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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 안좋은 신랑·쇼핑몰 망한 신부가 택한 정년 없는 일

조회수 2020. 9. 24. 14:0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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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딸기 신혼부부의 핑크빛 꿈
청년농부사관학교 2기생 김지현・이동규 부부

사람들이 일이 잘 안 풀릴 때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하다하다 안 되면 시골에 가서 농사나 짓지.”


‘농사나’라니. 입으로 하는 농사야 쉽지만, 농사가 얼마나 고된 일인지 직접 경험해본 사람은 다 안다. 농사, 참 어렵다. 시골은 고령화로 일손이 부족한데, 해외에서는 기계화를 통해 거둔 질 좋은 농산물이 쏟아져 들어온다. 그해 날씨에 따라 풍년과 흉년이 갈리고, 소비 트렌드가 바뀔 때마다 인기 작물도 달라진다.


말처럼 쉽지 않은 농사일. 그런데도 “농업에 우리 미래가 있다”며 도전하는 청년 농부들이 있다. ‘농사나’가 아닌 ‘농사로’ 최선의 승부를 거는 그들의 손에 우리 미래의 먹거리가 달렸다.


초보 농부 김지현(31)·이동규(36) 씨 부부에게 농사는 인생 이모작이다. 한창 ‘깨 볶을’ 신혼이지만, 부부의 옷은 땀으로 젖고, 얼굴은 볕에 그을려 거무스름하고, 손톱 밑은 흙투성이다.


“남편이 울산 장생포항에서 예인선을 탔는데, 간이 안 좋아져 일을 그만둬야 했어요. 저도 쇼핑몰 사업이 망해 삼촌 가게에서 아르바이트하며 지낼 때였고요. 때마침 울산에서 딸기 농사를 짓는 시부모님이 이제는 힘들어 농사를 못 하겠다며 들어오라고 하셨죠.”(김지현)


이동규 씨의 아버지는 울산 북구 상안동에 위치한 3000평(9,900㎡) 규모의 농장에서 딸기와 감자, 고구마, 쪽파, 상추 등 갖가지 농사를 짓고 있다. 그중 하우스 20동에 걸쳐 딸기 농사를 크게 하는데, 시내와 가까워 로컬푸드 매장에 팔거나 학교 급식으로 납품하고 있다. 딸기 산업은 시장 규모가 1조 2000억 원이 넘는 중요 작목이다. 시설원예 농업인들 사이에서는 제법 소득을 보장받는 분야다. 부부는 딸기 농사의 미래를 보고 과감히 농업에 발을 들여놓았다.


초보 농부의 첫걸음, 청년농부사관학교

이들 부부가 농부가 되기로 결심하고 처음 문을 두드린 곳은 농협미래농업지원센터가 운영하는 청년농부사관학교다. 청년농부사관학교는 정예 청년 농부를 길러내기 위해 농협이 만든 교육 프로그램이다. 농작물을 심거나 씨 뿌리는 단계부터 농기계 작동, 농작물 수확, 이후의 판로 개척까지 농사의 A to Z를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다. 농업 관련 지식이 없는 사람이라도 교육을 통해 실전형 농부로 길러내는 게 학교의 목표다.


청년농부사관학교가 문을 연 건 지난해 9월. 1기생 25명을 선발했고, 6개월 교육 끝에 22명이 수료했다. 그중 14명이 농업 현장에서 제 몫을 해내고 있다. 2기생은 올봄 100명을 모집해 10월에 수료한다. 전국에서 예비 농부들이 모여들면서 2 대 1의 경쟁률을 보일 만큼 인기였다. 부부는 2기 교육생 명단에 나란히 이름을 올렸다.


“교육 프로그램이 운영되는 동안은 주말을 제외하고 기숙사 생활을 해야 해요. 880시간 수업을 받는데, 남편과 떨어져 있기 싫어 함께 신청했죠. 지금은 농사가 적성에 맞아 제가 더 신나서 다녀요.”(김지현)

청년농부사관학교는 오전에 현장 중심의 영농 실습을 하고, 오후에는 스마트팜, 농기계 작동법, 경영학, 사업계획서 작성 등 다양한 분야의 이론을 학습한다. 현장 교육에서는 배추와 무, 적상추, 양상추 등 초보자도 쉽게 지을 수 있는 12개 품목을 재배하며, 농업의 기본 지식을 습득한다. 학생들은 실습을 통해 씨뿌리기나 모종 심기부터 농기계 작동법, 스마트팜 운용 방법, 드론을 활용한 제초법 등을 배운다.


초보 농부에게 농부사관학교의 교육은 흥미로웠다. 흙의 종류, 종자 구분법, 스마트팜 운용까지 신기한 것이 많았다. 김지현 씨는 “학교에서 보낸 하루하루가 가슴 설렌다”라고 했다. 그가 실전에서 경험을 쌓는 동안 이동규 씨는 밤마다 공부에 몰두해 굴삭기와 지게차 기능사, 종자 기능사, 제과제빵 자격증 등을 땄다.


남 눈치 덜 보고, 정년도 없고

“교수님이 허허벌판에 우리를 데려가더니 ‘자, 이제 여기에서 너희가 기르고 싶은 작물을 길러봐라’ 하시더라고요. 딸기, 토마토, 고추, 피망, 옥수수 등의 작물을 재배하며 하우스 관리법을 배우고 노지 병충해 관리나 장마 때 물길 트는 작업 등 실전 경험을 쌓았죠. 스마트팜 호수에 물이 새 온종일 애쓴 적도 있어요. 직접 해보지 않으면 몰랐을 거예요. 농사가 이렇게 힘들다는 걸요. 그래도 우리가 직접 재배한 작물이 점심 반찬으로 올라오면 어찌나 뿌듯하던지요.”(이동규)


부부에게 가장 도움이 된 수업은 선진 농가 견학이었다. 상업적으로 성공한 농가에 두 달여 머물며 시설을 둘러보거나 노하우를 배웠다. 학교는 이를 위해 전국 50곳 농가와 협약을 맺었다.


“딸기 명인이 운영하는 거창 농가에 체험하러 갔어요. 우리 부부는 딸기 농사를 지으며 체험 농가도 운영할 계획인데, 그곳은 딸기 수확 체험은 물론 글램핑장까지 운영하고 있어서 우리와 딱 맞았죠. 밭에 흙을 채우고, 고랑을 파고 하우스를 덮는 일까지 모두 우리 손으로 직접 해볼 수 있었습니다.”(이동규)

농사는 실전이다. 현장에서 부부는 몸으로 부딪치고 발로 뛰며 빠르게 익혔다. 처음에는 그저 신이 났다. 곧 내 농장을 운영할 수 있다는 생각에 욕심도 났다. 하지만 과욕이 사건을 불렀다. 뙤약볕이 이글거리는 한여름, 김지현 씨가 탈수로 쓰러졌다.


“통풍 시설이 고장 난 하우스에서 그물망 작업을 하다 쓰러졌어요. 한번 시작하면 끝장을 보는 성격이라 마음이 급했던 거죠. 남편은 제게 ‘하루 이틀 하고 말 일이 아니니 욕심내지 말라’고 다독였어요. 농사는 그날 컨디션이 좋다고 무리하면 안 된다는 걸 배웠죠.”(김지현)


부부는 농부의 길에 들어선 후 처음으로 한계를 경험했다. “괜히 농부를 한다고 했나, 다른 곳에서 편하게 일할걸” 하고 후회도 했다. 하지만 곧 긍정의 힘으로 일어섰다.


“남 눈치 덜 보고, 정년도 없고, 평생 내 돈을 내가 벌어 쓸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에 꾹 참았습니다. 그리고 성공할 자신도 있거든요.”(김지현)


“고향 울산서 체험 농가 운영할 거예요”

농사에서는 재배 못지않게 농산물을 상품화해 판매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청년농부사관학교에서는 교육 과정 중에 재배한 농작물을 가지고 스스로 판로를 개척해 판매하도록 돕고, 직거래 혹은 온라인 매장 등 다양한 경로를 활용한 유통 노하우도 교육한다.


부부는 모든 교육이 종료되면 고향인 울산으로 돌아가 작게나마 체험 사업을 시작할 계획이다.


“딸기는 11월 중순부터 5월까지가 수확철이에요. 5월부터 8월 말까지는 새로운 모종을 키우죠. 키운 모종을 9월에 다시 밭에 심고요. 밭에 딸기 모종을 심어두고, 열매 맺기를 기다리는 동안에는 상대적으로 한가해요. 농휴기에는 딸기잼 만들기 같은 여러 가지 체험 학습을 진행해보고 싶어요.”(이동규)


울산은 공업 도시 성격이 강해서 아이들을 데리고 갈 만한 곳이 별로 없다. 체험형 농가가 절실한 이유다. 부부는 “아이들에게 텃밭에서 흙을 만지며 노는 따뜻한 기억을 심어주고 싶다”고 했다.


“엄마와 처음 텃밭을 가꿀 때가 기억나요. 고추, 감자, 쌈채소, 포도 등을 길렀어요. 포도나무가 자라는 걸 보면서 신기했죠. 나무는 위로 자란다고 생각했는데 옆으로 자라야 더 많은 열매를 맺더라고요. 인생도 그래요. 위로만 성장하는 게 전부는 아니죠. 청년농부사관학교에 들어와 첫 수업에서 교수님이 한 말이 기억나요. ‘가슴 뛰는 농업을 하라’. 힘들 때마다 그 말을 떠올립니다.”(김지현)


농부로 갓 걸음마를 뗀 청년들의 손에서 우리나라 농업의 미래가 싹트고 있다.


글 jobsN 서경리
사진 jobsN 서경리·농협미래농업지원센터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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