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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습 끝나고 받은 첫 월급이 96만7000원이었습니다

가난을 팔아 돈을 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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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주 동안 다양한 동네의 부동산을 돌았다. 돌고 돌아 우리 형편으로 살 수 있는 전셋집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집주인에게 전화를 했다. 우리가 보증금 1000만 원을 올리고 살 수 있겠느냐고. 집주인은 집을 내놓은 지 한 달이 되도록 문의가 없어서 걱정했는데 잘되었다며 반색했다. 아무도 찾지 않는 집에서 다시 살게 되었구나. 차라리 몰랐다면 더 좋았을걸.”


2년 전 강이슬 작가는 반지하 집에서 보증금 2000만 원에 월세 68만 원 옥탑으로 이사했다. 이전 집에 비하면 해도 들고 평수도 넓어 처음엔 궁궐 같았다. 그러나 더 살다 보니 여름이면 더위로 숨이 막히고, 겨울엔 수도가 얼었다. 그럴 때면 2리터짜리 빈 페트병 8개를 챙겨 1층에 있는 상가 화장실에서 물을 받아 와 세수와 양치를 한 뒤 남은 물로 발을 씻고 욕실 바닥의 비눗물을 헹궜다. 집주인은 그 와중에 보증금을 올리겠다고 했다. 작가와 친구는 새로운 집을 찾아 서울 마포구 망원동 구석구석을 돌았지만 집들은 더 낡았거나 더 어두웠다.


올해 열심히 일하고 덜 쓰면 내년에는 옥탑이 아닌 곳에서 살 수 있을까? 내년에도 월급은 오르지 않을 것이지만, 집값은 오를 것이다. 슬픈 예감에 빠지는 대신 그는 생각했다. 가난을 팔아서 돈을 벌고 싶다고. 그 꿈이 이뤄져 매일 카페에서 A4 세 장에 눌러쓴 글은 제6회 카카오 브런치북 대상을 받고, 책으로도 출간됐다. 현재 3쇄를 찍은 상태다.


#리얼 #버라이어티 #르포르타주 #예능


강이슬 작가는 〈SNL 코리아〉로 시작해 〈인생술집〉 〈놀라운 토요일〉 등의 방송작가를 거쳤다. 방송국 막내 작가로 3개월 동안 일해서 받은 돈은 40만 원 남짓이었고, 수습 뒤 첫 월급은 96만 7000원이었다. 100만 원이 채 되지 않는 임금은 서울에 살며 생활비와 교통비, 거기에 집 보증금까지 모으기엔 턱없이 적은 액수였다.


“공개적으로 솔직한 글을 쓰기 전의 저는 가난을 숨기는 사람이었어요. 나 빼고 다 잘사는 것 같은데 굳이 내 힘든 점을 말해서 뭐하나 싶고 창피하기도 해서 남들만큼 사는 척했죠. 집에 돌아와선 비루하기 짝이 없는 통잔 잔고를 보며 한숨을 쉬었어요. 사람들은 방송작가라는 직업 때문에 멋지게 잘사는 줄 알 텐데 초라하기 짝이 없는 내 진짜 모습을 알면 뭐라고 생각할까, 두려웠어요.”


사실 그 빼고 다 잘사는 건 아니다. 빌딩숲과 마천루 사이, 그 그늘에 가려진 골목길 어귀에는 청춘들이 반딧불이처럼 저마다의 불을 밝히고 젊음을 태우며 살고 있다. 서울이라는 도시에 소울을 갈아 넣으며, 그의 말대로 “가난한 자들은 보증금을 모을 수 없는 건지, 아니면 보증금이 모이지 않아 가난한 노력을 계속하는 건지”, 뭐가 뭔지 모르는 상태로 말이다.


“평소처럼 사람들 앞에서 가난을 숨기고 집으로 돌아온 어느 날에는 문득 화가 났어요. 언제까지 이렇게 살지 모르는데, 언제까지 떳떳하지 못할 것인가 하는 생각. 가난한 게 내 잘못도 아닌데, 내가 일을 안 하는 것도 아니고 누구보다 열심히 살고 있는데 이게 부끄러울 일인가, 싶었죠. 진짜 부끄러운 건 남들 앞에서 내 진짜 모습을 들킬까 전전긍긍하는 내 모습이었어요.”


주로 퇴근 후나 출근 전에, 단골 카페에 들러 글을 썼다. 그 시간이 좋아서 퇴근 시간이 가까워지면 설렐 정도였다.


“어느 날엔가, 퇴근하자마자 카페에 가서 글을 쓰다가 카페 사장님과 잠깐 대화를 했는데 사장님이 ‘퇴근 후에도 글 쓰시는 거면 하루종일 일하는 거네요’라고 하더라고요. 저에게 글쓰기는 휴식이었어요. 글을 쓰면서 일터에서는 놓을 수 없었던 긴장들을 내려놓을 수 있었고 바깥으로 내뿜어야 했던 에너지를 온전히 내면에 집중할 수 있었거든요.”


그의 글은 한 편의 르포르타주 같고, 잘 만들어진 시트콤의 한 꼭지 같기도 하다. 삶의 구체적인 애환을 다루면서도 신파로 빠지지 않고 결국은 웃게 만든다. 그는 〈SNL 코리아〉 작가 시절 3년을 “쌀이 떨어지고 전기세가 밀릴 정도로 가난했지만, 대신 죽도록 웃으며 일했고 때문에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지옥이었다”고 표현했다.


아프거나 망하지 말고, 행복하자

도시의 삶은 브런치로 시작해 에스프레소로 나른한 오후를 깨우고 헬스와 반신욕으로 개운하게 마무리할 것 같지만, 실상은 삼각김밥으로 허기를 때우고 편의점 커피에 혀를 데고 양치할 기운도 없이 녹초가 되는 매일인지 모른다. 특히 ‘그 바닥’의 바닥을 담당하는 막내들의 삶이란, 누가 기록해주지 않고는 상상도 못 할 일이 매일 벌어진다. 나중에 “우리 때는 말이야~”라며 무용담을 늘어놓으면 꼰대 짓이 되지만, ‘지금, 여기, 오늘의 기록’은 대중목욕탕에서 목욕한 후에 마시는 바나나 우유처럼 ‘꽉 차게 달콤한’ 위로가 된다.


“현실이 구질구질해서 마음이 너무 답답하고 속이 상하는데 이걸 누구에게 털어놓아야 할지, 어디서부터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한바탕 글로 늘어놓고 나면 이런 상황 속에서도 잘 버티고 있는 내가 스스로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조금 나아졌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스스로를 응원하고 격려하기 위해 글을 쓴 거죠.”


“중요한 막대기가 모조리 제거된 최후의 젠가처럼 위태로웠던 내 옆구리에 채워 넣을 것이 필요했을 때” 그는 활자 안으로 숨었고, “A4 세 장의 기록으로 남긴 후에는 딱 그만큼 회복되어 조금 튼튼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지금은 그 활자가 《안 느끼한 산문집》으로 출간돼 그를 처음으로 계약서상 ‘갑’으로 만들어줬다.


“책을 내고 ‘작가님 적게 일하고 많이 버세요’라는 말을 가장 많이 들었어요. 주로 ‘작가님 상황에 참 많이 공감했다’는 이야기 다음에 따라오는 응원이었죠. 저와 같은 상황을 겪어본 그리고 겪고 있는 분들이 옷깃 한 번 스쳐본 적 없는 타인의 부를 진심으로 빌어준다니, 그리고 그게 나라니, 살면서 들어본 말 중 가장 다정하고 따뜻한 말이 아닐까 싶어요.”


반대로 그와 그의 부를 비는 독자들의 삶은 여전히 ‘많이 일하고, 적게 버는’ 삶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그는 옥탑방에서 값싼 술과 직접 만든 안주를 먹으며 친구들과 자이언티의 ‘양화대교’를 부른다.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부분에서는 목청이 더 높아진다. 그는 진심으로 빈다. 그를 비롯한 2019년의 청춘들이 아프거나 망하지 않기를. 가만히 있어도 나를 까고 밟아대는 세상에서 나만은 내 편이 되어주기를.


“나의 20대를 어떻게 기억할지 저는 분명히 알고 있어요. 아마 이렇게 말할 거예요. 나는 겁나 짱이었다!”


글 jobsN 서경리
사진 jobsN 서경리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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