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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주가 너무 보고싶어 74살에 SNS 시작했다가 이렇게 됐습니다

조회수 2020. 9. 25. 17:5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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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를 위해 편지를 쓰고 그림을 그린다" 손주를 위해 인스타그램을 하는 노부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아이들이 할아버지를 기억하길 바랐습니다” 영상 속 아들은 아버지에게 인스타그램을 권유한 이유를 설명했다. 이 영상은 소위 ‘대박’이 났다. 사람들은 이 영상을 4만8000번 이상 공유했고, 조회수는 약 630만이 넘었다. BBC, NBC 등 외신들은 앞다투어 노부부의 사연을 소개했다. 손주를 위해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78살 동갑내기 이찬재·안경자 부부의 이야기다. 안경재씨의 말을 들어봤다.

출처: 이찬재·안경자 부부(@drawings_for_my_grandchildren)인스타그램 캡처

-자기소개를 해달라.

남편과 함께 인스타그램 ‘drawings_for_my_grandchildren(손자들을 위한 그림)’ 계정을 운영하는 1942년생 안경자다. 2015년 3명의 손주를 위해 인스타그램을 시작했다. 남편은 그림을 그리고 나는 글을 쓴다.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1961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에 들어갔다. 1965년 대학교 졸업 후 목포 정명여고에서 6개월간 근무했다. 이후 1966년 영등포여고 국어과 교사로 발령받았다. 1967년, 26살 때 남편과 결혼해 1남 1녀를 뒀다. 남편은 군대 제대 후 1968년 배화여고에서 지구과학교사로 첫 근무를 시작했다. 둘 다 교사 생활을 계속하다가 1981년 브라질에 이민을 갔다. 브라질에서 36년간 살다가 2017년 한국으로 돌아왔다.  


-두 분은 어떻게 만났는지.  

남편과 같은 대학교에 다녔다. 남편은 지구과학교육과였다. 대학교 3학년 때 학교 문학회에서 만났다. 당시 시화전이 열렸고, 시를 출품했다. 남편이 내가 쓴 시에 그림을 그렸다. 남편은 원래 그림을 그리던 사람이 아니다. 고등학교 때 특별반으로 미술 활동을 한 게 다였다. 누군가 남편이 고등학교 때 그림을 그렸다고 말한 모양이다. 시화전 준비위원회에서 남편에게 그림을 그려달라고 부탁했다. 그렇게 인연이 이어졌다.

출처: 이찬재·안경자 부부(@drawings_for_my_grandchildren)인스타그램 캡처

-브라질에 이민을 간 이유가 궁금하다.

1975년 친정 식구들이 브라질로 이민을 갔다. 먼저 가서 터전을 잡아놓은 상태였다. 새로운 곳에서 인생을 새로 시작해보자는 마음으로 떠났다.


-브라질에서 무슨 일을 했나.  

옷 가게를 했다. 교포들은 보통 의류 계통에서 일한다. 한국과 브라질은 1959년 수교했다. 1963년에 한국 사람들이 1차 이민을 갔다. 초기 이민자들은 농업 일을 많이 했다. 하지만 한국과 다른 농업 환경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아이들의 장래, 학교 등의 문제로 결국 하나둘씩 도시로 나왔다. 당장 먹고 살아야 하니까 한국에서 가지고 온 옷들을 내다 팔았다고 한다.


한국 옷의 원단, 바느질, 디자인이 좋아 브라질 사람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다. 특히 여성들이 좋아했다. 가정 방문으로 하나씩 팔다가 직접 만들기 시작했다. 규모가 커져 도·소매 거리가 생겼다. 한국 교포들이 브라질 여성 의류의 많은 부분을 맡을 정도로 시장이 커졌다. 우리도 처음에는 옷을 떼다가 가정 방문식으로 팔았다. 브라질로 떠난 지 2년 후 옷가게를 열었다. 제품을 직접 만들기도 했다.

출처: 이찬재·안경자 부부(@drawings_for_my_grandchildren)페이스북 캡처

-인스타그램을 시작한 이유는.

2015년 1월, 딸 가족이 브라질에서 한국으로 떠났다. 남편은 손자들의 빈자리를 크게 느꼈다. 아들은 그런 아버지를 걱정했다. 아들은 초등학교 2학년 때, 아버지가 그려준 그림을 기억했다. 아버지에게 그림을 그려서 인스타그램에 올려보라고 제안했다. 남편은 그림을 수십 년간 그리지 않은 상태였다. 인스타그램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처음에는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아들이 계속 권하니까 시작했다. 2015년 4월 인스타그램에 그림을 올리기 시작했다.

출처: 이찬재·안경자 부부(@drawings_for_my_grandchildren)인스타그램 캡처
출처: 이찬재·안경자 부부(@drawings_for_my_grandchildren)인스타그램 캡처

-작업 방식이 궁금하다.

‘이번엔 이걸 그리자’하고 소재를 정한다. 손주가 두고 간 장난감, 같이 놀던 사진, 식당에서 시켜 먹던 음식까지 모든 게 다 그림의 소재다. 소재가 정해지면 가족들끼리 토론을 한다. 가족 메신저가 있다. ‘사람들에게 공감을 사기 어렵겠다’ 싶으면 올리지 않기도 한다. 최종적으로 모두 다 좋다고 하면, 아들은 영어로 딸은 포르투갈어로 번역해 글을 올린다.


-작업할 때 얼마나 걸리는지.  

글은 금방 쓴다. 인스타그램에 글자 수 제한이 있어서 길게 쓸 수 없다. 또 소재를 정했을 때 어떤 이야기를 전할지 어느 정도 정해지기 때문이다. 다만 짧은 글 안에서 감동을 줘야 하기 때문에 낱말 선택이나 표현에 신경 쓴다.

남편은 그림마다 소요 시간이 다르다. 몇 분이면 끝나는 것도 있다. 만족스럽지 않으면 계속 여러 장을 그린다. 그러다가 다음날로 넘어갈 때도 있다.

출처: 이찬재·안경자 부부(@drawings_for_my_grandchildren)인스타그램 캡처

-그림마다 FOR AAA 라고 적혀있던데.

손주들 이름인 알뚤(Arthur), 알란(Allan), 아스트로(Astro)의 첫 글자를 딴 것이다.


-브라질 유명 프로그램인 '판타스티코'에 출연했다던데.  

브라질 TV 방송사 ‘클로보(CLOBO)’의 ‘판타스티코’는 남미 사람들이 많이 보는 프로그램이다. 2017년, 처음 인터뷰 제안이 왔을때 얼떨떨했다. 첫날 아파트에 와서 촬영하더라. 2~3일간 찍었다. 손자들을 데리고 그네 타는 모습 등 일상을 담았다. 일요일 저녁에 방송하는 프로그램이다. 방송이 나가고 월요일 아침부터 난리였다.

출처: 이찬재·안경자 부부(@drawings_for_my_grandchildren)인스타그램 캡처

“너희가 커서 이 책을 읽을 때쯤 난 이 세상에 없겠지만 너희를 위해 이 편지를 쓰고 그림을 그린다”


“아로야, 할아버지는 하늘만큼 땅만큼 널 사랑한단다”  


“알뚤 알란, 할아버지는 어제 너희들과 영화 ‘원더’를 보러 가서 행복했단다”  

노부부가 손주들을 생각하며 쓴 글과 그린 그림은 여느 조부모가 손주에게 하는 말을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일까. 많은 네티즌의 공감을 자아내고 있다. 팔로워 수만 약 38만명이 넘는다. 계정 아이디 옆에는 인스타그램이 일부 유명인에게만 제공하는 파란색 인증 배지 표시도 있다. 글을 올릴 때마다 ‘좋아요’ 수는 몇천부터 몇만까지 올라간다. 댓글도 많게는 1000여 개가 달린다.  

출처: 이찬재·안경자 부부(@drawings_for_my_grandchildren)인스타그램 캡처

-네티즌들의 반응이 뜨겁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남편의 그림이 수채화다. 색이 강렬하지 않다. 편안한 느낌을 좋아하는 것 같다. 사람들이 ‘따뜻하다’ ‘눈물이 난다’라는 말을 한다. ‘돌아가신 할머니가 생각나요’ ‘난 왜 부모님께 이런 걸 권하지 못했을까’라는 댓글도 있다. 외국인 팔로워들도 소재나 글에 대해 공감한다. 생활에서 나오는 것들을 소재로 했을 때 ‘전 세계인들 모두 공감하는구나’ 느꼈다.


사람들이 우리 사진도 좋아하더라. 처음에 아들과 딸이 사진을 올리자고 했을 때 ‘그림 을 올리는 계정인데 왜 우리 사진을 올리니?’라고 했다. 최근 1968년 남편과 찍은 사진과 2019년 찍은 사진을 나란히 붙여 올렸다. ‘좋아요’를 7만 개 넘게 받았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더라. ‘이 사람들이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구나’ 생각하고 가까이에 있는 존재로 느끼는 것 같다.

출처: 이찬재·안경자 부부(@drawings_for_my_grandchildren)인스타그램 캡처

- 책 ‘돌아보니 삶은 아름다웠더라’ 출간 이유는?

책으로도 보고 싶다는 댓글이 계속 달렸다. 책이 몇 판 나갔는지는 관심 없다. 그저 인스타그램을 하지 않는 사람, SNS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이러한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다.


-인스타그램 계정을 운영하면서 생기는 수익이 있나.  

인스타그램으로 버는 돈은 없다. 간간이 강연을 나가면서 강사료를 받는다. 또 라디오나 방송에 출연하면 출연료를 받는다.

출처: 이찬재·안경자 부부(@drawings_for_my_grandchildren)인스타그램 캡처

- 전시회도 열었다던데.

2017년 코스타리카에서 첫 전시회를 열었다. 두 번째 전시회는 그해 10월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열었다. 집 근처 문화관에서 열었다. 전시회가 끝나자마자 한국으로 왔다. 2018년 6월 브라질 대사관에 있는 갤러리에서 세 번째 전시회를 열었다. 36년간 브라질에서 살아서 브라질 관련 그림이 많다. 또 아이들과 있었던 일, 과거 회상 등으로 주제를 나눴다. 글도 영어와 한글로 번역해 적었다.

출처: 이찬재·안경자 부부(@drawings_for_my_grandchildren)인스타그램 캡처

-앞으로의 꿈과 목표는.

막내 손주가 지금 만 4살이다. 우리의 그림과 글을 지금 읽으라는 게 아니다. 20, 30년 후 어른이 되었을 때 ‘할아버지, 할머니는 그때 어떠셨을까’라는 생각이 들 때 보면 좋겠다. 그때 들춰보면 ‘이런 생각을 하셨구나’ 할 테니까 말이다.


최근 계획 하는 게 있다. 남편이 귀가 어두워져서 노래가 잘 안 들린다고 한다. 그래서 노래를 불러도 음이 잘 안 맞는다. 더 늦기 전에 연습해서 대학교 때 즐겨 부르던 외국 팝송을 녹음하고 싶다. 한 10여 곡 녹음해 아이들을 위해 남기고 싶다. 


글 jobsN 임헌진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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