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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힘들다"며 투신 기도하던 모녀 살린 결정적 한마디

조회수 2020. 9. 28. 17:5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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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예진·현빈이 출연한 영화 '협상' 주인공..울산대교 위 영웅들
울산 모녀 자살기도에서 구조 성공
위기협상요원 김유미 경장 인터뷰
“인질극·납치 등 사람 목숨 다루는 일”

“아침에 경찰복을 입을 때마다 뿌듯합니다. 어릴 적 꿈꿔오던 일을 매일 하고 있으니까요.”


5월7일 오후 4시32분 울산대교(높이 60m) 난간 끝. 엄마와 딸이 서 있었다. 두 사람은 시선을 바다에 둔 채 손을 붙잡고 “삶이 힘들다”는 말만 반복했다. 신고를 받고 가장 먼저 출동한 울산 동부경찰서 손영석 경위가 그들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이들과 대화를 시도했으나 쉽게 입을 열지 않았다. 1시간30분 후 위기협상팀 김유미(30) 경장과 김치혁 경장이 도착했다. 많은 이들의 끈질긴 설득 끝에 오후 9시30분 모녀는 결국 난간을 내려와 땅을 밟았다.

출처: 울산경찰청 홍보실
(왼쪽부터) 손영석 경위, 김치혁 경장, 김유미 경장.

“모녀가 심리적으로 불안정해 쉽게 접근할 수도, 말을 걸 수도 없었습니다. 난간 끝에 서 있는 상황에서 주변 사람들 시선을 의식하는 듯했습니다. 지나가는 시민들이 모여들자 고개를 푹 숙이고 눈을 감는 모습을 보였죠. 두 사람을 침착하게 하는 일이 우선이었습니다. 소방차·구급차 등으로 주변을 에워싸 시민의 시야를 차단했습니다. 5시간 동안 상황을 지켜본 소방대원과 모든 경찰팀원들의 노고가 있었기에 구출해낼 수 있었습니다.”


이번 울산대교 모녀 구조 사건에서 울산경찰청 위기협상팀의 대응이 화제다. 침착하게 상황을 판단해 모녀를 구해내는데 큰 역할을 해냈기 때문이다.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경찰청 내부의 비상설 조직인 위기협상팀에도 관심이 모였다. 협상요원 중 한 명인 김유미 경장은 중학생 때부터 경찰을 꿈꿨다. 중·고등학생 때는 태권도 유단자로 활약하다 2년제 대학의 경찰행정학과를 졸업했다. 2014년 8월 경찰에 입직해현재 5년 차 경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협상실무요원 교육은 경찰시험에 합격한 이듬해 이수했다.


협상요원은 1982년 1월 대통령이 국가대테러 활동지침을 내리면서 출범했다. 원래 설립 목적은 88올림픽에서 발생 가능한 테러 대응이었다. 이후 경찰청 본청은 직속 조직으로 전문협상팀을 운영했다. 2014년 이후로 전국 단위 경찰지방청에 협상팀을 비상설조직으로 뒀다. 사람의 목숨이 오가는 인질극·자살기도 등의 상황에는 전문 협상가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동안은 베테랑 형사가 출동해 현장에서 대응해왔는데 인질이나 경찰이 다치는 등 인명피해가 계속해서 발생했다. 울산경찰청 정현우 경위는 “대화로 문제를 풀어나갈 협상팀이 필요해 비상설조직을 두고 있다”고 했다. 

출처: CJ엔터테인먼트 제공
협상전문요원을 다룬 영화 '협상'의 스틸컷.

협상팀은 경찰공무원 중 협상업무에 관심이 있는 지원자로 꾸려진다. 서울청은 10명, 나머지 지방경찰청은 8명이다. 전국에 250여명의 요원이 있다. 부서에 제한을 두지 않고 구성한다. 김유미 경장은 “시민의 요구가 무엇인지 진심으로 이해하고 싶은 마음에 협상팀에 지원했다”고 밝혔다. 평소 협상팀은 각자가 소속한 부서의 업무를 본다. 신고를 받고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한 출동경찰의 요청이 있을 때 협상팀이 나선다. 울산경찰청 협상팀은 2017년도 8건, 2018년도 8건 현장에 나갔다. 주로 가정폭력·납치 인질극·분신이나 투신자살기도 등의 케이스였다.


위기협상요원 교육은 경찰대학과 수사연수원에서 이뤄진다. 경찰수사연수원의 경우 총 30명을 선발해 연간 2회에 거쳐 2주(70시간)동안 교육한다. 17과목을 배우는데 이론적 소양(경찰행정법원리·헌법적 가치와 인권)이 첫 번째 단계다. 그다음 위기협상의 전술적 대화기술, 최근 인질·비인질 사례 분석, 역할극 등의 실무를 익힌다. 체육활동과 토론 등을 포함한 기타가 마지막 교육과정이다. 협상교육을 이수한 요원들은 경찰청 본청에서 1년에 2회 추가로 심화교육을 받는다. 또 지방경찰청 경찰교육센터에선 지역경찰관을 대상으로 3일간의 협상요원 양성과정을 별도로 운영하고 있다. 

출처: CJ엔터테인먼트 제공, 경찰청 제공
(왼)영화 '협상' 스틸컷 중·(오) 협상요원 교육과정.

“협상요원은 상대방이 하는 말을 적극적으로 경청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공감하려는 노력 없이 무작정 상황을 빨리 끝내려해선 안됩니다. 자발적으로 속내를 털어놓게 하기 위해 내가 믿을만한 사람이고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라는 신뢰를 줘야해요. 처음부터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려달라고 물을 수도 없죠. 협상교육을 받을 때도 이 점이 가장 어려웠습니다. 팀원끼리 역할극을 하고 시뮬레이션을 해보면서 라포(rapport·사람과 사람사이에 생기는 상호신뢰관계를 말하는 심리학용어)를 형성하는 훈련을 많이 했습니다.”


난간 끝 모녀와 처음 만났을 때 거리는 10m 정도였다. 자살기도자들이 흥분상태라 섣불리 다가갈 수 없었다. 손영석 경위은 그 자리에 서서 두 사람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상대방의 말을 주의 깊게 듣고 있고 집중하고 있다는 믿음을 주기 위해서였다. 전반적인 상황은 일선에 나와있던 손 경위가 주도해나갔다. “엄마와 딸은 한참 울고 있었습니다. 눈물이 잦아들 때 조금씩 말을 걸기 시작했어요.” 엄마는 협상팀이 하는 얘기를 들으려 하는 눈치였지만 딸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좋지 않은 신호였다. 딸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선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그러나 두 사람에 대한 아무런 정보가 없었다.

출처: 손영석 경위 제공
당시 급박했던 상황.

"여섯시 반 부터는 어머니의 발이 난간의 반 이상 나와있었습니다. 눈도 감겨 있어 급박한 상황이었습니다. 또 날씨가 추워 저체온증이나 탈수 증세가 올까 걱정됐습니다. 물·점퍼·목도리 등을 건네주면서 다리 안쪽으로 더 가까이 오기를 계속 유도했죠. 제겐 5시간이 1시간처럼 느껴졌습니다."(손영석 경위)


“어떻게 주의를 돌릴 수 있을까 고민하던 중 현장의 경찰관이 차에서 노트를 발견했습니다. 노트에는 모녀와 아버지가 함께 자동차를 타고 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어요. 거기에 적힌 딸의 이름을 보고 ‘OO야’하고 불렀습니다. 그러자 바다만 쳐다보던 중학생 딸이 약간 놀란 듯 제게 시선을 돌렸습니다. 저를 언니라고 불러달라고 하면서 대화를 이어나갔죠.”(김유미 경장)

출처: 울산KBS 캡처
울산대교와 난간.

10m였던 거리는 2m이내로 가까워졌다. 울산동부경찰서 출동팀이 도착한지 약 5시간 만이었다. 시간당 1.6m를 움직인 셈이다. 손 경위은 가까워진 거리를 느끼면서 “살릴 수 있을 것 같았다”고 했다. "내일 어버이날이다. 맛있는 것 먹고 재밌는데 놀러가야하지 않겠나"하고 말을 건네자 딸은 아빠와 스피커폰으로 통화를 원했다. 아빠와 통화하면서 이들의 감정이 더 격해질까봐 고민한 손 경위가 전화를 먼저 걸어 상황을 설명했다. 아빠는 스피커폰으로 “괜찮다. 엄마와 집으로 와달라”고 전했다. 그러자 딸이 결심한 듯 난간을 넘어 다리 안쪽으로 들어왔다. 딸의 모습을 바라보던 엄마도 안정을 찾고 손영석 경위의 부축을 받아 다리 안쪽으로 들어왔다.


손영석 경위는 위기협상팀 소속은 아니나 협상요원 교육을 이수받은 베테랑 경찰이다. 그는 5시간 내내 난간 너머 모녀와 소통하기 위해 까치발을 들고 서 있었다. 사건을 마무리 짓고 허벅지가 저려 걸을 수 없었다고 한다. 

출처: 경찰팀 제공
손 경위가 난간 위 두 사람을 설득하고 있다.

경찰협상요원팀이 활약한 사건은 과거에도 있었다. 2017년 7월4일 고성군에서 40대 이혼남이 인질극을 벌였다. 그는 전날 아침 전처와 심하게 말싸움한 뒤 어머니에게 “나 혼자 가려고 했는데 아이도 데려간다”면서 자살 암시 문자를 남기고 집을 나섰다. 그는 유해조수포획단 소속으로 합법적인 총기 소지자였다. 초등학생 아들을 태우고 인근 야산으로 이동하던 중 경찰의 검문검색에 걸렸다. “전처를 데려오지 않으면 아들과 함께 죽겠다”며 5시간여 동안 엽총을 아들에게 겨누고 인질극을 벌였다.


경찰은 협상전문가를 동원해 김씨를 설득했다. 협상전문가는 신속하게 서울에 사는 전처를 불러들였다. 전처가 도착할 때까지 이씨의 어머니·친구 등과 함께 대화를 이어갔다. 전 부인은 사건 발생 23시간만에 현장에 도착했다. 이혼한 아내의 모습을 본 이씨는 얼마 지나지 않아 아들을 풀어줬다. 경찰청 관계자는 “만약 협상전문가가 없었다면 전 부인을 부를지 말지 결정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질극에서 충분한 시간을 끌 수 있었던 점도 협상요원 덕분이라는 설명이다.


‘울산대교 모녀 자살시도’의 영웅 울산지방경찰청 위기협상팀 김유미 경장은 앞으로 협상교육을 더 자세히 배워나갈 생각이다. “사람의 목숨을 다루는 일이라 출동 때마다 긴장을 합니다. 중학생 때 했던 다짐대로 사회에 도움 줄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모두가 포기할 때 끝까지 곁에 남아서 ‘좀만 버텨보자’고 말하는 사람이 될 겁니다. 경찰은 그런 역할을 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글 jobsN 김지아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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