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3명 베란다 밖으로 던져 살해한 양로원 직원, 이유가..

조회수 2020. 9. 28. 10:1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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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야 끝나요"..긴 병에 답 없는 간병살인

아들의 병수발을 20년 넘게 해왔던 70대 아버지가 결국 극단적 선택을 했다. 지난 7월2일 충남 천안시 동남구 천안의료원. 간호사는 A씨(45)와 아버지 B씨(76)가 함께 숨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A씨는 1997년 대구의 한 산업현장에서 추락 사고로 전신마비 진단을 받았다. 22년간 아버지 B씨가 아들 A씨를 돌봐왔다. 시신이 있었던 병실에는 B씨가 작성한 것으로 여겨지는 유서가 있었다. 병원 측은 부자가 독극물로 죽었다는 1차 사망소견을 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이뤄진 부검 결과 아버지 몸에서 농약 성분이 나왔다.


이 일이 있기 얼마 전 천안에서 비슷한 사건이 발생했다. 치매에 걸린 아내를 7년간 간호해온 80대 남편이 아내를 살해한 것. 전주지법 군산지원 제1형사부는 살인 혐의로 기소당한 A씨(81)에게 징역 3년을 6월27일 선고했다. 2012년부터 지극정성으로 아내를 돌봐왔던 그였다. 나이가 들면서 점차 힘이 부쳤다. 직접 간병하기 어렵다고 여긴 그는 아내를 요양병원에 입원시키려 했다. 아내는 완강히 거부했다.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4월22일 새벽 A씨는 아내와 요양병원 입원을 둘러싸고 말다툼을 벌이던 중 격분해 흉기로 아내를 살해했다. A씨는 아내의 시신 옆에서 통곡하다 범행 3시간 뒤 아들에게 전화했다. 부모 집에 도착한 아들은 경찰에 아버지를 신고했다. A씨는 경찰조서에서 “지병이 있어 병간호를 계속하기 힘들었다. 자식에게 부담주기 싫어 함께 죽으려 했다”고 진술했다. A씨는 “아들에게 미안하다”는 유서까지 써 놓았지만 스스로 목숨을 끊지는 못했다.


지난 2월 간병생활을 견디다 못해 아버지를 숨지게 한 뒤 아파트에서 투신한 아들의 비극이 세상에 알려졌다. 청주시 서원구 수곡동 한 아파트 화단에 A씨(49)가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는 것을 주민이 발견했다. 머리를 심하게 다친 A씨는 병원에 이동 중 숨졌다. A씨의 사고 현장에서 1.5km A씨 아파트에선 아버지 B씨(85)가 숨져있었다. A씨 아버지는 목 부위가 눌린 흔적이 있었다. 집에서는 A씨가 작성한 유서가 나왔다. ‘아버지를 데려간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경찰 관계자는 “A씨가 아버지를 숨지게 한 뒤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A씨는 10여년 전 직장을 그만두고 치매·척추협착증을 앓는 아버지를 간호해왔다. 생활비는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A씨의 아내와 A씨 형제들이 보탰다. 하지만 최근 아버지가 심근경색에 걸리는 등 몸 상태가 급격히 나빠지자 정신적인 고통을 호소해왔다.


주변 지인들은 “A씨가 워낙 극진히 아버지를 보살펴 주변에선 효자로 불렸다”고 증언했다.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A씨와 B씨의 부검을 의뢰하고 공소권 없음으로 수사를 종결지었다.

출처: 조선DB
한 요양병원에서 간병인이 환자를 돌보고 있다.

오랜 기간 환자의 병간호를 해오던 간병인이 환자를 죽이는 걸 ‘간병살인’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가족이 치매 환자를 간병한다. 이들은 간병살인을 저지른 후 가족을 살해했다는 죄책감에 자신의 목숨도 끊는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다. 서울대학교 간호학과 이명선 명예교수가 쓴 ‘부양부담과 가족극복력이 치매노인 부양가족의 적응에 미치는 영향’ 이라는 논문을 보자. 국내 치매 환자의 72%를 가족이 간병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가족 간병인 대부분이 전문적으로 간병 교육을 받거나 간병을 해본 경험이 없다.


치매 환자를 부양하는 가족 간병인은 피로·건강 악화·체력 소진과 같은 문제를 겪는다. 또 불안·우울·사회 활동 제약으로 사회적 고립도 경험한다. 이 명예교수는 “효 사상이 중요한 우리사회에서는 아픈 가족을 간병하는 것이 하나의 의무로 여겨진다”고 했다. 그러나 과거와 달리 환자를 간병하는 강도가 강해지고 그 기간도 길어지고 있다. 가족 간병인의 간병 부담이 커졌다. 이같은 부담감은 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진다.


가족간병인 10명 중 3명은 간병의 어려움 때문에 환자를 죽이거나 같이 죽으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서울신문이 한국치매협회·뇌질환환우모임과 2018년 7~8월 가족간병인 325명을 대상으로 공동으로 설문조사한 결과가 있다. 응답자 95.7%가 “간병으로 신체와 정신 모두 한계에 몰리고 있다고 느꼈다”고 했다. 살인 내지는 자살 충동을 느꼈다고 한 간병인도 29.2%였다. 이들은 간병 기간이 7년 이상 길어지거나 간병 시간이 하루 평균 8시간을 넘어갈 때 부정적인 생각을 강하게 했다.

출처: 유튜브 암환자뽀삐 채널 캡처
유튜버 '암환자뽀삐'는 ‘암투병 부모님을 간병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이라는 제목으로 암환자의 고충을 털어놓았다.

간병하는 가족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건 악몽 같은 현실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점이었다. 76.9%의 간병인이 수면 부족도 심각한 문제라고 호소했다. 또 10명 가운데 7명 이상(71%)이 간병 이후 자신의 건강도 나빠졌다고 했다.


긴 간병에 지치는 건 가족뿐만이 아니다. 전문 간병인이 환자를 살해하는 사례도 있었다. 2018년 3월 가나가와현의 한 양로원 직원은 밤에 순찰을 하다가 앙상한 노인을 번쩍 들어 베란다 밖으로 집어던지는 수법으로 노인 3명을 살해했다. 죽은 노인에게 원한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살해 이유를 묻자 "손이 가는 노인이 많아 간호 일에 스트레스가 쌓였다. 입소자를 줄이고 싶었다"고 했다.


2018년 7월 일본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 한 병원에 근무하던 수간호사 구보키 아유미(31)는 경찰에 붙잡혔다. 2016년 9월까지 이 병원에서는 3개월동안 48명이 연달아 사망했다. 경찰은 아유미가 연쇄살인범일 가능성을 두고 수사를 벌였다. 구보키는 2016년 9월18일, 20일에 사망한 80대 환자 2명의 링거에 계면활성제 성분의 소독액을 투여한 혐의를 받고 있다.

출처: NHK캡처
환자의 링거로 불법 약물을 투약한 혐의를 받고 있는 간호사 구보키 아유미. 그가 근무하던 병원.

구보키는 “약 20명의 환자에게 링거를 통해 소독액을 투입했다”고 진술했다. 그가 다른 환자들도 살해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경찰은 수사를 확대했다. 구보키는 범행 동기에 대해 “환자 상태가 나빠지는 것을 보기 싫었다”며 “내가 근무할 때 죽으면 유족에게 설명하는 것이 귀찮았다”고 했다.


우리보다 먼저 초고령사회로 진입한 일본은 1980년대부터 간병살인을 심각한 사회문제로 보고 있다. 후생노동성은 2006년부터 2015년까지 발생한 개호살인(일상생활을 할 수 없는 환자를 돌보다 가족이 죽이는 것)을 조사했다. 총 247건에 달했다. 신문기사를 분석한 한 조사를 보면 1998~2015년까지는 716건이 발생했고, 724명이 사망한 것으로 나타났다. 평균적으로 연간 40여건, 매월 3건 이상이다. 1~2주에 한 번씩 개호살인이 발생하는 셈이다.


일본은 간병살인에 대한 대책을 구체적으로 마련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NHK 특별취재팀은 개호살인 다큐멘터리를 방영하고 2017년 이 내용을 책으로 발간했다. 책 ‘엄마가 죽었으면 좋겠다’는 개호살인 가해자들의 목소리를 담은 내용이다. NHK 측은 개호살인을 막기 위한 대안으로 환자가 아닌 간병인을 지원하자고 제안했다. 홋카이도 구리야마는 환자 대신 재택 간병인을 지원하는 정책을 펼쳤다. 간병인이 외부로부터 고립되는 것을 방지하자는 정책이었다. 주위 사람이 간병인의 상태를 들여다볼 수만 있어도 최악의 상황은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 고령자가 간병문제로 자녀가 사는 도시로 이동할 때 빈 기존 공동주택을 활용하는 대안도 떠오르고 있다. 일본 뉴타운을 관리하는 유아르(UR·독립행정법인 도시재생기구)는 작년 말 자녀 세대와 가까운 거리에 있는 UR의 임대주택에 고령자 세대가 입주하는 제도를 제시했다. 자녀와 고령자가 이곳에 입주하면 임대료 할인을 받을 수 있다. 치매환자나 간병인을 특정 지역에만 고립시키지 않는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일본 정부는 이밖에도 간병인과 환자가 여러 주민들과 교류할 수 있는 주거구조를 만드는데 주력하고 있다.


연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송인한 교수는 “간병살인은 환자의 질병치료를 가족에게만 맡기는 시스템에서 기인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송 교수는 “환자를 돌보는 간병인에게도 사회적 관심을 기울이고 안전망을 적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글 jobsN 김지아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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