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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건당 600만원도 가능…정년 없는 게 가장 큰 장점인 직업

“영화 속 캐릭터에 가장 가깝게 표현하는 게 나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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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의 세계_번역가 - 〈기생충〉 번역가 달시 파켓

“워낙 한국적인 영화라 해외에서 100% 이해하지 못할 것 같다.” 

영화 〈기생충〉의 공식 상영을 앞두고 봉준호 감독이 한 말이다. 그의 예상과 달리 프랑스 칸영화제에서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 외국 관객의 웃음은 끊이지 않았고, 결국 한국 영화 최초로 황금종려상까지 받았다. 이에 대해 한국인 정서를 잘 반영한 영어 자막이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공식 상영회에 참석했던 김효정 영화 평론가는 “한국어 단어를 서양 문화의 맥락을 반영해 완전히 다른 단어로 바꾸는 데 탁월했다”고 말했다.

〈기생충〉의 영어 자막은 부산아시아영화학교 교수이자 영화 평론가, 들꽃영화상 집행위원장으로 20년 넘게 한국에서 활동한 달시 파켓(47)이 맡았다. 1997년 영어 강사로 한국에 왔다가 한국 영화에 푹 빠졌다는 그는 〈살인의 추억〉을 시작으로 〈국제시장〉 〈곡성〉 〈아가씨〉 〈택시운전사〉 등 100편이 넘는 작품을 번역했다. 봉준호 감독과는 〈플란다스의 개〉(2000) 자막 감수로 처음 연을 맺었고, 넷플릭스 영화 〈옥자〉를 빼고 모든 영화 자막 번역을 그가 맡았다.


칸영화제 수상에 숨은 공로자로 조명되며 어느 때보다 바쁜 날을 지내고 있는 달시 파켓을 서울 동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극중 기택을 연기한 송강호 캐릭터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서 바라봐야 해요. 대본으로는 안 보이는 부분이 있죠. 번역할 때는 대사뿐만 아니라 연기와 목소리 톤, 표정을 모두 살펴야 합니다. 대사 하나도 여러 가지 번역이 가능하기에 어려운 작업이었습니다. 100% 전달할 순 없지만, 캐릭터에 가장 가깝게 표현하는 게 나의 일입니다.”


한국 문화 전반에 대한 이해와 애정이 깊은 달시 파켓은 영화 속 대사 하나하나에 담긴 속뜻을 기막히게 짚어냈다. 그는 캐릭터를 살리기 위한 표현을 찾는 데 특히 집중했다.


“한국말은 미묘한 말투에서 두 사람이 어떤 관계인지 알 수 있어요. 말하다 보면 반말과 높임말도 섞이고 때론 사투리가 들어가기도 하죠. 관객 입장에서는 임팩트가 사는 부분입니다. 미묘한 뉘앙스에도 의미가 달라지기 때문에 번역이 힘들었어요.”


짜파구리, 수석, 반지하 번역 어려워


그는 번역을 위해 〈기생충〉을 일곱 번이나 봤다고 했다. 올해 2월 초벌 번역을 하고, 이후 개봉까지 계속해서 수정 작업을 거쳤다. 마지막에는 봉 감독과 함께 꼬박 이틀을 밤새워가며 검토했다. 그는 “배우들의 연기를 보며 리듬감을 살리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이번 작업에서 유독 어려웠던 부분은 ‘짜파구리’나 ‘수석’ ‘반지하’와 같이 한국에서만 통용되는 언어를 번역하는 일이었다. 영화 자막은 스크린에서 빠르게 지나가기 때문에 직관적이면서도 간결해야 관객이 이해하기 쉽다는 게 그의 지론. 주인공들의 심리 상태를 이해하기 위한 필수 공간인 ‘반지하’는 ‘세미 베이스먼트(semi basement)’로, 영화 속 중요한 상징물인 ‘수석’은 ‘랜드스케이프 스톤(landscape stone)’이라는 기존의 없던 말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하이라이트는 짜장라면과 너구리라면을 섞어 끓인 ‘짜파구리’를 라면과 우동을 합친 ‘람동(ramdong)’으로 번역한 것이다. 그의 기치에 봉 감독이 “아이디어가 뛰어나다”고 흡족해했다는 후문이다.


“한국 감독들은 인물들의 관계성을 살리는 표현력이 탁월해요. 그래서 감독마다 번역 스타일이 다 다릅니다. 박찬욱 감독은 대사 하나에도 고심합니다. 의미가 비슷해도 표현이 달라지면 번역도 바꿔야 했죠. 홍상수 감독은 자연스럽고 간결한 걸 좋아합니다. 봉준호 감독과의 작업은 즐거웠어요. 대화를 하면서 더 나은 표현으로 고쳐나갔죠.”


한국 영화에 빠져 지낸 20년

달시 파켓은 봉준호 감독의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 영어 자막 감수를 시작으로 〈살인의 추억〉 〈국제시장〉 〈곡성〉 〈아가씨〉 등 100여 편이 넘는 작품을 번역했다.

달시 파켓은 미국 보스턴에서 한 시간 거리, 매사추세츠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언어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미네소타 칼튼칼리지에서 러시아 문학을 전공하고, 인디애나대학원에 진학하며 응용언어학으로 전공을 바꿨다. 대학원에서 한국 친구들과 어울리며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된 그는 1997년 고려대 영어 강사 기회를 얻어 한국에 들어왔다. 처음엔 2년간 머물 계획이었지만 한국 영화가 그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파켓이 한국에 온 무렵은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라 불리는 시기였다. 〈접속〉 〈8월의 크리스마스〉 〈쉬리〉 〈초록물고기〉 〈조용한 가족〉 〈넘버3〉 등 굵직굵직한 영화들이 쏟아져 나왔다. 홍상수 감독 등 유명 감독들도 이때 데뷔했다.


“처음 한국에 와서 ‘볼만한 한국 영화’를 추천해달라 했는데, 다들 한국 영화는 시시하다며 보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불과 몇 년 사이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죠. 한국 청년들이 한국 영화에 열광해가는 과정을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었어요.”


그는 한국 영화를 즐겨 보면서 한 가지 안타까움을 느꼈다. 외국인들을 위한 친절한 한국 영화 홍보물이 없었던 것. 1999년 개인 웹사이트 ‘코리안필름(koreanfilm.org)’을 연 그는 외국어로 한국 영화 소개 자료를 업로드하기 시작했다. 주로 영화 리뷰를 써서 올렸는데,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페이지 뷰가 3만을 넘어섰고, 하루 방문객 6000여 명이 몰렸다.


“당시 해외 팬들에게 가장 인기 좋았던 영화는 〈올드보이〉예요. 〈복수는 나의 것〉도 한국에서는 흥행이 덜 됐지만, 해외에선 화제였죠. ‘개봉 당일 영화를 볼 수 있는 한국 사람들이 부럽다’는 댓글이 달릴 정도였어요. 사이트를 연 지 올해로 20년이에요. 영화에 대한 정보가 없으면 팬이 되기가 어렵잖아요. 한국 영화 붐이 일기 시작한 초창기부터 해외에 한국 영화를 알렸다는 게 뿌듯합니다.”


강사로 지내는 동안 영화진흥위원회에서 한국 영화의 영문 보도자료 작성과 홍보물 제작도 했다. 또 영화 잡지 《스크린 인터내셔널》과 《씨네21》 등에 고정 지면을 맡으며 영화 평론가로 입지를 굳혔다. 2014년 봄부터 그는 들꽃영화상을 이끌고 있다. 저예산 독립영화를 격려하기 위해 만든 상이다. 그는 ‘어려운 환경에서 피어나는’ 한국 독립영화를 들꽃에 비유했다.


“2009년에는 독립영화가 많이 개봉했어요. ‘인디스페이스’라는 독립영화 전문 상영관도 문을 열었고, 연말에는 독립영화 TOP 10 리스트가 돌아다닐 만큼 인기였죠. 하지만 대종상과 같은 큰 영화제에서는 볼 수 없었습니다. 안타까웠죠. 오동진 번역가를 비롯해 이 분야 경험 많은 이들이 합류해 만들었습니다. 영화상은 역사가 중요해요. 지금은 그 가치를 높이는 작업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그의 새로운 포부는 전 세계인이 한국의 독립영화를 볼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드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이런 말을 덧붙였다.


“〈기생충〉이 개봉되고 느낀 건데, 한국에서 한국 영화를 보고 싶어 하는 외국인이 많지만, 자막 있는 상영관이 별로 없어요. 영어 자막 상영관이 늘어나면 좋겠습니다.”


번역가 | 원저작물의 숨결까지 옮겨 담는 제2의 창작자


2016년 한강 작가의 소설 《채식주의자》 맨부커상 수상, 2019년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 한국 문화 콘텐츠가 해외 시장에서 주목받는 배경에는 ‘번역의 힘’이 있다. 번역은 단순히 언어를 바꾸는 작업이 아니다. 책 《번역가 모모 씨의 일일》을 쓴 노승영 번역가는 “번역가의 일상은 문장 하나, 단어 하나와 끊임없이 씨름하는 삶”이라고 표현했다. 그의 말대로 번역가의 일은 ‘언어를 확장하면서도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는 작업’이다. 번역가는 한때 인공지능의 발달로 사라질 직업 1위(2018년 4월 잡코리아 리서치 결과)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인공지능 번역이 고도화될수록 전문 번역가의 역할은 더욱 막중하다. 인공지능은 분명 똑똑하다. 

하지만 똑똑한 그 언어에 감성의 숨결을 담는 건, 결국 사람이다.

번역가가 하는 일


번역은 크게 문학 번역, 출판 번역, 실용(전문) 번역, 영상 번역 등으로 나뉜다. 출판이나 문학, 영상 번역의 경우 배경지식과 캐릭터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글의 흐름상 자연스러운 표현으로 바꾸거나 의역해야 할 때도 있다. 반면 실용 번역의 경우 의역 없이 문자 그대로 정확한 번역을 요구한다. 정확한 정보 전달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영상 번역은 자막과 더빙으로 세분화된다. 자막의 경우 스크린 화면에 맞춰 16자씩 2줄, 총 32자에 맞춰 번역하는 게 일반적이다. 대략 30자 안에 모든 대화를 표현해야 한다.


필요한 역량과 자질


양국의 언어, 즉 원문의 언어와 대상 언어에 대해 충분히 능통해야 한다. 언어 이해력은 물론, 해당 언어 문화권의 정서나 역사 등 배경지식도 필요하다. 번역가가 되기 위한 특별한 자격 요건은 없다. 다만 그 분야의 전문 지식이 필요한데, 문학은 관련 국가 문학 전공자가, 공학이나 자연과학, 의학 등 전문 분야는 관련 학과 전공자들이 유리하다. 통·번역전문대학원이나 번역 전문 교육기관에서 교육을 받아도 되고, 한국번역가협회에서 시행하는 외국어번역능력인정시험을 통해 자격증을 따는 방법도 있다.


수입과 전망


한 외화 번역가가 방송에 출연해 “처음 일을 시작할 때 (한 편당) 30~40만 원 정도 받았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큰 수입을 기대하면 분명 후회할 것이라는 게 그의 조언이다. 경력이 쌓이기 전까지는 안정적인 수입을 보장받기 어렵다. 번역 영역과 난이도 등에 따라 다르지만, 영화 번역의 경우 한 편에 200만 원에서 600만 원 정도로 책정돼 있다. 경력이나 인지도에 따라 개인차가 크다. 번역 에이전시에 가입해 활동하거나 개인적인 인맥으로 일을 받기도 한다. 번역가의 가장 큰 장점은 정년이 없다는 점이다. 대체로 경력이 쌓일수록 번역 실력이 향상된다. 번역은 제2의 창작으로 인정받기 때문에 지적 창작물에 부여되는 법적 보호를 받는다. 따라서 번역가는 자신의 번역물에 대해 원저작자와 동일한 수준의 권리를 갖는다. 한강 작가가 맨부커상을 받을 때 번역자 데보라 스미스가 공동 수상한 이유다.


참고 자료 :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책 《번역이란 무엇인가 : 살림지식총서 338》


글·사진 jobsN 서경리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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