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복판에 등장한 '호랑이', 제가 만들었어요

조회수 2020. 9. 24. 11:5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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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 '빛의 향연' 제가 만들었습니다"
한지조명연구가 임영택 감독
2018년에 이어 2019년 빛초롱축제 등 제작맡아
등 활용한 지역 축제 만들고 싶어

매년 11월이면 청계천 일대를 등불로 환하게 밝히는 ‘서울빛초롱축제’가 열린다. 2019년 서울빛초롱축제는 동화를 주제로 11월1일부터 17일까지 17일간 진행된다. 축제가 한창 진행 중인 11월12일 찾은 청계천은 평일임에도 빛초롱축제를 보기 위해 모인 관람객들로 북적였다. 청계광장에서 수표교까지 1.2km의 구간을 약 280개의 등이 환하게 밝히고 있었다.


동화를 주제로 한 만큼 익숙한 캐릭터들이 관람객들이 눈길을 끌었다. 견우직녀, 콩쥐팥쥐 등 한국 동화뿐 아니라 신데렐라, 알라딘 등 세계 동화 속 캐릭터들이 눈에 띄었다. 다리 밑에 숨은 고양이와 쥐, 강아지, 다리 틈 사이에 있는 비둘기 등 곳곳에 숨겨진 등을 찾는 재미도 있었다. 2019 서울빛초롱축제에 전시된 등 제작을 담당한 임영택(50) 감독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출처: jobsN
임영택 감독.

◇한지 이용해 대형 등 만들어 전시


-자기소개를 해달라.


“밤하늘에 그림을 그리는 한지조명연구가입니다. 자연이 빌려준 아름다운 한지에 붓과 물감으로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선물합니다.”


-한지조명연구가라고 소개했는데.


“한지를 바탕으로 대형 등을 만들고, 전시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등을 만들고, 기존 등을 상하지 않고 온전하게 보관할 수 있도록 방법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또 대형 등을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하나의 문화 콘텐츠로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출처: jobsN
2019 서울빛초롱축제 입구에 설치된 작품.

-언제부터 한지로 등을 만들기 시작했나.


“사실 2006년부터 10년 동안 행사 대행사를 운영했었어요. 그러다가 2011년, 2012년에 현재 서울빛초롱축제로 이름이 바뀐 서울등축제 운영을 대행한 적이 있었어요. 그때를 계기로 대형 등에 매력을 느끼게 됐고, 취미 삼아 한지로 등 만드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어요. 2011년부터 6년 동안 주말마다 공방에 가서 등 만드는 법을 배우고 계속해서 만들었어요. 2016년부터는 회사를 접고 본격적으로 공방을 운영하면서 대형 등을 제작하고 있습니다.”


-작업 과정은 어떻게 되나.


“크게 6가지 단계로 작업이 진행됩니다. 첫 번째는 틀 작업인데요. 철사로 등의 틀, 모양을 만드는 작업입니다. 모양이 틀어졌을 때 고치기 위해서 마디마디를 테이블 타이로 묶은 다음, 전체 뼈대가 완성되면 타이를 풀어서 용접을 시작합니다. 그렇게 하나의 등 형태가 만들어지죠. 두 번째는 전기 작업입니다. 안에 전구들을 설치하고, 철사로 묶어 고정하는 등의 작업을 거쳐요. 세 번째는 배접 작업인데요. 한지를 마디마디 한 장씩 붙이는 과정을 배접이라고 합니다. 모자이크 작품들 처럼 한지를 한 장씩 붙이는 과정이에요.


배접 작업까지 거치면 네 번째로 아교 작업을 합니다. 물감으로 채색을 하기 전에 한지에 착색이 잘되라고 아교를 발라주는 작업입니다. 아교 작업이 끝나면 한국화 물감으로 채색을 합니다. 연필로 살짝 선을 그어준 다음 색을 칠해요. 마지막으로 코팅 작업을 하면 등이 완성됩니다. 채색된 상태에서 특수 코팅제를 분무기로 뿌리거나 붓으로 발라줘요. 이후 말렸다가 다시 코팅하고, 또 말리고 다시 코팅하고 해서 2번이나 3번 정도 코딩을 해줍니다. 3번 코팅을 하면 비가 오더라도 6개월~1년 동안 색이 변하지 않고 보관할 수 있어요.”


◇2019 빛초롱축제는 공간 입체적 활용에 초점 맞춰


임영택 감독에 따르면 현재 국내에서 대형 등을 제작하는 공방은 7개 정도다. 임 감독은 입찰을 통해 2018년에 이어 2019년 서울빛초롱축제 등 제작을 맡게 됐다. 함께 입찰에 참여했던 두 개의 행사 운영대행사 모두 빛초롱축제 운영 경험이 없어 임 감독이 2011~2012년 서울등축제 운영 경험을 살려 제작과 등 배치, 전시 등을 담당하는 예술감독 역할을 했다.


-올해 빛초롱축제 주제는 동화라고 들었다.


“처음 대행사와 기획 회의를 할 때부터 이전과는 다른 주제를 하고 싶었어요. 이 전까지는 전통과 관련한 주제가 많았어요. 2018년에도 서울의 역사와 미래를 주제로 했었고요. 그래서 이번에는 아이, 어른 모두 즐길 수 있는 동화를 주제로 잡아보자 제안을 했습니다.”


-총 몇 개의 등을 만들었나. 작업 기간은.


“이번 서울빛초롱축제에는 총 80세트, 개수로 따지면 280점의 등이 전시됐습니다. 그중 절반 정도는 신규로 제작한 등이고, 절반 정도는 저희가 보유하고 있던 등을 활용했습니다. 단계마다 메인 작가가 있고, 보조하는 역할로 아르바이트생들을 고용했어요. 다 합쳐서 총 20여명이 6개월간 작업했습니다.”


-등을 제작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주제에 맞춰서 어떤 등을 만들까 작품을 선정하는 게 가장 까다로웠어요. 많은 동화 중에서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좋아하는 동화가 뭘까’하는 고민을 많이 했죠. 또 한국 동화뿐 아니라 세계 동화도 포함해보자 했기 때문에 어떤 동화를 선택해 작품으로 만들지 많이 고민했습니다. 대사관에서 일하거나 해당 국가에 대해 잘 아는 분들에게 인기 있는 동화를 물어보기도 했어요.


동화를 선택한 후에는 그 작품을 어떻게 재미있게 표현할 건지 고민했습니다. 사람들이 해당 장면만 보고 그 동화를 알 수 있는 장면이 무엇인지, 또 어떤 포즈를 취하고 있는 모습을 만들지 정하기가 까다로웠습니다.”

출처: jobsN
2019 서울빛초롱축제에 전시된 작품들. (위) 금도끼와 은도끼, 호랑이 할머니와 곶감 (아래) 알라딘과 요술램프, 신데렐라.

-등을 배치하면서 어떤 점을 가장 염두에 뒀나.


“전시하면서 공간을 확장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청계천에만 등을 전시할 게 아니라, 천변, 공중 공간 등을 활용해서 축제를 더 입체적으로 꾸미고 싶었어요. 그래서 천변 나무에 등을 걸기도 하고, 등 외에도 네온사인이나 조명 장치 등을 설치해 볼거리를 더욱 다양하게 만들었습니다.


또 동화 ‘해와 달이 된 오누이’는 호랑이가 으르렁하면서 하늘을 쳐다보고 있고, 그 앞에 오누이가 밧줄에 매달려 있는 작품으로 만들었는데요. 개막식 때 오누이가 매달린 밧줄 위에 크레인을 연결해 지상 20m 위로 올리기도 했어요. 공간을 입체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 이런 재미있는 시도를 기획했고, 실제 개막식에서 많은 분이 좋아해 주셨습니다.”

(위)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아래) 다리 아래 숨겨져 있는 강아지와 나무 위에 걸린 물고기

◇영국 대표 축제 메인작품 제작하기도


임영택 감독은 2016년에는 영국 대표 축제이자 런던 야외 축제인 ‘토털리 템즈’ 메인작품을 제작하기도 했다.


-작품을 영국에서 전시한 적도 있다고.


“토털리템즈에서 단 한 명의 작가만이 템즈강 위에 작품을 전시할 기회를 얻습니다. 2016년에는 미디어 아티스트 강익중 선생의 ‘플로팅 드림스’가 선정됐는데요. 해당 작품을 맡아서 제작했습니다. 한지로 만든 정육면체를 바지선 위에 설치해 강 위를 떠다니도록 연출했습니다. 자세히 보면 한지에서 그림이 보이는데, 북한에 고향을 두고 있는 실향민들이 직접 그린 약도를 활용했습니다. 또 정육면체 위에는 김병수 공학박사의 도움으로 어린이 모양의 마네킹을 팔과 허리가 돌아갈 수 있게 제작해 설치했습니다.


이 프로젝트를 의뢰받고 한지를 세계인들에게 알릴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서 참여하게 됐습니다.”

출처: 임영택 감동 제공
템즈강 위에 전시된 작품. 자세히 보면 한지 위헤 실향민들이 그린 그림이 보인다.

-한지가 많이 외면받으면서 ‘전통 한지의 위기’라는 말이 많이 나오는데, 한지조명연구가로서 어떻게 생각하나.


“한(韓)스타일이라고 해서 전통을 살려 한지, 한복, 한옥, 한식, 한소리(국악) 등을 정부에서 지원하는 사업이 과거에는 많았어요. 최근에는 좀 시들해진 것 같아서 아쉬워요. 사실 등만 놓고 봐도, 한지로 만든 등 외에 중국 등이 유명한데요. 중국 등은 미국을 포함한 다른 나라에서 순회 전시를 하는 경우가 많아요. 실제 가보면 현지인들의 호응도 좋아요. 그런데 중국 등은 천을 이용해 만들어서 한지에서 은은하게 비춰나오는 빛과 차이가 크거든요. 한지를 이용한 우리나라의 등이 해외 나갈 기회가 있으면 더 큰 반향을 일으킬 것 같은데, 이런 부분에 대한 국가적인 지원이나 정책 등이 없어서 많이 아쉽습니다.”


-앞으로의 목표는.


“등을 활용해서 지역 주민들과 함께 만드는 축제를 기획해보고 싶어요. ‘잠들지 않는 마을’이라고 이름을 붙여서 준비하고 있는데요. 어떤 지역에서 할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정해지면 아예 그쪽으로 공방을 옮겨서 지역 주민들과 어울리고 생활하면서 축제를 기획할 계획입니다.”


글 jobsN 박아름 인턴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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