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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사망에 청력 잃은 엄마, 그걸 지켜본 11살 아이는..

조회수 2020. 9. 24. 11:5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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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죽음에 청력을 잃은 어머니를 본 10대 소녀는..
수어로 예술활동하는 수화 아티스트 박지후씨
버려진 영수증 주워 뒷면에 수어 그림 그리기 시작해
레퍼 비와이와 수화 퍼포먼스, 루브르 아트페어에 전시도
비장애인, 장애인 어울어지는 예술 페스티벌 열고파

우리나라에는 두 개의 법정 공용어가 있다. 한국어와 한국 수화언어(수어·手語)다. 수어는 청각장애인을 뜻하는 농인(聾人)이 사용하는 언어다. 2016년 한국수어언어법이 제정되면서 한국 수어는 법적 공용어가 됐다. 한국 수어를 한국어와 동등한 자격을 가진 농인의 고유 언어로 인정한 것이다.


농 사회에서는 ‘청각장애인’과 ‘농인’이라는 개념을 구분 지어 사용한다. 관점의 차이다. 청각장애인은 의료학적 관점에서 본 말로 장애를 ‘고쳐야 할 치료대상’으로 본다. 농인은 사회적 관점에서 본 말이다. 장애를 환경이 규정하는 개념으로 본다. 다른 사람과 말할 일이 없는 환경에서는 장애인이 아니다. 농 사회에서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비장애인을 청인(聽人)이라고 한다. 쉽게 말해 청인은 한국어를 일상어로 쓰는 사람, 농인은 수어를 일상어로 쓰는 사람을 가리킨다. 농인은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일 뿐이다.


청인이지만 농인의 언어를 쓰는 아티스트가 있다. 수어를 이미지화해 그림을 그린다. 또 무대에 올라 수어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청인과 농인의 벽을 허물고 싶다는 수화 아티스트 박지후(31)씨를 만났다.

출처: 본인 제공
수화 아티스트 박지후씨.

-자기소개를 해달라.


“농인이 쓰는 언어인 수어로 예술 활동을 하는 수화 아티스트 박지후다. 2013년부터 지후트리(ghootree)라는 예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수화 아티스트라는 직업이 생소하다.


“수화 아티스트란 두 가지 뜻을 담고 있다. 손 수(手), 그림 화(畵)를 써서 손의 언어인 수어를 그림으로 그린다는 뜻이 있다. 또 손 수(手), 말할 화(話)를 써서 수어로 이야기를 전달한다는 뜻도 있다.


수어를 이미지화해 그림을 그린다. 또 음악이나 노래 가사에 맞춰 수어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있다.”

출처: 본인 제공
2013년 패션 브랜드인 '포디멘션(4dimension)'과 함께한 작업.

-수어 그림을 그리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셨다. 그 충격으로 어머니는 오른쪽 청력을 잃으셨다. 8년 뒤 아버지처럼 돌봐주시던 외삼촌은 화재 사고로 오른팔을 잃으셨다. 운영하시던 헬스장에 전기 누전으로 불이 났다.


사랑하는 가족이 하루아침에 장애를 가지게 됐다. 자연스레 장애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다. 어머니가 청력을 잃으시면서 농인이 사용하는 수어에 관심이 생겼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문화가 서로 다를 수밖에 없더라. 도움이 될 만한 일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했다. 수어로 예술 활동을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2012년 한국수어사전을 보고 수어를 공부하면서 수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영수증 뒷면에 수어를 이미지화해 그렸다. 6개월간 꾸준히 그림을 그리며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작업물을 올렸다. 패션 브랜드인 포디멘션(4dimension) 측에서 그림을 보고 연락이 왔다. 브랜드를 론칭하는데 한정판 앨범 커버를 그려달라고 했다. ‘사랑’과 ‘고마움’을 주제로 수어 그림을 그렸다.”

출처: 본인 제공
박씨는 영수증 뒷면에 수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왜 스케치북이 아닌 영수증 뒷면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나.


“그림을 그리는 것에 대해 자신이 없었다. 대학교에서 그림을 전공한 것도 아니었다. 어릴 때부터 그림을 그리고 싶었지만 어머니는 안정적인 직장을 다니길 바라셨다. 어머니의 뜻대로 국립순천대학교 법정학과에 입학했다. 이후 2011년 순천향대학교 신문방송학과에 편입했다. 하지만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대학교를 휴학하고 방황하던 중 어머니께서 ‘너 뭐 하고 있니?’라고 물으셨다. 정신이 번쩍 들더라. 내가 진짜 하고 싶었던 게 무엇이었나 고민했다. 어릴 때부터 하고 싶었던 그림을 그려야겠다고 결심했다. 

주변에서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종이가 버려진 영수증이었다. 스케치북에 그리는 것보다 부담감이 덜했다. 영수증을 모아 수첩처럼 만들었다. 수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내 손을 자주 보고 그렸다. 손은 관절과 주름이 많아 그리기 어려웠지만 나만의 느낌으로 표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작업 방식이 궁금하다.


“먼저 주제를 정하고 단어나 글을 적는다. 수어로 번안해 이를 그림의 형태로 그린다. 예를 들어 자신감이라는 키워드를 정했다면 자신감을 뜻하는 수어를 이미지화해 그린다. 색깔과 형태 등으로 느낌을 표현한다. 수어라는 손동작 안에 감정을 담고 싶었다.”

출처: 본인 제공
2014년 프랑스 파리 루브르 아트페어에 걸린 박씨의 수화 그림 ‘Face Flower’.
출처: 본인 제공
2018년 ‘어루만지다 전(展)’ 전시 오픈 행사 프로그램으로 청인과 농인이 함께 수어벽화를 그렸다.

박씨는 지금까지 6번의 수화 그림 개인전을 열었다. 2013년 개인전 ‘마주하다:11’를 시작으로 작년에는 연남뮤지엄에서 ‘어루만지다 전(展)’을 진행했다. ‘어루만지다 전’에서는 전시 오픈 행사 프로그램으로 청인과 농인이 함께 수어벽화를 그리는 행사를 하기도 했다. 박씨는 해외에서도 전시 활동을 했다. 2014년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에서 열린 루브르 아트페어에는 박씨의 수화 그림 ‘Face Flower’가 걸렸다.


박씨는 그림뿐 아니라 무대 위에 올라 수어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2017년 남자친구인 현대 무용가 서일영씨와 퍼포먼스 팀 '후후탱크'를 결성했다. 음악을 듣고 떠오르는 문장이나 노래 가사를 수어로 번안해 선보인다. 무용가인 남자친구는 안무를 만들고 춤을 춘다.

출처: 본인 제공
박씨는 남자친구이자 무용가인 서일영씨와 퍼포먼스 팀 '후후탱크'를 결성했다.
출처: 본인 제공
박씨는 지난 10월 제39회 전국장애인체육대회 개막식에서 래퍼 비와이와 함께 랩 퍼포먼스 무대를 선보였다.

-수어로 퍼포먼스를 시작하게 된 이유가 궁금하다.


“남자친구가 무대에서 수어를 몸으로 표현해보는 것은 어떠냐고 제안했다. 수어로 다양한 활동을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남자친구와 함께 무대에 올라갈 때도 있고, 혼자 올라갈 때도 있다. 함께 안무를 만들고 무대를 기획한다.


2017년 대전문화재단에서 진행한 ‘2017 HUMAN TROPISM'에서 첫 수어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2018년 5월에는 ‘춘천마임축제’ 국내 아티스트 공모전에 당선돼 ‘불의도시;도깨비난장’ 프로그램에서 공연했다. 지난 8월 네이버와 위드피아노가 주최한 공모전인 ‘더피아노챌린지’에서는 대상을 탔다. 일본의 피아니스트인 류이치 사카모토의 ‘Merry Christmas Mr. Lawrence’라는 노래에 맞춰 수어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지난 10월 열린 제39회 전국장애인체육대회 개막식에서 래퍼 비와이와 함께 랩 퍼포먼스 무대를 선보이기도 했다. 비와이의 노래 '주인공'이라는 가사에 맞춰 수화 퍼포먼스를 했다. 한 달간 공연 준비를 하며 가사를 수어로 바꾸고 외웠다.”

출처: 본인 제공
수어 퍼포먼스 중인 박씨.

-주변 반응이 궁금하다. 


“처음에는 농인이 안 좋은 시각으로 바라볼까 봐 두려웠다. ‘비장애인이 수어를 하고 있네?’라고 생각할까 걱정한 적도 있다. 2016년 개인전을 열었을 때 전시장에 한 농인이 찾아왔다. 그동안 인스타그램을 통해 작품을 봤다며 직접 이야기를 나누고 응원해 주고 싶어서 찾아왔다고 하더라. 정말 설레고 떨렸다. 2년 뒤에는 농인 친구들과 함께 전시장에 왔다. 작품 활동을 격려해줬다. 수어가 가진 힘을 믿게 됐고, 보람을 느꼈다.


어머니도 정말 좋아하신다. 처음에는 반대가 심했다.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길 원하셨다. 농인들이 전시장에 찾아와 응원해주는 모습을 보고 인정해주시기 시작했다. 뜻을 가지고 계속 활동하는 것을 자랑스러워하신다.”


-수입이 궁금하다.


“프리랜서라서 매달 다르다. 전시회, 공연 등을 통해 이익을 얻는다. 전시회를 열면 그림엽서, 거울, 배지, 스티커 등의 굿즈를 통해 수익이 생긴다. 한 달 평균 200만~300만원 정도 번다.”


-앞으로의 꿈과 목표는.


“농인과 청인을 잇는 다리 역할을 하고 싶다. 서로의 문화를 더 잘 이해하고 존중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함께하는 예술 페스티벌을 열고 싶다.”


글 jobsN 임헌진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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