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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살에 '제2의 박세리' 포기한 골퍼는 지금 이렇게 됐습니다

조회수 2020. 9. 24. 16:0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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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리 키즈'가 KLPGA 선수생활 접고 미역 파는 사연은?
씨드(SEA.D) 박혜라 대표
프로 골프 선수에서 창업가로
"건강한 기업으로 자리 잡고 싶어"

"물에 풀었을 때 생갈색을 띄고 끓였을 때 뽀얀 국물이 우러납니다. 점액질을 그대로 갖고 있기 때문이에요."


마른 미역에 대해 막힘없이 소개하는 이 사람. 미역뿐 아니라 해조류에 대해 박식한 주인공은 바다건조식품 스타트업 '씨드' 박혜라(31) 대표다. 씨드는 바다에서 나는 수산물을 제조·유통하는 기업이다. 부산 기장군의 특산품인 기장 미역이 대표 제품이다. 부산 창업지원 사업 우수기업 선정, 한국 수산산업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씨드를 이끄는 박 대표는 미역을 들고 어촌과 소비자를 연결하는 역할을 하지만 한때 그는 골프 클럽을 쥐고 필드를 누비는 프로 골프 선수였다. 초등학생 때부터 골프를 배워 프로 선수로 KLPGA 정규 투어도 참가했던 그가 창업한 사연을 들어봤다.

출처: 씨드 제공
박혜라 대표

◇세리 키즈에서 창업가로


-골프 선수였다고요.


"6학년 때 주말마다 가던 목욕탕 아래층에 있는 골프 연습장을 보고 호기심을 가졌어요. 워낙 운동을 좋아해서 부모님께 골프를 배우고 싶다고 말씀드렸고 그렇게 골프를 시작했습니다. 그때 운동을 시작한 선수를 세리 키즈라고 하죠. 저는 또래보다 2~3년 늦게 골프에 입문했지만 운동이 재밌었고 성장하는 즐거움도 컸어요. 졸업 전에는 아마추어 자격으로 전국대회 여자부 최종우승을 해서 국가대표 상비군으로 뽑혔지만 더 큰 무대에서 경쟁자를 만나보고 싶어 2007년 프로로 전향했습니다."


-그런데 골프를 그만뒀습니다.


"프로 데뷔 후 얼마되지 않아 손목을 다쳤습니다. 당시 루키는 데뷔 첫 해에 병가를 낼 수가 없었어요. 진통제를 먹으면서 시합에 출전했지만 악화할 뿐이었습니다. 결국 재활치료를 시작했어요. 2년 정도 후 매년 11월에 열리는 1부 투어 출전권이 걸린 정규 투어 시드전에 출전했지만 매번 최종결선에서 탈락했습니다. 너무 잘하고 싶은 마음이 앞섰던 것 같아요. 결국 28살 마지막 대회에서 풀시드 획득에 실패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열차에서 새로운 길을 찾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아쉽지 않았나요.


"골프는 제 삶의 한 부분일 뿐인데 다른 사람이 저를 볼 때는 골프 선수로서의 성과 만으로 제 인생의 성공 여부를 판단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상처도 받았고 무엇보다 저를 뒤에서 밀어주고 응원해주셨던 부모님께 죄송했죠."

출처: 씨드 제공
선수 시절 박혜라 대표

◇미역으로 사업 시작


-이후 미역 사업에 도전했습니다.


"프로들은 투어 이후 교습의 길을 택합니다. 저 역시 개인레슨, 대학 강연도 했죠. 그러나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었습니다. 평소 광고나 브랜드에 관심이 많았고 언젠가 내 브랜드를 하나 갖고 싶었어요. 그래서 창업을 택했고 그중 제가 자란 곳의 특산품이기도 하고 할아버지께서 하시던 양식업을 하셨는데 가업을 조금이라도 이어보고자 미역을 택했고 2015년 5월 시드를 열었습니다."


-시드는 어떤 기업인가요.


"시드는 생산자에게 미역을 구매해 소분과 재가공을 통해 완제품을 유통합니다. 자체 연구와 개발을 거쳐 위탁제조를 하고 있습니다. 또 지역 기업들과 협업을 통한 제품 개발도 하고 있습니다. 직접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수산물을 체크합니다. 미역 외에도 김, 다시마 등 좋은 제품이 보이면 발굴해 판매하고 있습니다. 최근 수산가공업체 8개사가 모인 국내 수산물 협의체 'ASK(All about Seafood from Korea)'에 참여했어요. ASK는 국내 우수 수산물을 양식·가공하는 개별 기업을 조직화해 고품질 시장 진입, 안정적 물량 공급 등을 돕는 곳입니다."


-생산자와 제품 판로는 어떻게 마련했나요.


"생산자는 직접 양식장을 찾아가 신선한 원료를 선별해 계약을 맺었습니다. 이때 고향이기도 하고 할아버지와 아버지께서 양식업을 하셨었기 그 네트워크를 이용해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분들은 처음에 자금이 부족한 제 사정을 이해해 주셔서 외상으로 물건을 살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구한 제품을 해운대 비치 골프 앤 리조트에 처음 납품했습니다. 리조트를 운영하던 선배에게 명절 선물이 필요하다면서 먼저 연락이 왔고 명절 세트를 구성해 납품했습니다. 이후 입소문을 타기도 했고 여러 곳에 입점 제안을 해 현재 마켓컬리, 동춘상회, 현대백화점, 이터널져니 등 10여개의 온·오프라인 매장에 입점해있습니다."

출처: 씨드 제공
씨드 선물 세트(좌), 재래방식으로 말리는 미역을 고집한다(우)

◇정직한 제품 제공하고 생산자 노고 알릴 것


-사업이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처음엔 돈이 없어서 서러운 일도 있었습니다. 가격 때문에 저렴한 조립식 패널 창고를 구해 미역을 쌓아놨어요. 그런데 그날 밤에 폭우에 비가 샜습니다. 혼자 미역을 다른 동으로 옮겨야 했죠. 속상한 마음에 울기도 했죠. 지금은 제대로 된 장소로 이전했습니다. 또 창업 3년 차에 위기가 찾아오기도 했습니다. 성장이 더디고 식품개발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고 대표로서 힘든 점을 내색하지 않고 혼자 감내해야 하다 보니 위기였죠. 위기 뒤에는 기회가 올 거라는 믿음과 직원들을 보면서 힘을 냈습니다."


-골프 대회와 미혼모 가정을 지원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ADT CAPS CHAMPIONSHIP 2015를 후원했습니다. 제가 창업가로 전향한 후 기장에서 열리는 첫 KLPGA대회였습니다. 의미 있는 경기기도 했고 지역 특산품으로도 후원할 수 있다는 것을 듣고 지원했습니다. 또 우리는 미역으로 사업을 하고 산모용 제품도 팝니다. 여기에 착안해 출산 후 제대로 관리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돕고 싶었습니다.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해 제품 수익을 부산 미혼모 센터에 기부했죠. 여건이 되는 한 계속 지원할 생각입니다.”


-자신이 걸어왔던 길과 다른 방향을 고민하는 사람에게 조언해주자면.


“과정에 모든 것을 쏟아붓고 결과에 만족할 수 있다면 누구나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시작한 후 성공 속도에 실망하지 마세요. 새롭게 시작하는 만큼 성취하기까지 더 많은 시간이 걸릴 수도 있어요. 본인이 뒤처진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정직한 제품, 양질의 제품을 고객에게 제공하고 생산자의 노고와 가치를 소비자에게 알리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 좋은 생산자 섭외는 물론 원재료의 맛을 살리는 가공식품도 개발 중입니다. 해조류에서 나는 특유의 냄새를 제거하고 국내산 쌀가루를 넣은 간편 미역 수프를 개발했고 이외에도 이유식용 미역건조죽, 미역국 농축 수프 등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또 씨드를 통해 생산자, 협력업체가 안정적인 생태계를 만들고 유지하면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해 우수한 지역 특산품을 소개하는 공동 브랜드 ‘경해당(바다를 경작하는 곳)’을 준비 중입니다. 사람들이 바다에서 나는 제품을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거점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글 jobsN 이승아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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