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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예일대 교수들이 극찬한 일본 이름 분필, 알고보니..

조회수 2020. 9. 28. 11:3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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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 수학자가 극찬, 비정규직 시간 강사가 인수한 85년 일본 전통 분필 브랜드

“교사가 수업에 들어갈 때 유일한 무기가 뭡니까. 분필 한 자루예요. 교사에게 최고의 무기를 선물한다는 자부심으로 분필을 만들고 있어요.”


지난 5월 한 유튜브 채널. 하버드·프린스턴·예일 등 미국 명문 대학의 수학과 교수들이 출연했다. ‘왜 세계적 수학자들은 분필을 사재기 했나(Why the World’s Best Mathematicians Are Hoarding Chalk)’라는 제목의 영상이었다. 백발이 성성한 노교수가 칠판 앞에 서 분필을 썼다. 자신이 얼마나 이 분필에 깊은 애정을 갖고 있는지도 설명했다. 이들이 손에 쥔 분필은 하고로모 분필. 이 영상은 960만 조회수를 기록할 정도로 많은 인기를 끌었다.

출처: 유튜브(채널@Great Big Story) 캡처
전세계 최고의 수학자가 극찬한 하고로모 분필.

세계 최고의 수학자들에게 극찬을 받는 하고로모 분필. 하고로모 분필을 만드는 사업자는 한국인이다. 원래 일본 회사였지만 신형석(49) 세종몰 대표가 인수했다. 신 대표는 2016년부터 분필을 국내에서 생산해 전 세계에 판매한다. 작년 말, 중소기업벤처부는 국내 우수 중소기업을 선정했다. 해외 시장 개척을 지원하기 위해 GMD(글로벌 시장 개척 전문 기업) 사업을 벌였다. 미국 영상 제작 대행업체가 하고로모 분필을 소개하는 유튜브 영상을 기획·제작해 만들었는데 이 영상이 ‘대박’을 치며 전세계 하고로모 분필 매출이 급등했다.


대학교수 꿈꾸던 시간강사···현실의 벽 앞에 포기


하고로모 분필은 일본의 전통이 담긴 제품이다. 하고로모 문구는 와타나베 일가가 1932년 세운 회사다. 조개껍질 등을 섞는 제조 노하우를 개발해 수준 높은 분필 등 문구류를 제작해왔다. 일본 분필 업계에서 줄곧 1·2위를 차지하며 최대 60억원의 매출을 기록한 때도 있었다. 2015년까지는 창업주의 손자인 와타나베 타카야스 사장이 회사를 경영했다.


그러나 2015년 이후 사업을 이어나가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일흔에 접어든 와타나베 사장의 건강이 나빠졌기 때문. 공장 문을 닫을 위기에 처하자 와타나베 사장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선대가 평생을 바쳐 일궈놓은 회사였다. 그러나 마땅한 후임자가 없었다. 마침 신형석 세종몰 대표가 그의 앞에 나타났다. 신 대표는 와타나베 사장에게 “하고로모 분필 제조 기술을 이어받아 한국에서 사업을 이어나가겠다”고 제안했다.

출처: 세종몰 신형석 대표 제공
(왼)일본 나고야 하고로모문구 본사 앞에서·(오)한국 포천 공장에 방문한 와타나베 사장.

“저는 원래 교수를 꿈꾸며 대학에 강의를 나가던 시간강사였어요. 연세대 대학원에서 건축공학을 전공하고 건축역사 박사과정을 밟았죠. 10여년 전부터 안동대·두원공대에 강의를 나갔습니다. 대학 시간강사로 버는 돈은 한 달에 100만원 정도였어요. 지방 강의를 다니면 차비가 많이 듭니다. 차비를 뺀 나머지 돈으로 생활하기가 힘들었어요. 생활비를 벌기 위해 입시학원을 찾았습니다. 노원구 세일학원에서 수학 강의를 했죠. 학원 강사는 시간당 수당을 받아요. 경력 초반에는 1시간에 6만원이었습니다. 나중에는 8만원으로 올라요. 보통 오전 7시부터 밤 9시~10시까지 일합니다. 경력이 쌓이니 돈을 많이 벌 수 있었어요. 학원 규모가 큰 데다 재수종합반 담임선생님까지 맡았거든요.”


대학교수를 꿈꾸던 그는 결국 현실적인 문제로 입시강사를 계속했다. 처음에는 학원에서 일해 목돈을 모으자는 생각이었다. 어느 정도 안정적인 기반을 마련해놓으면 돈 걱정 없이 대학 강의를 다닐 수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정규직 교수 자리는 TO(Table of Organization)가 가뭄에 콩 나듯 났다. 거기다 국내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이를 교수직에 임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신 대표는 형편상 해외 유학을 가지 못했다. 현실적인 요소를 고려하다 보니 입시학원에 계속 남을 수밖에 없었다. “처음엔 큰 꿈을 가지고 있었지만 흐르는 대로 살아온 셈이죠.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강사를 하면서 우연치 않게 분필 사업 기회를 잡을 수 있었어요.”

출처: jobsN
신형석 세종몰 대표.

“하고로모 분필을 처음 접한 건 2006년이었습니다. 동료 강사와 함께 도쿄에 있는 요요기 주쿠(代々木塾)라는 대형 입시학원을 탐방했어요. 학원에서 판서를 해봤는데 분필을 몇 번 만져보니 사용감이 좋았습니다. 가루만 풀풀 날리며 뚝뚝 부러지는 기존 분필과 달리 묵직한 데다 부드럽게 필기할 수 있었어요. 색깔도 다양한 형광색이었구요. 일본 강사에게 부탁해 하고로모문구 분필 몇 통을 한국에 가져왔어요.


그 분필로 강의를 하는데 학생 반응이 뜨거웠습니다. 반 학생들은 최소 20명에서 최대 80명 정도입니다. 대형 강의실 같은 경우, 뒷좌석 학생들이 판서를 보기 힘들 때가 있죠. 그런 학생들도 분필 글씨가 잘 보인다는 겁니다. 심지어 학생들이 나서서 다른 과목을 가르치는 선생님한테 그 분필을 써달라고 요구하기까지 했어요.”


와타나베 사장 직접 만나 “내가 한국에 유통해보겠다” 설득


학생들의 반응에 신 대표는 하고로모 분필을 더 구하러 나섰다. 우선 우리나라 분필 업체에 전화를 돌렸다. “일본산 하고로모 분필을 유통할 생각이 없냐”고 물었다. 어렵다면 빨강·노랑·파랑 외에 또 다른 색깔의 분필을 제작해주면 안 되냐고 물었다. 국내 분필업체 3곳에 전화를 걸었지만 모두 퇴짜를 맞았다. 단가가 비싸 수익이 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또 분필 산업 자체가 사양산업이라 새로운 유통망을 늘릴 여력이 없다고 했다. 예전부터 친분이 있던 메가스터디 신승범 강사가 조언했다. “하고로모 분필 구하기가 어렵다 하니 승범이가 ‘형이 직접 수입해서 팔아’라고 말해줬죠.”

출처: 유튜브(이투스 채널) 캡처
설민석, 신승범 강사의 특유의 알록달록한 판서는 하고로모 분필로 만들어진다.

“그 길로 하고로모문구 사장을 만났어요. 일본 유학 간 제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달라 부탁했습니다. ‘한국의 학원 강사인데 하고로모 분필이 너무 좋다. 한국에서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지 알려달라’는 내용이었죠. 나고야 공장에서 미팅을 하자는 회신이 왔습니다. 와타나베 사장이 직접 마중을 나왔더군요. ‘하고로모 분필의 우수성을 알아줘서 고맙다’며 기꺼이 계약을 해줬습니다.”


2009년 하고로모 분필을 유통하는 세종몰을 창업했다. 1타강사로 유명한 신승범·설민석 강사가 하고로모 분필 마니아였다. 당시 인터넷 강의가 유행하던 때였다. 하고로모 분필은 유독 다른 분필보다 영상에 선명하게 나왔다. 신승범 강사 특유의 알록달록한 판서가 하고로모 분필로 탄생한 셈이다.


“와타나베 사장과 4~5년간 계약을 맺으면서 신뢰를 쌓았습니다. 일본인은 약속을 중요하게 여겨요. 늘 정해진 일자 안에 정확하게 계약금을 입금하니 ‘이 사람은 믿을 수 있다’ 판단한 거죠.” 2015년 초 와타나베 사장이 급히 그를 호출했다. 일본에 가보니 병세가 위중한 상태였다. 일흔을 넘긴 나이로 위암 투병을 하고 있었다. “앞으로 공장을 운영하는 게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분필을 더 공급하기 어렵습니다. 미안합니다.” 와타나베 사장의 이야기를 들은 신 대표는 문득 자신이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85년 전통이 담긴 하고로모 분필의 제조 노하우가 이대로 사라진다 하니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장인 정신으로 만든 최고 품질의 분필이었어요.”


브랜드 이름 유지하는 조건으로 사장에게 사업권 인수


와타나베 사장은 처음에 아이들을 가르쳐오던 신 대표가 어떻게 사업을 하겠냐며 반대했다. 그러나 계속된 설득 끝에 결국 그에게 사업권을 넘겨줬다. 하고로모문구를 매입하려는 일본 업체도 많았다. 그러나 와타나베 사장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브랜드 이름을 유지하는 일이었다. 그가 보기에 신 대표야말로 브랜드를 끝까지 책임질 수 있는 적임자였다.


와타나베 사장에게 사업체를 물려받고 마주한 첫 번째 난관은 나고야 공장에 있던 기기를 한국에 들여오는 일이었다. 초기 사업 자본금은 8억원 정도. 낡은 기기를 해체하는 것부터 돈이 들었다. 기기를 전부 뜯어보니 40피트 컨테이너 16대 분량 정도가 나왔다. 일본 나고야 공장부지에서 경기도 포천으로 기기를 전부 옮기고 설치하기까지 총 6개월 걸렸다. 한국 전압(220V)과 일본 전압(110V)이 달라 애를 먹었다.


그러나 행운이 따르기도 했다. 하고로모문구에서 25년간 기계 운영을 총괄해오던 경력자가 기꺼이 신 대표 사업에 합류했다. 분필 제조 단계 중 가장 중요한 단계인 성형화 기계를 조작할 줄 아는 장인이었다. 2016년 포천에서 ‘메이드인코리아 하고로모 분필’을 생산하는데 성공했다.

출처: 신형석 대표 제공
아픈 몸을 이끌고 한국 포천 공장에 방문해 기계를 직접 체크하는 와타나베 사장.

“와타나베 사장이 제게 사업을 물려주며 내건 유일한 조건이 있었습니다. 하고로모라는 이름만큼은 없애지 말아 달라 했죠. 그 외에는 저에게 유리하게 계약했어요. 한 대당 5000만~9000만원 하는 기계를 100만원 가격에 팔았죠. 포천에 공장을 이전한 뒤로도 한국에 와 비법을 하나하나 전수했습니다. 하고로모문구 분필은 일본 국민에게 오랫동안 사랑을 받아왔어요. 제가 사업체를 넘겨받았다 하니 NHK(일본 최대 공영방송사)가 안타깝다는 내용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만들 정도였죠.”


”교수의 꿈, 이루진 못했지만 그 이상 해냈다 생각”


한국에 막상 들여와 제품을 생산하니 처음엔 반응이 냉담했다. 한국에서 생산하는 한국산 제품이었는데도 일본 이름이라는 이유만으로 거부감을 나타냈다. 또 원래 쓰던 분필보다 가격이 서너 배 비싸다는 점도 문제였다. 신 대표는 제품력을 증명하는 것으로 승부수를 띄웠다. “하고로모 분필은 한 번도 안 써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써본 사람은 없어요. 그만큼 품질에 자신이 있었어요. 또 국내 소비자가 일본 이름에 반감을 느끼니 눈을 돌려 해외 시장을 봤어요. 창업 첫해 2016년 매출은 3억원이었습니다. 2017년 6억원, 2018년 10억원으로 매해 약 2배씩 성장했습니다. 올해 매출 목표는 15억원입니다.”

“지난 5월, 세계 최고의 수학자이자 수학과 교수들이 출연해 하로고모 분필이 얼마나 우수한지 설명하는 유튜브 영상이 화제가 됐어요.” 영상 속에는 ‘분필계의 롤스로이스’, ’천사의 눈물을 담아 만들었을 것’, ‘이 분필로 문제를 풀면 틀릴 수가 없다’는 극찬이 이어진다. 세계 최고의 수학자들의 영상은 900만 뷰 이상의 조회 수를 기록했다. 영상이 인기를 끌자 하고로모 분필은 아마존 분필 카테고리에서 매출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분필을 사재기해 가격을 올려 팔려는 전문 업체들도 등장했어요. 앞으로 대한민국 제조업의 한 부분을 책임진다는 사명감을 갖고 사업을 키워나갈 계획입니다. 저는 대학 강단에 선다는 목표를 결국 이루지 못했어요. 하지만 제가 만든 분필은 세계 최고 대학의 칠판 앞에 놓여있죠. 꿈을 이룬 것 그 이상을 해냈다 생각합니다.”


글 jobsN 김지아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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