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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방송국 리포터가 뒤늦게 빠져 50살에 시작한 일

조회수 2020. 9. 28. 11:2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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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덕후들이 만든 회사"..자전거 중고거래 플랫폼 '라이트브라더스'
중고 자전거 찾다 불편함 느껴 직접 창업
“중고 자전거도 꼼꼼히 따져보고 사야”
한국을 대표하는 자전거 플랫폼이 목표

임직원 8명이 자전거 탄 기간을 모두 합하면 85년이다. 한 명당 10년 넘게 자전거를 탄 셈이다.


좋아하는 취미로 일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소위 ‘덕업일치’를 꿈꾸는 사람들이 많다. 덕업일치는 한 분야에 전문적인 식견을 가진 사람을 뜻하는 ‘덕후’와 ‘직업’을 합친 말이다. 그러나 첫술에 배부를 순 없는 법. 흥미와 적성에 맞는 일을 단번에 찾기는 어렵다. 그렇다 보니 첫 직장을 나와 이직·전직하는 이들도 많다.

출처: jobsN
서울시 용산구에 위치한 라이트브라더스 매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김희수 대표.

라이트브라더스 김희수 대표(49)도 쉰을 앞두고 자전거에 취미를 붙여 관련 스타트업까지 창업했다. 40년 후반에 이르러서야 라이딩의 즐거움을 알았다. 20대엔 방송국 리포터, 30~40대엔 브랜드 컨설팅 일을 했다. 이전 직업들이 만족스럽지 않은 것은 아니다. 지금의 라이트브라더스를 일구는 데 좋은 밑바탕이 됐다.


취미로 타던 자전거가 창업 아이템으로


브랜드 컨설팅 일을 오래 한 김 대표는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매 순간 창의성을 요구하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지켜보던 김병수 라이트브라더스 부사장이 미니벨로 자전거를 선물했다. 미니벨로 자전거는 바퀴 크기가 20인치 이하인 작은 자전거를 말한다. 둘은 함께 자전거를 타며 자연스레 자전거 시장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라이트브라더스’를 만든 계기는.


“기존에 타던 미니벨로를 팔고 새 자전거를 사려고 했다. 가격대가 만만치 않아 중고 자전거를 찾아봤다. 일일이 발품을 팔아 상품을 비교하고 외관 상태만 보고 살지 말지 결정해야 했다. 그때 중고차 플랫폼인 ‘SK엔카’가 떠올랐다. 중고차를 살 때처럼 꼼꼼히 비교 검색할 수 있는 자전거 중고거래 플랫폼을 만들고 싶었다.”


-신제품이 아닌 중고유통을 택한 이유는.


“자전거 중고거래 시장에 개선점이 많다고 생각했다. 여전히 중고카페를 이용해 거래하고 자전거를 배송시킬 수 없어 직접 운반해야 했다. 또 중고시장을 잡으면 후속 사업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이 많다. 자전거는 끊임없이 유지보수가 필요하다. 라이트브라더스는 중고거래 중개만 하지 않는다. 자전거 수리·점검·판매를 비롯해 최근엔 자전거 리스 프로그램까지 시작했다.”

출처: jobsN
(좌) 지하매장에서 전문 미캐닉이 자전거를 점검하고 있다. (우) 눈으로 안보이는 미세흠집을 표시해 뒀다.

-가성비를 넘어 가심비(심리적 만족감을 중시하는 소비) 시대다. 프리미엄 자전거를 취급하는 이유는?


“어느 시장이든 밑에서 위로 저변을 확대하기엔 제품군이 다양해야 해서 자본이 많이 든다. 스타트업 회사로써 프리미엄 시장을 우선 공략하는 탑다운(하향) 방식이 맞다고 생각했다. 또 자전거는 이용자가 직접 타기 때문에 안정성이 중요하다. 비용을 내더라도 안전하게 타고자 하는 수요를 생각했다. 라이트브라더스의 평균 검사비용이 45만원 정도다. 30만원 이내의 생활 자전거보다 더 비싸다. 그래서 전문적인 수리·정비가 필요한 자전거 매니아를 대상으로 한다. 매니아층이 주로 타는 중고가 가격대의 카본(탄소섬유) 소재 자전거를 취급한다. 100만원 안팎에서 많게는 1000만원이 넘는 프리미엄 자전거다.”


-라이트브라더스는 자전거 판매회사가 아니라 ‘서비스 디자인 회사’라고.


“사업하기 전 자전거 시장을 조사했다. 전에 하던 일 때문에 생긴 직업병 같다. 어떤 일이든 시작하기 전에 시장 조사를 한다. 자전거의 경우 자동차보다 애프터마켓 규모가 작았다. 애프터마켓은 제품판매 이후 부품교체·정비·업그레이드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장을 말한다. 자동차를 타다 싫증이 나면 튜닝을 하거나 문제가 생기면 전문 카센터를 찾는다. 그러나 자전거는 관리나 수리가 어려워지면 팽개쳐 놓는 사람이 많다. 이런 점에 착안해 자전거 애프터마켓 서비스를 제공하는 온·오프라인 공간을 만들었다.


또 라이트브라더스 매장에는 음료를 마시고 쉴 수 있는 카페 공간이 있다. 자전거 이용자들끼리 자전거에 관한 정보를 공유하는 곳이다. 자전거를 매개로 즐거운 경험을 이어나갈 수 있는 서비스 디자인 플랫폼을 계획했다.”

출처: jobsN
(좌) 매장 책장에 꽂힌 자전거 관련 만화책들 , (우) 라이트브라더스 매장의 카페공간. 누구나 이용가능하다.

-자전거 리스 프로그램을 시작한 이유는.


“자전거 리스가 힘들었던 이유가 잔존가치 측정이 어렵기 때문이다. 잔존가치는 자동차 리스처럼 일정 기간 사용하고 처분할 때 받을 수 있는 금액을 말한다. 쉽게 말해, 중고로 되팔 때 얼마를 받을 수 있느냐다. 중고 자전거는 판매자의 말과 외관 상태만 보고 어림짐작으로 사는 경우가 대다수다. 그런데 외관이 멀쩡해도 눈에 보이지 않는 프레임 내부가 엉망일 수 있다. 또 자동차와 달리 사고 이력이 남지 않아 전 주인이 어떻게 탔는지 알 수 없다.


우리 회사 리스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매장에서 자전거 수리·점검을 받고 이력을 남길 수 있다. 리스 기간이 끝나면 기록한 데이터를 이용해 잔존 가치를 평가한다. 고객이 자전거를 반납할 경우, 과거 데이터를 바탕으로 라이트브라더스에서 다시 중고로 되파는 형태다. 리스와 중고판매가 리스사인 라이트브라더스 한 곳에서 이루어진다.”

출처: '라이트브라더스' 홈페이지 캡쳐
라이트브라더스에서 판매 중인 리스 자전거.

-중고판매 중개는 어떻게 이루어지나.


“중개 최저 수수료를 27만 5000원으로 책정했다. 중개 수수료가 최저 수수료 이상이면 중고 판매가격의 11~18% 정도를 받는다. 자전거 성능검사를 비롯해 픽업서비스 비용은 따로 받지 않는다. 성능검사 시 문제가 있으면 중개판매를 거절한다. 제품은 자사 스튜디오에서 직접 촬영해 회사 홈페이지에 올린다.”


-수익은 괜찮은 편인가?


“라이트브라더스의 업력은 2년 정도다. 작년에 3억원 정도의 매출이 나왔다. 올해 2분기까지 매출은 4억원 정도다. 올해 목표 매출액은 15억원이다.”


X-ray로 들여다본 자전거 안은 상처투성이


-자전거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는 비파괴검사가 있다고.


“김병수 부사장이 전에 도시가스 시공설계일을 했다. 도시가스 배관에 문제가 없는지 X-ray검사로 들여다봤다. 이걸 배관 비파괴검사라고 한다. 당시 몇몇 사람들이 자전거를 가져와 비파괴검사를 의뢰했다. 자전거용 검사가 아니다 보니 금액이 비싸고 검사 기간 길었다. 또 검사 후 판독이 정확히 이루어져야 하는데 판독기술도 없었다.


한국 비파괴협회장한테 메일을 보내 기술자문을 맡겨 자전거용 비파괴검사 기술을 개발했다. 이 기술을 사용하면 X-ray를 이용해 외관 손상 없이 자전거 프레임 내부를 점검할 수 있다. 검사시간도 훨씬 줄어 짧으면 20분 정도 걸린다. 자전거 전문가가 자전거 내외부를 점검해주는 미캐닉 서비스도 제공한다. 브레이크, 바퀴각도 테스트 등 16개 부문 61개 항목을 매뉴얼대로 꼼꼼히 검사한다.”

출처: '라이트브라더스' 홈페이지 캡쳐
외관상 문제가 없어 보였으나, 비파괴 검사로 내부 문제를 발견한 상태.

-보통 자전거 수명은 얼마인가.


“정해진 수명은 없다. 수명차이가 있다기보단 관리법에 따라 달라진다. 아끼면서 잘 관리해주면 오래 타고, 험하게 타면 좋은 자전거도 부서진다.”


자덕이 만드는 대한민국 대표 자전거 플랫폼


김 대표는 스스로를 ‘자덕(자전거 덕후)’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일할 땐 덕후의 코드는 계승하지만 덕후 마인드는 버리려고 한다. 자전거를 좋아하고 몰두하는 덕후의 코드는 적극적으로 취한다. 반면 좋아하는 만큼, 좋아하는 시간에만 일하고 싶은 덕후 마인드는 지양하려 한다. 덕질이 곧 일이기 때문이다.


-라이트브라더스가 추구하는 자전거 문화가 있다면.


“누구든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라이딩이다. 라이트브라더스는 토요일마다 라이딩을 한다. 일종의 원데이클래스처럼 누구든 참여할 수 있다. 따릉이를 타고 와도 괜찮다. 직원들은 서로를 ‘Buddy’라고 부르고 참가자는 ‘Bro·Sis(브라더·시스터)’라는 호칭을 쓴다. 최근엔 22명의 참가자를 모집해 전현직 자전거 국가대표와 자전거 여행을 떠났다. `불편함 없이 자전거만 즐길 것`이 여행컨셉이다. 자전거 수리공인 미캐닉과 전문 사진가가 있는 마케팅팀도 동행했다."  

출처: '라이트브라더스' 인스타그램 캡쳐
인스타그램을 통해 토요라이딩 멤버를 모집하는 모습.

-공공자전거의 출현이 위협적이지 않나.


“나도 가끔 따릉이를 탄다. 공공자전거를 타다 자연스레 프리미엄 자전거로 관심이 옮겨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 사람이 여러 자전거를 소유한 시대다. 산에 갈땐 산악용 자전거를, 출퇴근용으로는 로드 자전거를 이용하는 식이다. 후속 플랫폼을 위해 퍼스널 모빌리티 시장을 주시하고 있다. 퍼스널 모빌리티는 전동휠·전기 자전거 등 개인용 이동수단을 말한다. 차로 움직이기엔 가까운 거리를 전기자전거로 이동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앞으로 프리미엄 전기 자전거도 리스·장기렌탈이 가능하도록 사업영역을 넓힐 생각이다.”


-라이트브라더스를 어떻게 발전시킬 계획인가.


“기존의 정체기인 중고 자전거 시장의 룰을 깨뜨리고 새로운 생태계를 만드는 ‘룰브레이커’로 성장하고 싶다. 특히 자전거 이용자 입장에서 느낀 불편함을 고려해 개선점을 찾아 나갈 예정이다. 항상 되뇌는 말이 있다. ‘상상하고 기획하고 실행에 옮기자’. 자전거 애프터마켓을 적극적으로 육성해 자전거에 관한 모든 정보·서비스가 오가는 플랫폼을 꿈꾼다.”

/jobsN

-김희수 대표에게 자전거란.


“처음 자전거를 탔을 땐 마냥 좋았다. 오히려 일을 시작하고 나니 덜 탄다. 지금은 라이딩을 즐기기 보단 자전거 시장의 문제점을 해결해야 하는 시간인 것 같다. 그만큼 무게감이 느껴진다.”


글 jobsN 장은비 인턴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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