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 버린다고요?" 하루에 차 6잔씩 40년 마신 명인의 답변

조회수 2020. 9. 25. 11:2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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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동안 '전통 녹차' 한 우물만 판 차(茶) 명인(名人)
[한국의 장인] ④ 박동춘 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장

박동춘 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장(68)은 자타가 인정하는 차(茶) 명인(名人)이다. 초의선사를 시작으로 승가(僧家)에서 이어진 다맥을 외부인 최초로 이어받았다. 나이 20대 후반 차를 접한 후 40년 동안 ‘전통 녹차’ 한 우물만 팠다.


그는 하루 평균 6차례쯤 차를 마신다. ‘차를 자주 마시면 속을 버린다’고 걱정하는 사람도 있지만 “차를 마시기 시작한 이후 속 쓰림을 거의 경험하지 못했다”고 했다. 제대로 만든 차는 사람의 위장을 상하게 하는 대신 오히려 속을 보호해 주고 정신을 맑게 해준다고 했다.

, /박동춘 소장 제공

적지 않은 나이지만 400년 이상 된 야생 녹차밭에서 수확한 어린 찻잎을 직접 열을 이용해 말려 차를 만든다. 이 작업을 차를 덖는다고 한다. 그가 만든 쓰지도, 아리지도 않은 청녹차(발효시키지 않은 녹차)는 신선한 맛과 향이 특징이다. 그렇게 만든 차를 한잔 얻어먹었다. 좋은 차는 몸을 따뜻하게 데워준다는 설명처럼 몸이 거짓말처럼 따뜻해졌다. 


차가 훌륭하다는 소문에도 동춘차를 맛본 이는 많지 않다. 생산량이 적고, 팔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는 “생산량도 적지만 돈보다 한국의 차 문화 발전에 관심이 쏠려 있어 팔 생각까지 못 했다"라고 했다. 동춘차를 마시려면 한국의 전통차에 대한 짧지 않은 설명을 들어야 했다. 돈보다 시간이 넉넉해야 한다. 연구소 운영비도 사비와 후원금으로 충당한다.

찻잎선별. /박동춘 소장 제공

-맛과 향이 다른 것 같다.


“기본적으로 원재료가 좋다. 전남 순천의 야생차 군락지에서 수확한 어린 찻잎으로 만드는 귀한 차다. 게다가 차 좀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높게 평가받는 대나무 아래서 자란 차 나무의 어린잎으로 만든다.


차를 본격적으로 접한지 얼마 안 돼 한 스님으로부터 야생차나무 군락지를 소개를 받았는데 문헌을 연구한 결과 400년 이상 야생 상태로 세월을 보냈더라. 그곳을 차 밭으로 만들었다. 원래 고려 시대 세워진 절에서 녹차를 얻기 위해 가꾸던 곳이다. 임진왜란 때 절이 불탄 이후 방치 상태였다.”


-관리를 전혀 하지 않는가.


“차밭은 전남 순천 주암댐 상류 대광사지 뒷산에 있다. 인위적으로 관리하지 않는다. 차 나무가 스스로 번식하고 자라고 죽는 야생 상태다.


내가 하는 일이라고는 매년 가을 오래된 차 나무줄기를 베어 주고, 봄에 대나무를 솎아 주는 정도다. 건강한 차 나무는 병해충에 영향을 받지 않아 약을 치거나 거름을 줄 필요가 없다. 차나무 군락지가 상수원 보호구역이다. 거름이나 농약은 쓰지 않는다.”

출처: 박동춘 소장 제공
동춘차 야생차밭 전경.

-400년 된 야생 녹차라니 희소성 때문에 비쌀 것 같다.


“귀하지만 팔지는 않는다. 사실 차를 한 번 한 번 맛본 사람들 중에 사서 마시고 싶다는 이들이 많지만 생산량이 적다. 주로 한국의 전통차 문화 발전을 음으로 양으로 도울 이들에게 선물한다."


-한 해 생산량은 얼마나 되나.


"우리는 1년에 두어 번 어린 찻잎을 수확하기 때문에 생산량이 많지 않다. 한해 만드는 녹차는 30g 기준으로 700~1000봉지다. 주변에 좀 더 수확할 수 있는 야생 차나무 군락지가 있지만 시간이 없어 생산량을 늘릴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출처: 박동춘 소장 제공
동춘차 찻잎.

-40여 년간 차를 연구하게 된 계기는.


“1979년쯤 정양모 국립중앙박물관 관장의 추천으로 백화사 응송(속명 박영희) 스님을 만나 차와 인연을 맺었다. 당시 응송 스님은 전남 해남 대흥사 주지에서 물러나서 초의선사와 차에 대해 연구하며, 글을 쓰고 계셨다. 응송 스님은 자신이 저술한 차에 대한 글을 윤문(潤文)할 사람을 찾았는데 정 관장님 소개로 우연찮게 그 일을 맡았다. 대학원에서 한문학을 전공하던 중이어서 원문과 응송 스님의 번역을 비교하며 글을 다듬을 수 있었다. 윤문이란 읽기 쉽도록 글을 다듬는 것이다.


응송스님이 초의차의 이론과 제다법을 전수해주셨다. 스님은 초의선사로부터 시작된 다맥을 물려받은 분이다. 지금은 내가 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를 운영하며 ‘초의차’를 계승한 ‘동춘차’를 만들며, 한국 다도의 맥을 보존, 전수하고 있다.


승가에서 전통 차를 만드는 법을 배운 만큼 스승에게서 물려받은 전통차 만드는 비법을 승가에 되돌려 줘야 한다고 생각해 스님 제자를 찾고 있다. 또 차 문화 대중화를 위해 위해 스님이 아닌 일반 제자에게도 그동안 축적한 전통 녹차에 대한 모든 노하우를 전수할 계획이다."

출처: 박동춘 소장 제공
(왼)응송스님과 (오)박동춘.

-차의 매력을 꼽자면.


“차를 마시면 몸이 차가워지고, 위를 버린다는 이들도 있지만 잘못된 얘기다. 몸이 차가워지고, 위를 버리는 차는 일제 강점기 차 공장에서 어깨너머로 배운 이들이 냉기와 독소를 제거하는 정교한 제다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채 차를 만들면서 벌어진 일이다. 제대로 전통차를 만들면 아리고, 쓰고, 차갑고, 위벽을 깎아내는 성분이 없다."


-차가 정말 몸에 좋은가.


"차의 이로움은 이미 역사를 통해 검증됐다. 차의 기본은 갈증해소다. 또 소화를 도와주고, 머리를 맑게 하고 몸의 탁기를 몰아내 준다. 숙취해소에도 좋다. 차가 가진 또 다른 미덕은 가진 맑은 기운과 따뜻한 온기다. 즐기는 사람의 마음을 위로하고, 타인과 원활한 소통을 매개해준다. 이런 이유 때문에 차를 마시면 스트레스가 풀린다. 문헌을 살펴보면 다산과 추사는 유배 시절 속병을 차로 다스렸다.”

. /박동춘 소장 제공

-한국에 차가 유입된 것은 언제인가.


“우리 민족이 차를 본격적으로 접한 것은 1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삼국시대에 한반도에 차 문화가 들어왔다. 불교를 따라 한반도에 들어온 것이다. 통일신라 시대인 9세기 이후 차를 만드는 기술이 한반도에 퍼졌다.


불교가 융성했던 고려 때 차가 널리 퍼졌다. 고려 초에는 왕실이나 사찰에서 쓰이는 차를 사찰의 다촌(茶村)에서 전문적으로 생산했다. 승려가 주도했다. 이후 관료, 문인들도 차를 마시면서 수요가 많아졌다.


고려 왕실은 다소(茶所)을 만들어 공납(貢納) 차를 만들도록 했을 만큼 차를 중요하게 여겼다. 차산지에는 차세(茶稅)를 부과했고, 왕실에 올리는 토공(土貢) 차는 지방관리가 관리했다. 한반도에 차가 유입된 이후 차 문화가 가장 융성했던 때다."

출처: 박동춘 소장 제공
(왼)초벌덖음, (오)제다 도구.

-고려 시대에 차 문화가 융성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


“고려 때 차가 발전할 수 있었던 배경은 불교의 번성이다. 고려 중기 이후 선종이 불교의 대세로 자리 잡는데 선종은 선(禪) 수행을 통한 해탈을 추구했다. 그런데 차를 마시면 머리가 맑아지고, 잠이 줄어든다. 수행하는 스님들에게 더없이 유용했다. 이후 세속에서 벗어나기를 희망하는 문인들도 차와 사랑에 빠졌다. 문인의 사랑이 차 문화가 한층 발전되는 계기였다.”


-중국은 차를 많이 마신다. 한국 차와 중국차는 다른가.


“한국인은 감이 뛰어나고 느낌이 빠른 민족이다. 중국인은 우리만큼 정교하고 치밀하지 못하다. 한국차는 담박(淡泊: 느끼하지 않고 산뜻하다)하고 소쇄(瀟灑: 기운이 맑고 깨끗하다)한 맛과 향을 선호하는 한국인의 기호에 맞게 발전했다.


우리가 전통차를 만드는 방법도 중국과 많이 다르다. 한국 풍토에 맞는 제다법을 정립한 분으로 초의선사를 꼽는다. 이 분은 뜨거운 무쇠솥에서 찻잎을 빨리 덖어 내고, 깊고 세게 비벼대는 제다법을 개발했다. 또 덖은 찻잎을 밀폐된 뜨거운 온돌방에서 말리는 것도 중국과 다르다. 중국은 청녹차가 대세다. 우리는 상쾌하고 시원한 맛을 강조하는 반면 중국은 풍부한 맛과 향을 중요하게 여겨 이에 어울리는 차들이 많다.”

출처: 박동춘 소장 제공
(왼)유념, (오)1차 유념한 차.

-좋은 차를 만드는 비법은.


“좋은 찻잎으로 차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차 맛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것은 차 싹을 잘 익히는(덖는) 일이다. 덖음 과정을 거치면서 찻잎이 가진 독성을 제거한다. 덖음차의 핵심은 대략 섭씨 300∼350도의 무쇠솥에서 급히 차를 익히는 것이다. 초벌 덖음은 솥이 매우 뜨겁기 때문에 대나무로 만든 솔을 이용한다. 찻잎 싹을 덜 덖으면 비린내나 풋내가 나고, 아린 맛이 남아 차 맛이 거칠어진다. 반대로 너무 오래 덖으면 색·향·미는 물론 차가 가진 좋은 기운이 줄어 맛의 탄력과 생기가 사라진다.”


-물도 중요하다고 들었다. 차에 좋은 물은


“물은 차의 진수를 담아내는 그릇이다. 차가 물을 통해 실체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옛날부터 물을 차의 체(體)라고 생각했다. 차 본연의 맛과 향을 즐기기 위해서는 물을 완전히 끓인 뒤 90도 내외에서 차를 우려내야 한다. 오래 끓인 물은 생기가 빠져 차 맛이 밍밍해진다. 물도 떠온 지 4∼6시간 사이에 쓰는 것이 가장 좋다.”

출처: 박동춘 소장 제공
재벌덖음.

-초의선사의 다풍을 이었고, 희귀한 야생차라면 상업성이 충분해 보인다. 팔지 않는 이유는.


“우리 전통문화의 원형을 보존하고 연구해 차 문화 발전에 기여하고 싶은 욕심에 40년을 매달렸다. 돈은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직접 나서 차를 파는 것보다 차를 즐기는 문화가 확산되면 차 산업도 자연히 성장할 것이라 믿는다.


귀한 야생차를 덖어 전통 제다법으로 만든 좋은 차를 많은 사람들이 접할 수 있도록 하면 차 문화 확산이 빠르지 않겠느냐고 조언하는 사람이 많다. 틀린 얘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보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만든 전통차(동춘차)를 경험할 수 있는 방법도 고민 중이다.”

출처: 박동춘 소장 제공
초의선사가 사용한 다관.

-한중일 3국의 차 종류는 어떻게 다른가.


“중국은 땅덩어리가 넓다. 다양한 종류의 차를 대량으로 생산한다. 6대 차류로 분류할 정도다. 일본은 녹차가루인 말차와 녹차를 주로 마신다. 한국은 녹차가 주종이었지만 2000년대 이후 황차를 생산해 다양성을 도모했다.


또 중국의 경우 대엽·중엽·소엽종 차나무 등 다양한 차 나무의 식생과 지역적 특성에 따라 그 종류가 다양하다. 반면 우리나라와 일본은 소엽종이 주종이다. 나라마다 차 나무의 종류가 다르니 차의 특성이 다르고 즐기는 방법도 다르다.”

출처: 박동춘 소장 제공
2차건조(온돌건조).

-한국의 녹차의 경쟁력은.


“중국은 일찍부터 차를 산업화했다. 이 과정에서 차를 연구하고, 가치를 고양하고, 공유하려는 차 문화 전통이 약해진 것처럼 보인다. 반면, 한국은 초의선사로부터 이어지는 맥이 잘 보존되고 발전해 왔다. 특히 청녹차의 제다방법은 이제 중국이 한국에서 배워야 할 정도다. 차를 학문적으로 연구하면서 제다까지 하는 것은 이제 한국에만 남아 있다. 일본도 연구자와 차를 만드는 이들이 주종 관계로 전락했다. 산업화를 거치면서 나타난 부작용이다.”


-차를 제대로 즐기는 방법은.


“대략 85도 정도에서 찻물을 우려내야 한다. 차를 오래 마시다 보면 찻잔을 통해 전해지는 따뜻함으로 가장 좋은 차향과 맛을 내는 온도를 감으로 알 수 있다. 차를 마시는 바람직한 횟수는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하루에 대략 6~7회가 좋다. 너무 진하게 마시지는 것은 권하지 않는다.”

차 시음. /박동춘 소장 제공

-차 명인이라도 개인이 한국의 차 문화를 융성하도록 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것 같다. 정부에 바라는 게 있다면.


“좋은 제다법으로 만든 우수한 차는 차 문화 융성을 위한 가장 중요한 토대다. 제다법을 보호하고 데이터로 만들어 경쟁력 있는 차를 만들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또 차산업은 미래전략 산업이다. 좋은 차를 만들 수 있는 친환경 재배 기반 도입을 적극 장려해 줘야 한다. 가격·양·다양성 측면에서 중국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이 과정에서 축적한 데이터를 활용해 우리만의 차를 만드는 것이다.”


글 jobsN 박지환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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