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감히 세종대왕님을.." 또 불거진 역사 영화 논쟁

조회수 2020. 9. 25. 13:0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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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드려선 안 될 것을 건드리셨네요" vs "창작의 자유입니다" 역사 영화 논쟁

한글을 창제한 사람은 세종대왕이 아니었다. 한글을 만드는 데 번번이 실패하던 세종대왕은 팔만대장경을 지키던 승려 ‘신미’를 소개받는다. 신미는 산스크리트어, 티벳어, 파스파 문자 등에 능통한 ‘언어 천재’다. 당시 나라의 가장 천한 신분이었던 그는 세종대왕의 명을 받아 한글 창제의 모든 과정을 이끈다. 

영화 '나랏말싸미' 스틸컷 캡처

130억원을 들여 만든 영화 ‘나랏말싸미’의 줄거리다.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했다’는 기본 상식을 뒤엎었다. 송강호, 박해일 등이 출연해 개봉 전부터 기대작이었다. 영화 '나랏말싸미'는 7월24일 개봉해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승승장구할 것 같던 영화는 개봉한 지 2주도 안돼 일부 극장에서 내려갔다. 역사 왜곡 논란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일부 관객들은 영화 평점 테러를 했다. 세종대왕의 업적을 깎아내린 영화라고 주장했다. 네이버 영화평 중 “역사왜곡을 당당하게 하시네요. 안 부끄러우세요?”라는 댓글은 공감수 7000개 이상을 받으며 베스트 댓글 자리에 올랐다. 또 “영화라고 봐주기엔 심각한 역사 훼손” “건드려선 안 될 세종대왕님을 건드리다니” 등의 댓글도 등장했다.


‘나랏말싸미’ 사태에 한글문화연대까지 나섰다. 시민단체인 한글문화연대는 "창작물을 만들어낼 때 사실과 다른 허구를 바탕으로 하는 건 어쩔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역사의 줄기마저 허구로 지어내는 순간 창작이 심각한 역사 왜곡을 저지를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재근 평론가는 “한글은 우리나라의 가장 중요한 문화유산 중 하나”라며 “국민들이 자부심을 가지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역사를 뒤집어 논란이 커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출처: SBS 방송 캡처
'나랏말싸미' 조철현 감독.

하지만 영화 표현의 자유를 존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나랏말싸미’ 조철현 감독은 “영화적인 상상력에 역사적 진실의 잣대를 대는 것은 지나치다"고 했다. 또 영화 '신과 함께', '광해', '밀정' 등을 만든 영화 제작자들도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며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나섰다.


심용환 성공회대학교 외래교수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관객들의 반응이 안타깝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는 "영화는 역사 너머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엉뚱한 고증 논쟁 때문에 짓이겨져 버렸다"고 말했다. 또 "소수설과 감독 개인의 호기로운 확신이 들어간 게 대체 무슨 문제가 되는데 이렇게 흥분하는 걸까"라고 되물었다. 이어 "매번 싸우려고만 드니 이 문화를 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만 할까”라며 “답답한 지경이다"라고 덧붙였다.

영화 '명량' 포스터 캡처

우리나라의 역사를 다룬 영화에 대한 논쟁은 끊이지 않는다. 역사적 사실이나 실존 인물을 다룬 영화는 큰 인기를 끌었다. 영화진흥위원회의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집계를 보면 외화를 포함한 한국 영화 흥행 기록의 상위 15개 중 6개가 역사물이다. ‘역사를 다룬 영화는 흥행 보증수표’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6개 영화는 ‘명량’, ‘국제시장’, ‘암살’, ‘광해, 왕이 된 남자’, ‘왕의 남자’, ‘택시운전사’다. 그중 ‘명량’은 역대 영화 흥행 순위 1위를 기록했다. 한국 영화 역사상 처음으로 1700만 관객을 돌파했다. ‘국제시장’, ‘암살’, ‘광해, 왕이 된 남자’, ‘왕의 남자’, ‘택시운전사’는 모두 천만 관객을 넘었다.


2014년 개봉한 ‘명량’도 역사왜곡 논란이 있었다. 소송까지 휘말렸다. 2015년 배설장군 후손인 경주 배씨 문중이 김한민 감독 등 ‘명량’ 제작진과 제작사를 고소했다. 영화에서 배설장군은 이순신 장군을 배신하고 왜군 편에 선다. 또 거북선을 불태우고 도망간다. 배설장군 후손은 “허위 사실로 사자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검찰은 제작진과 제작사에 ‘혐의없음’ 처분을 내렸다. 검찰은 “영화는 허구를 전제로 한 창작물인 만큼 김 감독 등 제작진이 명예훼손을 하려는 고의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영화 '군함도' 스틸컷 캡처

2017년 개봉한 영화 ‘군함도’도 역사 왜곡 논란에 휘말렸다. 영화는 일제강점기 때 강제 징용당한 조선인들의 모습을 그렸다. 배우 황정민, 소지섭, 송중기 등이 출연해 큰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개봉 직후 조선인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고통받았던 실상을 잘 그리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영화에서 강제 징용당한 조선인은 술과 담배를 즐기며 나름 편하게 지내는 모습으로 나온다. 또 조선인이 일본인을 괴롭히기도 하는 장면 등이 나왔다. 류승완 감독은 “수년 동안 철저히 고증을 거쳐 만들었다”고 해명했지만 영화는 논란에 시달렸다. 결국 손익분기점을 넘기지 못했다.


최근 중국은 아예 역사물 방영을 전면 금지하기로 했다. 지난 3월부터 TV와 영화 등에서 사극 장르의 콘텐츠를 볼 수 없다. 중국 콘텐츠 감독 당국인 '광전총국'은 “역사를 마음대로 왜곡해서는 안 된다”며 그 이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이는 제작자의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방침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실제로 역사물 방영 금지 움직임이 일자 제작사는 역사물을 생산하는 수를 미리 줄였다. 지난 2월 제작사들은 광전총국에 역사물 11편을 등록했다. 전체 드라마의 11.6%다. 작년 2월의 20%와 비교하면 반토막 난 수치다.


역사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은 실존했던 인물이다. 동시에 허구적 요소를 가진 영화 속 인물이다. 제작자는 영화 속 인물에 여러 해석과 상상력을 더할 수밖에 없다.


안지혜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 박사는 2009년 영상예술학회에 발표한 ‘역사 재현의 어려움: 모델영화에서의 명예훼손과 표현의 자유’라는 논문에서 “실제 인물을 모델로 해 영화 속 인물을 재창조하는 경우, 인물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창작이 덧붙여진다”고 말했다. 이어 “그 과정에서 인물의 명예나 감정을 상하게 하거나 사회적인 평가를 저해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역사를 재현하는 영화는 헌법의 기본권 두 가지가 충돌한다”고 말했다. 영화 창작자가 가지는 표현의 자유와 영화의 실제 인물이 가지는 인격권이다. 또 “실제 역사와 실존 인물을 영화화할 때 표현의 자유와 한계의 기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사회적 합의와 일관적인 판례가 가이드라인을 제공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모든 역사 영화를 팩트에 기반을 둬서 제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때문에 ‘역사를 배우려면 TV나 영화가 아닌 역사서를 봐라’는 말이 나오기도 한다. 김성수 문화평론가는 “영화 한 편으로 역사가 왜곡된다는 것은 망상”이라고 말했다. 이어 “영화로 역사를 배운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라며 “역사를 알리는 것은 교육계와 학계의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글 jobsN 임헌진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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