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전에 꼭.." 황영조 꿈꾸며 매일 뛰던 남자가 벌인 일

조회수 2020. 9. 24. 16:07 수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황영조를 꿈꾸던 이 남자가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었던 일
볼링화부터 자전거·오토바이까지
고객 희망에 맞춰 커스텀
최근에는 에어팟·에어팟 케이스로 유명세

16살에 마라톤을 시작한 이후 황영조를 꿈꾸며 23살까지 달렸다. 중학교 체육 시간에 육상부보다 잘 뛰는 모습을 본 체육 선생님이 마라톤 선수를 제의했다. 시작한 지 3개월 만에 도내 대회에서 1·2등을 했다. 황영조 선수가 나온 강릉명륜고등학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입학했다. 대학도 스포츠학과로 진학했고 실업팀에서도 뛰었다. 그러나 마라토너로서 성공하기란 쉽지 않았다. 장밋빛 미래가 보이지 않자 운동을 그만둬야겠다고 결심했다. 25살, 미뤄뒀던 군대에 갔다. 제대하고 나서도 방황했다. “달리기 말고 내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가” 고민했다. 그러다 어릴 때부터 튜닝(Tuning·자동차나 오디오 따위의 일부분을 개조하는 일)하거나 디자인하는 걸 좋아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한번 깨닫고 나니 이 일을 꼭 하고 싶다는 열망이 생겼다. 당시 개인적으로 아이폰 커스텀(기성 제품을 재가공하는 것)을 의뢰했던 우드스터프 대표와 안면을 텄다. ‘열심히 할 테니 기술을 알려달라’고 말했다. 고민하던 대표는 남자의 가능성을 믿고 가맹 계약을 맺었다.


본래 우드스터프는 차 인테리어 업체였다. 그러나 남자는 가맹 계약 당시 차 이외의 제품을 커스텀하겠다고 말했다. 차 인테리어 이외 제품 커스텀 수요도 분명 존재하리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예상은 맞아 떨어졌다. 2017년 애플은 무선 이어폰 에어팟을 출시했다. 에어팟은 충전을 위해 네모난 에어팟 케이스에 보관한다. 사람들은 더욱 더 개인 취향에 부합하는 에어팟과 에어팟 케이스를 갖길 원했다. 남자는 ‘해 질 녘 풍경을 담아 달라’, ‘우리 집 강아지 얼굴을 새겨달라’는 고객 요구에 맞춰 에어팟·에어팟 케이스를 커스텀 해줬다. 입소문이 퍼지면서 의뢰가 늘었다. 일반 고객뿐 아니라 유명 연예인도 찾아왔다. 이명일 커스터머(36)의 이야기다.

출처: jobsN
이명일 커스터머.

-커스터머에 대해 소개해달라.


“커스터머는 수용자 희망에 맞춰 설계·제작하는 사람이다. ‘특정 제품을 어떻게 꾸미고 싶다’는 고객 욕구를 실현해준다. 작게 보면 개인이 볼펜에 스티커를 붙여 꾸미는 것도 커스텀이라고 생각한다.”


-커스터머로 일하게 된 계기는.


“16살부터 23살까지 마라톤을 했다. 그러나 경제적 이유와 부상이 겹쳐 운동을 그만두고 입대를 선택했다. 제대 후 대리운전 등 여러 일을 하면서 방황하다가 뭐라도 해보자는 마음에 29살에 휴대폰 판매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2014년 10월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휴대폰 보조금 개선 관련 법안)이 시행되면서 관련 업계가 불황을 맞았다. 이후 아이폰 사설 수리 업체로 바꿨다. 디자인하고 싶어 시작했지만 당시 아이폰 커스텀은 단지 아이폰 뒤 판을 교체하는게 다였다. 낙담하던 중 2015년에 우연히 차 인테리어 업체 우드스터프를 알게 됐다. 아이폰 커스텀도 가능하나 싶은 마음에 의뢰했다. 대표가 직접 해주시겠다고 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자주 방문하다 보니 대표와 안면을 텄던 터라 ‘가맹비·기술이전비를 지불할 테니 알려달라’고 말했다. 가맹 계약을 맺고 2015년 10월 신촌에 ‘우드스터프 디자인’을 열었다. 제품을 의뢰했다가 원하는 대로 안 되니 답답한 마음에 직접 뛰어든 거다.”


◇ 커스터머,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었던 일’


이씨는 우드스터프와 가맹계약을 맺은 뒤 우드스터프 고유 기술인 수전사(물 속에서 제품에 원하는 디자인을 입히는 방식)를 배웠다. 그러나 디자인 공부를 전문적으로 해본 적이 없어 기술을 익히는 게 쉽지 않았다. 개업한 뒤에도 작업실에서 수전사 이외의 기술을 독학해야 했다. 막막할 땐 제품 커스텀 업계 종사자들을 찾아가 조언을 구했다. 발로 뛰며 노하우를 쌓았다. ‘정말 하고 싶었던 일’이었기 때문에 행복했다. 개업 초기에는 스팀피처(뜨거운 증기로 우유를 데우거나 우유 거품을 만드는 데 쓰는 주전 모양의 용기)·볼링화·볼링 손목 보호대 등 작은 제품만 담당했지만, 입소문이 나면서 기업 의뢰도 들어왔다.

출처: '우드스터프 디자인(@woodstuffdesign) 인스타그램' 캡처
스팀피처·볼링 손목 보호대·스포츠화 커스텀

-주로 어떤 제품을 의뢰받나.


“처음에는 스팀피처·컵·볼링화·볼링 손목 보호대 등 작은 제품을 의뢰받았다. 현재는 커피머신, 기업 시제품 등도 작업한다. 커피머신은 커피머신 제작 회사가 커피 브랜드와 계약을 맺은 뒤 브랜드 로고나 고유 색을 커피머신에 새겨달라고 요청한다. 기업 시제품은 기업 행사 시 전시할 제품은 물론이고 마네킹, 조명 등에도 기업 로고나 고유 색을 디자인해준다. 에어팟 커스텀은 1년 전 아이돌 그룹 위너(WINNER) 김진우씨가 처음으로 의뢰 했다. 당시에는 에어팟 의뢰가 들어올 경우 한 달에 3대만 받자고 생각했다. 그런데 입소문이 퍼지면서 많이 찾아주시더라. 현재 에어팟만 한 달에 100대 정도 의뢰받는다. 연예인에게 선문할 제품 커스텀을 의뢰하는 고객은 꾸준히 많다. 마이크나 에어팟 등에 연예인 이니셜을 새기거나 독특한 디자인을 해달라고 의뢰한다.”

출처: '우드스터프 디자인(@woodstuffdesign) 인스타그램' 캡처
(위)에어팟·에어팟케이스 커스텀 (아래)위너 김진우, 아스트로 차은우, 소녀시대 유리, 김재환 등 유명 연예인들이 이명일 커스터머 작품을 착용했다.

-작업 과정에 관해 설명해달라.


“커스텀 할 때 한 가지 기술만 사용하는 건 아니다. 고객이 의뢰한 디자인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여러 기술을 접목해야 한다. 우선 수전사 기술을 많이 쓴다. 작업 방식은 다음과 같다. 먼저 물속에 세 겹의 필름지를 깐다. 가장 아래 깔린 필름지는 물에 녹는다. 두 번째 필름지에는 고객이 원하는 디자인이 잉크로 새겨져있다. 가장 위 필름지는 두 번째 필름지를 보호한다. 가장 아래 깔린 필름지가 녹으면 이 필름지 역시 약품으로 녹인다. 이 과정을 거치면 물 위에 잉크만 떠 있다. 여기에 제품을 넣어 잉크를 입힌다. 이때 제품에 잉크가 묻을 수 있도록 미리 도색 작업을 거친다. 에어팟이나 에이팟 케이스 같은 기계는 수전사 작업 시 그냥 넣을 수 없다. 따라서 물에 넣고 작업해도 고장나지 않는 법을 자체적으로 개발했다.  

최근에는 입체적인 디자인을 원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예를 들어 에어팟 케이스 위에 강아지가 매달려 있는 디자인을 의뢰한다. 이때는 3D 작업으로 디자인을 구현한 다음에 수작업으로 다시 다듬는다.”


-커스텀 작업 시간과 비용은 얼마나 소요되나.


“제품마다 다르다. 볼링 손목 보호대나 볼링화는 건조 시간까지 생각하면 7~8시간 정도 걸린다. 반면 몇 달씩 걸리는 제품도 있다. 커스텀 비용은 제품마다 다르다. 평균적으로 에어팟은 15만~25만원, 커피머신 포함 전자제품은 40만~50만원 정도다. 기업 시제품은 몇 백원만원정도 받는 경우도 있다.”

출처: '우드스터프 디자인(@woodstuffdesign) 인스타그램' 캡처
이명일 커스터머가 운영하는 우드스터프 디자인은 다양한 제품 커스텀을 담당한다.

-의뢰가 늘어나니 매출도 증가했겠다.


“개업 이후 1년 6개월 정도는 수익이 거의 없었다. 2018년 1월에 처음으로 적자가 안 났다. 이후 고객이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2019년 상반기 한달 평균 매출은 2000만~2500만원 정도다.”


◇ ‘고객의 상상을 현실로 구현할 때’ 가장 행복해


-커스터머로서 보람 있는 순간은. 

“결과물에 대해 좋은 평가를 받을 때 뿌듯하다. 첫 커스텀 제품은 오토바이였다. 당시 가맹 본사로 의뢰가 들어왔는데 내가 맡았다. 고객이 ‘카본 무늬 정도 입혀주고 알아서 해달라’고 주문했다. 카본 무늬는 탄소 섬유로 이루어진 카본 패턴을 본뜬 것으로 차량을 고급스럽게 꾸밀 수 있어 많이 사용한다. 일주일 정도 걸려 완성했는데 그를 본 대표님이 ‘몇 백만원짜리 고급 제품으로 만들었네’라고 평가하셨다. 실제 가격보다 값있게 만들어 줬다고 칭찬받으니 뿌듯하더라. 한번은 스팀피처를 커스텀했는데 그를 받은 고객이 ‘작업자인줄 알았는데 디자이너였네요’라고 말하더라. 그 말이 잊히지 않는다.”


-앞으로 목표는.


“개인적으로 배우고 싶은 기술이 많다. LED 기술이나 음악 삽입 기술 등을 배워 커스텀 제품에 접목하는 게 목표다. 여유가 생길 때마다 기술 개발을 위한 공부를 하고 있다.  

또 작업실을 카페 형태로 발전시킬 계획이다. 최근 가구 디자이너·일러스터 디자이너 등과 협업해 전시 활동을 돕고 있는데 신진 디자이너들이 설 자리가 부족하더라. 그래서 작업실을 카페 형태로 차린 뒤 찾아오는 고객 대상으로 즉석 커스텀을 해주고 남은 공간에는 신진 디자이너 작품을 전시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글 jobsN 박한솔 인턴
jobarajob@naver.com
잡스엔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