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엔 부끄러움 없는데..' 원사님 한마디에 시작했죠

조회수 2020. 9. 24. 13:2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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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값은 69년 전에 받았습니다"
전 세계 돌며 한국전쟁 참전용사 촬영하는 현효제 작가
사비 털어 3년째 1000여 명 ‘역사의 헌신’ 기록
국가유공자에 “고맙습니다” 인사하는 사회 꿈꿔

사진은 일종의 기록 매체다. 사진으로 중요한 역사를 기록하기도 하고 잊지 못할 순간을 남기기도 한다. 이런 사진을 통해 새로운 기록을 만들고 역사를 만들어나가는 사람이 있다. Project-Soldier의 현효제(40) 사진작가다.


군대에서 CBT(Computer-Based Training·훈련과 교육을 위해 컴퓨터를 사용하는 것)병이었던 그는 군 생활을 하며 컴퓨터 그래픽에 흥미를 느꼈다. 제대 후 컴퓨터 그래픽을 제대로 공부하고 싶어 다니던 학교를 중퇴하고 미국 유학을 갔다. 처음 전공은 특수효과를 컴퓨터로 구현하는 비주얼 이펙트(Visual Effect)였다. 그러나 우연한 계기로 사진에 매료됐고 미국에 유학 간 지 2년 반이 지나 사진으로 전공을 바꿨다. 한국으로 돌아와 사진작가로 활동하다 2013년부터 군인 사진을 찍게 됐다. 그가 찍은 군인 사진만 6000여 명에 달한다. 그러다 자신의 사진전에서 만난 한국전쟁 참전용사를 계기로 2017년부터 국내외 한국전쟁 참전용사를 찾아다니며 무료로 사진을 찍어 주고 있다.

출처: 현효제 작가 제공
현효제 사진작가.

참전용사를 찍는 데까지의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처음엔 ‘맨땅의 헤딩’ 식으로 참전용사와 연락이 닿을 수 있는 모든 곳에 연락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건 “안된다”는 답변뿐이었다. 그러다 영국 대사관과 연락이 돼 2017년 8월에 처음으로 영국에 촬영을 하러 가게 됐다. 그 뒤로 현 작가는 미국, 영국 등 참전용사가 있는 곳이면 가리지 않고 가고 있다. 그의 열정을 보고 미국 참전용사협회는 공식 촬영 허가권을 승인해주기도 했다.


그가 이 일을 하면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은 ‘돈’이다. ‘참전용사 사진 찍으면 돈 주냐’, ‘돈이 안 되는데 왜 하냐’ 등의 곱지 않은 시선도 많았다. 그러나 현 작가는 돈은 중요치 않다고 말한다. 이 일을 통해 참전용사에게 고마움을 전할 수 있고 사람들이 참전용사의 헌신을 기억해준다면 만족한다고 한다. 현효제 작가를 만나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사진으로 기록하고 이야기를 듣는 일


-본인 소개를 해달라.


“Project Soldier를 진행하고 있는 현효제(Rami Hyun) 작가다. Project Soldier는 군인 및 유니폼을 입고 나라에 봉사하는 사람들을 사진으로 기록하고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현재는 프로젝트의 네 번째 파트인 Korean War Veteran을 진행 중이다. 한국전쟁 참전용사분들을 찾아가 무료로 사진을 찍어드리고 액자로 제작해 전달하는 일이다.”


-참전용사 사진을 찍기 전에는 군인 사진을 찍었다고.


“사진작가 활동을 하면서 서울대병원 홍보 동영상을 만든 적이 있었는데 그 동영상이 대박이 났다. 그걸 보고 군부대에서 우리도 그렇게 만들어달라고 연락이 왔다. 나는 영상 만들 때 주로 인터뷰를 활용한다. 인터뷰하면 그 사람의 성격이나 특성 그리고 진심을 알 수 있다. 그래서 3개월 동안 영상을 만들었고 군인 60명 정도를 인터뷰했다. 어쩌다 그중 한 원사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게 됐다. 그분이 아들 둘이 있는데 가족끼리 놀러 간 적이 거의 없다고 했다. 어딜 가려고 하면 일이 생겨 집에 잘 가지도 못하고 28년 군 생활을 하면서 나라에는 부끄러움이 별로 없는데 한 가정의 아버지로는 부끄럽다고 하더라. 원사님께서 곧 만기 전역인데 전역하면 가족여행 가는 게 소원이라 하셨다. 그 이야기를 듣고 이런 사람들을 사진으로 기록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일로 군인들의 헌신에 가치를 더하고 싶었던 거다. 그래서 군인 사진을 찍게 됐다. 처음엔 군인 개인 사진만 찍다가 군인 단체 사진을 찍게 됐고 그러다가 군인 가족사진을 찍게 됐고 그러다가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을 찍게 됐다. 그렇게 프로젝트가 된 거다.”

출처: 현효제 작가 제공
현 작가가 찍은 군인 사진.
출처: 현효제 작가 제공
현 작가가 찍은 군인 사진.

-참전용사를 찍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군인 사진을 찍다 2016년에 ‘I am a Soldier’라는 사진전을 진행했다. 거기서 우연히 한국을 방문 중이던 미군 참전용사를 만났다. 그에게 현역 군인에게서도 보지 못했던 자부심을 느꼈다. 신기하면서도 ‘저분들은 자기 나라를 지킨 것도 아닌데 왜 저런 자부심이 있을까’라는 큰 궁금증이 생겼다. 그래서 참전용사에 대해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분들에 대한 기록이 별로 없었다. 기록이 모여 역사가 되고 역사가 모여 자부심이 되는 건데 우리는 이 사람들에 대한 기록이 없었다. 1년에 한두 번 하는 다큐나 인터뷰를 제외하곤 찾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내가 그분들을 사진으로 기록해보고자 해서 시작하게 됐다. 참전용사분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그들을 기록하고 이를 통해 감사함을 전하고 싶었다.


먼저 국내에 계신 참전용사분들을 찾기 위해 해당 기관에 글을 남겼다. 그러나 그곳에선 개인정보 보호법 때문에 국내에 계신 참전용사 연락처를 알려줄 수 없다고 했다. 그러다가 어렵게 기회를 얻어 보훈처에서 참전용사분들 모시고 하는 행사 때 참여해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후에도 국내에 계신 참전용사분들과는 연락이 닿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그래서 외국에라도 계신 분이 있으면 직접 내가 찾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해외 참전용사를 찾기 위해 영사관, 대사관에도 메일을 보냈다. 다른 데는 답이 없었는데 영국 대사관에서 연락이 왔다. 담당자께서 참전용사 이메일을 주며 나보고 연락을 해보라 했다. 그래서 그분한테 이메일을 보내고 연락이 닿아 2017년에 처음으로 직접 영국에 가 촬영을 하게 됐다. 이때를 시작으로 외국으로 직접 가 촬영을 하기 시작했다.”

출처: 현효제 작가 제공
참전용사와 함께 사진을 찍은 현효제 작가.

◇ 흑백 사진에 그들의 인생을 담아


-사진 찍는 과정이 궁금하다.


“먼저 연락처를 확보한다. 무작정 대사관이나 영사관에 메일을 보냈다. 혹은 지인이나 페이스북을 통해서 내가 현재 하는 걸 설명하면서 참전용사분들 중 아는 분이 있냐 이런 식으로 해서 연락처를 받아내 가게 됐다. 그렇게 접촉하다가 미국 참전용사협회에서 공식 촬영 허가권을 받아 이제는 참전용사분들과 연락이 좀 더 수월해졌다. 그래서 내가 컨택을 해서 연락이 오면 가서 사진을 찍는다. 사진을 찍고 한국으로 돌아와 인쇄한 뒤 직접 갖다주러 다시 간다. 배송을 보낼 수도 있지만 직접 갖다주는 이유는 파손의 위험도 없고 직접 가는 게 더 싸기 때문이다. 또 사진은 찍고 끝나는 게 아니라 찍은 뒤 액자에 넣어 전달해야 완성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직접 가서 전달하고 있다.”


-사진을 흑백으로 찍던데 이유가 있나.


“내가 사진으로 담고 싶은 건 그들의 정신이다. 그런데 색이라는 건 시간과 장소에 따라 다른 느낌을 준다. 나는 사진을 통해 시대상을 반영하고 싶은 게 아니라 영원성과 역사성을 담고 싶었다. 그래서 색을 뺐다. 그래야지 더 오래 남으니까. 또 다른 이유는 참전용사나 군인은 바깥에 오래 있어 잡티도 많고 까맣다. 이것이 색을 통해 드러나면 특정한 인상을 주기 마련이다. 그런데 흑백은 색을 통해 가질 수 있는 인상을 없애고 그 사람 자체를 보여준다. 그래서 흑백으로 찍는다.”

출처: 현효제 작가 제공
미국 조지아주 아틀란타에 계신 국군 참전용사들의 사진.
출처: 현효제 작가 제공
참전용사 하세종 선생과 미 해병대 출신 살 스칼라토(왼), 미 참전용사 티모시 휘트모어와 그의 손녀(오).

-사진을 찍을 때 중점을 두는 부분이 있다면.


“있는 그대로 찍으려고 노력한다. 참전용사분들은 살아온 인생이 있고 그게 얼굴에서 다 드러난다. 그분들의 평균 나이가 90세다. 대부분 사진 찍을 때 본인이 마지막이라 생각한다. 그분들은 인생의 마지막을 누구의 아버지나, 어디 회사의 사장이 아닌 한국전쟁 참전용사로 기억되길 원한다. 군인의 모습으로 기록되고 싶어 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진을 찍을 때 꾸미는 것보다 그분들 자체를 찍으면 된다. 참전용사분들은 이미 준비가 다 돼 있고 나는 가서 셔터를 누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사진을 찍으면서 기억에 남는 인물이나 사연이 있나.


“윌리엄 웨버(William Weaver) 대령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웨버 대령은 한국전쟁에서 수류탄에 맞아 오른팔을 잃었고 후송 중이던 지프가 폭탄에 맞아 같은 날 오른 다리를 잃었다. 미국 워싱턴 한국전 참전 기념비 옆에 있는 ‘19명의 미국 병사 조각상’의 실제 모델이기도 하다. 보통 참전용사분들 사진을 찍어 액자를 갖다 드리면 대부분 얼마냐 물어보신다. 그러면 나는 그분들께 “이미 69년 전에 다 지불했고 나는 조그만 빚을 갚으러 온 것뿐”이라 말한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웨버 대령만 “넌 틀렸어”라고 하셨다. 웨버 대령은 “자유를 가진 사람한테는 의무가 있다” 며 “그 의무는 자유를 갖지 않은 사람한테 자유를 전파하는 것”이라고 하셨다. 자신이 1950년에 한국에 온 건 그 의무를 전파하기 위해 왔던 것이고 그렇기에 우리가 자신한테 빚진 게 아니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씀이 인상적이었고 아직도 잊혀지지 않아 가장 기억에 남는다.”

출처: 현효제 작가 제공
윌리엄 웨버 대령.

◇ ‘고맙습니다’ 한 마디 건네길 원해


-금전적인 문제도 있을 것 같은데.


“금전적인 어려움도 없다고 할 순 없다. 후원을 제외하곤 모두 사비로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단 한번 외국에 갔다 오면 기본으로 300만원은 든다. 비행기, 호텔, 렌터카, 기름값 등 하면 대략 300만원 정도다. 돈이 없으면 장비를 팔거나 다른 사진 작업을 하며 돈을 마련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버틸 수 있던 이유는 외국에 가면 나를 도와주는 많은 교포분들, 외국인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알게 모르게 뒤에서 도와주시는 분이 많아 지금까지 계속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한국전쟁에 참전한 미군이 약 180만명인데 다 돌아가시고 현재 15만명이 남았다. 영국은 8만5000명이 참전해 이제 800명이 남았다. 또 국내 한국전쟁 참전 유공자 가운데 생존자는 현재 약 10만명 정도다. 대부분이 90대 고령이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한 분이라도 더 기록으로 남기고 그들의 헌신을 기억하고 싶다. 또 우리 주변에서도 버스나 지하철 타면 국가유공자분들을 많이 볼 수 있다. 그분들한테 다가가서 ‘고맙습니다’ 한 마디 건넬 수 있는 문화를 만들고 싶다.”

출처: 현효제 작가 제공
미국 시애틀에 계신 국군 참전용사들의 사진.
출처: 현효제 작가 제공
한국전쟁 국군 참전용사(왼), 미국의 puerto rico 참전용사(오)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


“2020년, 2021년은 미국으로 가 사진을 찍고 2022년, 2023년에는 미국이 아닌 한국전쟁 참전국들을 돌고 2023년에 정전 70주년에 맞춰 각 나라에서 대규모 전시를 하려고 한다. 그러면 현재 진행하고 있는 네 번째 프로젝트(Korean War Veteran)는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때까지 지치지 않고 멈추지 않고 다니는 게 목표다.”


글 jobsN 장유하 인턴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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