서들은 MBC 상암 사옥으로 출근했다. 그러나 사실상 방치 상태였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기존 아나운서 업무공간이 있는 9층이 아닌 12층에 있는 별도 사무실에 모여 있었다. 류 변호사는 “주어진 업무도 없고 사내 전산망도 차단당했으며 근태관리도 받지 않았다”고 했다. 이들이 직장 내 괴롭힘 진정서를 제시한 근거였다.

tv조선 캡처

고용노동부는 접수한 진정서에 대해 ‘직장 내 괴롭힘으로 보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리고 행정 종결을 조치했다. 서울 서부지청은 “법적 다툼 소지가 있을 수 있지만 회사 측이 계약직 아나운서의 신고에 따라 조사위를 구성하고 순차적 개선을 시도한 것 등을 고려할 때 직장 내 괴롭힘이라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계약직 아나운서들에게 9월 27일 통지했다.


그러나 10월 4일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노동부 판결과는 다른 의견을 내비쳤다. 정부세종청사에서 노동부를 대상으로 열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이 장관은 정의당 이정미 의원의 질문에 “MBC 아나운서들에게 보낸 노동부의 결정에는 아쉬움이 있다”고 밝혔다. 시민석 서울지방고용노동청장 역시 입장을 번복했다. 시 청장은 11월11일 환노위 국감에서 임이자 자유한국당 의원의 질문에 “행위 시 기준으로 판단하면 직장 내 괴롭힘이 맞다”고 말했다.


직장 갑질 119는 “법을 집행하는 행정기관이 위법 행위에 대해 무죄라고 판단하더니 나중에는 유죄라고 하는 꼴”이라는 논평을 10월14일 냈다. 일련의 사건을 지켜보는 시민 역시 혼란스럽다는 반응이었다. 국민청원 토론방에는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의 기준을 더 명확히 했으면 좋겠다”는 글이 7월 18일 올라왔다. 작성자는 “법 취지는 좋으나 본인이 기분 나쁘다고, 일하기 싫다고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을 악용하는 사례도 있다”고 토로했다. 최소한의 정당한 업무지시를 직장 내 괴롭힘으로 해석하는 일을 막아야 한다는 말이었다.


◇”기업인 툭하면 감옥 가는데 누가 사업하겠나”


‘직장인 괴롭힘 방지법’이 기업가 정신을 위축시킨다는 비판도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한국은 매력적인 투자처인가. 외국인 투자 기업인에게 묻는다’라는 특별좌담회를 10월 22일 마련했다. 이날 제임스 김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AMCHAM) 회장은 “직장 내 괴롭힘 때문에 CEO(최고경영자)가 감옥까지 가야 하는 것은 과도하다”라고 했다.


제임스 김 회장은 미국 기업이 우려하는 한국만의 규제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을 꼽았다. 그는 "괴롭힘은 반드시 없어져야 하지만 CEO가 3년 이하 징역형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형을 받는 것은 너무 과한 것"이라고 했다. 김 회장은 "LA 사무소에서 직장 내 괴롭힘이 발생했는데 뉴욕 본사 CEO가 처벌받는 격인데 이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출처: 조선DB
2019년 10월 21일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한국경제연구원의 특별좌담회에서 크리스토프 하이더(오른쪽) 주한 유럽상공회의소 사무총장과 제임스 김 주한미국상공회의소 회장.

한국경제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경제법령 상 형벌규정을 전수조사한 결과 역시 이같은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한경연은 10월 말 기준 285개 경제 법령상 형사처분 항목은 2657개에 이른다고 밝혔다. 2657개 형사처분 항목 중 기업과 기업인을 동시에 처벌하는 조항은 2205개(83%)였다. 범죄 행위자인 종업원 뿐 아니라 법인과 사용주까지 함께 처벌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징역과 같은 인식 구속형은 2288개(89%)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경연 유환익 혁신성장실장은 “우리 기업과 기업인을 대상으로 하는 형벌규제가 심각한 수준으로 늘고 있다”면서 “과도한 형사처분이 우리 기업의 투자 의욕을 꺾고 있다”고 우려했다. 유 실장은 “투자와 일자리 창출을 위해 종합적 정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권용원 금융투자협회장, 갑질 논란에 사퇴 원했지만···


지난 6일 권용원 금융투자협회장의 죽음도 한국 사회에서 CEO가 짊어져야 하는 무게를 보여주는 단편적 사건이었다. 지난달 권회장이 운전기사와 임직원 등에게 폭언한 녹음파일이 공개돼 ‘갑질논란’에 휩싸였다. 권용원 회장은 “모든 잘못을 인정하고 깊이 뉘우치고 있으며 구차한 변명을 하지 않겠다”고 사과문까지 발표했다. 그러나 ‘직장 내 괴롭힘’, ‘갑질’ 등 비난 여론이 걷잡을 수없이 커져갔다. 결국 자신의 자택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게티이미지뱅크

권 회장은 1961년생으로 서울대 전자공학과 졸업 후 미국 MIT(매사추세츠 공대)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기술고시에 합격해 1986년부터 2000년까지 산업자원부(현 산업통상자원부)에서 일했다. 이후 다우기술 부사장을 거쳐 인큐브테크 대표, 키움인베스트먼트 대표이사, 키움증권 대표이사 등을 역임했다. 키움증권을 주식 브로커리지(위탁매매) 시장 점유율 1위로 올려놓으면서 능력을 인정받았다. 작년 금투협 회장 선거에서 68.1% 압도적인 지지로 회장직에 선출됐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권 회장은 갑질하는 스타일의 상사는 아니었다”며 “과음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걸 본인이 안 뒤로 최근 들어서는 술자리도 갖지 않았다”고 전했다. 사퇴 여론이 커졌을 당시 권 회장은 이사회를 열어 사퇴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금투협 임직원들은 만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녹취록 공개 후 대중의 질타를 받았지만 사퇴도 못해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의견이다.


고용노동부 근로 기준정책과 이영기 사무관은 “직장 내 괴롭힘 법 시행이 아직은 초기 단계에 있다”며 “처벌보다는 직장 내 발생하는 여러 괴롭힘을 근절하기 위한 법”이라고 말했다. 이 사무관은 “노사 간 정확한 이해를 돕기 위해 앞으로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전했다.


글 jobsN 김지아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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