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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고라 불리는 그가 정치인들에게 서예 가르치는 이유

조회수 2020. 9. 24. 16:2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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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현직 정치인에게 서예 가르치는 초당 이무호 선생

초당 이무호(72) 선생은 한국을 대표하는 서예가다. 이무호란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많지만 그의 글씨를 못 본 사람은 드물다. 서예를 우리나라 방송 소품 문화로 정착시킨 결과다. 태조왕건·장희빈·대조영·천추태후·제국의 아침 등 인기 사극 드라마의 타이틀과 대왕세종 광개토태왕 등에 그의 작품이 쓰였다.


그의 작품은 해외에서도 인정받는다. 2000년전 불교를 도입한 중국 최초의 사찰 백마사 석원미술관에서 ‘세계서법문화예술대전’을 개최했다. 중국의 대문호 소동파 3부자 기념관 삼소사와 광동성서법박물원, 호남성 장사미술관, 심양시화평문화원, 요녕성 온강 전쟁기념관 북경 조양구 미술원에 그의 작품이 걸려 있다.

출처: 이무호 선생 제공
가야산 선림원 현판.

미국 스탠포드대학과 항공기를 제작하는 록히드마틴사(社)에도 그의 작품이 있다. 록히드마틴은 ‘락희도마진(樂喜到鷌鎭)’이라는 글씨를 소장하고 있다. 한국 방위사업청이 선물했다. 한 방사청 관계자는 “록히드마틴 관계자가 ‘작품을 선물 받고 보잉을 인수하는 등 좋은 일이 많이 생겼다’며 우리 회사 직원들이 가면 대접을 잘 해준다”고 했다.


한국에는 청와대를 비롯해 경찰청, 국가기록원,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전쟁기념관 등의 공공건물에 그의 작품이 있다. 국보 1호 숭례문비해설문, 양녕대군시비, 수치약사비, 윤선도시비, 의병장 신돌석 장군시비, 나옹왕사사자적비, 경북도청웅비표석, 국회 고성연수원표석, 3·1만세운동발상지비도 그의 작품이다.


시진핑 중국 주석, 브렌스텐 주중 미대사, 탕가쉬엔 국무위원, 추궈홍 주한 중국대사, 김영삼·이명박 전 대통령, 김종필·이만섭·이기택·목요상·김용채 등 수 많은 국내외 인사들이 그의 작품을 가지고 있다.  

그가 쓴 다섯 글자 안팎 사찰 현판 글씨는 300만원 이상에 거래된다. 8폭 병풍에 담긴 적벽부 작품은 중국에서 2억원이 넘는 가격에 팔린다.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평생을 서예에 바친 초당 이무호 선생을 만났다.

출처: 이무호 선생 제공
(왼)중국고위급지도자 탕가쉬엔국무위원 일행 구미 방문, (오)브렌스테드 주중미 대사께서 요청해서 일대일로글씨를 플로리다주에서 요청해왔다.

서예를 시작한 계기는.


“경북 영덕군 칠보산 기슭의 가난한 집에서 4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6·25 전쟁에 부모님을 여의고 할아버지 할머니 손에 자랐다. 한학에 조예가 깊었던 할아버지는 내게 천자문을 가르쳤다. 그 덕분에 남보다 한문과 서예를 빨리 시작했다. 한학을 본격적으로 배우고 싶었지만 할아버지는 서예 정도만 하면 된다며 만류했다.


산과 들로 다니며 소를 먹이는 일을 할 때 나뭇가지를 붓으로 흙바닥을 종이 삼아 천자문을 썼다. 토끼털이나 닭털을 대나무에 끼워 붓 대신 사용했다. 종이 대신 고운 황토를 물에 갠 쥐 소나무 판자에 글을 썼다. 찐득한 황토에 글을 쓰며 필력이 많이 좋아졌다. 가마솥 그을음을 긁은 뒤 풀에 섞어 먹도 만들었다. 되돌아보니 재미있었고 행복했다.”


본격적으로 서예를 하게 된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때쯤 습자 시간에 선생님이 내 글씨에 힘이 있다고 칭찬해 주셨다. 자신감이 생기더라. 그 이후 붓글씨를 집중적으로 연습했다. 노력했지만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 초까지 국전에서 계속 낙선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출처: 이문호 선생 제공
(왼) 대검찰청 퍼포먼스, (오)경북도청애국가 대형병풍.

하루에 얼마나 공부했나.


“당시 먹고 자는 시간을 뺀 모두 시간을 서예 공부에 투자했다. 650mm x 950mm 크기의 한지 전지를 하루에 100장씩 빼곡히 썼다. 그런 노력 끝에 나만의 서법을 만들었고 지금도 서예 공부를 매일 거르지 않는다. 낮에는 국회 의원회관에서 전현직 의원들을 가르키고 공부는 주로 밤에 한다. 그러다 보면 항상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 퇴근한다. 국회에서 가장 늦게 나가는 사람들 중 한 명이다.”


직접 만든 서법(서체)에 대해 설명해달라.


“1980년대 초, 대만과 중국에 다녀온 이후 나만의 서법을 만들자고 마음먹었다. 갑골문자부터 청동기시대의 금문, 왕희지를 비롯한 육조, 진, 당 시대의 글자 등 300여 종의 서법을 공부했다. 글씨를 익히는데 8톤(t) 분량의 한지를 소비한 것 같다. 그 글씨를 완벽하게 쓸 수 있게 된 이후 나만의 서법을 만들 수 있었다. 이름은 ‘태극’이다. 자연의 순수한 모습을 닮았다. 지금은 내로라하는 중국 서예 대가들도 인정하는 서법이다.

출처: 이문호 선생 제공
(왼) 唐家璇 국무워원 구미시청 방문기념 현장 휘호, (오)시진핑주석 방한 유감시 인민일보 신화통신 부주편 박정희 체육관 전시장 방문 기념 현장휘호 증증.

방송사 사극 타이틀도 많이 썻던데.


“명성왕후, 대조영, 여인천하, 제국의 아침, 천추태후, 용의눈물 등 다수의 사극 드라마 타이틀과 소품, 휘호 등을 썼다. 사극에서 붓글씨를 쓰는 대역도 맡았다. 붓글씨 대역 전문 배우라고 해도 될 정도다.


그림 그리듯 글씨를 쓰는 것을 ‘캘리그라프’라고 하는데 서예를 이용한 캘리그라프도 내가 한국에서는 가장 먼저 시작했다.” 캘리그라프의 어원은 손으로 그린 그림문자다. 의미 전달의 수단이라는 문자의 본 뜻을 떠나 유연하고 동적인 선, 글자 자체의 독특한 번짐, 살짝 스쳐가는 효과, 여백의 균형미 등 순수 조형의 관점에서 보는 것을 뜻한다.


전현직 국회의원에게 서예를 가르치는 이유는.


“20년 넘게 전현직 정치인에게 서예를 가르쳤다. 한국의 서예 문화가 발전하려면 정치인들의 서예를 이해하고 즐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좋은 뜻이 담긴 글을 정성 들여 쓰다 보면 마음속에 자연스럽게 그 뜻이 스며든다. 국가의 리더인 국회의원들이 꼭 서예를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많은 전현직 의원들이 국회에서 서예를 배웠거나 배우는데 실력자들이 많다. 문희상 국회의장의 경우 직접 쓴 작품을 국내외 귀빈들에게 선물로 줄 정도로 실력이 좋다. 세상을 떠난 이기택 전 국회의원의 서예 수준도 상당했다.”

출처: 이문호 선생 제공
(왼)이기택 총제에게 간망 민주라는 제하에 글씨를 현장 휘호 했다 (오)학의 울음소리는 가을 하늘이라 더욱높다 정세균 국회의장님께서 더한층 고매한 인품을 떨치시라는 주문.

서예를 할 때의 마음가짐은.


“즐겁고 편안한 마음으로 붓을 잡아야 한다. 글을 쓸 때는 심상에 자연을 접목시켜 그 글자와 문장이 가지고 있는 뜻을 떠올리며 써야 한다. 그래야 좋은 글씨가 나온다. 

목표가 명확할 필요도 있다. 그래야 포기하지 않는다. 나는 붓을 잡는 순간부터 세계에서 붓글씨를 가장 많이 쓴 사람으로 남고 싶었다. 글씨를 배울 때 붓을 한번 잡으면 화선지 100장을 쓰고 붓을 놓는 것을 기본으로 삼았다.”


태극서법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달라.


“글씨가 자연의 순리와 똑같다고 생각했다. 내 기준으로는 자연을 가장 많이 닮은 글이 가장 잘 쓴 글이다. 태극서법도 자연의 순리인 음양원리를 기반으로 개발했다. 쉬운 예를 들자면 자연의 순리대로 글자의 아래의 획은 힘껏 받쳐줄 수 있도록 두껍고 무겁게 쓰고, 위는 조금 가볍게 쓰는 식이다. 나무가 둥치는 두껍고 위로 갈수록 얇아지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모양을 가진 글씨라고 생각하면 된다.”

출처: 이무호 선생 제공
(왼)평창 올림픽 영미영미작품, (오)평창 올림픽 이상화 고다이라 우정 작품 페럴림픽 성화 봉송작.

중국에서도 인정받는 작가라고 들었다.


“구양순의 48세 후손이 나를 찾아와서 구양순체를 배워 갔다. 중국인들은 외국인의 서예 작품을 무시하는 경향이 강하지만 내 작품은 중국 여러 곳에 걸려 있다. 예술성을 인정받아 얼마 전 중국 회사와 베이징과 마카오에서 작품을 경매에 올리기로 계약했다. 아직 중국에서 경매로 서예 작품을 판 한국 작가는 없다고 들었다. 계약대로 진행되면 진짜 중국에서도 인정받는 작가가 되는 셈이다.”


작품에 말 마(馬)자를 자주 쓰는 이유는.


“통일을 기원하는 마음에서 최근 말 마를 자주 쓴다. 전쟁 기념관에 초대형 통일 기원 말 마자(馬)자가 걸려 있다. 지난해는 3개의 馬자 글자를 썼는데 올해는 4개의 馬를 썼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馬 글자를 추가할 예정이다. 글씨를 쓸 때는 압록강 봄바람이 불어야 한라산의 말이 철책을 넘어 38선을 질주한다는 생각을 한다.


올해는 3.1운동 100주년이다. 한반도 통일의 순간까지 미약하나마 작품 속에 말을 표현해 힘이 될 수 있도록 염원하겠다.”

출처: 이문호 선생 제공
(왼)구양순의 48대손 구양강 내한 구양순체를 일주일간 공부하고 서예 교본을 12권 출간하였는데 초당 선생이 교정을 봤다, (오)서안 순화에 세운 위북풍정원 석문현액을 썼다.

앞으로 계획은.


“서각과 전각 작업에 관심이 많다. 태극서체가 오랫동안 후세에 전해져 후학들이 이를 배우고 즐겼으면 하는 생각에서다. 종이에 쓴 작품은 세월을 견디기 어려우나 나무와 돌에 글을 써서 새겨 놓으면 오래 보존된다. 서예 하는 전현직 국회의원 낙관도 모두 새긴다. 그동안 200여과의 낙관을 새겼다. 서각은 국보 242호 울진봉평 신라비 현판을 쓰고 새겼다. 서각을 위해 20여 년 전부터 괴목·은행나무·오동나무판을 켜서 보관하고 있다.”


가족들도 서예를 하는가.


“집사람은 결혼해서 서예를 시작했다. 지금은 미술협회 특선 초대 작가로 센터에 나가 지도하고 있다. 아이들이 어릴 때 동아일보 동방연서회 휘호대회에서 최고상을 차지한 적도 있다. 아들은 한의사가 본업인데 서예를 즐긴다. 몇 년 전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 우수상을 받았다. 그보다 더 흐뭇한 것은 손주들이 서예에 소질을 보인다는 점이다. 귀여워서 어쩔 줄을 모르겠다.”


글 jobsN 박지환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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