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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대학 졸업 가운 절반은 저희가 만들었어요"

조회수 2020. 9. 25. 10:1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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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날에만 입는 옷을 만듭니다" 3대가 지켜온 학위 가운
60년 전통의 살아있는 역사 ‘춘추사’
밀가루 포대로 만든 의사 가운에서 학위 가운으로
전 세계 학위 가운 만드는 곳으로 성장하고파

“대한민국 졸업 가운 중 절반은 춘추사에서 만들었어요”


할머니에서 아버지로, 아버지에서 아들로 역사가 이어지고 있는 가게가 있다. 서울시 서대문구에 위치한 ‘춘추사’다. 함경북도에서 내려온 창업주 고 최옥금 할머니는 자식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장사를 시작했다. 초기엔 밀가루 포대로 의사 가운을 만들어 좌판에 올려 놓고 팔았다. 그러나 이제는 전국의 학위가운을 도맡는 가게로 거듭났다. 1955년 개업 64년 전통을 자랑하는 춘추사의 3대 최우철(40) 실장을 만났다.

출처: 최우철 실장 제공
최우철 실장이 일하고 있는 모습.

◇ 64년 역사가 고스란히 베어있는 곳


- 자기 소개를 해달라.


“현재 춘추사에서 실장을 맡고 있는 최우철이다. 대표이사는 아버지지만 춘추사의 최종 결정은 아들인 내가 맡고 있다. 4살 때부터 이 일을 도와드렸다. 정식적으로 출근한 건 2006년부터다.”


- 춘추사의 역사에 대해 설명해달라.


“할머니가 1920년대 생으로 함경북도 출신이시다. 일제시대에 결혼하셔서 독립 전에 신촌으로 내려와 터를 잡으셨다. 이 일을 시작하신 건 6.25전쟁 직후다. 자식들을 먹여 살리려고 시작하셨다. 당시 할머니께서 봉제를 할 줄 아셨다. 그러나 그땐 원단이란 게 존재하지 않았다. 헝겊도 살 형편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원단 대신 미군이 버린 밀가루 포대를 사용하셨다. 그걸 깨끗하게 손빨래 해 의사가운을 만들어 파셨다. 연희대학교와 세브란스 병원 앞에 좌판을 놓고 파신 거다.


그런 할머니를 보고 어느 날 연희대학교 관계자가 찾아왔다. 검정색 미국식 가운을 들고와 이런 거 한번 팔아보라고 했다. 그래서 그때부터 학위복을 만들기 시작하셨다. 55년에 가게를 오픈했다. 그리고 60년대부터 학위복을 대량으로 납품하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49년생이다. 아버지가 군대 갔다 온 뒤부터 할머니를 본격적으로 도우셨다. 1984년에 아버지가 완전히 이어 받으셔서 사업자등록증도 내고 체계를 갖추기 시작했다. 2006년부터 아들인 내가 아버지를 도와드리고 있다.”

출처: jobsN
춘추사 간판.

- 춘추사 이름의 뜻은 무엇인가.


“봄 춘, 가을 추를 써서 춘추사다. 증조할아버지께서 지어주셨다. 세월의 흐름처럼 이어서 오래하라는 의미에서다.”


- 할머니에서 아버지로, 아버지에서 아들로 3대가 이어졌다. 가업을 이어받은 이유가 있다면.


“가업을 이어받게 된 계기라기 보다는 집안일이라 생각하다 보니 계속하게 됐다. 군 복무를 마치고 2006년부터 이 일을 시작했다. 그때가 학위복 디자인이 검정색을 탈피해 새로운 디자인으로 바뀌던 때다. 그렇다보니 도와드릴 일이 많았고 새로 디자인 할 일이 많았다. 그때부터 시작한 일이 지금까지 이어진 것 같다.”


- 춘추사를 오랫동안 운영할 수 있었던 비법이 있다면.


“할머니와 아버지가 시장 변화에 적응을 잘 하셨다. 시장의 요구 상황이 있으면 그걸 잘 받아들였던 것 같다. 또 가족기업이다 보니 의사결정이 빠른 편이다. 결정하는데 5분도 안 걸린다. 자재를 살 때가 대표적인 예다. 아버지가 이 일을 오래하셨고 자재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안다는 걸 안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 아버지 의사 결정을 믿고 따른다. 그런 장점 때문에 오랫동안 운영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출처: jobsN
춘추사 내부.

◇ 특별한 날에 입는 특별한 옷


-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설명해달라.


“학위가운 제작을 하고 있다. 원래 제작이 주였는데 대여 수요가 높아지면서 대여도 하고 있다. 쉽게 말하면 졸업식 날 입는 학위복을 빌려주는 거다. 그런데 요즘은 개인으로 학위복을 빌리는 경우가 거의 없다. 대부분 학교를 통해 빌린다. 그래서 학교가 요청을 하면 학교에 맞게 학위복을 제작 해 갖다 드린다. 매출 중 95%가 학교에게 납품이다. 그리고 제작보단 대여 매출이 대부분이다. 물론 맞춤제작도 하고 있지만 전체 매출 중 10%도 안 된다.”


- 학위복이면 다 비슷할 거 같은데 어떤 차이점들이 있는지.


“사실 90년대 말까지만 해도 지금과 같은 학위복이란 개념이 없었다. 대부분 학교가 평범한 검정색 가운이었다. 2000년대 초반부터 바뀌기 시작했다. 디자인 개념이 생기기 시작한 거다. 그리고 단순히 예쁘게만 만드는 게 아니라 옷에 의미를 부여한다. 디자이너 분들이 학교의 역사나 학교가 지향하는 것 그리고 상징까지 모든 것들을 반영한다. 학위 가운 안에 학교의 모든 것이 들어가있다고 보면 된다. 연세대 같은 경우 학위 가운에 교색인 로얄 블루를 넣었다. 또 연대를 상징하는 독수리 형상도 넣는다. 그러다 보니 학위복 하나 디자인 하는데 오래 걸린다. 실제로 어떤 학교 가운은 디자인 하는데 4년이 걸린 적도 있다.”


- 학위복을 제작할 때 어떤 부분을 가장 염두에 두나.


“학교한테 납품할 땐 무엇보다 ‘내구성’에 신경 쓴다. 학위가운도 자체적으로 사용기한이 있지만 그것보다 더 오래 쓸 수 있게 만들고 있다. 개인적으로 맞추시는 분들한테는 개인 특성에 맞게 잘 맞고 예쁘게 해드리려고 한다.”


- 다른 가게에 비해 수작업이 많은 편이라던데.


“맞다. 다른 곳에 비해 수작업이 많은 편이다. 튼튼해야 하는 부분은 미싱을 쓰지만 예뻐야 하는 부분은 수작업을 한다. 사실 수작업이 많아도 고객들은 이걸 수작업 했는지 안 했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이게 아버지의 철학이다. 고객들이 알아주든 안 알아주든 꿋꿋이 수작업을 고수하는 거다. 그래서 생산원가가 높은 편이다. 다른 데선 하루에 열 벌 만들 수 있는 걸 춘추사에선 3~4벌밖에 못 만드니까.”

출처: jobsN
춘추사에 있는 각 학교의 엠블럼들.

- 1년에 대략 몇 벌의 학위복을 제작하고 납품하는지. 졸업시즌이 아닐 땐 한가한가.


“1년에 평균적으로 나가는 학위복이 6만벌이다. 여기서 대여가 95%다. 판매는 3000벌 내외다. 졸업시즌인 2, 8월이 제일 바쁜 건 맞다. 그렇다고 해서 졸업시즌 아닐 때 한가하진 않다. 요즘엔 주부대학, 상인대학 등 다양한 대학들이 있다. 그 분들이 졸업할 때 학위복을 입는 경우도 있다.”


- 지금까지 몇 개 대학의 학위가운을 제작했나.


“너무 많아서 모른다. 전문대 포함해서 거의 다 했을 것 같다. 아마 춘추사 학위가운이 전국 학위가운 점유율의 50%는 차지할 거다. 국내뿐 아니라 일본 교토의 도시샤대학(동지사대학) 학위가운을 제작하고 있다. 윤동주 시인이 마지막으로 다닌 대학이다. 또 일본 협력사를 통해 쥰텐도의과대, 도카이 대학에도 학위가운을 공급하고 있다."


- 매출은 어떠한가.


“연 매출 15억 정도 된다.”

출처: jobsN
고 김수환 추기경의 싸인과 반기문 전 총장의 사진.
출처: jobsN
춘추사 책상에는 춘추가 사운을 입었던 유명인들의 사진이 전시돼있다.

◇ 대통령, 추기경, UN 사무총장까지


- 유명한 사람들도 춘추사 가운을 입었다고 들었다. 소개해달라.


“아버지가 가장 좋아하시는 분은 고 김수환 추기경님이다. 99년도에 입으셨다. 싸인도 받았다. 또 반기문 전 UN 사무총장님도 있다. 반 전 총장님은 두 번 입으셨다. 대통령님들도 춘추사 가운을 많이 입으셨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님, 고 노무현 전 대통령님, 이명박 전 대통령님 등등이 있다. 모두 명예박사 학위 수여식 때 입으셨다."


- 기억에 남는 손님이 있다면.


“손님이었는데 술 친구 된 사람도 있다. 가끔 불러서 술 먹자고 한다. 또 이곳에서 기념으로 가운을 맞춰가는 유학생들도 기억에 많이 남는다.”


- 실장님에게 춘추사란 어떤 존재인가.


“아직까진 잘 모르겠다. 그 의미는 내가 그만둬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이 회사가 할머니에서 아버지 그리고 아버지에서 나로 이어진 건 맞다. 그러나 한번도 춘추사를 내 것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냥 잠깐 이 역할을 맡고 있는 거라 생각한다.”


- 앞으로 목표가 있다면.


“지금은 학교 거래가 대부분이지만 소매를 좀 확장해보고 싶다. 우리는 졸업 때 입는 옷을 만들기에 졸업식에 대한 책임의식이 있다. 졸업식은 누구에게나 소중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학교에서 가운을 받아 입으면 마음에 안 드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소매 거래를 통해 사람들에게 잊지 못할 졸업식을 선물하고 싶다. 또 외국 주문을 많이 받으면 좋을 것 같다. 노하우도 많이 쌓여서 멋있게 만들 자신도 있다. 춘추사가 단순히 대한민국에서만 학위가운을 파는 곳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학위 가운을 납품해 졸업식 날 영향을 끼치는 곳이 되고 싶다.”


글 jobsN 장유하 인턴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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