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직원만큼 벌어요" 노량진 컵밥 수험생이 찾은 직업

조회수 2020. 9. 24. 16:2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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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량진에서 컵밥먹던 세무사 수험생, 인기 레이싱 모델로 변신하다

해마다 서울과 부산에서 번갈아가며 개최되는 모터쇼. 세계 유수의 자동차 브랜드에서 선보이는 신차만큼이나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게 레이싱 모델이다. 편안한 가족용 SUV와 고급스러운 대형 세단, 강렬한 스포츠카와 모터사이클 등 자동차가 지닌 고유 매력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레이싱 모델은 차량 이미지에 맞는 의상을 입고 어울리는 포즈를 취한다. 차가 아닌 레이싱 모델을 촬영하기 위해 모터쇼를 찾는 사람들도 상당히 많다.


국내에서 레이싱팀과 전속 계약을 맺고 활동 중인 레이싱 모델은 약 100여명 정도로 추산된다. 과거엔 오윤아·김시향처럼 레이싱 모델을 발판 삼아 연예계에 진출한 경우도 더러 있었다. 요즘은 유튜브가 활성화되면서 많은 레이싱 모델이 유튜브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다. 이중 쏠라이트 인디고 레이싱팀 소속 유다연씨는 가장 두드러진 활약을 보이고 있는 레이싱 모델 중 한 사람이다. 유씨는 지난해 한 유튜브 자동차 리뷰 프로그램에서 개그맨 김기욱과 함께 MC로 활약하며 본격적으로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본래 이 프로그램은 회마다 다른 레이싱 모델이 게스트로 출연하는 콘셉트였지만, 유씨는 특유의 털털한 입담과 예능감으로 고정 MC자리를 꿰찼다.

/유다연씨 제공

유씨는 최근 더욱 다양한 분야에 도전하고 있다. 종편방송 MBN ‘기막힌 이야기- 실제상황’에 재연 배우로 출연하고 있으며, 케이블 낚시 전문 채널 피싱TV에서 방송하는 예능 ‘낚시 읽어주는 남자’에도 얼굴을 비추고 있다. 이종격투기 ‘원챔피언십’ 소속 라운드걸로도 활동하고 있으며, 다른 레이싱 모델 2명과 함께 ‘스카이티비’에서 방송하는 예능 프로그램과 웹드라마에도 출연 중이다. 활동 폭이 커지면서 유씨의 인스타그램 팔로워도 19만1000명으로 늘었다.


스케줄 없는 날이 한달에 하루 이틀에 불과할 정도로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지만, 유씨는 불과 몇 년 전만해도 평범한 수험생이었다. 워커힐 카지노 식음료 팀에서 3년간 근무하던 유씨는 세무사가 되겠다는 꿈을 품고 일을 관뒀다. 서울 상도동에 있는 옥탑방에 자리를 틀고 매일 양재동에 있는 세무 학원과 노량진에 있는 독서실을 다니며 1년 남짓 수험 생활을 했다. 여느 고시생처럼 추리닝과 슬리퍼 차림이 일상이었다. 식사는 고시 식당과 컵밥으로 해결하는 일이 많았다. 유씨는 당시를 떠올리며 “그때가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지금은 꿈 속에서 사는 듯한 기분”이라고 말했다. 9월6일 서울 광화문에서 유씨를 만났다.


-본인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레이싱 모델로 일하고 있는 유다연입니다. 2015년 4월 서울 모터쇼에서 재규어랜드로버 모델로 데뷔했고, 이후 매년 모터쇼에 참가하고 있어요. 평소에는 다양한 행사에 모델로 참여하고 있고, 유튜브에선 김기욱씨와 진행하는 자동차 리뷰 프로그램 ‘차있슈(issue)’와 부동산 정보 프로그램 MC를 맡고 있습니다. 이밖에도 종편과 케이블 TV프로그램에도 간간히 출연하고 있는 중이예요.”

/유다연씨 제공

-몇년 사이 많은 인기를 얻었는데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제가 생긴 것은 약간 차가운 이미지지만 성격은 굉장히 털털한 편이예요. 보통 이쁜 척, 도도한 척하는 모델들이 많은데 저는 성격상 그렇게 잘 못하겠더라고요. 저와 대화를 나눈 사람 중엔 ‘남동생이나 형처럼 느껴진다’고 말하는 분들도 있어요. 방송에서 꾸미지 않고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저를 보여드리려고 노력하는 편이고 이 점을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시는 것 같습니다.”


-공대를 졸업하고 카지노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데요.

“고향이 경기도 평택이예요. 대학교는 안성에 있는 한경대학교 안전공학과를 졸업했습니다. 세무 쪽 일을 하고 싶어 경영학도 복수 전공했습니다. 아무래도 남자들이 많은 공대를 다니다보니 성격이 더 털털해진 것 같아요. 그땐 화장도 자주 안하고 청바지에 티셔츠 하나 걸쳐입는 걸 좋아했어요. ‘서울에 있는 건설회사 재무팀에 들어가겠다’는 목표를 갖고 상경해 광진구에 자취방을 마련했어요. 하지만 취업할 때까지 돈을 벌어야했고 워커힐 파라다이스 카지노에서 식음료 팀으로 일했습니다. ‘외국인 손님 응대를 하다보면 영어나 중국어가 늘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갖고 있었어요. 하지만 홀 서빙이나 VIP 응대를 할 때 쓰는 언어는 굉장히 한정적이었고, 외국어도 많이 늘지 않더라고요. 그렇게 3년이 흘렀고 ‘더 이상 시간이 지나면 세무 쪽 일은 못하고 평생 카지노에서만 일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관뒀습니다.”


-그리고 세무사 시험을 준비하셨군요.

“네. 3년간 모은 돈이 2000만원이었어요. 상도동에 있는 옥탑방으로 이사를 하고 양재동, 노량진에 있는 학원과 독서실을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영어 학원도 다니고 세무 기초반에 들어가 공부도 했어요. 평소에는 고시 식당이나 노량진 컵밥을 먹으며 끼니를 해결했어요. 공부하는 것은 정말 힘들었는데 컵밥은 정말 맛있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컵밥이 없어졌다고 들었는데 괜히 아쉽더라고요. 공부는 1년 정도 했어요. 사실 수험 기간이 다른 분들에 비하면 긴 편은 아니라 ‘고시생이었다’고 말하기는 좀 민망해요.”

/유다연씨 제공

-수험기간 중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이었나요.

“수험 생활이라는게 내가 만들어 놓은 규칙안에서 생활하고 세상과 담을 쌓는 일이잖아요. 독서실에서 있다 가끔 공부가 너무 하기 싫을때면 창살없는 감옥에 갇혀있는 기분이었어요. 독하게 마음먹고 시작했지만 미래가 불투명하다보니 너무 우울한 날들이 많았어요. 옥탑방에서 나와 하늘을 바라보며 ‘내가 여기서 뭐하는거지, 그냥 회사를 계속 다닐 걸 그랬나’는 생각도 많이 했습니다. 정말 공부 열심히 하시는 고시생분들 보면 대단하신 것 같아요.”


-어떤 계기로 레이싱 모델일을 시작하게 됐는지요.

“수험 기간 중에 부모님으로부터 재정적인 지원을 받지 않았어요. 돈이 없으니까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공부를 해야했는데 모델 에이전시에서 일하는 친한 언니가 ‘모터쇼가 열리니 모델 면접을 한번 보라’고 알려주더라고요. 뽑힐 거란 생각은 전혀 안했고 경험삼아 오디션을 보러 갔죠. 재규어랜드로버 브랜드였는데 이 회사는 이미 많이 알려진 익숙한 얼굴보단 신선한 모델을 찾는 것 같았어요. 제가 모델 경력이 전혀 없다보니 운좋게 뽑힌 것 같아요.”


-처음 선 모터쇼 무대는 어떤 느낌이었나요.

“무대 위에서 단독으로 카메라를 받는 모델은 아니었고, 부스에 있는 여러 대의 레인지로버 가운데 제가 맡은 차량 옆에 서 있는 플로어(floor)모델이었어요. 솔직히 첫 느낌은 무서웠습니다. 어떻게 표정을 지어야할지, 어떤 포즈를 취해야 차량 이미지와 어울릴지 전혀 몰랐으니까요. 그렇게 열흘을 일했는데, 쉬는 시간에는 다른 모델 분들을 보면서 포즈를 연습했어요. 지금 그때 사진이나 영상을 보면 많이 촌스러운 티가 나요.”

/유다연씨 제공

-모델 일을 하면서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인가요.
“모델은 감정 노동이 굉장히 심한 직업 같아요. 일을 하다보면 스태프 뿐 아니라 대행사, 에이전시, 광고주 등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요. 물론 좋은 사람도 많지만 모델을 함부로 대하는 사람도 많아요. 약속했던 페이(pay)를 아예 안주고 잠수를 타거나, 절반만 주거나, 뒤늦게 주는 일도 허다하죠. 그렇게 속상한 일들이 많아도 행사장이나 촬영장에선 많은 사람들이 저를 바라보고 있으니까 늘 웃으면서 일을 해야돼요. 그게 모델이 가져야 할 기본 자세이기도 하죠. 오랜 시간 서서 일하면 체력적으로 힘들기도 하지만, 하루 자고 일어나면 체력은 금방 회복되니 별 문제는 안되는 것 같아요.”


-평소 몸매 관리는 어떻게 하는지요. 본인만의 운동 습관이 있다면.
“운동보다는 식단 관리로 몸매 유지에 신경을 쓰는 편이예요. 평소 기름진 음식, 예를 들어 햄버거나 피자 같은 음식은 거의 손을 안대요. 집에서 먹을 때는 두부나 양배추, 토마토, 파프리카 등 건강식을 즐겨하고 있어요. 술은 아예 못먹는 편이고 튀긴 음식도 안먹으려고 해요. 시레기 국이나 김치찌개 이런 음식들을 좋아하는 편이예요. 그리고 저는 우유를 특히 좋아해요. 저지방 우유를 하루에 1리터씩은 꼬박꼬박 먹어요. 제가 174센티미터인데 키가 큰 것도 우유 덕분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스물 네살까지 꾸준히 자란 거예요. 운동은 거의 안하는 편인데 일을 더 열심히 하려면 체력이 좋아야겠더라고요. 그래서 얼마전부터 집 앞에 있는 헬스장에 등록해 런닝 머신을 뛰거나 스쿼트를 하고 있어요.”

/유다연씨 제공

-한달 수입은 대략 어느 정도 되나요.
“카지노에서 일할 때보다는 4배에서 5배 정도 더 많아진 것 같아요. 규칙적인 고정 수입이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달마다 편차가 심한 편인데, 평균잡아 보면 대기업에 다니는 분들 만큼 버는 것 같아요.”


-모터쇼를 비롯해 라운드걸 등 수많은 행사에 서고 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무엇인가요.
“모든 행사마다 소소하게 에피소드가 있어서 한 가지만 꼽는 건 어려운 일인데요. 지난해 부산 모터쇼에서 인피니티 브랜드 모델로 참석했는데 바로 옆이 아우디 부스였어요. 부스 간 간격이 좁다보니 저를 찍은 사진마다 아우디 로고가 대문짝만하게 나와 난감했던 기억이 있어요. 행사마다 이런 소소한 사건들이 재미를 주는 것 같아요.”


-레이싱 모델이 되기 위해 필요한 자질이나 능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요.
“레이싱팀과 1년 이상 전속 계약을 맺고 활동한 전·현직 레이싱 모델이 모인 단톡방이 있어요. 전체는 200명이 조금 넘고 현재 현역으로 활동하는 레이싱 모델만 100명 정도입니다. 굉장히 경쟁이 치열한 분야입니다. 전 레이싱 모델이 갖춰야할 가장 중요한 자질로 좋은 ‘애티튜드(attitude·태도)’를 꼽고 싶어요. 주목을 받을 수 있는 행사에 내가 선택되지 않았다해서 질투할 게 아니라 축하해주고 더 열심히 노력하는 자세가 중요한 것 같아요. 그리고 아까도 말씀드렸 듯 일을 하다보면 다양한 사람을 만나기 때문에 좋은 대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자세도 중요합니다.

/유다연씨 제공

그리고 무엇보다 겸손할 줄도 알아야해요. 몇몇 레이싱 모델은 마치 자기가 연예인이라도 된 마냥 우쭐대기도 해요. 큰 돈 쓰는 것도 거리낌 없고요. 반면 사회 생활을 하다 온 친구들은 돈의 소중함을 알아요. 일반 직장을 다니면 모델보다 훨씬 더 힘들게 일하고도 적은 임금을 받는 경우가 많은데, 감사할 줄 알아야한다고 생각해요. 저도 제게 이런 기회가 주어지고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한 줄 몰라요. 가끔씩은 지금 사는게 꿈만 같아요.”


-일부에선 레이싱 모델에 대해 ‘과도한 노출을 한다’거나 ‘성을 상품화 해 돈을 번다’며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레이싱 모델은 야하다’는 선입견이 있는게 사실이죠. 일반 여성분이 비키니를 입으면 ‘귀엽다’,’이쁘다’고 말하지만 레이싱 모델이 입으면 ‘왜 이렇게 야해’라고 안좋게 보시는 분들이 많아요. 하지만 레이싱 모델은 여성이 갖고 있는 미(美)를 부각시켜 자동차 등을 더욱 돋보이게 해주는 직업이예요. 치어리더나 걸 그룹도 일을 할땐 그에 맞는 옷을 입는 것처럼 레이싱 모델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의상 선택도 모델이 마음대로 하는게 아니예요. 노출이 있는 옷을 입었다고 해서 레이싱 모델을 이상한 사람으로 봐주시진 않았으면 좋겠어요.”


-악플에는 어떻게 대처하나요.

“처음에는 인터넷 기사 댓글을 보면서 많이 울었습니다. ‘왜 공부를 그만둬서 이런 욕을 먹어야하나’ 후회도 많이 했어요. 하지만 개개인의 시선이니까 제가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더라고요. 처음에는 댓글에 대댓글도 많이 달았어요. 예를 들어 ‘싸보인다. 10만원 짜리같다’는 댓글에는 ‘열심히 노력해 100만원짜리 되겠습니다’는 식이었어요. 지금은 악플이 많이 줄고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많아요. 그런 것 때문에 일하는데 더욱 동기부여가 됩니다.”

/유다연씨 제공

-레이싱 모델로 시작했지만 현재는 유튜브 등 여러가지 일을 하고 있는데 가장 애착이 가는 일은 무엇인가요.
“아무래도 사람들에게 저를 가장 많이 알릴 수 있게 해준 ‘차있슈’가 가장 소중하죠. 같이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김기욱씨가 많이 도와주고 응원해주세요. 레이싱 모델이었지만 사실 차에 대해선 잘 몰랐어요. 부끄럽지만 토크가 뭔지, 제원(諸元)이 뭔지, 시리즈가 뭔지, 클래스가 뭔지 자동차 리뷰 프로그램에 출연하기 전까진 잘 몰랐습니다. 프로그램 콘셉트가 차에 대해 잘 모르는 여성에게 전문가가 쉽게 설명해주는 것이었기 때문에 출연할 수 있었죠. 김기욱씨가 스태프를 설득해줘서 고정도 될 수 있었고, 너무 감사하죠.”


-앞으로의 활동 목표가 있다면.
“항상 열심히 사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다양한 활동을 통해서 ‘명품만 좋아하는 김치녀’, ‘재능은 별로 없고 야한 것으로만 승부한다’ 등 레이싱 모델에 대한 편견을 깨는데 일조하고 싶어요. 이렇게 열심히 사는 레이싱 모델도 있다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유튜브 활동도 열심히 해서 시청자들에게 항상 웃음과 기분 좋은 에너지를 전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글 jobsN 이준우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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