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화감 조성한다고 헬멧 벗고 다니라는 아파트도 있어요

조회수 2020. 9. 24. 15:4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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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배달해드립니다"
직업의 세계
라이더 - 배달 대행 플랫폼 ‘부릉’ 김기찬 라이더

“약속을 하루만 미룰 수 있을까요? 일기예보를 보니 목요일에 하루 종일 비가 온대요. 비가 많이 오는 날은 콜 수가 엄청 뛰어서….”


약속을 이틀 앞두고 걸려온 전화였다. 비 때문에 날짜를 조정하는 게 의아했지만 알겠다고 했다. 목요일이 되자 그를 이해하게 됐다. 아침부터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밥 먹으러 나가기조차 귀찮은 날씨였다. 다들 같은 마음인지, 점심시간이 되자 우비 입은 배달원들이 건물 안팎을 무수히 드나들었다.


다음 날, 김기찬 라이더를 만났다. 해가 쨍쨍한 날이었다.


“어제 배달은 어땠어요?”


“비가 오는 날이면 배달 콜이 200% 이상 늘어요. 콜이 동시에 10개 정도 들어오는데, 우와! 어제는 순식간에 70개가 뜨더라고요. 뭐부터 해야 할지 난감할 정도로요. 이런 날씨에는 배달이 늦어도 손님들이 너그럽게 이해해주시면 좋겠어요.”


그는 4년 차 라이더다. 배달 대행 플랫폼 부릉 소속으로 2015년부터 강남 지역에서 일했다. 사회에 첫발을 들인 스무 살부터 직장도 다녀보고 사업도 해봤다. 여러 업종을 전전하며 마지막으로 적을 둔 곳은 조선소였다. 생산직으로 일하던 도중 조선업계에 구조조정이 닥쳤다. 직장을 나와 막연한 나날이 계속됐다.


그때 라이더 모집 공고를 봤다. 당시는 배달 대행 서비스가 보편화되지 않았을 때. 라이더라고 하면 퀵서비스, 택배 정도로 여겼다.


필요한 건 휴대전화와 우의면 된다고 했다. 어린 나이부터 몸 하나로 세상과 부딪히며 일해온 터라 그 흔한 자격증이나 자본금도 없었다. 그런데 이처럼 진입 장벽이 낮다니. 떳떳하게 할 수 있는 일이면 그저 만족했다.


배달 대행 라이더는 주문이 들어온 품목을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과거 피자, 치킨, 자장면 등 특정 음식에 한정돼 있던 배달 메뉴도 다양해졌다. 스마트폰 앱을 기반으로 한 주문이 늘어나면서 배달 대행 사업도 성행하고 있다. 세 시간 내 배달을 보장하는 화장품 배달은 반짝 세일 기간을 중심으로 이용 고객이 늘고 있다. 햄버거는 라이더들이 가장 선호하는 메뉴다. 꾸준한 배달 수요가 있고, 다른 음식에 비해 조리 시간이 짧아 대기 시간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떡볶이, 커피, 디저트 등도 인기 배달 품목이다.


상점을 대표하는 서비스직

김기찬 라이더가 꼽는 라이더의 가장 큰 장점은 자유로움과 안정된 수입이다. 라이더는 오토바이를 타고 지정된 지역 반경 3km 내에서 배달하는데 자기 주도적으로 일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고 파트타임, 풀타임 근무도 가능하다. 배달 한 건당 받는 금액은 3000원 내외. 한 번에 한 건씩 배달할 수도 있지만 동선을 맞추면 한 번에 여러 건 묶음 배달도 가능하다.


“라이더는 쉬고 싶을 때 쉬고 일하고 싶을 때 일할 수 있어요. 파트타임, 풀타임 모두 가능하고 다른 아르바이트보다 수입도 많은 편이에요. 주·월 단위로 정산해 급여를 지급하는 곳도 있지만 부릉은 캐시로 바로 지급돼요. 열 번 일하면 즉각 3~4만 원이 들어오는 셈이죠. 투잡으로 일하는 라이더도 있어요. 근무 시간에 회사에 출근하고 퇴근 후 라이더로 일하는 거죠.”


라이더라면 오토바이 운전에 능하고 지리 여건에 밝아야 할 것 같지만 요즘 세상엔 그렇지도 않다. 라이더에게 지급되는 지도 프로그램이면 간단히 해결된다. 의외로 김기찬 라이더가 강조하는 자질은 성실함이다. 라이더는 운송직, 물류직보다 서비스직에 가깝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모든 게 서비스 품질로 직결되는 만큼 손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한 책임감도 중요하다. 종종 직업의식 없이 일하는 라이더 때문에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까지 폄훼당하고 기존 시선이 바뀌지 않는 것 같아 속상할 때도 있다.


“라이더는 상점주에게 들어온 주문을 손님에게 대신 전달하는 입장이에요. 부탁을 받고 수수료를 받는 개념이죠. 상점주에게 부탁을 받았으니 그 약속을 지키는 게 중요하지 않겠어요? 저는 부릉 소속이지만 손님 입장에서는 상점을 대표해서 온 사람이잖아요. 서비스 마인드로 대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배달한 곳에서 손님과 눈도 마주치지 않고 물건만 건네는 라이더도 있는데 정말 지양해야 할 자세예요.”


1인 가구 시대, 라이더 시장 더욱 커질 것


그가 이런 마음을 갖고 있어서인지 일하면서 울고 웃는 일도 결국 손님 때문이다. 어떤 지체장애인 단골손님은 갈 때마다 팁을 쥐어준다. 초인종 소리를 듣고 물건을 받으러 나오는 속도가 느려 미안하다며. 또 다른 손님은 준비해둔 음료와 간식을 나눠주기도 한다. 한두 번이 아닌지라 그 집은 인근 라이더라면 다 알 정도다.


반면 상처를 주는 손님도 있다. 당연할 것 같은 “고맙습니다”라는 인사는 당연하지 않다. 뉴스에서 흉흉한 소식이라도 들려오면 여성 손님들은 문을 빼꼼 열고 손만 간신히 내민다. 이해는 하지만 예비 범죄자로 오인받는 느낌에 허탈하다. 위화감을 조성한다고 헬멧 착용을 금지하는 아파트 단지도 있다.


라이더는 직업으로서 인식이 낮은 편이다. 학생들이 아르바이트로 일한다는 선입견이 강해서다. 그러나 배달 수요가 급증하고 대형 플랫폼 업체도 속속 늘고 있는 데다 택배기사와 운전 형태만 다를 뿐 업무는 유사하다. 그는 라이더로 일하는 사람도, 서비스를 받는 사람도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우리나라는 라이더라는 직업을 천시하는 경향이 있어요. 오토바이를 타는 위험한 일, 아르바이트에 가까운 급여가 적은 일로 여기죠. 하지만 라이더는 땀 흘려 돈을 벌고 보람을 느끼는 엄연한 직업이에요. 일한 만큼 보상이 따르고요. 누군가는 말해요. 평생 배달만 할 거냐고. 그런데 어느 일이든 마찬가지 아닌가요? 생산직에 있을 때도 언제까지 그 일을 할 거냐고 했어요. 그분들의 노동도 충분히 가치 있는데 말이죠. 라이더들이 자격지심을 갖지 않고 떳떳하게 일하면 좋겠어요.”


1인 가구 비중이 30%에 달하는 시대. 배달 주문을 하는 가정의 대부분이 1인 가구다. 특히 그가 일하는 강남구의 주거 형태는 아파트를 제외하면 1인 오피스텔이 다수를 차지한다. 연령대는 20~40대가 대부분이다. 이는 배달 음식 구성에서도 드러난다. 3~4인이 먹는 메뉴보다 1인 세트 메뉴가 중심이다. 아직 배달 서비스가 보편화되지 않은 지역도 많아 그는 라이더가 어떤 업종보다 확장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본다.


“라이더 시장은 점차 확대될 거예요. 좋은 라이더가 많아지면 좋겠어요. 주문은 늘어나는데 라이더가 한정돼 있으면 주문이 밀리거든요. 시간 내에 배달해야 손님도, 영업주도 불만이 없고 매출도 오르고 선순환을 그리잖아요.”


그는 라이더에게도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수당 3000원에 목숨 걸면 안 된다고. 특히 신호 위반, ‘칼치기 운전’은 라이더에게도 위험하고 라이더를 바라보는 시선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이만 가봐도 될까요? 콜이 들어오네요. 햄버거를 가지러 가야겠어요.”


‘부릉’. 그는 헬멧을 쓰고 오토바이에 시동을 걸었다. 더 이상 붙잡을 수가 없었다. 누군가 그를 간절하게 기다리고 있을 테니. 그의 뒷모습이 점점 멀어져갔다.

셔터스톡

지난해 배달 앱을 통한 배달 시장 규모는 3조 원. 배달 플랫폼 근로자 수는 최대 54만 명으로 추정된다. 전화로 직접 연락하기보다 모바일 앱으로 주문하는 건수가 늘어나면서 배달 대행 시장도 날로 커지고 있다. 배달 앱과 배달 대행의 시너지 효과가 배달 시장 구조를 본격적으로 바꿔놓았다. 그렇지만 라이더 시장이 커지는 데 비해 그 수는 부족한 실정이다.


배달 대행업은 음식점 자체 배달 인력 없이도 배달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라이더는 새로운 근무 형태로 진화 중이다. 한 업체를 전담하는 배달보다 플랫폼에 소속돼 지역을 맡는 개념으로 변화하고 있다. 대표적 배달 대행 플랫폼으로 부릉, 생각대로, 바로고, 요기요플러스 등이 있다. 배달 대행 플랫폼은 직영 센터를 갖기도 하고 지역 배달 대행 업체와 위탁계약을 맺어 운영하기도 한다.


라이더는 직접 고용 형태가 아닌 배달 대행 업체와 위탁계약을 맺은 특수고용직 근로자 신분이다. 현행법상 근로기준법이나 사회 안전망 혜택을 받을 수 없다. 기본급이 없으며, 사고가 나도 본인이 해결해야 한다는 뜻이다. 다만 플랫폼 라이더 종사자가 늘어나면서 이들의 신분을 보장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점차 확산되는 점은 긍정적이다.


라이더가 하는 일


라이더의 생명은 주문받은 물품을 빠르고 안전하게 전하는 일이다. 고객이 전화·앱으로 주문을 하면 플랫폼 업체에 연동된다. 동시에 라이더에게 주문 콜이 들어온다. 라이더는 원하는 주문을 선택해 주문 업체에서 물품을 전달받아 배달한다. 모바일 기반 배달 주문이 급증하면서 품목도 다양해졌다. 배달 안 되는 음식 메뉴가 없을 정도며 화장품, 편의점 상품, 생활용품 등도 취급한다. 배달 대행 플랫폼 업체의 B2B(기업과 기업 사이) 거래가 늘고 있어 플랫폼 업체에서 확보한 프랜차이즈 업체가 배달 품목과 건수, 수입을 좌우한다.


라이더가 되려면?


가장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것이 원동기 면허다. 일부 업체에서 전기자전거를 배달에 활용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라이더가 오토바이로 움직인다. 오토바이는 개인 소유를 이용해도 되고, 없을 경우 리스나 렌트도 가능하다. 라이더가 갖추는 장비는 단출하다. 헬멧, 휴대용 카드리더는 필수. 조끼, 블루투스 마이크, 배달통, 휴대전화 거치대 등은 필요에 따라 구매하면 된다. 라이더 지원은 각각의 배달 대행 플랫폼 홈페이지에서 하면 된다. 배달원 구인 정보를 공유하는 사이트 일당백도 유용하다.


라이더의 연봉 및 처우


월급제로 운영하는 업체도 있지만 주로 배달 건당 이용료를 지급한다. 서울 기준 한 건당 평균 3000원 내외. 업체에 따라 플랫폼 수수료 약 100~250원을 제하기도 한다. 플랫폼을 활용해 일을 하면 평일 풀타임 기준 월수입 300만 원은 보장된다. 자동 배차를 도입하지 않은 플랫폼에서 숙련된 라이더는 한 번에 대여섯 건의 묶음 배달을 처리하기도 한다. 건당 이용료를 정산하는 라이더에게는 유리한 조건이다. 이 밖에도 명절, 장거리, 진입 동선, 우천·폭염, 야간 할증 등이 붙으면 500~1000원을 추가로 받을 수 있다. 고정 비용으로 오토바이 기름값과 보험료가 있다. 식비까지 고려하면 1일 약 2만 5000원이 소요되며, 유상운송책임보험료 연 180~300만 원(20대 후반~30대 초반 기준)이 들어간다.


글 톱클래스 선수현
사진 톱클래스 서경리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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