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검색어 입력폼

"살고 싶어서.." 8년차 암 환자인 전 오늘도 이 일을 합니다

조회수 2020. 9. 28. 10:25 수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살고 싶어서요" 오늘도 버킷리스트를 적는 암 환자 유튜버

꿈 많던 24살, 난소암 3기 판정을 받았다. 5년간 암이 재발하지 않으면 완치 판정을 받는다. 2016년, 완치 판정을 4개월 앞두고 운명의 장난처럼 암이 재발했다.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자신의 경험을 전하며 암 환자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다는 유튜버 조윤주(31)씨의 이야기다.

조윤주씨 제공

-자기소개를 해달라.

얼마 전 ‘암밍아웃’을 한 8년 차 암 환자 조윤주(31)다. ‘암밍아웃’은 암과 커밍아웃의 합성어다. 암 환자라는 사실을 주변에 당당하게 밝혔다. 유튜브 채널 ‘암환자뽀삐’ 운영자이기도 하다. 현재 난소암 3기C 환자다. 전이 상태와 진행속도에 따라 숫자와 알파벳으로 나눈다. 난소암의 경우 1기는 종양이 난소에만 있는 경우, 2기는 난소 외 골반 내 다른 장기로 전이된 상태, 3기는 종양이 난소, 골반을 넘어 복부까지 퍼지거나 림프절 전이가 있는 경우다. 4기는 복부 장기를 벗어나 간까지 전이 된 상태다. 기수 내에서 A·B·C로 또 나눈다. A에서 C로 갈수록 상태가 더 안 좋다.


복막 쪽에 암세포가 자잘하게 많이 퍼진 상태다. 현재는 항암치료를 하고 있지 않다. 추적검사를 하고 있다. 3개월에 한 번씩 암이 진행 중인지 검사를 받는다. 암이 진행되지 않은 상태면 추가 치료는 받지 않는다. 현재 1년 정도 암세포가 커지지 않은 상태다.

유튜브 채널 '암환자뽀삐' 영상 캡처

-언제 처음 암을 진단받았나.
2011년 난소암 3기를 진단받았다. 24살 때였다. 당시 CS 친절 서비스 강사로 일했다. 일을 시작한 지 4개월 만에 암 판정을 받았다. 월경 기간 때 몇 번 쓰러졌다.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갑자기 어지러워서 내린 적도 있다. 부인과 문제 같아서 충무로 제일병원을 찾았다. 처음에는 난소에 혹이 있다며, 혹을 떼는 수술을 한다고 했다. 알고 보니 혹이 아닌 암이었다. 자궁과 난소를 절제했다. 난소 외 복막 쪽에도 암세포가 퍼진 상태였다. 복막은 복부 장기를 둘러싸고 있는 투명한 막이다. 처음 암 판정을 받고 별생각이 없었다. 그냥 멍했다. 항암치료를 3주에 1번 주기로 6번 받았다. 환자마다 치료 방법이 다르다. 난 주사로 약물을 주입하는 치료를 받았다.


-암이 재발했다고.
2016년, 추적검사를 4년 6개월째 받던 시기였다. 5년간 암이 재발하지 않으면 완치 판정을 받는다. 4개월만 지나면 완치 판정을 받는 상황이었다. 그때 암이 재발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다시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이 절망스러웠다.


삼성서울병원으로 옮겼다. 2017년 처음으로 개복 수술을 받았다. 생각보다 암세포가 있는 범위가 넓었기 때문이다. 수술을 받고 1년간 항암치료를 했다. 한 달에 1번 주기로 12번 치료를 받았다. 친구들에게 습관적으로 했던 말이 있었다. 암이 재발하면 그냥 죽을 거라고 했다. 상상도 하기 싫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다 포기하고 싶었다. 너무 힘들고 지친 상태였다.

출처: 유튜브 채널 '암환자뽀삐' 영상 캡처
추적검사를 받고 있는 조윤주씨.

-치료 과정은 어땠나.

항암치료 부작용이 심했다. 울렁거리고 속이 안 좋았다. 먹은 음식들을 다 토했다. 모든 관절을 구부리지 못할 만큼 저릿하고 아팠다. 손목, 발등, 발뒤꿈치의 피부가 헐어서 신발도 못 신고 다녔다.


1차 항암 치료를 받고 2주 뒤부터 온몸에 있는 털들이 다 빠졌다. 머리카락, 속눈썹, 눈썹 등 모든 털이 사라졌다. 처음에는 신기했다. 이 정도로 털이 다 없어질 수 있구나 싶었다. 머리카락을 손으로 잡으면 잡은 만큼 다 빠진다. 머리카락이 없으니까 가발을 쓰고 다녔다. 치료가 끝나면 솜털부터 다시 자란다. 단발머리까지 기르는 데 2년 가까이 걸렸다. 4~6개월 기르면 숏커트 정도 길이가 된다.


-죽음을 생각해본 적도 있나.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암이 재발한 상태였고, 항암 부작용도 컸다. 다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했다. 내가 죽는다면 사람들이 많이 슬퍼할까. 얼마나 슬퍼할까. 사후세계는 있을까. 이런 생각들을 했다.


하지만 친구들이 옆에서 계속 격려해줬다. 치료를 안 받고 죽는다고 하면 부모님이 속상해하시겠다는 생각도 했다. 버킷리스트를 많이 적었다. 죽기 전에 하고 싶은 걸 생각했다. 살고 싶어서였다. 버킷리스트를 적으면 하고 싶은 게 있으니까 살고 싶어졌다. 버킷리스트에는 스쿠버다이빙 자격증 따기, 자동차 사서 자동차 극장에서 영화 보기 등이 있었다. 지금은 두 가지 모두 이룬 상태다. 2017년 사이판에서 스쿠버다이빙 자격증을 땄다. 2016년 암이 재발했다는 판정을 받고, 삼성서울병원으로 옮기기 전에 사이판으로 여행을 갔다. 어차피 수술해야 하는데 날짜를 좀 더 미루고 재밌게 놀다 오자는 생각이었다. 2주간 신나게 놀았다. 첫차는 2016년 3월에 샀다. 300만원짜리 중고차였다. 자동차 극장에 가서 영화를 봤다. 버킷리스트에 적은 것을 하나씩 이루고 있다. 생각날 때마다 쓰고 있다. 거창한 것을 적지 않는다. 이룰 수 있는 것 중에 재밌어 보이는 것을 적는다. 다음 목표는 패러글라이딩이다. 가을에 하려고 계획 중이다.

유튜브 채널 '암환자뽀삐' 영상 캡처

최악의 상황도 조윤주씨는 유쾌하게 받아들였다. 자신을 향해 출산드라를 닮았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출산 못하니까 출산드라 닮았다고 하지말라”고 한다. ‘출산드라’는 2005년 KBS ‘개그콘서트’에서 개그맨 김현숙이 분한 캐릭터 이름이다. ‘자연분만 모유수유’라는 유행어를 남겼다. 윤주씨는 “출산도 못 하는 사람한테 너무한 거 아니냐”며 웃으면서 말한다.


또 차마 꺼내기 어려운 이야기도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난소암 투병 중 남친에게 들었던 충격적인 이야기’라며 자신의 연애 이야기를 고백했다. “아기를 못 가지니까 대리모로 아기를 낳자고 했어요.” 남자친구에게 들은 말 중 가장 충격적이었다고 했다. 윤주씨는 “몸이 아파도 을의 연애는 하지 말자”며 “굳이 나를 낮춰가면서 만날 필요는 없다”고 덧붙였다. 누군가에겐 숨기고 싶은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가 유튜브를 시작한 이유는 무엇일까.

출처: 조윤주씨 제공
유튜브 영상을 제작중인 조윤주씨.

-’암밍아웃’한 이유는.

특별한 이유나 계기는 없다. 일단 건강 상태가 전보다 괜찮아졌기 때문이다. 2019년 1월 1일 유튜브 ‘암환자뽀삐’를 개설했다. 친한 친구가 유튜브에 암 투병 사연을 소개해보라고 제안했다.


병원에 가면 젊은 암 환자들이 많다. 하지만 막상 사회에 나오면 찾아보기 힘들다. 왜 주변엔 없을까 생각했다. 나랑 같은 마음일 것 같았다. 용기를 주고 싶었다. 암 환자들이 당당하게 세상에 나올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치료를 받으면 머리카락이 빠지는 등 외적인 변화가 크다. 다른 사람들은 멀쩡한데 나만 아픈 게 억울하다. 사람들의 시선이 두렵기도 하다. 암 환자에 대해 사회적 인식이 오히려 부담스럽다. 암 환자는 항상 힘들 것 같고, 피곤할 것 같고, 매일 아플 것 같다고 생각한다. 사실은 그게 아니다. 나보다 더 멀쩡하고 밝게 잘 지내는 분들도 많다. ‘넌 암 환자니까’라는 편견을 깨고 싶었다. 암 환자도 직장생활을 할 수 있다. 아프다는 사실 때문에 과한 배려를 받는 게 불편할 때도 있다. 이런 걸 깨고 싶었다.

유튜브 채널 '암환자뽀삐' 영상 캡처

유튜브에서 먹방도 하고 일상도 소개한다. 친구들과 맛집을 가거나 노래방에서 노는 모습을 올린다. 또 환자들과 그 가족들을 대상으로 상담도 하고 있다. 암 환자를 어떻게 대하면 좋을지 말한다. 추적검사 과정을 공개한 적도 있다. 경험담을 살려 유튜브에 암 환자를 위한 가발 리뷰 영상을 올렸다. 항암치료 때문에 머리카락이 없던 시절부터 지금의 긴 머리로 파마를 하는 모습을 담기도 했다.


유튜브 구독자 중 젊은 암 환자들이 댓글을 많이 남긴다. 암 환자들끼리만 아는 약, 부작용 같은 이야기를 나눈다. 덩달아 위로와 힘을 많이 받는다. 현재 한 달에 두 번 유튜브에서 라이브를 하며 소통하고 있다. 며칠 전에는 4시간 30분간 라이브를 하며 구독자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조윤주씨 제공

-현재 하는 일은.

지금은 중·고·대학생을 대상으로 취업 관련 강의를 하고 있다. 프리랜서로 일한다. 2017년 5월 개복수술을 받고, 2달간 병원에 입원해 항암치료를 받았다. 6월 말 퇴원을 했다. 긴 터널을 뚫고 나온 기분이었다. 2017년 9월 다시 강의를 시작했다. 강의장에서 강의하는데 기분이 정말 좋았다. ‘나 이번에도 살았구나’ ‘내가 살아있구나’ 생각했다. 기분 좋게 일했다. 일하러 가려고 차에 시동을 거는 내 모습이 사랑스럽고 좋았다.


현재 일주일에 2~3번 정도 강의를 나간다. 돈을 많이 버는 게 목표가 아니다. 건강을 잃지 않는 선에서 일을 한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고 한다. 하는 만큼 벌다 보니 보통 직장인들보다 수입은 적다. 일을 많이 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한 달에 8~9번, 많으면 10번 한다. 자동차 할부금, 집 월세, 곗돈, 잡다한 생활비를 내면 딱 맞다.

조윤주씨 제공

-같은 암 환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

다들 ‘너무 힘들죠? 다 지나갈 거예요’라는 말을 자주 한다. 사실 이런 말들은 공감이 안 된다. 나도 그랬다. 그냥 울고 싶으면 울어야 한다. 굳이 웃고 싶지 않은데 웃으라고 하기 싫다. 감정 표현에 솔직했으면 좋겠다. 그냥 버틴다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다들 그 고통을 좀 더 잘 견뎠으면 한다. 그리고 모두 아프지 않기를 바란다.


-앞으로의 꿈과 목표.
난 하루살이 인생을 살고 있다. 꿈이나 목표를 거창하게 두지 않는다. 목표를 크게 잡지 않는 이유는 그것들을 다 이루지 못하면 얼마나 크게 좌절할지 알기 때문이다. 암이 재발하기 전에 ‘꼭 완치 판정을 받아서 많은 일을 할 거다’라고 다짐했다. 그런데 암이 재발했다.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재발하고 나서는 큰 목표나 원대한 꿈이 없다. 하루하루 의미 있게 보내는 게 중요하다. 욕심부리지 않고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다. 힘을 주는 존재가 되고 싶다.


글 jobsN 임헌진
jobarajob@naver.com
잡스엔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