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친이 '82년생 김지영' 보자는데 헤어져야 하나요?"

조회수 2020. 9. 24. 14:32 수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82년생 김지영' 영화로 개봉..페미니즘 논란 재점화
조남주 작가의 원작 소설 82년생 김지영
2016년 출판 누적판매부수 100만부 돌파
최근 영화로 개봉···페미니즘 논란 재점화

82년생 김지영은 34살의 전업주부 김지영씨의 일상을 담은 작품이다. 대한민국에서 평범한 여성이 일반적인 수준으로 겪는 성차별과 불평등을 다뤘다. 원작 소설은 2016년 10월 출판됐다. 출간 2년여 만에 누적판매부수 100만부를 돌파했다. 한국 소설이 100만부 이상 팔린 것은 2009년 신경숙 작가의 ‘엄마를 부탁해’ 이후 9년 만의 일이었다. 해외에서도 큰 호응을 얻었다. 일본·중국·대만에서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침체된 국내 출판업계에 활기를 불러일으켰다. 세계적으로는 한국문학의 저력을 알린 계기였다. 최근엔 소설을 바탕으로 영화가 나왔다. 가족 이야기를 다루는 영화 82년생 김지영이지만 이를 둘러싼 논란은 첨예하게 갈리고 있다. 

출처: 민음사·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조남주 작가의 소설 '82년생 김지영'과 최근 개봉한 영화 포스터.

◇SNS·커뮤니티에 쏟아지는 후기···상대방 반응 예민하게 살펴


10월23일 개봉한 영화 82년생 김지영은 개봉날에만 13만8968명의 관객(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이 모였다. 박스오피스 1위 기록이다. 화제성만큼 평점은 엇갈렸다. 네이버 영화 사이트의 네티즌 평점을 보면, 남자는 영화에 1.86점을 매겼다. 여자는 9.48점을 준 것으로 집계됐다. 연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송인한 교수는 “실제로 영화를 관람한 300명 정도인데 이들의 평점은 9.53점이다. 영화를 보지도 않고 ‘별점 테러’를 가한 네티즌은 약 2만명에 달한다”라고 분석했다.

출처: 네이버 영화 캡처
네이버 영화 사이트 '82년생 김지영'에 달린 네티즌 평점. 실제 관람객 평점과 성별에 따라 점수가 극단적으로 나뉘고 있다.

후기는 극단적으로 나뉜다. ‘남녀 갈등을 최악으로 부추기는 영화다’, ‘피해 의식 있는 여성들끼리의 공감 영화다’, ‘그간 받아온 온갖 특혜는 무시하고 그저 피해망상?’, ‘불행은 주변 남성과 환경 탓이고 행복은 본인의 노력 탓인가’ 등의 비판이 이어졌다. 반면 ‘아버지의 삶과 고통을 다룬 영화도 많은데 어머니와 여성의 고충이 담긴 내용이 뭐가 문제냐’, ‘조커처럼 범죄를 저지르는 내용도 아니고 남자를 조롱한 것도 아닌데 왜 남성이 비난하나’, ‘세대 상관없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 등의 의견도 있었다.


같은 영화를 봤다 해도 개인의 감상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유독 82년생 김지영에 대한 상대방의 취향을 공격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게시물을 보면 알 수 있다. 한 작성자는 ‘여자친구가 82년생 김지영 보러 가자는데 어떻게 하죠?’라며 난감함을 토로했다. 그는 ‘난 잘 몰랐는데 영화가 논란거리가 있어 보인다’며 ‘괜찮은 거냐?’라고 질문했다. 또 ‘썸녀(연인으로의 발전 단계에 있는 사람) 인스타그램에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다는 게시물이 올라왔다. ‘손절(헤어짐)’하는게 맞겠나?’라고 묻는 이도 있었다. 게시글에는 ‘헤어져라’, ‘그런 사람하고 어떻게 만날 수 있겠나’ 등의 답글이 이어졌다.

출처: 커뮤니티 캡처
82년생 김지영을 둘러싸고 남녀간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여성들도 남성들의 반응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10월23일 한 커뮤니티에는 ‘82년생 김지영을 보면 헤어진다는 남친’이라는 글이 올라왔다. 작성자가 남자친구에게 82년생 김지영 영화를 보러 간다고 하자 두 사람은 실랑이가 붙었다. 말싸움을 하던 남자친구는 여자친구에게 “너 그거 보러 가면 나랑 헤어지는 거다”라고 했다고 한다. 작성자는 ‘왜 보지도 않고 영화를 보겠다는 이유로 싫어하고 욕하는지 모르겠다’며 ‘이런 사람과는 만남을 이어갈 수 없을 것 같다’라고 글을 마무리 지었다. 이 밖에도 ‘82년생 김지영을 보고 남편과 싸울뻔했다’, ‘82년생 김지영에 악플 다는 남친’ 등에 대해 조언을 구하는 글이 여러 커뮤니티에 올라오고 있다. 하재근 문화 평론가는 “2016년 82년생 김지영이 출판된 뒤 논란이 일었다. 82년생 김지영과 여성 인권 운동 페미니즘(Feminism)과 연관 지어 이 키워드만 나오면 부정적으로 반응하는 것”이라고 했다. 


◇유명인도 피할 수 없었던 82년생 김지영을 둘러싼 비난

 

유명인도 82년생 김지영과 관련한 논란은 피할 수 없었다. 작년 3월 아이돌 그룹 레드벨벳 멤버 아이린은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다고 밝혔다가 ‘페미니스트(Feminist)’ 논란에 휩싸였다. 아이린은 3월18일 한 팬미팅에 참석해 “최근 읽은 책이 무엇이냐”는 팬의 질문에 “82년생 김지영과 별일 아닌 것들로 별일이 됐던 어느 밤을 읽었다”고 답했다.


이후 아이린의 발언이 담긴 영상이 소셜미디어와 유튜브를 중심으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일부 남성 팬 사이에서는 아이린이 페미니스트라는 말이 나왔다. 페미니스트란 남성 중심의 사상에 대항해 사회 각 분야에서 여성의 권리와 주체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거나 운동을 펼치는 사람을 말한다. 논란이 커지자 팬 커뮤니티에서는 아이린의 발언에 분노하는 글이 올라왔다. 또 아이린의 사진을 불태우는 인증샷까지 등장해 충격을 안겨줬다.

출처: 서지혜(@jihye8024) 인스타그램 캡처
배우 서지혜의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82년생 김지영 책 게시물은 악플이 이어지자 얼마 지나지 않아 삭제됐다. 이후 별다른 말 없이 노을 사진 올렸다.

배우 서지혜 역시 지난 9월 책 사진을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올렸다가 일부 네티즌의 뭇매를 받았다.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책 사진과 함께 ‘책 펼치기 성공’이라는 게시물이었다. 댓글에는 ‘페미니즘은 정신병’. ‘실망이다’ 등 비난하는 댓글이 이어졌다. 결국 해당 게시물을 삭제한 서지혜는 이후 업로드한 게시물에서 복잡한 심경을 드러냈다. 저녁노을이 지는 사진과 함께 침묵하는 듯한 ‘......’ 을 올렸다. 배우 김옥빈은 “자유롭게 읽을 자유. 누가 검열하는가”라는 의견을 달기도 했다.


책만 읽었을 뿐인데 유독 여성 연예인들에게만 비난이 쏟아진다는 시각도 있다. 82년생 김지영이 여성 연예인들에겐 21세기 금서라는 말도 있다. 방탄소년단 RM은 작년 이 소설을 읽고 “시사하는 바가 남달라 인상 깊었다”고 했다. 유아인은 영화 개봉을 홍보하면서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부정한 말에 현혹되지 말고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보길 바란다. 여자의 이야기, 남자의 이야기로 나눌 것 없이 한 사람과 또 다른 사람들이 펼치는 이야기로 본다면 성별과 차이를 넘어 공감을 통해 우리가 함께임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는 글을 올렸다.

출처: 유아인 페이스북 캡처, 네이버 V라이브 캡처
배우 유아인과 가수 방탄소년단의 RM 모두 82년생 김지영에 대한 의견을 밝혔지만 여성 연예인처럼 비난을 받지는 않았다.

영화의 주연배우 공유도 소신을 밝혔다. 그는 “출연을 고민하지 않았다. 시나리오를 읽고 나서 가족 생각이 많이 났다. 청승맞게 집에서 울었다. 엄마에게 전화도 했다. 평소 불효자이지만, 저를 키워주신 게 새삼 감사했다”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관점의 차이는 늘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어느 점이 맞고 틀리고는 제가 판단할 부분이 아니라 생각한다”라고 했다. 82년생 김지영에 대한 의견을 대중과 공유했다는 점은 같지만 누가 말했는지에 따라 네티즌의 반응은 나뉘었다.


◇"사회 구성원의 서로 다른 입장 이해하는 계기 삼아야” 


여성 연예인 대부분 남성팬을 중심으로 인기를 얻는다. 남성 입장에선 소비 대상일 뿐이라 여겨졌던 이들이 주체적으로 의견을 내는 것이 달갑지 않다. 김성수 문화평론가는 “그동안 사회적으로 여성 연예인을 어떤 시각에서 바라보고 있었는지 알 수 있었던 사례”라고 말했다. 김 평론가는 “남성만 있는 단톡방에서 여성의 사진을 돌려보면서 비웃는다거나 외모를 평가하는 행위는 매일 벌어지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행위가 당사자에게 모욕감과 불쾌감을 안겨줄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상대방의 입장을 공감하거나 눈높이를 맞춰보려는 노력이 부재했기 때문이다.

출처: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82년생 김지영 스틸컷.

김 평론가는 “나의 독선적인 관점을 벗어나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82년생 김지영 같은 콘텐츠”라고 설명했다. 그는 “소설이나 영화를 보지도 않은 상태로 색안경을 끼고 비난을 해선 성숙한 발전을 이룰 수 없다”고 했다. 영화에는 82년생 김지영 외에 다양한 인물이 등장한다. 한국 사회에서 가정을 이루기 위해 구성원 각자가 치렀던 희생, 고충 등을 여러 입장에서 그려내고 있다.


연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송인한 교수는 “82년생 김지영을 둘러싼 별점 테러, 악플 등은 우리나라가 여성이 겪는 사회적 차별과 불이익에 대해 함께 공감하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라고 말했다. 송 교수는 “편견과 색안경을 넘어 구성원이 성숙하게 토론할 수 있는 문화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글 jobsN 김지아
jobarajob@naver.com

잡스엔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