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이 대한민국 영화·드라마업계에 던진 화두

조회수 2020. 9. 28. 15:1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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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시간 지켜가면서 촬영했다" 영화 기생충이 한국 영화·드라마에 던진 메시지

“스태프 전원과 함께 표준근로계약서를 작성해 근로기준법을 지켰다.”


최근 칸 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기생충’. 작품성만 높은 평가를 받는 게 아니다. 봉준호 감독은 제작 스태프의 근로시간과 처우를 보장했다고 밝혀 화제를 모았다. 

출처: 조선DB
기생충 기자간담회에서 봉준호 감독.

표준근로계약서는 장시간 근로나 부당한 처우를 막기 위해 노사가 임금 수준과 근로시간 등을 약속하는 문서다. 4대 보험에 의무적으로 가입하고 연장근로에 대한 대가를 지급하는 내용이다. 또 부당한 ‘임금깎기’도 금지한다. 당연한 말이다. 그러나 영화 제작현장에선 표준근로계약서 없이 계약직으로 스태프를 고용해 돈은 찔끔 주고 오랜 시간 일하도록 하는 게 관행이었다. 계약서를 쓰지 않은 영화 스텝들은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인정받지도 못했다.


스태프들은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고 법정 근로시간을 어겨가며 일했다. 2012년만 해도 표준계약서 체결 비율은 22%(2019년 영화진흥위원회 자료) 정도. 국내 개봉하는 영화 10편 중 2편만 근로계약서를 쓰고 영화를 만들었다. 그러나 작년엔 그 비율이 74.8%로 높아졌다. 조금씩 영화 제작 현장이 변하고 있다. 열악한 영화·드라마 제작 스텝들의 노동환경이 외부로 알려지면서 자성하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표준계약서를 지켜가며 찍은 영화·드라마는 어떤 게 있을까.

출처: EBS 극한직업 캡처
촬영에 임하는 수많은 스태프들.

상업영화 최초 표준계약서 지킨 국제시장


누적관람객 1000만명을 넘긴 2014년 영화 ‘국제시장’. 기획 단계부터 표준근로계약서를 맺고 하루 12시간 촬영 시간을 지켜가며 제작했다. 상업영화 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하루에 12시간만 촬영한다. 더 이상 촬영하지 않는다. 그리고 12시간 이상 촬영하면 추가 수당을 꼭 지급한다. 그리고 1주일에 한 번씩은 반드시 쉰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4대 보험에 가입시킨다." 윤제균 감독은 2015년 MBC '뉴스데스크'에 출연해 국제시장 촬영 현장에 대해 이같이 설명했다.


국제시장 누적관람객은 1381만1233명이다. 흥행 성적을 내자 감독은 스태프들과 7억원 상당의 보너스를 나눴다. 윤제균 감독과 제작사 JK필름은 급여가 낮은 말단 스태프들부터 상대적으로 많은 비율의 보너스를 지급했다. 스태프들은 300만원 이상의 성과금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JK필름 측은 개런티 많은 배우보다 스태프 중심으로 보너스를 나눴다고 설명했다.

영화 국제시장 포스터

'성난변호사' 흥행은 저조했지만 스태프들은 만족해


영화 성난 변호사는 2015년 개봉했다. 이선균·김고은 등이 출연했지만 흥행 성적을 거두진 못했다.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당시 경쟁하던 작품들이 강력했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마션’과 마이어스 감독의 ‘인턴’에 밀렸다. 성난 변호사를 선택한 관객은 118만8288명이었다. 누적 매출은 약 87억원. 이 영화의 손익분기점은 200만명이다. 그래도 영화사에 의미 있는 흔적을 남겼다. 바로 표준근로계약을 지켜 촬영한 영화라는 점이다.


허종호 감독은 모니터 옆에 시계를 갖다 두고 보면서 작업했다고 한다. 그 역시 감독으로 데뷔하기 전에는 영화 스태프와 조감독으로 일했다. 스태프들의 시간을 희생하라고 강요할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스태프의 시간도 내 시간처럼 소중하다는 생각이 있어야 한다. 주어진 시간 안에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게 감독의 능력이고 역할이다.”


허종호 감독은 “밥 먹는 시간 빼고 하루 10시간씩 찍었다”고 설명했다. 덕분에 스태프들도 비교적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촬영했다. 영화 성난변호사에 보조출연한 A씨는 “촬영시간은 8시간 정도였다. 식사는 저렴한 도시락이 아니었다. 사내 푸드코트에서 먹었다”고 밝혔다.


영화계보단 드라마계에 고착화된 문제


봉준호 감독은 5월28일 '기생충' 시사회에서 스태프들에게 열악한 드라마 제작환경을 지적했다. "한국 영화계 표준근로에 있어서 내가 선구자적으로 특별히 노력한 건 아니다. 2013년부터 영화산업 노조 위주로 이야기가 나왔다. 2017년 정도부터 확실히 근로시간을 이미 잘 정착해 잘 하고 있었다. 그래서 '기생충'도 잘 지켜 작업한 것 뿐이다.”

출처: 조선DB, 조여정 인스타그램 캡처
촬영시간을 합법적으로 지키고 스태프들의 처우를 보장한 영화 기생충. 칸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봉 감독은 "설국열차·옥자를 해외 스태프들과 촬영하면서 조항에 따라 일하는 게 습관이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TV 드라마 쪽도 영화계처럼 표준근로 제작 환경을 지키는 분위기가 생겼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드라마계에서는 표준근무시간을 지켜 드라마를 만드는 게 ‘쉽지 않은 이야기’라는 입장이다. 드라마 ‘전원일기’와 ‘사랑이오네요’를 집필한 김인강 작가는 “촬영 시간을 제한하면 그만큼 제작비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김 작가는 “방송을 하면 작가들도 매일 밤샘 작업을 하며 대본을 고쳐나간다. 한정적인 제작비에 맞춰 시청률을 내려다보니 업무가 많아지는 제작환경을 바꾸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처우 힘쓰기 위해 노력하는 PD들도 있어


그래도 드라마 제작자들이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여왕의 교실', '결혼계약', '무법 변호사' 등을 연출한 김진민 PD는 스태프 복지를 위해 애쓰는 감독 중 하나다. 그는 과거 인터뷰에서 “휴식 없이 촬영해 시청률이 잘 나오면 결국 드라마판은 그런 열악한 제작 환경 위주로 돌아갈 것”이라고 밝혔다. 김 PD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게 잠이고 잠은 자가며 해야 한다”는 소신을 드러냈다.


드라마 ‘무법변호사’에 앵커 역으로 출연했던 보조출연자 K씨는 “촬영 현장 스케줄은 치밀하게 계획이 짜여 있었다”고 말했다. 스텝들이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촬영해 임해 대기 시간 없이 빠르게 촬영을 마쳤다는 것이다.

출처: 무법변호사 공식 홈페이지
배우 이준기·서예지와 김진민 드라마 PD의 모습. 김 PD는 평소 촬영 현장에서 스태프들의 처우를 잘 챙기기로 유명하다.

김민식 MBC 드라마 PD는 드라마 제작 관행을 바꿔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여온 감독이다. 그는 지난 4월26일 서울 마포구 CJ ENM E&M센터 앞에서 1인 시위를 했다. 드라마 촬영 현장을 바꿔야 한다는 말이었다. 고(故) 이한빛 PD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CJ ENM 측에 약속을 요구하기 위해서였다. 이한빛 PD는 2016년 열악한 방송환경에 대한 문제삼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촬영 스태프들의 열악한 근무환경과 열정페이의 강요하는 제작 환경에 대해 죄책감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 PD는 “드라마 제작비가 올라도 스타플레이어들에게 돌아가지, 일선 스태프에게 배분하진 않는다”고 지적했다. “방송사와 제작사가 함께 노력해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출처: MBC 제공
MBC 드라마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은 시청자들의 호평 속에 종영했다.

어려운 드라마 제작 환경에서도 표준계약서를 지켜 스태프들의 복지·처우 개선에 힘쓴 작품도 있다. 최근 종영한 MBC 드라마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이 그렇다. 고용 관계와 근로 환경에 대한 사회 이슈를 다뤘다.


박원국 PD는 4월8일 제작발표회에서 "드라마 내용이 노동 환경에서의 갑과 을에 대한 소재인 만큼 촬영 현장에서 스텝들의 처우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고 밝혔다. “스태프 대표를 선발해 요구 사항들을 귀 기울여 들었다. 또 제작진과 협의해 근로시간과 휴식시간 기준을 정해 실천했다." 박 PD는 쉬어가며 일한다고 성과가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했다.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은 동시간대 1위 시청률(최고 시청률 8.3%)을 기록해 흥행에 성공했다.


글 jobsN 김지아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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