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강의 들으면 무조건 1등급" 외치던 스타강사의 '변심'

조회수 2020. 9. 28. 10:0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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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학과 이방인이었던 대학생이 현재 하는 일은?
역사계 '큰별쌤' 최태성
무료 강의하는 24년 차 선생님
"동사형으로 꿈꾸길…."

“안녕하세요, 여러분의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을 책임질 큰별쌤 최태성입니다. 역사는~ 최태성!”


한국사 강사가 강의를 시작하기 전에 외치는 인사다. 지금까지 이것을 들은 ‘랜선 제자(인터넷을 통해 강의를 들은 사람들)’는 500만명이 넘는다고 한다. 수많은 제자를 양성한 주인공은 ‘큰별쌤’ 최태성(48)강사다. 그는 1997년부터 2016년까지 교단에서 고등학생들을 가르쳤다. 2017년부터는 유튜브, EBS 그리고 전국 곳곳에서 더 다양한 학생들을 만나고 있다. 한국사를 가르친 지 24년 차에 접어든 베테랑, 최태성 강사를 만났다.

출처: jobsN
최태성 강사

◇생존 위해 택한 교사의 길


처음부터 역사를 가르치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고등학생 때 점수가 잘 나오는 과목이 역사여서 사학과에 진학했고 동시에 교직을 준비했다. "훌륭한 교사를 꿈꾸면서 교단에 서신 분들께는 죄송하지만 저는 집안 사정이 좋지 않아서 교사를 택했습니다. 연금도 나오고 안정적인 직업이었기 때문이에요."


그러나 사학과는 생각했던 것과 많이 달라 '멘탈붕괴' 상황이었다고 한다. 고등학생 때는 선생님이 던져주는 지식을 그냥 받으면 됐지만 대학은 아니었다. 전공생 사이에서 이방인처럼 떠돌다 역사 세미나를 통해 역사 매력을 느꼈다. 자신과는 다른 관점에서 역사를 바라보고 그것을 공유하면서 내 생각을 향상시키는 게 좋았다고 한다.


졸업 후 1997년부터 안산 백영고등학교와 서울 대광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안정적이라 택한 직업이지만 막상 발령을 받고 나니 좋은 교사가 돼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이 첫 마음을 잊지 말자는 목표로 역사 선생님으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출처: 유튜브 EBSCulture (EBS 교양) 캡처
대광고등학교 선생님 시절 최태성 강사. 그는 학생들이 이해하기 쉬운 판서를 위해 지금도 끊임없이 노력한다고 한다. "선 하나 긋는 것도 다 설계해요. 시간의 흐름, 구도, 배치 등을 생각하고 그려보죠. 그리고 한 시간짜리 강의라면 들어가기 전 A4 용지 10장에 판서를 연습해서 강의 내용을 A 부터 Z까지 외웁니다. 선생님이 앞에서 강의 도중에 자꾸 책을 보면 신뢰를 잃는다고 생각했고 저는 그러고 싶지 않았어요."

◇"돈이 있어도 들을 수밖에 없는 무료 강의로"


아이들이 너무 예뻐 교사로서 줄 수 있는 것은 다 해주고 싶었다. 선한 영향을 주는 건 물론이고 나만의 교수법으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게 도와주고 싶었다. 그때 탄생한 것이 최태성 강사의 장기 '아트판서'다. 아트판서란 그의 강의 내용을 구조적으로 칠판에 옮겨 적은 것인데 다 마치고 보면 하나의 예술 작품 같아서 붙은 이름이다.


"고등학생 때 사회과목 선생님들께서 항상 대분류로 판서를 하는 것이 의문이었습니다. 역사는 시간의 흐름입니다. 이 흐름을 구조화해서 보여주면 좋을 것 같았어요. 또 그날 강의 내용을 한 칠판 안에 완성하고자 했습니다. 대부분 선생님이 글씨를 지우고 새로 쓰는데 저는 한 시간 동안 학생들이 계속 그 흐름을 보고 파악할 수 있게 했어요. 어린 날의 생각을 교단에서 실천한 셈이에요."


교직에 있으면서 EBS에서 역사강의를 맡을 기회가 생겼다. 막연하게 TV에 출연하면 좋겠다 싶어 2001년부터 강의를 시작했다. 그러던 중 '인터넷 강의를 듣고 싶은데 형편이 어렵다. 저는 선생님만 보고 공부해서 대학가야 한다'는 강의 후기를 봤다. 망치로 뒤통수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고 한다.


"저는 제 만족으로 강의를 찍고 있는데 누군가에겐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에 열심히 들을 수 밖에 없는 강의인 거잖아요. 그때부터 '내 강의는 유료 강의를 수강할 돈이 있어도, 들을 수밖에 없는 강의로 만들어야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더 열정적으로 학생들이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 강의를 만들었습니다."

출처: 다산북스 제공
최태성 강사 북토크

◇교직 생활 21년 후 학교 밖에서의 삶


"사교육 들을 필요 없어요. 제 강의 들으시면 무조건 1등급입니다. 저를 믿고 따라 오십시오." 최태성 강사가 강의에서 했던 말이다. 자신의 강의를 모니터링 하고 있다가 문득 '사기를 치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부끄러웠다고 한다. "그때부터 강의에 몰입할 수 없어서 방황했습니다. 어느 날 사회과 교육과정 책자에 적혀 있는 교육 목표인 '민주시민의 양성'이 눈에 들어왔어요. 시험을 위한 강의를 할 수밖에 없지만, 이 목표를 이루려고 했습니다.


전에는 ‘시험에 나오는 비밀결사 단체는 두 개다. 독립 의군부와 대한 광복회 조직인데 중요한 건 박상진의 대한광복회야. 이것만 기억해’라고 했어요. 지금은 강의 후 반드시 삶의 자극을 줄 만한 사람을 소개했습니다. ‘박상진은 경술국치 때 판사였지만 ‘이제부터 내가 앉을 자리는 판사의 앞자리다’라고 선언하고 사표를 냅니다.


요즘 꿈을 물어보면 CEO, 교사 등을 말하는데 이건 직업이에요. 꿈을 명사형으로 갖고 있으면 오류를 범합니다. 만약 박상진의 꿈이 판사였으면 그만두지 않고 일본 법대로 판결 내리며 잘 살았을 거예요. 이런 삶의 오류를 범하지 않았던 이유는 동사형으로 꿈을 꿨기 때문입니다. 법을 몰라 억울한 사람들을 공정한 판결로 돕고 싶어 판사를 했던 것이죠. 너희도 꿈이 무엇인지 박상진의 삶을 통해서 다시 한번 고민해보자.’ 이런 식으로 역사는 사실을 암기하는 게 아닌 사람을 만나는 인문학이라는 걸 알려주죠.”


학교와 EBS에서 역사를 가르치다가 2016년 학교를 그만뒀다. 김영란법 때문에 외부활동을 하는 데 제약이 생겼기 때문이다. 21년 동안 학생을 만났으니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학교를 그만뒀다. 사실 30대에도 학교를 그만둘 수도 있었다고 한다. 학원에서 섭외가 많이 들어왔고 계약서에는 평생 벌어도 손에 넣지 못할 금액이 써 있을 때도 있었다. 당시 흔들리기도 했지만 한번 사는 인생 일관성 있게 살고 싶어 거절했다고 한다.

출처: 유튜브 별별히스토리, MBCentertainment 캡처
유튜브 채널 별별히스토리(좌), 예능에 나와 기부를 실천한 최태성 강사(우)

◇동사형 꿈꾸고, 이룰 수 있길


2017년부터 최태성 강사는 온라인 강의 업체 이투스에서 무료강의를 하고 있다. 그는 “섭외가 들어왔을 때 원하는 것 모두 해주겠다고 해서 무료 강의를 열겠다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지금은 학원에서 유튜브 채널 ‘별별히스토리’를 만들어줘서 따로 강의를 올리고 있다. 영상이 모두 무료라 수입이 없겠다는 질문에 “교재 누적 판매 부수가 120만부다. 교재 판매로 면피하고 있다”고 답했다.


외부 현장 강의는 물론 유튜브를 통한 인터넷 강의를 활발히 하면서 최근엔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도 출연했다. “예능 프로그램에 자주 노출되는 걸 꺼립니다. 섭외가 오면 심사숙고하고 결정해요. 이번에는 올해가 3.1운동 100주년,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이라 출연을 결심했어요. 젊은 층에게 올해가 어떤 해인지, 왜 기억해야 하는지 알리고 싶었어요. 출연 후 또 섭외가 왔지만 제 역할은 다한 것 같아서 감사하지만 거절했습니다.”


지난 6월에는 책 ‘역사의 쓸모’도 출간했다. 학교 선생님을 그만두면서 하고 싶었던 일 중 하나였다. “20대가 다양한 경험을 하는 좌충우돌의 시기라면 30대는 20대 때 찾은 걸 깊게 파면서 전문성을 쌓는 때라고 생각해요. 40대는 그 내공을 기록으로 정리하는 시기라고 생각해서 책을 냈습니다.”


역사를 알리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하는 그의 목표는 초등학생부터 성인까지 아우르는 역사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다. 그의 교육 목표인 ‘민주시민 양성’의 뜻이 담긴 콘텐츠를 만들고 한 곳에 볼 수 있는 사이트를 만들고 싶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최태성과 같은 교육자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조언을 물었다.


“저는 27살에 교사를 시작하면서 꿈을 가졌어요. 그냥 그날에 충실하고 감사하면서 살았더니 여기까지 왔습니다. 이렇게 진부한 하루를 살다 이제 와서 돌아보니 그 삶이 진리였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학생 때는 거창한 목표와 꿈을 정하는 게 부담스럽습니다. 오늘을 귀하게 여기고 최선을 다해 살면 동사형 꿈을 꾸고, 그것을 이룰 수 있을 거예요.” 


글 jobsN 이승아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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