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식탁에 후쿠시마산 못 올리게 만든 한일전 승리 주역

조회수 2020. 9. 28. 11:0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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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 한일전, 이겼을 땐 짜릿했죠'..고성민 전 산업부 사무관
WTO 후쿠시마산 수산물 금지 분쟁에서 한국 승리
1심·2심 전과정에 참여한 ‘한일전’ 승리 주역
난민 돕던 변호사에서 나랏일 하는 공무원으로

“1심 판정을 뒤엎고 2심에서 승소했을 때 정말 짜릿했어요. 1심 보고서를 수십번 다시 읽으면서 상대측 논리에서 허점을 찾으려고 노력했죠. ‘1심 때처럼 이번에도 이기기 힘들지 않을까’라고 말을 들었을 때 저는 이렇게 말했어요. 열심히 준비한 만큼 충분히 할 만한 싸움이라고.”


4월 11일, 우리나라는 일본을 상대로 한 WTO(무역분쟁기구) 수산물 수입 금지 분쟁 2심에서 이겼다. 작년에 치른 1심에서는 패소했다. ‘일본산 수산물이 해롭다는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수입 금지 조치는 차별’이라는 논리에 밀렸다. 하지만 WTO 상소기구는 다르게 판단했다. 일본과 거리가 가까운 한국이 원전사고의 잠재적 위험에 대비해 수입을 금지할 수 있다며 한국 측 손을 들어줬다. 1년만에 이뤄낸 ‘역전승’인 셈이다. 이번 ‘무역 한일전’의 전과정에 참여한 고성민 전 산업통상자원부 사무관을 만났다.


◇원래는 변호사 일하면서 난민들 도와


-자기 소개를 해달라.


“고성민 산업통상자원부 전 사무관이다. WTO 한일 수산물 분쟁에 참여했다. 2014년 5월부터 5년간 산업부에서 전문임기제 공무원으로 일했다. 전문임기제는 일정 기간 동안에만 일반직 공무원을 임용해서 전문지식이 필요한 업무를 맡기는 제도다. 나는 통상법 전문이었다. 지금은 계약 기간이 끝나서 쉬는 중이다. 앞으로 뭘 할지 여러가지 계획을 짜고 있다.”

출처: jobsN
고성민 전 사무관.

-WTO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금지 분쟁’이 무엇인지 간략하게 설명해달라.


“우리나라는 2011년 3월에 일본 후쿠시마에서 원전 사고가 터진 후 후쿠시마 주변 8개 현에서 나는 모든 수산물 수입을 금지했다. 그러자 일본이 2015년도 5월 우리나라 정부의 수입 금지 조치가 부당하다면서 WTO에 제소했다. 2018년 2월에 1심이 열렸지만 당시엔 패소했다. 재판부가 일본산 식품의 방사능 수치가 다른 국가들과 비슷한데 수입을 규제하는 것은 ‘자의적인 차별’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2심에서 판정을 뒤집었다. WTO는 우리나라가 일본과 가까운 곳에 있기 때문에 후쿠시마 원전 사고 같은 특수한 상황을 충분히 고려할 수 있다고 봤다. ‘자의적 차별’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후쿠시마 주변에서 생산한 식품이 밥상에 올라오는 것을 원천봉쇄했다.”


-5월 말엔 ‘일 잘하는 공무원’ 오찬 자리에 초청받아서 청와대에 갔다.


“영광이었다. 일 잘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나. WTO 승소가 화제를 모았고 개인적으로는 운이 좋아서 초청받았을 뿐이다. 16개 부처 공무원 23명이 왔다. 사람들이 다 모였을 때 각자 어떤 업무를 맡았는지 간략하게 소개했다. 모두가 힘든 업무를 각자 자리에서 열심히 하고 있었다.”

출처: 고성민씨 제공
WTO 1심 준비 당시 회의에 참석한 고성민 전 사무관.

-미국 뉴욕주에서 변호사로 일한 적이 있다고 들었다.


“이화여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서강대 국제대학원을 다녔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서 워싱턴 주립대 로스쿨에 갔다. 2012년에 뉴욕주 변호사시험에 합격했다. 원래는 통상법이 아니라 이민법에 관심이 많았다. 학교가 미국 시애틀에 있는데 당시 시애틀은 아프리카계 사람들이 뉴욕 다음으로 많은 지역이었다.


이민법 공부 후 법의 보호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돕고 싶었다. 원래 사람의 기본권, 인권에 관심이 많았다. 법학을 공부하면서 헌법 수업을 들을 때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변호사가 되기 위해 배운 지식을 잘 활용하면 이민자들의 기본권을 보호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아프리카계 사람들이 난민 신청을 할 수 있도록 도왔다.”


◇사회에 도움되는 사람이 되길 바라


-산업부에서 통상 관련 일을 시작한 계기가 궁금하다.


“멘토가 제안해서 시작했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당시 법무법인 율촌에서 일했던 김의기 고문이 내 멘토다. WTO 참사관 고문으로도 21년간 일하셨다. 미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처음 만났다. 한국에 와서 약 3개월간 율촌 인턴으로 일했다. 이 분 아래에서 원산지 관리 업무 등 통상법을 처음 접했다. 통상법을 본격적으로 공부해보면 어떻겠냐고 말씀하셨다.


일을 하는 와중에 산업부 공고가 났다. 고문님이랑 상의를 하다가 한번 지원해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었다. 산업부에서 공무원으로 일을 하면 평소 중요하게 여겼던 가치를 이룰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산업부 특별채용에 지원했다.”


-산업부에 들어가자마자 WTO 업무를 맡은 것인가.


“아니다. 처음에는 자유무역협정(FTA) 상품과에서 일했다. 2년 반 동안 상품 분야 협상 실무팀에 있었다. 2016년 10월에 통상분쟁대응과에 들어갔다. 여기서 WTO 분쟁 업무를 맡았다.”


-보수는?


“전문임기제 공무원은 경력이 있는 경우가 많으니 신입 공무원보다는 급여를 좀더 받는다. 일반 공무원과는 다르게 보수를 연봉으로 받는다. 일반 공무원들은 호봉제 적용 대상이다. 사무관은 5급 공무원이다. 신입 5급 공무원은 1호봉 기준 한달에 약 250만원을 받는다.”


-WTO 재판을 준비하는 과정은 어땠나.


“처음엔 시차에 적응하는 일이 힘들었다. 재판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숙면이 필요했다. 그런데 한국과 WTO 본부가 있는 스위스 사이엔 7시간의 시차가 있다. 재판을 본격적으로 준비하면서부턴 잠을 거의 못 잤다. 밤을 새거나 2시간 정도 자는 게 기본이었다. 각자가 맡은 일이 있었는데 이 일을 끝내기 전까지는 잠을 못 잤다.


또 이전 부서에 있을 때와는 달리 행정 업무가 많아서 힘들었다. 상품과에 있었을 때는 협상에만 신경을 썼다. 협상팀을 이끄는 총괄부서가 따로 있었다. 하지만 여기선 분쟁대응실무와 더불어서 행정업무도 담당사무관이 다 처리해야 했다. 예를 들어서 협상을 하기 위해서 중국이나 미국을 간다고 하면 호텔 예약 등도 다 담당사무관이 준비했다.


다른 부처와 협의하는 과정도 많았다. 여러가지를 조율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국제 무역 분쟁이라고 해서 다른 나라와만 일을 하진 않는다. 국내 부처끼리 협업할 할 일도 많다. 이번 무역분쟁엔 산업부 말고도 식약처, 원자력안전위원회, 해수부, 외교부 등 여러 부처들이 참여했다.”

출처: 고성민씨 제공
WTO 2심에 들어갈 때 받은 출입증.

-‘무역 한일전’에서 오는 부담은 없었는지.


“상대가 일본이라는 이유로 부담감이 더 크진 않았다. 국가마다 예민한 부분이 하나씩은 있다. 물론 지면 안 된다는 생각은 가지고 있었다. 이기고 싶었다.”


◇ ‘파기한다’는 단어 봤을 때 믿기지 않아


-원래는 1심에서 졌다. 당시 심정은 어땠나.


“너무하다고 생각했다. 일본 측 주장을 지나치게 많이 반영한 결과였기 때문이다. 원래 1심은 사실심이다. 사실 관계만을 가지고 재판을 진행한다. 원칙적으로 ‘원전사고▶환경▶식품▶인체’, 이렇게 네 부분으로 나누어서 사실을 파악해야 한다. 원전사고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지, 환경이 식품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마지막엔 인체에까지 유해한 물질이 도달하는지 다 살펴야 한다.


그런데 전문가 패널들은 ‘식품의 위해성’만 보면 된다고 하더라. 일본의 주장과 같았다. 실제로 일본은 식품에서 검출되는 방사능 수치가 다른 나라 식품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WTO는 재판 기준을 다소 좁게 설정해두고 이 기준을 이용해서 판정까지 했다. 하지만 식품의 안전성을 판단할 때 ‘방사능 수치’만 봐서 문제였다. 수치가 비슷하게 나왔더라도 일본산 식품이 다른 나라 식품들과 똑같이 안전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일본은 원전사고를 겪은 나라이기 때문에 방사능검사 수치가 식품의 안전성을 담보하지 않는다. 결국 2심에서 이 주장을 받아들였다.”


-2심에서 결과를 뒤집을 수 있을 줄 알았나.


“패소, 승소 양쪽 다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준비했다. 1심에서부터 준비를 많이 했다.1심은 사실심이다. 법률관계와 사실관계를 동시에 검토해야 한다. 앞서 말한 네 부분을 신중히 봐야 했는데 그렇지 못한 측면이 있었다. 법률심인 2심에서 우리는 그 부분을 집중 공략했다. 한국은 일본에서 멀지 않다. 원전사고로 인한 잠재적 위험이 미칠 수 있는 거리다. 우리는 위험이 잠재해 있는 일본산 식품에 대해 엄격한 검역조치를 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했다. 2심에선 우리측 손을 들어줬다.”

출처: jobsN
고성민씨.

-승소 소식을 들었을 땐 기분이 어땠나.


“ WTO 본부가 있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판정문을 받자마자 뒤쪽에 있는 판정요지 부분부터 봤다. 바로 ‘파기한다’는 단어가 보였다. 1심에서 내린 판정을 파기한다는 뜻이었다. 우리가 이겼다는 걸 의미했다. 2심이 법률심이긴 하지만 과연 정말 법리적으로만 해석할지 의구심이 들었다. 정말 법리적으로만 판단했더라. 이렇게 판정이 뒤집힌 건 식품위생 분쟁 사상 최초인 것으로 알고 있다.”


-미래 계획이나 최종적인 목표가 있나.


“이전처럼 ‘공공성’을 좇으면서 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또 행복하게 살고 싶다. 사실 앞으로 어떤 일을 할지는 미지수다. 미국에 있을 때만 해도 내가 산업부에서 5년간 일하게 될지 몰랐다. 지난 5년 동안 바쁘게 살아왔다. 얼마 전 결혼을 했다. 쉬면서 가족을 챙기고 싶다. 또 지금까지 했던 일들을 정리하면서 나 자신한테 ‘앞으로는 무엇을 하고 싶니’라는 질문을 던질 예정이다. 이제 30대 중반이다. 새로운 일을 벌리기에 충분한 나이지 않나.”


글 jobsN 신재현 인턴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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