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보조배터리 3개씩 충전하는 동료, 이상하다 했더니

조회수 2020. 9. 24. 15:42 수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회사 전기를 집으로 싸가는 동료가 있습니다."

지난 3월 한 커뮤니티에는 직장 동료가 벌이는 기이한 행동에 대한 글이 올라왔다. 작성자는 “동료 중 책상 밑에 보조배터리를 2~3개씩 충전해놓고 일하는 사람이 있다”고 밝혔다. 동료는 아침에 출근할 때마다 가방에서 보조배터리들을 꺼내놓고 충전했다. 또 밤사이 충전시켜둔 보조배터리를 가방에 챙겨가는 식이었다. 작성자는 “무슨 보조배터리를 그렇게 많이 사용하냐고 물어보니 ‘알뜰하게 살아야죠’라고 답했다”고 말했다. 이 직원은 전에도 회사에서 두루마리 화장지·커피믹스 등을 집으로 가져가 주의를 받은 적이 있었다고 한다.


해당 게시물에는 “기업용 전기요금은 쓸수록 싸다”, “직장 동료 중 쓰레기봉투를 집에 가져갔다가 쓰레기를 채워 회사 쓰레기통에 버리던 사람도 있었다”, “일만 잘하면 문제없는 것 아니냐” 등의 댓글이 달렸다.

출처: tvN, 인스타그램 캡처
tvN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아이유가 탕비실에서 커피믹스를 훔치는 장면(왼쪽)·소셜미디어에 '소확횡'을 인증한 직장인들.

◇전문가들 “소확횡하다 소도둑 될 수도”


직장인 용어 중에는 ‘소확횡(소소하지만 확실한 횡령)’이라는 게 있다.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과 모양은 비슷하지만 뜻이 다르다. 사무실에 있는 각종 물품(커피믹스·휴지·가위·풀 등)을 집으로 가져간다는 의미다. 직장인 중에는 게시글에 나온 인물처럼 회사 자산을 필요 이상으로 가져가는 이들이 많다. 간식을 대량으로 훔쳐 가거나 개인 자료를 회사 프린터로 대량 인쇄하는 등 방법도 다양하다. 소셜미디어에 ‘소확횡’을 검색해보면 이를 인증하는 게시물이 여럿 올라와 있다. 회사에서 간식을 가져왔다거나 업무시간에 일탈했다는 식의 글도 있었다.


염건령 한국범죄학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직장 내 물품 절도의 문제점은 기업이 입는 소소한 피해규모가 아니다”라고 했다.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말이 있듯, 소확횡이 심각한 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다.


염 연구원은 직장인이 회사 내 비품을 훔치면서 쾌감을 느끼는 심리를 두 가지 원인으로 분석했다. 첫째는 스트레스를 안겨주는 직장에 손실을 끼치는 행위를 하면서 보복을 한다는 보복성 쾌감이 있다고 했다. 두 번째로 인간은 본능적으로 절도의 쾌감이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적발될 가능성이 낮은 사무실 비품 등을 훔치면서 절도의 쾌감을 충족시키는 것이라는 말이다.

출처: 오정연 인스타그램 캡처
방송인 오정연은 2010년 11월 KBS2TV '밤샘버라이어티 야행성'에 출연해 "어느 날 회사 회장실에서 화장실 한편에 쓰다 남은 롤 휴지가 쌓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며 "나쁜 짓인 줄 알지만 탐이 나 결국 롤 휴지를 슬쩍 집에 가져와 쓴 적이 있다"고 밝혔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은 직장·직원 절도를 4가지로 분류했다. 시간·물품·돈·정보다. 일하는 시간에 흡연 및 잡담뿐 아니라 온라인게임·주식거래·소셜미디어 활동을 하는 것도 시간 절도에 해당한다. 시간 절도는 상대적으로 업무량이 적은 직장에서 시간 절도가 종종 발생했다.


◇근태로 시간 훔치는 공무원들


9월17일 서울교통공사 감사실은 교통공사 소속 지하철 보안관 3명이 지난 7월30일 근무시간에 몰래 PC방에 간 사실을 적발했다. 지하철 보안관은 지하철과 역사 내 사건사고를 막고 승객 안전을 책임지는 역할이다. 지하철 보안관의 근무 태만 사례는 꾸준히 지적받아왔다. 지난 6월 공사가 발표한 ‘2018 서울교통공사 기관운영 종합감사 결과’를 보자. 작년 5월과 7월 보안관 8명이 근무시간 별도 마련된 대기실에서 오랜 시간 휴식을 취하다 견책 등의 징계를 받은 사실이 담겨있다. 2018년 10월에는 보안관 6명이 야간 근무 중 잠을 자거나 근무지를 이탈했다가 적발된 사건이 있었다. 


근무시간에 속눈썹 연장을 받으러 간 공무원도 있었다. 6월18일 대전시 감사위원회에는 “시청 소속 공무원이 근무시간(오후 3~4시)에 시청사 수유실에서 속눈썹 연장 시술을 받고 있다”는 시민의 신고가 올라왔다. 시민은 시술 장면까지 찍어 고발했다. 게시물 작성자는 “아이의 모유 수유를 하기 위해 시청 1층 수유실에 갔는데 공무원으로 보이는 다수의 직원이 미용시술을 받거나 대기하고 있었다”고 했다. 시민은 문제를 제기했으나 공무원들은 “금방 끝난다”며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그는 “결국 수유실에서 수유를 하지 못하고 돌아왔다”며 “공공기관에서 미용시술을 받는 데다 업무시간에 공무원이 시술을 받는 게 충격적이었다”고 했다.

출처: 사진 대전시 감사위원회
6월18일 대전시청 1층 수유실에서 한 대전시청 직원이 미용시술을 받고 있다.

공중위생법상 지정된 장소 외에 눈썹 문신 등 반영구 화장 등의 시술을 할 수 없다. 이를 어길 시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내야 한다. 시 관계자는 “철저히 조사한 뒤 시술자를 공중위생관리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송치할 계획”이라고 답했다. 시술을 받은 직원은 복무규정과 품위 유지 위반 등으로 경징계(감봉·견책)할 방침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후 대전시가 취한 처벌이 솜방망이에 그치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왔다. 대전시는 7월1일 1층 수유실에서 불법 미용 시술을 받은 공무원을 상수도사업본부로 전보했다. 한 공무원은 “상수도사업본부는 일이 많지 않고 근무 평가를 받기 쉽다”며 “공무원들이 선호하는 사업소”라고 밝혔다. 네티즌의 공분에도 공직사회의 기강 해이가 잡히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미국에선 공무원 절도 범죄 ‘엄중 처벌’


선진국에서도 직원들의 소소한 절도와 관련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국제공인부정조사전문가협회(ACFE·Association of Certified Fraud Examiners)의 2018년 보고서를 보면 직장에서 ‘비현금 자산’에 대한 도난 발생률이 작년 21%에 달한다고 밝혔다. 비현금 자산은 사무실에서 흔히 쓰는 필기구를 비롯한 문방구류는 물론 창고에 있는 물품 등을 뜻한다. 전문가들은 업주의 감시 소홀과 직장 충성도가 낮아지는 것이 물품 도난 사건이 급증하는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직장에 대한 애착이 낮아질수록 직장 내 각종 비품에 손을 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출처: 사진 CNN 캡처
9년간 소년원에 배정되는 고기를 빼돌린 소년원 직원 길버트 에스카밀라의 사진. 50년 형을 선고받았다.

애리조나 주립대의 데이빗 웨일즈 경영학과 교수는 “사무실에서 펜을 훔치다 점점 큰 범죄자로 변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카메론 카운티 소년원(Cameron County juvenile detention officer) 직원 길버트 에스카밀라(Gilberto Escamilla)의 사례가 그렇다. 그는 9년간 소년원에 납품되는 고기를 빼돌려 중간업자들에게 팔았다. 그는 법정에서 “처음에는 작은 단위의 양고기·돼지갈비·닭고기·소시지 등을 집으로 가져갔다”고 밝혔다. 그러나 점점 규모가 커지면서 자신을 통제할 수 없었다. 결국 그가 9년간 고기를 빼돌려 판매한 규모는 130만달러(약 15억6300만원)에 달했다. 텍사스에서 30만 달러 이상의 도난은 중범죄에 해당한다. 그뿐 아니라 미국에서는 공무원의 도난을 엄중하게 판결한다. 공무원의 급여를 지불하는 납세자, 즉 미국 시민 전체가 피해를 본다는 생각 때문이다. 텍사스 주 법원은 그에게 50년 형을 선고했다. 피의자가 53세라는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종신형에 가까운 판결이다.


◇퇴사하면 ‘남남’···재직 중 정보를 재취업·창업 도구로 이용해


자신의 이익을 위해 회사를 그만두면서 회사 내부 자료를 몰래 훔치는 사람들도 있었다. 현대·기아자동차의 영업 비밀을 외국 회사에 빼돌린 한 자동차 부품 업체 부사장은 9월3일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그는 2013년 1월부터 2016년 6월까지 협력업체만 받아볼 수 있는 비밀자료를 외국 회사에 넘긴 혐의로 붙잡혔다. 이 사람은 현대차 측에 차종 개발에 참고하려고 한다며 관계사인 기아차의 소형차 ‘모닝’ 관련 정보를 넘겨받았다. 그리고는 이 정보를 인도의 마힌드라 자동차에 건넸다. 서울중앙지법 형사5단독 신민석 판사는 현대차 협력업체 부사장 김모씨에게 징역 1년을 선고했다.


회사 영업 비밀로 새로운 회사를 차린 전직 LG전자 임직원·연구원들도 있었다. 서울중앙지방법원(형사19단독 김성훈 부장판사)은 8월18일 전 LG전자 상무 신모씨에게 벌금 1500만원을 선고했다. 나머지 피고인 5명과 신 상무가 차린 법인에도 벌금 750만원을 청구했다. 김성훈 부장판사는 이들이 반출한 LG전자 사내 문서 중 닐슨리서치 북미 시장조사 결과를 영업 비밀로 판단했다. 이들은 가정용 맥주 제조기를 제조하는 법인을 설립했다.

출처: LG전자 홈페이지
LG전자 맥주제조기는 기소된 전직 LG전자 상무 신모씨와 차장 오모씨가 사내 아이디어 발전소 공모전에 출품한 수상작이다.

사실 맥주 제조기 아이디어는 신 전 LG전자 상무의 아이디어에서 나왔다. 신씨와 함께 기소된 전직 LG전자 차장 오모씨가 2014년 사내 아이디어 발전소 공모전에 출품해 수상작으로 선정되면서 개발한 제품이다. 회사 측은 사업성을 인정해 2015년 신 전 상무와 오 전 차장 등 13명으로 프로젝트팀으로 꾸렸다. 그러나 2016년 신 전 상무를 시작으로 오 전 차장 등 총 6명은 퇴사했다. 이후 회사 컴퓨터에서 내부 문서들을 파일명을 바꿔 이메일로 전송하거나 가상사설망(VPN)을 이용해 외부에서 내부 컴퓨터에 접속해 파일을 빼낸 사실이 드러났다. 


대기업뿐 아니라 공기업에서도 퇴사한 직원이 유출한 파일로 심각한 피해를 봤다. 지난 7월 한국수력원자력 전직 직원이 해외 기관에 재취업하기 위해 내부 정보를 유출한 사실이 알려졌다. 새울원자력본부 제1건설소 최모 전 기전실장은 2017년 1월 상급자 승인 없이 회사 내부 자료 2374건을 USB 메모리에 무단 복사했다가 같은 해 9월 견책 징계를 받았다. 신고리 3·4호기 등 원전 관련 자료를 포함한 내부 자료 2300여건을 무단 복사한 것이다. 감사에서 최 전 실장은 “해외 재취업을 위해 복사했다”고 진술했다.


염건령 한국범죄학 연구소 연구원은 이런 대형 범죄를 방지하기 위해 “기업이 직원에게 제공하는 정보나 물품 등이 개인의 사적 재산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고 밝혔다. 어디까지나 조직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정보나 물품이지 개개인의 이윤을 위해 마련된 게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염 연구원은 “신입사원 교육이나 직무교육 때 사무실의 비품·정보 등이 공적 재산이라는 메시지를 분명히 전달하는 게 좋다”고 했다. 또 “사무실 구성원이 주체적으로 비품을 아끼면 월급을 올려주는 방안 등도 검토해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글 jobsN 김지아
jobarajob@naver.com 
잡스엔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