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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땐 '나이스' 운동화 신으면 너무 창피했는데 지금은..

조회수 2020. 9. 28. 10:0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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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땐 '나이스' 신으면 창피했는데..지금은 당당히 '인증샷' 남겨요

1980년대 초반 글로벌 스포츠용품 브랜드 나이키가 국내에 들어왔다. 아이들은 부모가 나이키 신발을 사주지 않으면 밥을 먹지 않고 투쟁한다는 신문기사가 나올 정도로 인기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동대문 뒷골목에는 ‘나이스’라는 운동화가 깔렸다. 대다수 아이들은 나이키 가격의 10분의 1 정도를 주고 산 나이스를 신었다. 그러나 나이스를 신은 아이들은 짝퉁을 신는다고 손가락질 받았다.


당시 짝퉁을 사는 사람들을 눈총을 받았다. 스스로 짝퉁을 구매한 것에 대해 민망해하고 주변 눈치를 살피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분위기는 좀 다르다. 짝퉁이 오리지널 못지않은 인기를 끌기도 한다. 심지어 가짜가 진짜보다 더 사랑받는 경우도 있다. ‘B급의 반란’이다.

출처: 살인의추억 캡처
1980년대 한국사회를 그린 영화 '살인의 추억'. 당시 유행하던 신발 브랜드 '나이스'가 나온다.

◇똑같은 만족감이라면···가성비 따지는 소비자들


유니클로 자매 의류 브랜드 지유(GU)는 지난 6월 수십만원짜리 구찌 티셔츠와 디자인이 똑같은 신제품을 내놓았다. 파라마운트 로고가 박힌 티셔츠다. 앞면 디자인은 작년 구찌가 출시한 티셔츠와 똑같다. 차이는 구찌 제품 뒷면에는 GUCCI라고 써놓았다는 것뿐이었다. 지유 티셔츠는 구찌 티셔츠의 짝퉁이 아니다. 유명 영화 제작사 ‘파라마운트(Paramount)’와 협업해 만든 정품이다. 하지만 앞에서 보면 구별할 수 없다.


큰 차이가 나는 것은 가격이다. 지유 티셔츠는 9900원. 반면 명품 브랜드 구찌 티셔츠는 590달러(약 69만원)다. 구찌와 똑같은 디자인의 티셔츠를 69배나 싼값에 출시한 셈이다. 소비자들 사이에서 화제를 모은 지유 파라마운트 티셔츠는 현재 온라인상에서 품절 상태다.

출처: 각각 지유 홈페이지, 구찌 홈페이지
유니클로 자매 브랜드 지유(GU)의 파라마운트 티셔츠와 구찌 티셔츠.

디자인 도용은 패션업계에서 흔히 있는 일이다. 명품 브랜드도 예외는 아니다. SPA 브랜드는 시장 특성상 명품 브랜드와 비슷한 제품을 빠르게 베껴 물건을 내놓는다. SPA란.. 작년 4월 스페인 SPA브랜드 자라(ZARA)는 명품 브랜드 발렌시아가(Balenciaga)의 495파운드(약 72만원)짜리 신발을 그대로 따라 만든 제품을 출시했다. SPA브랜드란 Speciality retailer Private label Apparel의 약자로 기획, 생산, 유통까지 한 회사가 도맡아 판매하는 의류 브랜드를 말한다.


자라의 스피드러너 신발은 49.55파운드(약 7만원). 발렌시아가 가격의 10분의 1이다. 이 신발을 구입한 한 네티즌은 “가격은 크게 다르지만 품질이 열배 차이 나는 것도 아니다”라고 리뷰를 남겼다. 자라 스피드러너를 사는 사람들은 예전 나이키를 못 사 나이스를 샀던 사람들과 다르다. 지금은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다. 1980년대 중반 우리 국민 소득은 2000달러를 돌파했다. 1만 달러를 넘어선 시점은 90년대 중반이다.

출처: 자라, 발렌시아가 홈페이지
자라와 발렌시아가의 스니커즈.

80년대보다 소득수준이 훨씬 나아졌는데도 불구하고 일부러 가짜를 소비하는 심리는 무엇일까. 상명대학교 이명식 경영학과 교수는 “예전에는 남이 바라보는 자신을 크게 의식했다”고 했다. 이 교수는 “그러나 신세대 소비자들은 자기만족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며 “나이키가 아닌 나이스를 신고도 당당하게 인증샷을 올린다”고 했다. 소득이 높게 치솟아 인기를 얻는 가짜도 있다. 대표적인 제품이 바로 ‘가짜 고기’다.


◇커지는 비건 시장에 ”가짜고기가 식탁 점령한다”는 전망도


미국에선 ‘가짜’고기가 ‘진짜’고기 이상의 인기를 누린다. “그냥 콩을 먹거나 고기를 안 먹지 왜 콩고기를 만드나요?” 최근 채식주의 커뮤니티에 올라온 질문. 식물 단백질로 만든 대체 고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채식주의자들을 위한 제품들이 시장에 많아지고 있다.


20년 뒤에는 인공고기가 식탁을 점령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AT커니(AT Kearney)는 ‘어떻게 인공고기와 대체 고기가 농업·식품 분야를 바꿀 것인가?(How Will Cultured Meat and Meat Alternatives Disrupt the Agricultural and Food Industry?)’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지난 6월12일 발표했다.


AT커니는 2040년에는 지구상에 있는 고기 중 60%는 동물에서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연구소에서 만든 배양육이 35%, 식물성 인공 고기가 25%를 차지할 것으로 내다봤다. 배양육은 동물을 도축하지 않고 세포를 배양해 얻은 고기다. 보통 환경문제나 동물복지 때문에 채식을 하는 이들이 먹는다. 식물성 인공고기는 식물에서 추출한 식물성 단백질로 만든 고기를 말한다.


◇인공육류 만들어 시총 10조원 넘는 기업 나와


채식주의자들이 가짜로 만들어내는 식품은 고기뿐만이 아니다. 100% 식물성 원료만 사용해 만든 대체 요거트인 ‘비거트’, 식물성 올리브유와 두유 등만을 넣어 제조한 ‘비건 마요네즈’, 녹두로 만든 콜레스테롤 제로(0)의 ‘인조 달걀’. 미국 실리콘밸리에선 최근 동물을 학대하거나 도축하지 않고 식물만을 활용해 똑같은 식품을 만들어내는 연구가 활발하다. 쉽게 말해 가짜 마요네즈, 가짜 달걀 등이 인기다.


미국 채식 버거 제조업체 ‘비욘드미트(Beyond Meat)’는 콩·버섯·호박 등에서 추출한 단백질로 100% 식물성 고기를 만든다. 진짜 고기와 똑같아 블라인드 테스트에서 참가자 대다수가 비욘드미트와 진짜 고기를 구분하지 못할 정도다. 작년 매출은 8790만달러(약 1029억원). 영업이익은 2990만달러(약 350억원)를 기록했다. 마이크로소프트(MS) 공동창업자 빌 게이츠, 맥도날드 전 최고경영자(CEO) 돈 톰프슨 등이 투자해 화제를 모았다. 비욘드 미트는 지난 5월 뉴욕 증시에 상장했다. 기업가치 10조원을 훌쩍 넘어서는 ‘유니콘’ 기업이다.

출처: 비욘드미트 홈페이지
진짜 고기와 별다른 차이가 나지 않는 비욘드미트의 미트볼과 버거.

채식주의자를 겨냥한 시장을 뜻하는 '비거노믹스(vegan과 economics의 합성어)'라는 신조어도 나왔다.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2019년은 '비건의 해’"라고 전망했다. 시장 조사 기관 '스태티스타(Statista)'는 세계 채식 시장 규모가 2017년 10억5000만달러(약 1조2285억원)에서 2025년에는 16억3000만달러(약 1조9071억원)로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


이명식 교수는 “가짜고기가 각광받는 현상은 다양한 욕구를 가진 소비자들이 등장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채식주의자는 건강상의 이유나 환경문제 등의 여러 이유로 고기를 피한다. 그러나 채식만으로는 채워질 수 없는 욕구가 분명 존재한다. 이 교수는 “소비자들의 요구를 반영하며 채식과 육식의 장점을 살려 만든 제3의 식품이 탄생한 것”이라고 했다.


◇진짜보다 더 재밌어서 가짜 콘텐츠 소비


‘가짜’가 더 재밌고 정교해서 찾는 사람들도 있다. 2020년 미 대선 민주당 유력 주자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의 웹사이트는 진짜보다 가짜 사이트가 더 인기다. 가짜 사이트는 경쟁 후보인 트럼프 캠프에서 비방용으로 만든 웹사이트다. 트럼프 특유의 상대방을 조롱하는 유머 코드가 담겨있다.


조 바이든 웹사이트(Joe Biden website)를 검색하면 공식 사이트인 ‘JoeBiden.com’ 다음에 ‘JoeBiden.info’라는 페이지가 뜬다. 이곳에 접속하면 ‘바이든 2020’이라는 문구와 함께 바이든의 사진이 메인에 걸려있다. 대선에 출마하려는 후보가 만든 홍보 사이트와 똑같다. 그러나 홈페이지 하단을 보면 바이든이 여성의 목에 손을 올려놓거나 입을 맞추려는 듯한 영상이 올라와 있다. 이와 동시에 “그 누구도 여성에게 손을 댈 권리가 없다”고 한 바이든의 과거 발언도 실려있다.

출처: 구글 캡처
‘JoeBiden을 검색하면 나타나는 웹사이트. 진짜 사이트와 가짜 사이트가 나란히 나온다.
출처: joebiden.info 캡처
조 바이든 미 대선 예비후보를 공격하기 위해 올라온 가짜사이트의 영상들.

이 사이트는 바이든 후보를 공격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트럼프 대통령의 2020년 재선 캠프에서 기획했다. 미국 주요 일간지 뉴욕타임스(NYT)는 2016년 대선 때부터 트럼프 캠프 디지털 전략팀의 ‘핵심 인재’로 활약해왔던 패트릭 몰딘(Patrick Mauldin)이 사이트를 제작했다고 6월29일(현지시각) 보도했다.


몰딘이 만든 가짜 바이든 사이트는 공식 사이트보다 방문자가 더 많다. 웹사이트 분석 업체 ‘시밀러웹(simmilarweb)’은 올해 3월부터 5월까지 가짜 바이든 사이트의 순방문자는 39만여명이라고 밝혔다. 같은 기간 31만여명을 기록한 진짜 바이든 사이트보다 8만명 정도 많았다. 몰딘은 가짜 사이트를 진짜로 착각하고 기부하겠다고 밝힌 네티즌도 있었다고 했다.


가짜 혹은 짝퉁을 소비한다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 사람이 늘고 있다. 이유는 다양하다. 먼저 짝퉁이 가격대비 성능이나 만족도가 높다고 생각하는 합리적인 소비자가 많아졌다. 또 재밌다면 가짜라도 보고 듣고 쓰겠다는 사람도 상당수다. 기업이나 단체는 소비자의 이같은 성향을 파악해 대놓고 ‘가짜 마케팅’을 벌인다. 완전히 새로운 제품을 출시하기보다 이미 시장에 나온 제품을 완성도를 높여 저렴하게 내놓는 것이다. 소비자에게 익숙한 느낌을 주면서 관심을 끌기 위해서다.


글 jobsN 김지아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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