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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살에 기술 배워야만 했던 아이는 대한민국 명장이 되었습니다

조회수 2020. 9. 25. 17:5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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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속공예의 달인 홍재만 대한민국 금속공예 명장

[한국의 장인] 2 홍재만 대한민국 금속공예장 명장

13살, 초등학교에 다녀할 나이에 금속공예 공방에서 먹고 자며 일을 시작했다. 가난 때문이다. 거친 선배들 주먹맛도 봤다. 피곤해 화장실에서 졸다가 더 험한 일을 당하기도 했다. 힘들어 집으로 도망친 적도 있지만 열심히 기술을 익혔다. 어느날 그는 심부름하던 꼬마에서 한 사람의 청년 기술자로 변한 자신을 봤다.


젊은 기술자로 자신감을 얻고 나서 집안이 과거 서울에서 떵떵거리며 살았던 부잣집이란 이야기를 들었다. 할아버지가 독립선언을 주도한 33인 중 홍병기 선생이라는 것은 어린 시절부터 알고 있었다. 그러나 독립운동에 가산을 다 쏟아부어 집안이 기운 것은 몰랐다. 과거에 집착하지 않는다. 지금 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같이 일하는 직원과 작품이다.


경기도 부천 오정동 우노공방에서 홍재만 대한민국 금속공예 명장(60)을 만났다. 공방 안에선 홍 명장을 포함해 6명의 50~60대 남성들이 제각기 성인 주먹만한 쇠덩어리에 동그란 은판을 얹어 망치로 두드리고 있었다. 은으로 차 주전자를 만드는 중이다. 이 주전자는 판매가가 5000만원이 넘는 명품이다. 

출처: jobsN

-은판을 두드려 주전자를 만드는 모습을 처음이다.


“사실 조선시대에도 은 공예품은 궁궐이나 권문세가에서나 사용했던 고귀하고 부유한 집안의 상징이었다. 은이 금에 비해 싸다고 하지만 주전자를 만들려면 꽤 많은 은이 들어가기 때문에 일반인이 접하기 쉬운 물건이 아니다. 은보다 재료비가 훨씬 싸고 관리가 편한 스테인레스 식기가 넘쳐 나니 이제는 은으로 만든 식기를 볼 일이 거의 없다.”


-은으로 식기를 만들면 좋은가.


“은은 독에 닿으면 검게 변하는데 이 때문에 조선시대 궁궐이나 권문세가에서 음식에 독이 있는지를 검사할 때 주로 이용했다. 은으로 만든 식기에 음식을 담으면 오래 보관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은 식기를 귀하게 여기는 관습이 아직 남아 있다. 지금도 결혼하는 새댁의 혼수함에 들어가는 은 수저 세트가 바로 그것이다.”


-은 판으로 주전자를 만드는 것은 그렇다고 쳐도, 주둥이를 붙이지 않고 일체형으로 만들다니 신기하다.


“그게 우리의 뛰어난 전통 기술이다. 은으로 주전자 형태를 만드는 것은 일정 기간 노력하면 할 수 있다. 하지만 이어 붙이지 않고, 하나의 판을 두드려 주둥이까지 달린 주전자 만들기는 배우지 않으면 개인의 노력만으로 따라하기 어렵다. 은주전자 옆면에 다양한 무늬를 도안한 뒤 양각과 음각으로 문양을 집어넣는 것도 오랜 시간이 필요한 고난이도 기술이다. ”


출처: [한국의 장인] ② 홍재만 대한민국 금속공예장 명장 캡처

-네팔과 인도에서도 구리를 두드려 냄비를 만드는 모습을 봤다. 그런 기술과 같은 비슷한 기술인가.


“몸에 해롭지 않은 무른 금속을 두드려 그릇을 만드는 것곳은 우리나라만의 독보적인 기술은 아니다. 만들기가 쉽지 않고 외관이 아름다워 옛날에는 주로 상류층이 사용했다. 얼마전 TV 다큐멘터리에서 구리를 두드려 냄비 등을 만드는 것을 봤다. 스테인레스 등이 많이 보급되지 않은 가난한 나라에서 기념품으로 만들어 파는 것 같더라.”


-네팔이나 인도 등 다른 나라에서 금속을 두드려 식기를 만드는 것보다 우리나라의 기술이 훨씬 우수한 것 같다. 문화가 비슷한 중국이나 일본과 비교한다면.


“은을 두드려 그릇을 만드는 기술은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도 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에서 만드는 작품이 미적 아름다움이나 견고함 측면에서 세계 최고라고 생각한다. 특히 작품 표면에 만든 문양에 금판을 입히는 기술은 다른 나라의 기술을 압도한다. 일본과 중국의 기술이 궁금해 연구한 적이 있다. 일본 제품은 견고함이 우리나라보다 좀 떨어지고, 중국은 문화혁명을 거치면서 금속공예 기술이 많이 사라져 기술이 한 단계 아래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하지만 최근 우리와 거의 비슷한 수준까지 올라온 것 같다.”


-기술을 배우게 된 배경은.


“기술을 배우는 과정을 설명하자면 독립운동가였던 할아버지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할아버지는 함자로 병자 기자를 쓰셨다. 천도교인으로 동학농민운동에 뛰어드셨다. 3·1운동 때는 민족대표로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 중 한 분이다. 만주로 망명해 고려혁명당 창당에도 관여하셨다. 그러는 와중에 옥살이도 어려번 하셨다. 우리 집안은 조상대대로 부자였다. 할아버지까지만 해도 서울 ‘재동에서 창신동까지 홍 부잣집 땅을 밟지 않고 갈 수 없다’는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독립운동에 다 쓰셨다. 그 과정에서 아버지도 할아버지 덕을 제대로 보지받지 못하신 것 같다. 가족보다 나라를 먼저 생각한 다른 독립운동가의 후손들과 비슷한 셈이다.

출처: jobsN

가족보다 나라를 우선 생각하셨지만 할아버지도 아들의 밥벌이를 걱정하는 아빠였다. 할아버지는 기술이 있으면 일제에 부역하지 않고서도 먹고는 살 수 있다며 아버지에게 금고 만드는 기술을 배울 것을 권하셨다.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조언을 따랐지만 생각처럼 되지 않았다. 못먹고 못살던 시대였다. 한번 사면 고장도 잘 나지 않아 금고를 찾는 이들이 많지 않았다.


생활이 곤궁했다. 하루는 우리집 살림살이를 안타깝게 생각하시던 외할머니가 내 손을 잡고 당시 금속공예 공장을 운영하시던 이모부에게 데리고 갔다. 그곳에서 기술을 배우라고 했다. 1972년. 내 나이 13살때다. 어린나이에 집을 나와 공장에서 숙식을 하려니 엄마 품이 너무 그리웠다. 선배들은 거칠었다. 잘못하면 말보다 주먹이 먼저 날아왔다. 너무 피곤해 화장실에서 숨어 잔적도 있다. 그러다 걸리면 망치가 날아 오기도 했다. 어리다고 봐주지 않았다. 울기도 참 많이 울었다.


너무 힘들어 공장에서 도망나와 집으로 간 것도 여러 차례다. 그럴 때마다 부모님들은 애처로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시며 별 말씀 없이 품어주셨다. 그러다 며칠이 지나면 외할머니가 다시 내 손을 잡고 이모부 공장에 맡기셨다. 그러면서 시간이 흘렀다. 20대가 되자 확실히 어깨에 힘도 붙고 기술에도 자신감이 생겼다. 위 사람들도 내 기술을 인정해줬다. 나이는 어렸지만 기술 경력 고참이었다. 내가 고안한 디자인을 활용해 독자적으로 제품을 만들어도 칭찬을 받았다. 어느 날 보니 심부름을 하던 꼬마에서 기술자가 돼 있더라.”

-독립운동 때문에 가산을 다 쓰신 할아버지가 원망스럽지는 않았나.


“사실 할아버지가 독립운동을 하신 것은 알았지만 조상 대대로 그렇게 부자였고, 그 많은 재산을 독립운동에 모두 쏟아 부으셨다는 것은 나이를 먹어 알았다. 그 애기를 듣고서도 할아버지를 원망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부잣집 도련님 경험이라도 있었지만 난 그런 경험조차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냥 현실을 받아들였다. 할아버지는 천도교의 장로로서 사회의 지도층이 해야 할 일을 하신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민족의 독립을 위해 헌신하시다가 감옥살이까지 하신 분이라는 것이 자랑스럽기도 했다. 다만 그 당시 가진 자들이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 재산을 지키기 위해 친일한 것은 분명한 잘못인데 그런 이들은 물론 후손들도 반성 없이 사회지도층으로 여전히 잘 사는 모습은 아쉽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금속공예 전문가다. 자랑하는 기술이 있다면.


“최근에는 수요가 많은 은주전자를 주로 만들지만 금속으로 할 수 있는 공예품은 모두 만들어봤다. 여전히 보석함부터, 식기, 제례용품, 사리함 그리고 자그마한 다과용 소반까지 디자인만 있으면 못만들 작품이 없다. 의뢰인의 설명만 들으면 디자인도 직접 할 수 있다. 자랑 같아서 부끄럽지만 이제 재료를 가공해 완제품으로 혼자서 만들 수 있는 사람은 한국에 많지 않다.”


-기술이 좋아도 만든 제품을 팔아야 먹고 살 수 있다. 은을 이용해 100% 수공으로 만들면 비쌀텐데 주로 어떤 사람들이 제품을 구입하나.


“요즘은 수요가 꾸준한 은주전자를 주로 만든다. 은 주전자는 한중일 3국의 차를 즐기고 금전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주로 구입한다. 특히 중국 부호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우리 공방에서 만든 큰 사과만한 은주전자의 경우 중국 현지에서 5000만~6000만원에 팔린다. 작품을 만들어 중국 바이어에게 보내면 그들이 가격을 정해 파는 방식인데 공급하는 가격보다 2~3배 이상 비싸게 팔더라. 요즘엔 약간 판매가 줄었지만 그래도 꾸준히 팔리고 있다.“

-일반인들은 생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비싸다. 중국인들이 왜 찾는다고 생각하는가.


“부유한 사람을 비유할 때 서양에선 은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났다고 한다. 남의 눈을 많이 의식하는 중국 부자들이 자신의 부를 뽐내기 위해 구입하는 것 같다. 그리고 은주전자에 물이 끓이면 물맛이 깊으면서도 부드러워진다. 은주전자로 끓인 부드러운 물에 차를 우리면 차 본연의 맛과 향을 즐길 수 있다. 때문에 차를 즐기는 한국과 일본에서도 주로 차 전문가들이 찾는다.”


-전통문화 공방치고는 일하는 분들의 나이가 많은 것 같지 않다.


“예전에 비하면 요즘에는 나이보다 다 젊어 보인다. 공방에서 일하는 직원 중에 가장 젊은 친구도 50대다. 직원들이 팔팔해 앞으로도 상당기간은 제품을 만드는데 어려움이 없을 것 같다. 그런데 속성으로 배울 수 있는 기술이 아니다. 최소 10년 이상 기술을 배워야 몸에 익는다. 20년쯤 돼야 완벽한 자신의 작품을 만들 수 있다. 가끔 일을 배우고 싶다고 20~30대 젊은이들이 공방에 찾아오지만 오래 버티지 못한다. 아직은 일하는 직원들이 젊어 괜찮지만 맥이 끊길까봐 걱정이다. 과거 중국의 금속 가공기술도 우리나라에 못지 않았다. 어떤 점은 뛰어난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문화대혁명기 사치품이라고 손가락질을 받았다. 그 결과 맥이 끊겼고 기술이 실전됐다. 지금은 기술 수준이 우리보다 떨어진다.”

출처: [한국의 장인] ② 홍재만 대한민국 금속공예장 명장 캡처

-옛날부터 있던 얘기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힘든 일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자식들이 힘든 일을 하려고 하면 부모부터 말린다.


“대장간에서 쓰는 커다란 쇠망치보다는 훨씬 작은 망치로도 하루에만 수만번 금속을 두드린다. 손목, 팔꿈치, 그리고 어깨 관절이 아프다. 지금은 일에 익숙해지고 요령도 생겨 피로가 덜하지만 작업을 좀 오래한 날에는 통증 때문에 파스를 붙인다. 앉아서 하는 일이어서 허리에도 무리가 올 때도 있다. 그래도 이 일은 한번 배우면 체력만 되면 평생할 수 있다. 내 주변의 50대 지인을 만나면 아직 돈을 벌어야 하고 체력적으로도 가능하데 일할 곳이 없다고 푸념하는 이들이 많다. 요즘 이 일을 배우는 20~30대 젊은이가 없다. 일하는 젊은 사람들이 40~50대다. 그래서 지금 젊은이들이 이 일을 배워두면 조만간 정말 귀한 기술자로 인정받는 날이 올 것이다. 그 때가 되면 먹고 사는 수준을 뛰어 넘을 것으로 생각한다.”


-자녀들도 기술을 배우는가.


“조금씩 관심을 보이긴 하는데 아직 배우지는 않는다. 아이들이 이 기술을 배우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억지로 시킬 생각은 없다. 배우려는 의지를 가진 사람이 빠르게 배우고 크게 발전한다. 아들딸 하나씩 모두 둘인데 일의 가치를 알게 되고, 배우고 싶다고 할 때 가르쳐줄 생각이다. 내 자식들 뿐만 아니라 기술을 배우겠다는 열의가 강한 젊은이가 있다면 모두 환영한다. 내가 50년 가까이 배우고 쌓은 기술과 노하우를 숨김없이 전수해줄 계획이다.”


-앞으로 만들고 싶은 작품이 있다면.


“지금은 내가 하고 싶은 일보다 돈을 벌어 같이 일하는 직원들 월급을 챙기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그래서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작품은 미뤄두고 있다. 나중에 시간에 여유가 생기면 천주교 성당의 제례에 쓰이는 용품이나 법당에서 쓰이는 불기를 금속 공예품으로 만들 계획이다. 특히 성당 제례용품 중 상당수는 이탈리아에서 수입한 것을 쓰는데 제대로 된 작품을 만들어 보고 싶다. 지금은 시간 여유가 생길 때마다 어떤 디자인이 어울릴지 생각도 하고 도안도 그려놓고 한다. 평생의 역작이라고 생각하고 만들어 기증할 계획이다.”


글 CCBB 박지환

jobarajob@naver.com

CC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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