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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번 이직, 7개 직업..인생 실패자라 자책하던 백수였습니다

조회수 2020. 9. 18. 14:2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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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인생 레이스에 '페이스메이커'가 되어주고 싶다
러닝계의 ‘포레스트 검프’ 안정은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 뭐 하지?’가 고민인 평범한 백수.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 어렵사리 프로그래머로 취직했지만 6개월을 못 버텼다. 승무원에 도전했고, 대기업 마케터로도 지내봤다. 일곱 번의 이직. 일곱 개의 직업….


꿈도 없고 끈기도 없는 ‘인생 실패자’라 자책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매일 아침 맨몸으로 달렸다.


러너 안정은(27) 씨의 이야기다. 더 이상 앞으로 달려갈 수 없을 때 그는 달리기 시작했다.

벚꽃 만발한 서울 연남동. 머리에 헤어밴드를 두른 안정은 씨가 연분홍 운동복 차림으로 나타났다. 막 달리기를 마친 듯,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지만 목소리와 발걸음은 경쾌했다. 그는 2개월 뒤 경주에서 열리는 철인3종경기를 앞두고 매일 가볍게 30분씩 달리고 있다고 했다.


마라톤 풀코스 완주 7회, 울트라 트레일 러닝 111km 완주, 철인3종경기 완주. 10km 달리기 개인 기록 44분, 완주 메달만 100개. SNS에 올린 러닝 영상은 86만 뷰를 기록했다. 그가 달리는 길, 먹는 음식, 입는 옷은 연일 화제다. 사람들은 그를 ‘런스타(run star)’ ‘러닝계의 연예인’이라 부른다.


오늘은 모리셔스의 태평양 바다를, 내일은 스위스 몽블랑을 달리며 전 세계 곳곳을 여행하는 러너 안정은. 그가 최근 《나는 오늘 모리셔스의 바닷가를 달린다》를 펴냈다. 책을 통해 “나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아직 가능성을 발견하지 못한 누군가의 레이스에 ‘페이스메이커’가 되어주고 싶다”고 했다.


인생의 ‘러닝 포인트’

러너 안정은의 첫 달리기는 봄비에 벚꽃이 휘날리던 2016년 4월, 서울 남산에서였다. 매일 보던 풍경이 그날따라 새로웠다. 오감이 하나둘 깨어나기 시작했다. 그는 당시를 ‘인생의 러닝 포인트’라고 불렀다.


“매일 아침 눈물로 베개를 적시던 때가 있었어요. 어릴 때 꿈꿨던 승무원 시험에 응시해 중국 항공사의 합격 통보를 받았는데, 비자가 나오지 않아 꿈을 포기해야 했어요. 기다림이 1년이 넘어가면서 ‘합격한 거 맞냐’ ‘사기당한 거 아니냐’는 주변의 비난이 쏟아졌죠. 괴로웠습니다. 그날도 눈물이 펑펑 쏟아지는데, 부끄럽고 창피해서 무작정 달렸어요. 5분쯤 달렸나. 이상하게 달릴 때만큼은 기분이 상쾌하고 걱정이 사라는 거예요. 그래서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달리게 됐어요.”


그에게 달리기는 하루를 버틸 수 있는 힘이자 살고 싶은 간절함이었다.

완주 메달은 스스로에게 주는 칭찬이었다. 성취감으로 무장한 마음가짐이 곧 그의 무기다.

달리기를 시작한 지 6개월 만에 마라톤 풀코스에 도전했다. 이유는 단 하나. ‘인생은 마라톤이라는데, 풀코스를 완주하면 삶에서 이루지 못할 일이란 없겠지’라는 생각에서였다. 풀코스를 완주하고 들어선 피니시 라인에서 눈물을 펑펑 쏟았다.


“아이러니하게도 마라톤은 혼자 달리지만 외롭지 않은 운동입니다. 1등보다 꼴찌에게 더 큰 환호성이 쏟아질 수도 있죠. 완주 메달은 내가 나에게 주는 최고의 칭찬이었어요. 성취감으로 무장한 내 마음가짐이 곧 나의 무기였습니다.”


안정은 씨는 광고업계에서 섭외 1순위로 꼽히는 핫한 러너다. 뉴발란스와 아식스 등 스포츠 브랜드는 물론 지프, 폭스바겐, 현대차 아이오닉 등 자동차 업계에서도 그를 모델로 발탁했다. 기업들은 그를 자동차와 견주며 ‘도시 모험가’ ‘강철 체력’ ‘장거리 러너’라 이름 붙였다.


“갑자기 큰 인기를 끌게 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에요. 뛸 수 있는 곳이라면 제주도, 아프리카 가리지 않고 달려갔고, 뛰는 사람이 모이는 곳이면 어디든 향했죠. 꾸준하게 SNS에 달리는 사진을 올리고 개인 기록을 향상시켰더니 여기저기서 관심을 가져줬습니다.” 

달릴 수 있는 곳, 달리는 사람이 모이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향하는 안정은 씨. 그는 마치 영화 〈포레스트 검프〉의 주인공처럼 사람들을 달리기의 세계로 불러들인다.

SNS를 통해 10만 명의 사람들이 그의 하루를 들여다본다. 그가 입은 운동복을 따라 입고, 얼굴에 바르는 선크림을 따라 사고, 그가 달리는 장소를 따라 달린다. 그는 “마치 영화 〈포레스트 검프〉의 주인공처럼 사람들이 나를 따라 러닝의 세계로 뛰어들었다”고 했다.


“내세우거나 뽐내려고 달리는 게 아니라 그저 달리는 게 좋아서 시작한 일이에요. 그런 저와 함께 달려주려는 마음이 감사하죠.”


문득 ‘달리는 게 정말 좋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안정은 씨가 마라톤 참가자들에게 주기 위해 직접 제작한 금메달. 한반도 모형 안에 달리는 여자의 모습을 새겨 넣고 그 아래에는 제주도를 고리로 달았다.

“무작정 달리면 오늘 하루 갖고 있던 고민과 스트레스가 다 떨어져 나가요. 싫었던 사람, 원망하던 일도 모두 용서가 됩니다. 달리다 보면 생각할 시간이 많아 나 자신을 한 번씩 돌아보게 되죠. 승부욕이 강해 항상 다른 사람과 비교하곤 했는데, 달리기를 시작하면서 다른 사람이 아닌 어제와 오늘의 나를 비교하게 됐어요.”


러닝에 찾아오는 권태기를 ‘런태기’라고 부른다. ‘러닝 기계’라 불리는 그지만, 고통스럽고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다.


“퇴사하고 대회 상금으로만 살 때가 있었어요. 어떨 땐 한 달 50만 원을 벌었죠. 돈은 좇을수록 멀어지더군요. 그때 처음 런태기가 왔어요. 달리지 않고 무조건 쉬었습니다. 의무감에 달리면 스트레스가 쌓이니까요. 달리고 싶을 때 다시 달리면 된다. 마음을 비우고 즐기기로 하니 다시 성적이 오르고 수입도 늘었습니다.”


넘어질 때마다 나만의 조약돌을 주워라

“저도 방황을 많이 했어요. 당시에는 시간 낭비, 돈 낭비라 했지만, 지금 돌아보면 어느 하나 버릴 게 없어요. 진짜 좋아하는 삶을 찾게 해준 소중한 경험들입니다. 나만 낙오되고 꿈을 못 찾은 것 같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 인생의 길 위에서, 달리다 넘어질 때마다 발밑에 예쁜 조약돌을 줍고 일어나세요. 남들에게 없는 나만의 무기죠. 언젠가 모아둔 돌, 기회를 쓸 날이 올 거예요.”


그는 인생과 마라톤을 통틀어 ‘성공의 습관화’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번 성공한 사람은 항상 성공하는 사람이 되고, 성공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 됩니다. 성공의 법칙을 알기 때문이죠. 아주 작은 것부터 성공해서 그 성취감을 느껴봐야 알아요. 작지만 확실한 성공 경험이 지금의 나를 달릴 수 있게 합니다.”


누군가는 그를 향해 ‘고작 마라톤 한번 달렸다고 꿈을 찾았다는 건 과장 아니야?’라고 비난할지도 모른다. 안정은 씨는 “누군가 왜 ‘그렇게’ 뛰느냐고 묻는다면, ‘그렇게’ 뛰어본 적 있냐고 묻고 싶다”고 반문한다.


“사실 마라톤 풀코스는 42.195km가 아닙니다. 단 하루를 달리기 위해 수개월을 쉼 없이 준비한 수백 킬로미터의 결과예요. 그 도전은 성취감을 만들어 하루를 의욕적으로 살게 도와주죠. 성공하지 못해도 괜찮아요. 출발선에 섰다는 것은 이미 피니시 라인에 도달한 것을 의미합니다.”


글·사진 jobsN 서경리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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