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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손가락이 한마디씩 짧지만..화상 손으로 이룬 기적

조회수 2020. 9. 24. 16:0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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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막손으로 나무토막에 생명을 불어넣는 이 사람

5살 때 사고로 3도 화상을 입었다. 그 바람에 왼쪽 다섯 손가락이 다른 사람보다 한마디씩 짧다. 친구들의 놀림 때문에 힘든 학창 시절을 보냈다. 비올라가 그의 유일한 친구였다고 한다. 조금 불편하지만 노력하면 세계적인 비올라 연주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한계가 있었다. 그래도 손에서 악기를 내려 놓을 수는 없었다. “연주를 못하면 더 많은 사람이 연주할 수 있게 하자”는 생각에 제작자로 나섰다. 세계 최초로 ‘나노무기물 도료’를 이용한 현악기 제조 방법 특허를 낸 비노스트링 구자홍(46) 대표의 이야기다.

출처: 비노스트링 제공
비노스트링 구자홍 대표.

-자기소개를 해달라.


“현악기 제작가이자 비노스트링 대표 구자홍이다. 세계 최초로 ‘나노 무기물 도료’를 이용한 현악기 제조 방법을 특허 냈다. 과거에는 비올라 연주자로 활동했었다. 비노스트링 이외에도 비노클래식을 운영하고 있다. 비노클래식에서는 공연 기획·대행, 공연장 대관 등의 일을 하고 있다.”


-비올라를 시작하게 된 이유가 있나.


“5살 때 왼손에 화상을 입었다. 시골에 계신 할아버지, 할머니를 뵈러 갔었다. 당시 큰 솥에 물이 끓고 있었다. 발을 헛디뎌 끓는 물에 손을 데었고, 3도 화상을 입었다. 지금처럼 의술이 발달했을 때가 아니었다. 제때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했다. 그래서 왼쪽 다섯 손가락이 한마디씩 짧다. 어린 시절 화상 흉터 때문에 친구들에게 놀림을 많이 당했다. 다른 사람과 손 모양이 달라서 힘들었다. 힘줄이 엉겨 붙어서 피부가 땅겼다. 후유증 때문에 힘들었고 고통스러웠다.


그러던 중 작곡을 하던 둘째 누나가 비올라를 연주해보면 어떻겠냐고 권유했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비올라를 배웠다. 비올라는 중후한 음색을 낸다. 오케스트라에서 중음을 담당한다. 바이올린과 첼로 사이에 있는 악기다. 바이올린처럼 높은 음을 내면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지 않는다. 첼로처럼 낮은 음을 내면서 저음의 기준을 잡아주는 악기도 아니다. 고음과 저음,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나와 처지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그 소리가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위로를 많이 받았다.


대전 목원대학교 음악대학 관현악과에 입학해 비올라를 전공했다. 대학생 시절 학교에서 주최하는 공연에 주로 나갔다. 하지만 왼손이 문제였다. 다른 사람들이 1시간을 연습할 때 난 2~3시간을 해야 했다. 현악기를 연주할 때 왼손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음을 잡는 일을 한다. 또 비브라토(곡 연주에서 목소리나 악기의 소리를 떨리게 하는 기교) 역할도 한다. 어려움을 극복하려고 노력했지만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더라. 연주자로서 더 큰 꿈을 꾸기에는 어려웠다.”

출처: 비노스트링 제공
이탈리아에서 유학 생활을 한 구자홍 대표.

-연주를 그만두고 악기 제작을 시작하게 된 이유가 궁금하다.


“1996년 연주 생활을 정리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오랜 시간 해 온 연주 생활을 갑자기 그만둔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동안 열심히 해왔기 때문에 더 아쉬웠다. 무대에 대한 갈증도 있었다. 마음 정리를 하고 싶어서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났다.


이탈리아 크레모나를 여행하던 중 성당 옆에 있던 악기 가게가 눈에 들어왔다. 사각사각 소리가 들리더라. 50대 후반의 한 남성이 악기 제작을 하고 있었다. 왼쪽 손가락 2개, 오른쪽 손가락 2개 총 4개의 손가락으로 악기를 만들고 있었다. 손가락 10개가 멀쩡해도 악기를 만드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사람은 불이 난 집에 동생을 구하려고 들어갔다가 화상을 입었다고 했다. 내 이야기를 듣더니 조언을 해줬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꼭 한번은 긴 터널을 만난다. 긴 터널을 통과해 빛을 볼지 계속 어둠 속에 있을 것인지는 본인이 선택하는 것이다. 그건 너의 몫이다. 오늘 나와의 만남이 그 선택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용기를 얻었다. 그 분과의 만남이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현악기 제작자의 길을 걸어야겠다고 결심했다.”


-현악기 제작자가 되기 위해 한 노력은.


“1996년 이탈리아로 유학을 갔다. 한 달 만에 모든 준비를 끝낸 뒤 출국했다. 새로운 나라, 낯선 문화에서 공부하는 건 쉽지 않았다. 이탈리아 페루자 국립어학원(Universita' per stranieri di Perugia)에서 3달간 언어 공부를 했다. 이후 1996년 이탈리아 크레모나 국제현악기제작학교(IPIALL)에 입학했다. 7년간 악기 제작, 수리, 복원학을 공부했다. 2003년 한국에 들어와서 공방 형태로 가게를 열었다. 악기 제작과 수리를 했다. 2018년 비노스트링을 설립했다. 세계 최초로 ‘나노무기물 도료’를 이용한 현악기 제조 방법 특허를 냈다.”

비노스트링 제공

-'나노 무기물 도료'를 이용한 현악기 제조 방법은 무엇인가.


“현악기는 수제 악기와 공장제 악기로 나뉜다. 악기의 98%는 기계로 생산하는 공장제다. 공장제 악기는 수제 악기보다 저렴하다. 국내에서 사용되고 있는 현악기의 98%는 공장제 악기다. 공장제 악기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부담 없는 가격으로 현악기를 배우는 데 도움을 준다. 문제는 칠(vanish)에 있다. 대량으로 빨리 만들려면 공장에서 기계로 칠을 한다. 우레탄, 래커, 페인트, 시너와 같은 유해성 물질을 사용한다. 인체에 유해한 발암물질을 포함한 경우가 많다. 보통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악기를 배우는 경우가 많다. 공장제 악기는 저렴하지만 아이들의 건강에 치명적이다. 기관지염, 아토피 등을 유발한다. 친환경적이면서도 경쟁력 있는 현악기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한국수자원공사에서 물을 정수할 때 물통을 코팅하는 것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었다. 물이 고이게 되면 이끼가 낀다. 물통을 코딩하면 이끼가 안 생기더라. 코팅 도료를 나무에 써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연구를 거듭했고, 세계 최초로 나노무기물 도료 제조 방법 특허를 냈다. 30여 종의 천연도료를 사용했다. 붓으로 현악기 구성품의 앞판, 뒤판, 옆판, 머리 등 모든 노출면에 나노 무기물 도료를 칠하고 건조한다. 이 과정을 여러 차례 반복한다. 붓으로 하나하나 칠해야 한다. 탄성, 강도, 습도, 온도에 강하다. 작년에 특허를 내서 지금 홍보를 열심히 하는 단계다. 전문 연주자들이 많이 쓰고 있다. 소리가 더 멀리 뻗어 나간다고 하더라. 앞으로 유명 연주자도 많이 쓸 것이라고 확신한다. 또 주로 아이들이 많이 쓴다. 친환경적인 악기라서 더 많이 찾는 것 같다. 고온다습한 동남아에서도 경쟁력이 있다. 올해 베트남,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등으로 수출할 예정이다.”

출처: 비노스트링 제공
장애인 직원에게 악기 제작 교육을 하고 있는 구자홍 대표.

-장애인을 고용하고 있다고. 


“손가락 화상으로 힘들고 외로운 시간을 보냈다. 장애 아닌 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장애인의 아픔을 공감한다. 그들이 음지에서 양지로 나올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


현재 지적장애 2급인 직원 3명, 하체를 못 쓰는 중증장애인 직원 1명이 있다. 회사에 필요한 인재로 양성하기 위해 교육하고 있다. 악기를 제작할 때 보통 28개의 과정을 거친다. 장애인 직원을 고용하면서 45개 과정으로 세분화시켰다. 장애인이 악기 하나를 온전히 다 만들기는 힘들다. 한 파트를 담당해 일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장애인 한 분당 일주일에 악기 한 대 정도 만든다.”


-매출이 궁금하다.


“100% 수제로 만들기 때문에 공장제 악기보다 비싸다. 가격은 악기 종류와 크기에 따라 다르다. 바이올린의 가격은 150만원부터 시작한다. 작년에는 칠곡 석적초등학교와 바이올린 5대, 비올라 2대, 첼로 1대 총 2650만원 수의계약을 체결했다. 지난 6월부터 한 달에 매출 8000만원 정도 나오고 있다. 학부모가 자녀에게 악기 하나씩은 가르치려고 해서 수요가 꾸준히 있다.


또 수제 악기를 대중화시키고 싶었다. 어떻게 하면 많은 사람이 저렴한 가격에 수제 악기를 쓸 수 있을까 고민했다. 악기 랜털 서비스를 하고 있다. 또 사이즈업을 무료로 해주고 있다. 아이들이 자랄수록 악기 크기도 커져야 한다. 체격에 맞게 악기 크기를 맞춰준다.”

출처: 비노스트링 제공
구자홍 대표는 10년째 한 달에 한 번씩 정기 연주회를 열고 있다.

-무대에 다시 서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나.


“연주자로서의 꿈은 더이상 꿀 수 없지만 지역에 있는 예술가들, 장애를 가진 예술가들에게 더 많은 무대를 제공하고 싶었다. 2010년 비노클래식을 만들었다. 공연 기획·대행, 공연장 대관 등의 일을 하고 있다. 10년째 한 달에 한 번씩 정기 연주회를 열고 있다.


비노클래식은 교육기부 진로체험 인증기관이기도 하다. 교육기부 진로체험 기관이란 교육부가 초·중·고 학생들에게 무료로 양질의 진로체험 기회를 제공하는 기관을 심사해 인증한 곳이다. 학생들에게 현악기에 대해 소개하고, 현악기 제작 및 직접 연주해볼 수 있는 현악기 브릿지 체험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고 있다.”


-본인만의 습관이나 규칙이 있나.


“악기를 제작하기 전에 손 씻는 버릇이 있다. 악기를 만드는 일은 죽은 나무에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이라고 배웠다. 나무를 다듬지 않고 모양내지 않으면 한낱 나무토막에 불과하다. 다듬고 깎으면 관객과 연주자 간 소통의 도구가 된다. 경건한 마음으로 작업하기 위해 꼭 손을 씻는다.”


-앞으로의 꿈과 목표는.


“그동안 어려운 점이 많았다. ‘장애인 데려다가 장사하는 거 아니냐’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진심은 통한다고 생각한다. 장애인은 보통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열악한 환경에서 일한다. 장애인이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고 싶다. 악기 제작이라는 기술교육으로 도와주고 싶다.


작년 대전시지체장애인협회 대덕구지회, 대전시지체장애인협회 서구지회, 대전서구장애인자립생활센터와 협약을 맺었다. 장애인 복지에 취약했던 부분을 함께 고민하고 공유하고 있다. 많은 장애인이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할 수 있도록 돕는 회사로 성장하고 싶다.”


글 jobsN 임헌진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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