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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묻은 여행 가방 들고 다니던 유명한 의사 선생님, 알고보니..

조회수 2020. 9. 28. 10:1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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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치는 '가짜' 의사행세..피해자 속출

“보통 몰래 가짜 의료행위를 하는 경우가 많죠. 이렇게 대놓고 버젓이 영업하는 경우는 정말 드뭅니다.”


부산 해운대구 경찰서 장준호 경사는 지난 6월 발생한 피부과 사기 의료행위건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검찰은 한 피부과 원장 홍 모씨(61)가 무면허로 의료행위를 했다는 고소장을 접수했다. 경찰은 6월11일 수사에 나섰다.


고소를 한 이는 50세 여성이었다. 2016년 6월14일 홍 씨에게 고주파 레이저 시술을 받았다. 주름제거를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얼굴이 퉁퉁 붓고 턱에 깊은 상처가 생기는 등 부작용이 잇따랐다. 과도한 시술로 피부 속이 타 버린 것이다. 원상태로 돌아오기 위해 다른 병원에서 지방 이식 치료만 세 차례 받았다.


시술 부작용 제보를 받은 보건소 직원은 병원에 조사를 나섰다. 보건소 직원이 의사 가운을 입은 홍씨에게 면허증 제시를 요구하자 그는 무면허 의료행위를 인정했다. 김동철 해운대보건소 의학관리팀 팀장은 "자주 발생하는 일은 아니고 다소 이례적인 사건"이라고 했다.

게티이미지

◇판치는 ‘가짜’ 의사행세···피해자 속출


지난 4월 서울 성북경찰서는 중국 의사를 사칭해 무면허 성형수술을 한 주 모씨(43)를 구속했다. 주씨는 주부들을 상대로 무면허 성형수술을 했다. 싼값에 수술을 해준다는 말에 속은 피해자 일부는 피부 괴사까지 겪을 정도로 피해를 입었다.


경찰은 주씨가 작년 11월말부터 2019년 4월6일까지 아파트 등지에서 주부들을 상대로 의사면허 없이 무면허 성형수술을 했다고 밝혔다. 조선족 출신인 주씨는 중국 성형외과 의사를 사칭했다. 경찰 관계자는 “주부들 사이에서 성형수술로 유명한 중국 의사로 알려져 있으나, 확인 결과 그는 의사면허가 없었다”고 전했다.


주씨는 여행용 가방에 성형수술 도구를 넣고 다녔다. 의료기기 보관부터 비위생적이었다. 혈액이 묻은 수술용 천을 다른 의료기구와 함께 넣은 뒤 소독 없이 재사용했다. 피해자 중 1명은 이마에 지름 8㎝ 가량의 피부가 괴사했다. 주씨는 피해자의 집에서 주름제거 수술·필러시술·리프팅 시술 등을 해주고 그 대가로 500만원의 부당이득을 챙겼다.

게티이미지

경찰 관계자는 “비용이 저렴하다는 이유로 무면허 성형시술을 받는 경우, 세균감염 등으로 피부괴사 부작용을 생길 수 있다”고 했다. 위생적인 의료시설을 구비한 병원에서 전문 의료인의 시술을 받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멀쩡한 의료시설에서도 의사 면허증 없는 의사가 환자의 수술을 집도한 사건도 있었다.


지난 1월 서울 중랑경찰서는 의료법 위반 혐의로 성형외과 의원 원장 A(56)씨와 간호조무사 B(70)씨를 구속했다. 중랑구의 한 성형외과에서 간호조무사가 의사 행세를 하며 성형수술을 했다. 병원장은 이를 알고도 병원 운영비를 아끼기 위해 B씨에게 무면허 시술을 시켰다.


이들은 2015년부터 2018년까지 1528회에 걸쳐 무면허 성형수술과 시술 등의 불법 의료행위를 했다. 간호조무사 B씨는 환자의 쌍꺼풀 수술과 페이스 리프팅 등을 직접 집도했다. 수익은 10억원 상당이었다. 검찰은 지난 1월30일 두 사람을 송치했다.


◇대한민국은 의료 선진국? 의사 사칭범죄 방지해야


한국은 의료 선진국으로 손꼽히는 나라다. 수준 높은 한국의 의료산업은 해외에서도 유명하다. 외국인 환자들이 멀리서 찾아올 정도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은 한국 병원을 찾은 외국인 환자가 증가하는 추세라는 분석 보고서(2017 외국인환자 유치실적 통계보고서)를 작년 말 발표했다. 2009년에는 외국인 6만201명(139개국)이 병원을 가기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 2016년에는 36만4189명까지 늘어났다. 2009년 외국인 환자 진료수입은 총 547억원에 불과했지만 2016년 8806억원으로 크게 성장했다.

자료 한국보건산업진흥원

그러나 한국이 진정한 의료 선진국가로 거듭나기 위해선 불법 의료시술에 대한 처벌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의사 면허가 없는 이들이 가짜 의사 행세를 하며 부당한 이익을 챙긴 사기범죄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2016~2018년 자료(보건복지부·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를 보자. 이 기간 의료인이 아닌 자(비의료인)가 의료행위를 하거나, 의료인이 비의료인에게 면허 밖 의료행위를 시켜 행정처분을 받은 경우는 165건이었다. 그러나 솜방망이 처벌에 그쳤을 뿐이었다. 면허취소 처분을 받은 의료인 97.5%가 면허를 다시 발급받았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는 의료인의 직업윤리에 대한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남인순 의원은 "의료인 면허 규제와 징계정보 공개를 적극적으로 논의해야할 때”라고 작년 10월 해당 자료를 공개하며 말했다. 범죄전문가 염건령 중앙경찰대학교수는 “한국이 의료 선진국이라고 하기엔 갖춰야 할 시스템이 아직 많다”고 했다. 그중에서도 의사를 사칭하는 범죄를 방지하기 위한 관리·감독 시스템이 허술하다고 지적했다.


◇이민자 많은 호주는 최근 “가짜 의료 범죄 근절하겠다” 선포


한국만 무면허 불법 의료행위로 골머리를 앓는 것은 아니다. 그중 호주는 관련 범죄자들을 엄중히 처벌하겠다고 나섰다. 호주 정부는 7월 1일 의사를 사칭하는 가짜 의사들에 대한 처벌을 강화한다고 밝혔다. 호주의료인감독청 AHPRA(Australian Health Practitioner Regulation Agency)은 2014년 이후 발생한 가짜 의사 의료진 사칭 행위가 총 1300건 이상에 달한다고 했다. 이 중 기소건은 50건 이상이었다.


정부는 벌금을 2배로 늘리고 최대 3년 실형까지 주도록 처벌을 강화했다. 개인이 불법 의료 범죄를 저질렀다면 기존 3만달러(약 3549만원)에서 앞으로는 6만달러(7098만원)의 벌금을 내야 한다. 기존 6만달러를 냈던 법인은 앞으로 12만 달러(1억4000만원)까지 벌금을 낼 각오를 해야 한다. 실형 처벌은 건당 3년 이상으로 강화했다.

최근 호주에선 의사 사칭범들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나섰다. 왼쪽은 산부인과 의사를 사칭한 라파엘 디 파올로(Raddaele Di Paolo). 무면허로 30명의 환자를 치료하며 불법마취, 약물투약, 불법수술 등의 범죄를 저질렀다.

호주가 의료 사칭 범죄에 강수를 둔 이유는 매년 해당 범죄율이 증가하는데다 피해자가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호주는 이민자가 많은 나라다. 세계 각국에서 모인 이민자 중 의사를 사칭해 신분을 세탁하려는 범죄자들이 많아 골머리를 썩었다.


2017년 인도 출생의 호주인 샴 아차리아라는 인도 의사의 신분증을 도용해 10년 넘게 의사 생활을 했다. 그는 의사로 사칭한 채 영국계 글로벌 제약사 아스트라제네카에서도 근무했다.


샴 아차리아는 인도 의사의 신분증을 훔쳐 2003년 호주 뉴사우스웨일스(NSW)주 의료위원회에 등록해 의사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신분 세탁을 한 뒤 시드니를 포함한 NSW주 4개 병원을 옮겨 다니며 10년 이상 의사로 일했다. 이 기간 동안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팔 골절 치료로 1차례 정도 환자의 불만 제기만 받았을 뿐이었다. 샴 아차리아는 의사 신분으로 시민권까지 땄다.

출처: 뉴사우스웨일스(NSW) 캡처
샴 아차리아가 훔친 인도 의사의 면허증. 오른쪽은 샴 아차리아 본인.

2013년과 2014년 사이 11개월간 영국계 글로벌 제약사인 아스트라제네카의 시드니 사무소로 옮겨 일했다. 이어 2015년 6월에는 시드니의 임상시험 회사에 입사해 1년 이상 일했다. 2015년 9월 그의 신분과 자격증에 의심한 회사 측 신고로 결국 거짓 신분이 탄로 났다.


그가 당시 물었던 벌금은 3만 호주달러(약 2600만원)였다. 시민권도 박탈당했다. 의료계는 당시 의사 면허증 검사 시스템이 허술했다고 인정했다. 피터 더튼 이민장관은 멜버른 언론 등을 통해 "이번 일은 시스템에 큰 구멍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했다.


◇한국은 처벌규정 약한데다 재범 가능성 높다는 지적 나와


최근 조선족 노동자와 다문화 가정이 급증하고 있는 한국도 비슷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염건령 교수는 “의료사기범에 대한 처벌법을 강화해야 한다"라고 했다. 의사를 사칭하는 범죄자들은 환자들의 생명을 위협할 정도로 큰 피해를 입힌다. 염 교수는 “징역 판결을 받는다고 해봤자 2년 이내의 실형 수준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이들은 사회에 나와 같은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했다.


염 교수는 지자체 보건소에서 정기적으로 현장에 나가 의사 면허증을 구비한 의사가 진찰하고 있는지 등을 점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환자들이 병원에서 의사 가운을 입고 가짜 면허증을 단 의사 사칭범을 알아보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염 교수는 “생명을 다루는 문제인 만큼 지금보다 더 확실하고 철저한 관리·처벌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글 jobsN 김지아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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