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트라→한전→양복점 거친 40대 남성이 '가능성 있다'며 벌인 일

조회수 2020. 9. 25. 15:5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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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 백인 남성이 "엄청난 가능성 있다"며 한국에 와 벌인 사업은?
한국의 외국음식 홍보전문가 타드 샘플
23년간 한국 생활한 미국인
소셜미디어에 음식점 정보 공유로
팔로워 14만명에 달해

“맛집이라는 단어를 싫어해요. 사람마다 입맛 다 달라요. 내 입에 맞으면 맛집인 거죠. 대신 ‘어떤 음식점이 현지 음식에 가까운 걸 판매하나’는 기준이 명확합니다. 그 나라의 전통을 지킨 메뉴를 선보이는 음식점을 고르고 골라 필터링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어요.”

출처: 트위터 캡처
타드 샘플(@toddsample_eats)의 트위터 계정에는 팔로워들이 음식정보를 구하는 글이 올라온다.

타드 샘플의 트위터(@toddsample_eats)엔 음식점 정보가 넘쳐난다. 팔로워가 음식점 정보를 물으면 운영자 타드는 막힘없이 답한다. 그는 음식 마니아 사이에서 최고의 식도락가로 꼽힌다. ‘믿고 먹는 타드 픽(Pick)’이라는 말도 나온다.


타드 샘플(Todd Sample·47)씨는 2015년부터 협찬·광고 등을 전혀 받지 않고 한국에 숨어 있는 해외 전통 음식점을 발굴해왔다. 어떤 셰프가 무슨 레스토랑을 운영하는지, 음식 재료는 어디서 공수해오는지, 음식의 유래는 어디인지 등의 상세한 정보를 담아 트위터·인스타그램·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 채널에 업로드한다.

출처: 유튜브( @Eathentic TV) 캡처
유투버로도 활동하고 있다.

4년이 지난 지금, 14만명의 팔로워가 그를 따른다. 타드의 직업은 문화기획자다. CGV와 제휴해 벌이는 문화행사인 '씨네맛'은 영화를 감상한 후 영화에 나온 음식을 맛보는 이벤트다. 또 한달에 한번 로컬 음식점을 탐방하는 ‘소셜 다이닝(Social Dining)’, 와인에 담긴 스토리를 공부하는 ‘와이닝(Wining)’ 등의 음식 관련 행사를 연다.


소셜미디어로 장소와 날짜를 공지하면 하루만에 모집 정원이 다 찬다. 또 잇쎈틱(Eathentic)이라는 외식 컨설팅 회사도 운영한다. 한국에서 자국의 음식점을 운영하고자 하는 외국인이 주 타깃이다. 그는 외국인들에게 “한국 음식점 시장은 경쟁이 치열하다”고 조언한다.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절대 타협하지 말고 정통의 맛을 살려야 한다고 거듭 강조한다.

출처: 타드 샘플 인스타그램(@toddsample_eats) 캡처
영화를 보고 영화 속 배경이 되는 나라와 음식, 문화에 대해 현지 셰프나 대사관 직원과 이야기를 나누는 프로그램 '씨네맛' 행사 중 일부,

-한국인보다 음식점을 잘 아는 것 같다. 언제 한국에 왔나


“24년 전, 95년도 9월에 한국을 왔습니다. 고향에선 펜실베니아 주립대(Pennsylvania State University)에서 미술사학을 공부했습니다. 어릴 적 미술을 좋아해서 미술전시기획자·큐레이터 등을 꿈꿨어요. 대학원 졸업 전 1년간 시간을 가지며 세계를 여행할 생각이었어요. 우연히 한국에 왔는데, 매력에 흠뻑 빠졌습니다. ‘이 나라에 엄청난 가능성이 있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당시 경상북도 안동에서 머물렀는데 한국 전통문화가 신기했죠. 아침이면 마을에 한복을 갖춰 입은 어르신을 구경하는 게 재밌었어요.”


-20년간 직장 생활도 했다.


“98년도 건국대학교에서 시간제 영어강사로 일하다 2006년 코트라(KOTRA)에 입사했습니다. 한국 기업을 해외에 소개하고 투자를 상담하는 역할이었어요. 대기업뿐 아니라 국내 중소기업이 얼마나 뛰어난 경쟁력을 가졌는지 그때 알았어요. 하지만 마케팅·홍보 능력이 떨어져 드러나지 않은 업체도 많았죠.


2011년 한국전력공사로 직장을 옮겨 해외 영업 전략 팀장을 맡았어요. 한전의 해외 사업을 검토하고 문제가 발생했을 때 대응하는 일이었죠. 처음 입사할 때부터 ‘여기 있는 직원 전부가 나를 싫어할 때까지 다니겠습니다’라고 했어요. 한전에 최초로 입사한 외국인이었고, 에너지 관련 전공을 한 것도 아니었죠. 관리자직 특성상 ‘Yes’보단 ‘No’라고 말해야 하는 순간이 많았어요. 당연히 미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어요. 실제로 많은 오해도 받았습니다. 2014년쯤 할 만큼 했다는 생각이 들었죠. 제 사업을 해볼 때라고 생각했습니다.”

출처: jobsN
"세계 문화를 한국에 알리는 역할을 하고 싶다"는 타드.

-처음부터 음식을 주제로 창업할 생각이었나.


“회사를 나온 뒤 양복점을 차렸어요. 한국에서 직장을 다니는 외국인들이 맞춤 정장을 해야 할 때가 많아요. 그들을 위한 맞춤형 양복점이었죠. 서초역에 작은 가게를 차렸습니다. 패션을 전공하지 않은 제가 어떻게 양복점을 했냐구요? 한국 동대문에 가면 바느질 장인들이 정말 많아요. 세계적 디자이너와 겨루어 봤을 때 손색없는 솜씨죠. 한국을 찾는 외국인이 한국의 동대문 바느질 장인들의 맞춤양복을 보면 깜짝 놀랄 거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패션사업에 관한 노하우가 부족했는지 1년 반 만에 접고 말았어요.”


타드 씨는 2010년부터 트위터 계정을 운영했다. 외국인 입장에서 낯설게 느껴지는 한국 사회의 일면에 대한 글을 올렸다. 사업을 시작하면서 게시물을 더 주기적으로 올렸다. 많은 팔로워를 모으기 위해 인스타그램·트위터 등에 그날 먹은 음식, 입은 옷 등의 사진을 올렸다. 우연히 올린 치즈 샌드위치 게시물이 1000개 이상 리트윗(Retweet·게시물을 공유하는 것) 될 정도로 화제였다. ‘외국인 입장에서 음식에 관한 정보를 제대로 알려주는 계정을 운영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장을 다닐 때만 해도 타드 씨는 소셜미디어에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도대체 왜 다들 음식 사진을 찍어대는 거야’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사업을 시작하면서 사람들이 좋아하는 게 무엇일지 고민해봤습니다. 음식이더라고요. 어느 나라 사람이건, 나이가 어리건 많건 모든 이들이 음식에 관심을 갖는단 걸 알았죠.”

출처: 타드 샘플 트위터(@toddsample_eats) 캡처
음식에 관한 설명과 스토리를 담는 타드의 게시물.

-음식 사진을 찍어 올리는 사람은 많지 않나. 어떻게 팔로워를 사로잡았나.


“단순히 음식 사진만 올린다면 그렇죠. 저는 식당에 가면 그곳의 사장님과 오랜 대화를 나눠요. 이국 음식점을 찾다 보니 주로 외국인 사장님이 계십니다. ‘어떻게 한국에 왔는지’, ‘왜 이 음식점을 만들었는지’, ‘왜 여기에 자리 잡았는지’ 등을 묻죠. 뿐만 아니라 음식 자체에 대해서도 조사해요. 사장님이 현지 맛을 내기 위해 어디서 재료를 공수해오는지, 음식을 먹는 순서는 어떻게 되는지, 이 음식이 자국에선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등의 정보를 알아봅니다. 한번 음식을 먹을 때 2~3시간 들죠. 이런 정보를 취합해 가장 재밌는 스토리를 팔로워와 공유합니다.”


타드 씨는 2017년 외국음식문화 PR 플랫폼 ‘잇쎈틱(Eathentic)’을 박은선 대표와 공동 설립했다. 한국에 음식점을 창업하고 싶어 하는 외국인들을 위해 창업 상담을 해준다. B2B 사업뿐 아니라 B2C 사업도 겸한다. 그가 정보를 주는 사람들은 ‘최대한 현지 음식점에 가까운 메뉴’를 찾는 이들이다. “한국인 5명 중 3명은 해외여행을 가봤다는 한국관광공사 통계자료가 있어요. 사람들이 해외에 나가 직접 경험하고 다시 돌아오면 뉴욕피자가 생각나겠죠. 그때 먹었던 그 피자, 검색해선 절대 안 나와요. ‘뉴욕 피자 맛집’을 검색하면 업체 수십 곳이 뜹니다. 다른 기준이 필요하단 의미죠. 제가 세운 기준은 얼마나 현지 음식에 가깝냐였어요.”

출처: 타드 샘플 인스타그램(@toddsample_eats) 캡처
타드는 '현지인이 인정한 곳이어야 한다’ 등 자체적으로 세운 열한 가지 기준 중 일곱가지 이상 만족한 경우에만 소셜미디어로 음식점을 소개한다.

-우리나라 자영업 시장은 경쟁이 치열하고 트렌드도 빨리 바뀐다. 하려는 일이 만만치 않았을 텐데.


“한국 음식 시장이 신기한 부분이 바로 그 부분입니다. 미국에는 3억3000만명의 인구가 살고 음식점은 120만여곳 있어요. 하지만 5000만명 사는 한국에 식당은 65만개 넘게 있죠. 대부분 외국인들이 이런 실정을 몰라요. 무턱대고 자기네 나라 음식을 만드는 식당을 창업하려 합니다. 전 결코 만만히 봐서는 안된다 조언하죠. 외국인 창업자, 이국 음식점 등 틈새시장을 노렸기 때문에 해볼 만하다고 봐요.”


-컨설팅도 하고 음식 콘텐츠도 만든다. 또 무슨 일을 하나?

 

“세계 음식을 전하는 일이라면 다 합니다. 가장 많이 하는 것은 전국 음식점 정보를 수집하는 일이죠. 파주부터 제주도까지 지방 곳곳을 다닙니다. 지금껏 국내에 있는 500여개의 식당을 소개했습니다. 국내 곳곳에서 열리는 음식 이벤트를 기획하고 소개하는 문화기획자로도 활동하고 있어요. 소셜미디어 마이딜리셔스이벤트(mydelicious_event) 계정에 음식 축제를 정보를 공유합니다. 최근 ‘브라질 촌동네 파티’라는 행사를 소개했어요. 올해 7월20일에 열린 ‘비리야니 축제(향신료가 들어간 인도의 대표적인 쌀요리로 축제나 결혼식에 대접하는 음식)’도 문의가 많았죠. 이런 행사를 개최하는 업체들은 ‘어디다 홍보해야 할지 몰랐는데 정말 반갑다’고 해요. 이국 음식을 좋아하는 제 팔로워들도 반응이 뜨겁구요.”


-작년 매출은 얼마인지, 최종적인 목표는 무엇인가.


“아직은 매출이 적어요. 하지만 저희가 하는 일은 큰 가능성이 있다 생각해요. 한국은 이제 다문화 사회로 들어서고 있어요. 국내 거주하는 외국인이 200만명 정도인데, 결코 작은 수가 아니죠. 향후 10년간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서로 다른 문화를 공유하고 경험하고자 하는 수요가 더 많아질 겁니다. 그들을 모이게 만드는 게 바로 음식이구요. 각국의 전통과 역사, 문화, 생활습관 등을 가장 잘 담고 있는 것이 바로 음식이기 때문이죠. 앞으로도 전 외국 문화와 한국 문화를 연결하는 다리(Bridge)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글 jobsN 김지아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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