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 얻으려 양 엉덩이 살점까지 도려낸다는 사실 모르셨죠?"

조회수 2020. 9. 25. 11:3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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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선미·치타도 반한 OO 없는 옷 만듭니다"

‘동물적 본능과 감성의 교감이 주는 매혹.’


2017년 패션 잡지 하퍼스 바자 코리아의 화보가 화제를 모았다. 화보에는 모피(fur) 제품을 입은 모델이 고양이·토끼와 포즈를 잡는 장면이 담겼다. 화보를 찍은 동물 이름과 모피 제품의 가격이 나란히 적혀 있었다. ‘세상에서 제일 잔인한 화보’라는 비판이 나왔다. 결국 잡지사 측은 화보를 삭제하고 사과문을 올렸다.


이제 조르지오 아르마니와 구찌는 모피를 쓰지 않는다. 조르지오 아르마니는 2016년, 구찌는 2017년 ‘퍼 프리’(fur free) 선언을 했다. 동물을 학대해서 얻은 소재로 옷을 만들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처럼 가죽·모피 등 동물성 소재를 안 쓰고 만든 옷을 ‘비건 패션’(vegan fashion)이라 한다.

출처: 비건타이거 제공
양윤아 대표.

우리나라에도 비건 패션 브랜드가 있다. 2016년 문을 연 비건타이거(vegan tiger)다. 2017년 10월 영국 잡지 ‘컬처 트립’(Culture Trip)이 ‘꼭 알아야 할 세계의 비건 패션 브랜드’로 소개했다. 컬처 트립은 2017년 포브스가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영국 기업 5곳' 가운데 하나로 선정한 곳이다. 비건타이거는 인조 모피·실크 제품을 잘 만드는 브랜드로 뽑혔다. 양윤아(37) 비건타이거 대표를 만났다.


-이력을 간단히 소개해달라.


“패션 디자이너가 꿈이었다. 하지만 대학에선 산업디자인을 배웠다. 성적에 맞춰 전공을 골랐다. 패션 분야에 미련이 남았다. 그래서 졸업 후 직업전문학교에서 패션 디자인을 배웠다. 2008년부터 5년간 패션업계에서 일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고양이를 키웠다. 동물 권리에도 관심이 생겼다. 2012년부터 3년간 시민단체에서 동물보호 활동가로 일했다. 내가 몸담았던 패션업계에서도 동물을 학대해 얻은 소재를 쓴다는 사실을 알았다. 동물성 소재를 쓰지 않은 옷을 사려 했지만 마땅한 제품이 없었다. 그래서 2016년 직접 회사를 차렸다.”


-옷을 만들 때 동물이 학대를 당한다고.


“울·실크·가죽·모피 등을 의류 소재로 많이 쓴다. 또 동물의 뿔을 가공해 단추를 만든다. 겨울에 입는 패딩에도 오리나 거위 털이 들어간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동물이 학대당한다. 모피 제품을 만들려고 밍크·여우·라쿤 등의 가죽을 산채로 벗겨낸다. 동물이 죽고 나면 사후경직(죽은 뒤 근육이 수축해 딱딱해지는 현상) 때문에 가죽이 쉽게 벗겨지지 않아서다.

출처: JFEAR15 유튜브 캡처
양모를 얻으려고 양의 엉덩이 살점까지 도려낸다.

울(wool·양모)도 문제다. 사람들은 양털을 깎아서 사용하니까 괜찮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울을 얻으려고 양의 엉덩이 살점까지 도려낸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를 ‘뮬레싱’(Mulesing)이라 한다. 등처럼 평평하지 않고 주름이 있는 부위에 자란 털은 쉽게 깎을 수 없다. 그러니 시간을 아끼려고 살점까지 한 번에 도려내는 거다. 예전엔 대형 스파(SPA) 브랜드에서도 뮬레싱 작업을 했다. 요즘에는 시민단체의 반발로 많이 줄었다. 하지만 작은 회사는 감시하는 사람이 적어 뮬레싱 작업 여부를 파악하기 어렵다.


실크 제품을 만들려고 누에고치에서 실을 뽑아내는 과정도 잔인하다. 예전에는 나방이 누에고치를 뚫고 나오면 그 뒤에 고치에서 실을 뽑아내 옷을 만들었다. 그런데 실크 수요가 늘면서 대량 생산을 시작했다. 공장식 농장에서 누에가 고치를 짓자마자 끓는 물에 넣는다. 그러고 나서 바로 실을 뽑아낸다.”


-비건타이거는 어떤 옷을 만드나.


“겨울에 입는 외투가 주력 상품이다. 셔츠나 스커트엔 학대당하는 동물 그림이나 슬로건을 넣어 만든다. 여성 제품이 많지만, 일부 셔츠와 로브(robe·무릎 아래까지 오는 느슨한 가운)는 남성도 입을 수 있다.


원단 업체에서 재료를 떼온다. 모든 회사에서 비건 소재를 만들지는 않는다. 수요가 적으니 돈을 준다고 해도 마다한다. 동물보호 활동가로 일한 적이 있어 알음알음 소개받아 거래하는 업체가 몇 곳 있다. 올해엔 페트병을 녹여서 만든 실로 제작한 겉옷을 출시할 예정이다. 앞으로도 계속 대체 소재를 늘리려 한다.”


-대체 소재로 뭘 쓰나.


“면·리넨·레이온 등을 쓴다. 면은 목화씨에 붙은 솜이 원료다. 리넨 원료는 쌍떡잎식물인 아마(亞麻) 줄기다. 또 레이온은 목재나 무명 부스러기를 화학 가공해 만든다. 인조 모피는 주로 폴리에스터나 아크릴로 제작한다. 소뿔 대신 나무나 아크릴로 단추를 만든다. 굳이 동물성 섬유를 쓸 필요가 없을 정도로 품질이 좋다.”

비건타이거 홈페이지 캡처

-그러면 단가가 올라가는 것 아닌가.


“디자이너가 이름을 걸고 만든 브랜드 사이에선 가격이 평균 수준이다. 그런데 어떤 고객은 ‘좋은 일’ 하는 제품은 더 저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비건 패션 문화가 퍼지기 전까지는 인조 모피를 그저 짝퉁으로 보는 사람도 많았다. 쉽게 말해 진품이 비싸니 어쩔 수 없이 싸구려를 산다는 거다. 비건 패션을 더 널리 알리려면 좋은 소재로 질 좋은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고 본다. 20~50년 경력이 있는 여러 봉제 기술자가 옷을 만든다. 공장에서 찍어내는 옷보다 가격이 상대적으로 높을 수밖에 없다.”


-창업 4년 차다. 고객 반응은 어떤가.


“겨울에 잘 나가는 겉옷은 가격이 20만~60만원대다. 비건 패션에 관심이 있지만 가격이 부담스럽다는 20대 손님이 여럿 있다. 그래서 올겨울부터 상대적으로 비싼 겉옷 말고도 티셔츠나 스웨터를 더 만들기로 했다. 면 티셔츠는 다른 브랜드에서도 쉽게 살 수 있다. 그런데 ‘비건 패션을 지향한다’는 메시지를 담은 제품을 사고 싶어 하는 분이 많다. 같은 티셔츠라도 이왕 산다면 우리 옷을 고르겠다는 거다. 그래서 제품군을 늘리기로 했다.”


-매출이 궁금하다.


“연 매출은 8000만원가량이다. 아직은 수입보다 비용이 많다. 조만간 흑자로 돌아설 것으로 보고 계속 투자하고 있다. 여름엔 셔츠가, 겨울에는 겉옷이 잘 나간다. 매출 비중은 겨울과 여름이 7대 3이다. 겉옷이 단가가 상대적으로 비싸서 그렇다.”

비건타이거 제공

-연예인이 비건타이거 옷을 입으며 유명해졌다고.


“연예인 스타일리스트들이 먼저 우리를 찾아왔다. 연예인이 동물을 학대해 얻은 모피를 입으면 대중한테 비난을 받는다. 그러니 비판에서 자유로운 우리 브랜드를 찾는다. 작년에는 배우 이민정씨가 비건타이거 외투를 입었다. 인조 모피인데도 재질이 부드럽고 따뜻하다며 마음에 들어 했다고 스타일리스트가 전해줬다. 지금까지 장윤주·치타·선미·효연 등이 우리가 만든 옷을 입었다.”


-일 하면서 겪는 애로사항은.


“비건 패션 브랜드가 많지 않다. 비동물성 섬유 소재 수요가 적다. 원단을 구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앞으로 비건 패션 문화가 더 알려지면 공급 문제는 해결할 수 있을 거로 본다.”


-앞으로 계획은.


“묵묵하게 비건 패션 시장을 키워나가려 한다. 비건 패션 문화를 알리려면 꾸준히 사업을 해야 한다. 그래야 소비자도 진정성을 알아본다. 올해 목표는 해외 진출이다. 9월 뉴욕과 파리에서 열리는 전시회에 초대받았다. 비건타이거 제품을 전 세계 바이어한테 선보이는 자리다. 먼 미래엔 한국의 비건 패션을 이끄는 디자이너로 성장하고 싶다.”


글 jobsN 송영조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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