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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만에 인턴→본부장..하지만 제 피부는 이렇게 되었습니다

조회수 2020. 9. 29. 10:3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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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바르는 채식'이다"
비건 화장품 스타트업 '뷰티긱스'
미미박스 최연소 사업부장 출신 이하나 대표
밀레니얼 세대가 원하는 제품과 회사 만들겠다

이하나(30) 뷰티긱스 대표는 비건 화장품을 만든다. 비건 화장품이란 동물성 성분을 사용하지 않고, 동물 실험을 하지 않는 화장품을 말한다. 친환경·유기농에서 한발짝 나아간 일명 ‘바르는 채식’이다. 건강과 환경, 동물에 대해 관심 갖는 소비자가 늘면서 비건 화장품 시장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미국 시장조사 기관 그랜드 뷰 리서치 보고서를 보면 세계 비건 화장품 시장은 2025년이면 208억 달러(약 23조 2800억원)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뷰티긱스는 2018년 8월 비건 화장품 브랜드 '멜릭서(melixir)'를 내놨다. 첫 제품은 페이스 오일. 5개월 만에 7000만원 매출을 냈다. 최근에는 미국 화장품 유통업체 어반 아웃피터스(Urban Outfitters)에 입점했다. 곧 롯데백화점에서도 멜릭서 제품을 판다. 이 대표는 “미국은 비건 화장품이 활발하게 성장하고 있기 때문에 의미가 크다”며 “국내뿐만 아니라 동남아에서도 문의가 계속 들어온다”고 했다.  

출처: jobsN
이하나 뷰티긱스 대표. 화장품 브랜드 '멜릭서'는 '나의 묘약'을 뜻하는 '마이 엘릭서(My elixir)'의 준말이다.

이 대표는 2014년 이화여대 서양화과·시각디자인과를 졸업했다. 화장품 회사 ‘미미박스’에서 글로벌사업을 이끌었다. 인턴 디자이너로 입사해 3년만에 글로벌사업본부장으로 초고속 승진했다. 일하는 즐거움 뒤엔 고민이 있었다. '피부'였다. 브랜드샵부터 명품까지 좋다하는 화장품을 하루에도 몇번씩 발랐다 지우다보니 피부가 나빠졌다. 화장품 사랑이 피부에는 독이었던 셈이다. 이때 비건 화장품에 눈을 뜬 그는 창업에 나섰다.


밀레니얼 세대의 관심사 ‘비건’


비건 화장품 시장은 밀레니얼 세대가 이끌고 있다. 밀레니얼 세대란 197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 태어난 이들을 말한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변하는 격변기를 보냈다. 가치관 역시 빠르게 변한 세대다.


“비건 뷰티는 사회적 흐름입니다. 세계 뷰티 시장이 연 4%씩 성장한다면, 비건 화장품 시장은 연 7%씩 성장합니다. 구글 검색 키워드에서 ‘비건 스킨케어’도 80%씩 증가하고 있어요. 미국 대형 화장품 유통업체 세포라에서도 비건 화장품 자리가 늘고 있습니다. 원료가 어떤 환경에서 자랐고, 어떻게 추출됐는지 소비자는 알 권리가 있어요. 밀레니얼 세대는 내게도 좋고 환경·사회에도 도움이 되는 제품을 원합니다.”

출처: 멜릭서 공식 홈페이지
멜릭서 제품들.

멜릭서는 동물성 원료 대신 식물성 원료를 쓴다. 예를 들어 상어 간에서 추출하는 항산화 성분인 ‘스쿠알란’은 사탕수수·올리브에서도 얻을 수 있다. 또 파라벤, 실리콘 오일 같은 화학 방부제는 넣지 않고 천연 방부제를 쓴다. 화장품 개발 전문가, 피부과 의사들에게 자문 받는다. 식약처·프랑스 에코서트·미국 USDA 등에서 검증한 원료만 쓴다. 에코서트, USDA 모두 기준은 조금씩 다르지만 '화학 성분을 최소화하고 동물실험을 하지 않으며 친환경 원료로 만들었음'을 인증한다.


“화학 방부제를 쓰는 이유는 유통·보관 기간을 늘리기 위해서입니다. 세계 시장에서 유통하는 화장품 유통기한은 통상 개봉 전 3년, 개봉 후 2년입니다. 가령 프랑스에서 만든 화장품을 한국, 중국 등 백화점·면세점에서 팔기 위해서예요. 하지만 파라벤 등 화학 방부제 유해성을 유럽·미국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인지하고 있습니다.”


동물 실험도 하지 않는다. 명품 브랜드는 화장품 출시 전 토끼 눈에 화장품 혹은 약품을 주입한다. ‘인간이 사용해도 안전한지’를 실험하기 위해 동물을 희생시키는 것이다. 이런 동물실험은 세포 배양, 인공조직 개발, 컴퓨터 시뮬레이션 등 실험으로 대체 가능하다.  

출처: 멜릭서 공식 홈페이지
용기는 재활용 가능하고, 제품을 보호하는 완충재는 옥수수 전분으로 만들어 잘 썪는다.

멜릭서 화장품은 유통기한이 짧다. 화학 방부제를 쓰지 않아서다. 비타민C세럼의 경우 개봉 전 2년, 개봉 후 6개월이다. 짧은 유통기한을 버티기 위해 용량을 작게 만들었다. 원가가 기존 화장품 대비 2~3배 높다. “저희가 레시피를 가져가면 제조사에서 ‘비용 감당할 수 있겠냐’고 하세요. 하지만 저희 철학을 위해서는 타협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불필요한 마케팅 등 비용을 줄이면 가능합니다.”


이 대표는 소비자들에게 사회적 가치만 내세우지 않는다. ‘환경을 생각한 제품은 사용 효과가 좋지 않을 것’이란 편견을 깼다. “시장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제품력이 중요합니다. 제품이 좋지 않은데 ‘사회적 가치를 중시하는 제품이니 사달라’고 하고 싶지 않아요. 식물성 원료가 동물성보다 효과가 떨어지지 않을까 하고 막연히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알고 보면 동물성보다 안전하고 효과 좋은 식물성 원료가 많아요.”


어떻게 개발했나: 피부엔 독이 된 화장품 사랑·일에 대한 열정


미술학도였지만 스타트업·실리콘밸리에 관심이 많았다. 창업 동아리 활동을 하고 경영 관련 수업을 골라 들었다. 모바일 광고 회사에서 1년 동안 디자이너로 경험도 쌓았다. 미미박스에는 2013년 12월 입사했다. 미미박스가 미국 와이콤비네이터에서 투자를 받아 미국 진출을 앞뒀을 때였다. 실리콘밸리에 있는 와이콤비네이터는 스타트업을 육성하는 회사다. 에어비앤비와 드롭박스, 아마존이 1조원에 인수한 트위치가 이곳 출신이다. 이 대표는 미미박스 하형석 대표를 비롯한 임직원들과 함께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면접을 보다가 미미박스가 미국에 간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저도 마침 이대창업지원센터 해외 견학 프로그램에 뽑혀서 상금 500만원을 받아 실리콘밸리에 가기로 했던 상황이었습니다. 면접관에게 무작정 ‘저도 데려가 달라’고 했어요. 당시 제 직무가 인턴 디자이너였는데 어림도 없었죠. 미미박스 측에선 당연히 안된다고 했습니다. 다시 찾아가서 ‘미국에 같이 가게 해달라’고 했어요. 결국 하 대표님께 ‘좋다’는 말을 받아냈죠.”   

출처: 이하나 대표 제공
미국 여행 중에.

이 대표는 머지않아 전략기획·경영 업무까지 맡았다. 미미박스가 미국·중국·홍콩 등에 지사를 세우는 과정에 참여했다. “미미박스가 연 1000%씩 성장했고, 전체 매출의 50%가 글로벌사업부에서 났습니다. 성장을 향한 집중력, 글로벌 경험을 배웠어요.”


커리어는 성장했지만 피부는 갈수록 나빠졌다. “2017년에 심각했어요. 피부과를 가도 잠깐 좋아질 뿐 큰 변화가 없었습니다. 휴식을 취할 겨를 없이 화장품을 바르니 상태가 악화됐어요.”


급기야 이 대표는 한동안 ‘화장품 프리(Free)’ 선언을 했다. 색조는 물론 파운데이션조차 바르지 않았다. 대신 피부에 무리를 주지 않는 화장품을 찾아다녔다. 이때 ‘비건 화장품’ 시장 가능성을 발견했다. “해외에서 바이어나 소비자를 만나면 특정 화장품을 두고 ‘동물성 원료를 썼니’, ‘동물실험을 했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어요. 미국에서는 이미 비건 화장품 시대가 열렸습니다. 반면 불과 2~3년전만 해도 한국에서는 비건 화장품 개념이 없었어요.”  

출처: 이하나 대표 제공
2016년 이 대표 피부상태. 트러블이 나 울긋불긋하고 딱지가 앉았다.

비건 화장품 개발에 도전하고 싶었다. 첨부터 ‘미국 시장’과 ‘온라인’을 겨냥했다. “비건 화장품 유통·보관 기간을 줄이기 위해 온라인 유통에 집중하고 싶었어요. 미국 이커머스 시장은 아마존이 45%를 차지했습니다. 아마존에서 물건을 파는 회사의 생리를 알아야 했습니다.”


미미박스를 나와 미국에서 스마트폰 케이스를 제조하고 아마존에서 판매하는 케이스올로지로 이직했다. 1년 동안 미국 이커머스 시장을 경험했다.


틈틈히 비건 화장품 개발을 준비했다. 2018년 3월 사표를 내고 본격적 개발을 시작했다. 시제품 개발비 500만원을 들고 제조 공장을 찾아다녔다. 이 대표는 비건 화장품의 사회적 가치에 제조사가 공감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제조사 입장에서는 동물성 원료를 뺀다고 끝이 아닙니다. 원료 1~2가지 변화만으로 제형이 달라져요. 제조 공정 자체를 바꿔야 합니다. 게다가 신생회사가 와서 ‘이거 저거 해달라’고 복잡하게 요구하니 귀찮죠. 세달 동안 20~30곳을 돌아 다녔지만 모두 거절 당했습니다.”


이 대표는 회사의 비전을 보여주며 제조사를 끊임없이 설득했다. 결국 제조사 한 곳에서 ‘같이 해보자’는 허락을 받아 제품을 개발할 수 있었다.


제품 개발 이후 ‘비건 화장품’에 대한 기존 인식을 바로 잡는 일도 쉽지 않았다. “비건 화장품 하면 순해서 모든 피부에 맞다고 생각합니다. 제품 원료가 순한 건 맞습니다. 하지만 모든 피부에 식물성 원료가 맞지는 않아요. 예를 들어 비타민C가 산성이기 때문에 피부에 어느 정도 자극을 줄 수 있어요. 또 비타민 효과를 높이는 페룰릭애씨드가 미백, 항산화에 도움을 줍니다. 그런데 페룰릭애씨드가 수용성이 아니라 알코올에 녹아요. 최소화해서 넣지만 미약하게 알콜향이 날 수가 있습니다.”


향이나 색이 기존과는 달리 예쁘지 않았다. ‘비건’ 하면 사람들이 떠올릴 ‘순수’, ‘깨끗함’과는 언뜻 보기에 달랐다. “예를 들어 신제품으로 나올 녹차 토너는 녹차 단일 성분으로만 만들었어요. 저도 처음엔 예쁜 초록 빛깔을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누런 갈색입니다. 고민 끝에 갈색 그대로 가기로 했어요. 소비자분들에게 숨기지 않고 적극적으로 알리기로 했습니다. ‘색이 예쁘지 않을 수 있다’고 말씀드립니다.”  

어떻게 팔 것인가: 아마존·페이오니아 적극 이용


오프라인 매장을 내지 않고 온라인 판매에 집중했다. 멜릭서는 2018년 10월 아마존에서 판매를 시작했다. 유통기한이 짧은 비건 화장품 특성상 유통·보관 단계를 줄이기 위해서다. 또 수수료를 아낄 수도 있다. 통상 백화점, 면세점에서 50~65% 수수료를 떼간다. 국내가 아닌 해외로 가면 수수료는 더 올라간다. “온라인 쇼핑에 친근한 밀레니얼 세대를 겨냥했기 때문에 아마존 입점이 중요했어요.”


미국 지사를 세우진 않았다. “자본과 유통 능력을 갖추지 않은 스타트업이 해외 지사부터 세우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대신 아마존과 페이오니아(Payoneer)를 이용했어요. 처음부터 해외 시장을 염두에 두고, 온라인 판매에 집중하는 스타트업이라면 필수입니다.” 페이오니아란 해외 판매 대금 수취 시스템을 말한다. 판매자는 해외 계좌를 만들거나 환전하는 번거로움 없이 대금을 받을 수 있다.


국내에서도 입소문이 나고 있다. 별다른 마케팅을 하지 않아도 소비자가 소문낸다. “소비자들이 화장품을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는 클래스를 열고 있어요. 국내·외 뷰티 유튜버분들이 자진해서 찾아옵니다.”  

jobsN

이 대표는 뷰티계 파타고니아를 꿈꾼다. 환경과 사회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기업이 되겠다는 포부다. '비건' 철학은 회사 이미지를 좋게 하기 위한 계산된 전략이 아니다. 'K뷰티' 블랙홀로 꼽히는 중국시장을 포기했다는 점에서 각오가 드러난다. 중국시장에 진출하려면 중국 식약청 위생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동물실험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가진 본래 아름다움을 스스로 존중하길 바랍니다. 내 원래 피부 자체를 윤기나게, 건강하게 만들고 싶습니다. 우리 본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이 환경과 사회에 대한 책임으로 연결된다 생각해요. 우리 세대가 정말 원하는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철학을 잊지 않는 회사가 되겠습니다.”


글 jobsN 이연주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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