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영화에 얼굴 1번 안나오는 '얼굴 없는' 한국 1인자 배우

조회수 2020. 9. 24. 17:3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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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번을 연기해도 얼굴 한 번 안 나오는데, 우리나라 동물 연기 1인자래요"

영화에서 자신의 얼굴이 단 한 컷도 등장하지 않는 배우가 있다. 대신 고릴라, 공룡, 호랑이 등 동물의 모습으로 화면에 나온다. 배우들 사이에서도 별종 취급을 받았다는 그. 다른 사람들이 걷지 않는 길을 홀로 걸어오면서 포기하고 싶을 때도 많았다고 한다. 동물 연기에 대한 열정 하나로 버텼다는 국내 1호 모션디렉터 김흥래(36) 감독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출처: jobsN
김흥래 모션디렉터.

-자기소개를 해달라.


배우이자 모션디렉터인 김흥래다. 사람, 동물뿐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상상 속 캐릭터인 ‘크리쳐(Creature)’를 연기한다. 컴퓨터그래픽(CG) 작업을 위해 몸에 모션캡처 장비를 달고 일한다.


-원래 배우를 꿈꿨나.


어릴 때부터 배우를 꿈꿨다. 15살 때부터 극단생활을 했다. 성균관대학교 연기예술학과를 졸업했다. 배우 이민정이 학교 선배다. 동기는 배우 김무열, 이엘, 허영규 등이 있다. 2003년 드라마 ‘천국의 계단’에서 단역으로 데뷔했다.


-동물 연기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2002년 개봉한 영화 ‘반지의 제왕’에 나온 골룸을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우리나라에서는 개그 소재로 많이 쓰여서 웃긴 이미지가 되었지만 존경스러운 캐릭터다. 자세히 보면 CG 작업한 게 보인다. 하지만 관객들은 마치 골룸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처럼 믿고 영화를 보더라. 사람이 연기했다는 것을 알고 놀랐다.


골룸을 연기한 배우 앤디 서키스처럼 우리나라 CG연기 분야를 개척해 1인자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오직 나만 잘할 수 있는 무기가 필요했다.

출처: 영화 '미스터고' 스틸컷 캡처
영화 '미스터고' 고릴라 링링 역을 맡은 김흥래 감독.

-영화 '미스터고' 고릴라 링링 역을 맡아 화제였는데.


2013년 영화 ‘미스터고’ 고릴라 링링 역할을 맡았다. 285kg의 로랜드고릴라를 연기해야 했다. 영화 촬영 시작 당시에는 87kg였다. 촬영하면서 100kg까지 찌웠다. 무게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체력적으로도 힘들었다. 네발로 다니는 게 쉽지 않았다. 많이 먹어도 살이 자꾸 빠지더라.

  

-동물 연기를 위해 했던 노력은 무엇인가.


서울대공원을 300번 넘게 갔다. 동물 연기에 미쳐있었다. 동물들의 움직임, 표정, 울음소리 등을 관찰했다.


산에서 생활한 적도 있었다. 2011년 10월 말부터 12월 초까지 약 2달간 청계산에서 생활했다. 관객들이 나를 진짜 동물로 느꼈으면 했다. 산에서 텐트를 치고 지내다가 나중에는 나무 위에 올라가서 잠을 잤다. 야생 그대로를 느끼고 싶었다. 영화 ‘정글북’의 모글리처럼 살았다. 일주일에 한 번 영화사에 가는 것 빼고는 계속 산에 있었다. 큰 등산 가방에 라면과 코펠만 챙겨 갔다. 라면으로 끼니를 때웠다. 근처 약수터에서 물을 떠다 먹었다.


산 생활을 계속하니 내가 정말 동물이 된 것 같았다. 야생적인 느낌을 익히기에 도움이 되더라. 첫날에는 정말 무서웠다. 산속이 조용할 것 같지만 정말 시끄럽다. 벌레 소리, 바람 소리가 다 들린다. 바람소리는 마치 여자 울음소리 같다. 고라니 울음소리는 마치 귀신 소리 같이 음산하다. ‘으엑’ 하고 운다. 가끔 아무 소리도 안 들리고 조용할 때도 있다.


다람쥐, 청설모, 토끼를 많이 봤다. 밤에는 땅벌에 쏘여서 깨기도 했다. 어느 날 동물 울음소리가 들리더라. 짐승이 있나 보다 했다. 자다가 깨서 두꺼운 나무 막대기를 들고 나무 위에 올라갔다. 무서우니까 본능적으로 반응하더라.


이론 공부도 많이 했다. 생물학, 동물학 관련 서적들을 많이 봤다. 특정 동물에 대한 연구자료나 관찰자료도 봤다. 동물이 나오는 유튜브 영상도 자주 봤다. 같은 종이지만 더 똑똑한 동물이 있다. 예를 들면 지능이 높은 침팬지가 숫자를 기억하고 순서대로 기계에 입력하는 영상을 자주 봤다. 지능이 높은 동물은 보이는 특징이 더 뚜렷하다.

출처: 김흥래 감독 제공
김흥래 모션디렉터가 좀비 배우들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동물 연기만 하나.


좀비, 귀신, 부마자, 상상 속 캐릭터인 크리쳐까지 연기한다. OCN 드라마 ‘손 더 게스트(손 he guest)’에서 귀신, 부마자를 연기했다. tvN 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에서는 좀비로 분했다. 게임과 CF 등에서는 로봇, 게임 캐릭터로 변신하기도 한다.


-일 하면서 힘든 점은 없나.


주변의 반응과 시선이 가장 힘들다. 사실 동물 연기를 한다고 하면 부정적인 반응이 대부분이다. 연기할 때 쫄쫄이를 입고 네발로 기어 다닌다. ‘왜 저렇게까지 하나’ ‘할 게 없어서 저런 일을 하나’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구경거리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사람들 앞에 서는 게 위축될 때도 있었다.


배우들 사이에서도 별종 취급을 받았다. 같은 배우지만 인물 연기가 아닌 동물 연기를 한다고 하대하는 사람도 있다. 상처받은 적이 많았다. 그래서 더 제대로 하고 싶었다. 동물 연기 전문가가 되어 인정받고 싶었다.

출처: SBS '미운우리새끼' 방송 캡처
김흥래 모션디렉터가 배우 배정남에게 동물 연기를 가르치고 있다.

-동물 연기를 가르치기도 하나.


최근 배우 배정남에게 동물 연기를 가르쳤다. 또 tvN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에서 좀비로 출연한 배우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함께 작업하는 배우들에게 직접 시범을 보이고 특징을 알려준다.


동물연기 분야에서 인정받고 있다. 요즘 CG 강연을 많이 한다. 게임사 넥슨 등 CG관련 회사에 강의를 나갔다. 순천향대학교 디지털 애니메이션학과나 성균관대학교에 특강을 나가기도 한다. 특수연기나 CG 캐릭터 연기를 가르친다.

출처: 영화 '미스터고' 스틸컷 캡처, 김흥래 감독 제공
촬영 중인 김흥래 모션디렉터.

-동물 연기를 하면 본인 얼굴이 나오지 않는다. 서운하지는 않나.


보통 인물 연기를 하는 배우라면 주변 사람들이 작품을 보고 먼저 알아본다. ‘너 나왔더라’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동물 캐릭터를 가리키면서 ‘저거 나예요’ 해야 한다. 그래도 괜찮다. 유명해지는 걸 원해서 시작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해서 행복하다.


-CG 애니메이션 슈퍼바이저로도 일한다고.


단순히 CG 연기만 하는게 아니라 CG 전문가가 되고 싶었다. 애니메이션 공부를 하고 CG 회사에 취직해서 일하기도 했다. 현재 CG 애니메이션 슈퍼바이저로 일하고 있다. 영화에서 CG 작업을 총괄하는 역할이다. 영화 ‘점박이2 한반도의 공룡’에서 CG 슈퍼바이저를 맡았다. 아무래도 직접 연기를 해서 어떻게 연출해야 하는지 더 잘 안다.

출처: jobsN
김흥래 모션디렉터.

-본인만의 습관이나 규칙이 있나. 


주변 사람들을 관찰하는 버릇이 있다. 대학교 연기 수업에서 주변 사람의 행동을 관찰해 일지를 써야 하는 과제가 있었다. 그때부터 생긴 버릇이다. 사람이 어떤 상황에서 웃고 우는지 등 관찰한다. 인간과 동물의 행동과 습성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


-취미나 스트레스 해소법은.


글 쓰는 것을 좋아한다. 시나리오를 즐겨 쓴다. 지금까지 300~400개 정도 썼다. 

2017년 경기도 고양시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진행한 ‘2017 고양 스토리 공모전’에서 1등을 하기도 했다. 제대로 된 크리쳐 영화를 만들고 싶어서 직접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직접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해서 크리처 영화에 대한 아이디어 내달라는 감독님도 있다. 최근 영화 ‘미스터주’ ‘재심’ 김태윤 감독님이 같이 작품을 연출해보자고 제안하셨다. 배정남이 주연으로 출연하는 단편영화 ‘로큰롤 익스프레스’다. 10월부터 촬영을 시작한다.


-수입이 궁금하다.


구체적으로 밝힐 수는 없지만 대기업 과장 연봉 정도를 번다. 힘들 때 1년에 800만원 정도를 벌 때도 있었다. 비주류의 일이라서 찾는 사람들이 적다. 경제적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 포기하고 싶을 때도 많았지만 동물연기에 대한 열정 하나로 버텼다.


-앞으로의 꿈과 목표는.


CG 연기를 한 지 10년이 되어간다. 이 분야에서 인정 받고 있다. 지금까지 힘들게 걸어온 길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이 왔으면 좋겠다. 남들이 걷지 않는 길을 혼자 걸어왔다. 외롭고 힘들 때도 많았다. 끝까지 좌절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으면 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또 나와 같은 꿈을 꾸는 사람들이 있다면 돕고 싶다. 동물 연기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도 변했으면 좋겠다. 동물 연기는 다른 연기와 다르지 않다. 연기는 연기다.


글 jobsN 임헌진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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