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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0명 제쳤다, 한국인 최초의 세계 1위 차지한 32살 교수님

조회수 2020. 9. 18. 14:2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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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최초 세계 1위" 10년 만에 꿈 이룬 이 바리스타의 사연

한국인 중에서는 처음이다. 전 세계 55개국에서 온 국가대표 바리스타를 제치고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예선까지 포함하면 3000명 중에서 1위다. 그녀는 2009년 대학 졸업과 동시에 카페에서 일을 시작했다. 시쳇말로 알바. 화려한 시작은 아니었다. 그러나 10년 만에 ‘세계 1위 바리스타’라는 명예를 얻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바리스타 전주연(32)씨. 4월 11~14일 미국 보스턴에서 열린 WBC(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십·World Barista Championship)에서 우승했다. WBC는 전 세계 실력 있는 바리스타들이 경합을 벌이는 대회다. 호주인 폴 바셋도 2003년 WBC에서 우승해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출처: OG.Lab 제공
전주연 바리스타.

부산 모모스커피에서 이사로 재직 중인 전씨. 부산여자대학 호텔관광계열 바리스타학과에서 겸임교수직도 맡고 있다. 2009년 대학 졸업 후 카페에서 일을 시작한 그녀는 10년 만에 자신의 꿈을 이뤘다. 전주연 바리스타의 사연을 들어봤다.


-한국인 최초로 WBC에서 우승했다. 소감은.


“행복하다. 응원해주신 분들께 감사하다. 무엇보다도 우승 발표 당시 ‘전주연’이라는 이름 옆에 ‘한국’이라는 글씨가 적혀 있던 걸 봤을 때 뿌듯했다. WBC는 커피 산업에서 가장 큰 행사다. 그래서 더 영광이었다.”


-우승자에게 주어지는 혜택은.


“WBC는 상금이 없는 대회다. 우승 트로피만 받았다. 대신 어디에서도 쉽게 얻을 수 없는 명예가 생겼다. 또 인터뷰 요청도 많이 들어오고 있다.”


-1위를 한 비결이 궁금하다.


“작년 처음 WBC에 나가서 14위를 했다. 15분 안에 에스프레소·밀크음료·첨가음료 커피를 4잔씩 만들어 심사위원에게 선보인다. 또 나의 커피 철학도 영어로 설명해야 한다. 긴장한 탓에 실수를 했다. 제한 시간보다 54초를 초과했다. 1초가 넘을 때마다 감점당해 높은 점수를 못 받았다. 이번 기회가 처음이자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올해엔 부담감을 내려놓고 대회에 나갔다. 내가 준비한 만큼만 사람들에게 보여주자고 마음먹었다. 참가한 경험도 있어서 긴장도 덜했다. 작년보다 창작음료 부문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탄수화물이 커피 향미에 미치는 영향’을 주제로 발표했다. 탄수화물 중 ‘다당류’라는 게 있다. 커피의 단맛을 결정하는 성분이다. 단맛이 강하면 커피를 마실 때 질감이 부드러워진다. 또 향미까지 좋아진다. 작년 콜롬비아 라팔마 엘투칸 농장을 방문해 탄수화물이 풍부한 씨드라 품종을 들여와 대회에서 선보였다. 탄수화물이라는 주제를 심사위원들이 신선하게 봤던 것 같다.”

출처: WCE 제공
WBC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영어 발표에 대한 부담은 없었나.


“작년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대회에 나가기 전에는 영어 실력이 달리면 어쩌나 걱정했다. 유학파도 아니라서 영어 실력을 키우는 대신 다른 방법을 찾았다. 배우처럼 대사를 외워 대회장에 나갔다. 셀 수 없을 만큼 반복해서 발표 연습을 했다. 시연이 끝나고 따로 심사위원이 질문하는 시간은 없었다.”


-대회를 준비하면서 힘들었던 점은.


“무엇 하나 쉬운 게 없었다. 체력이 부족해서 가장 힘들었다. 퇴근한 뒤에 대회 준비를 해야 했다. 수면 시간을 줄일 수밖에 없었다. 새벽 2~3시까지 연습하고 쪽잠을 잔 뒤 출근길에 나섰다. 가족과 시간을 보내거나 친구들을 만날 수도 없었다.”


-언제부터 바리스타를 꿈꿨나.


“어렸을 때부터 유치원 선생님을 꿈꿨다. 대학교에도 사회복지학을 전공했다. 4학년 때 어린이집에 실습을 나갔다. 내가 꿈꿔왔던 유치원 선생님의 모습과 현실은 달랐다. 아이를 좋아한다고 잘 돌봐줄 수 있는 건 아니더라. 힘들다고 아이들에게 짜증을 내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근무 환경도 만족스럽지 않았다. 어린이집에서 만난 선생님들의 얘기를 들어보니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 받는 임금과 비슷한 급여를 받았다. 경력이 3~4년 쌓여도 마찬가지로 박봉이었다. 커피 시장에선 내 실력 만큼 돈을 벌 수 있을 것 같았다. 한 달 반만에 실습을 그만두고 커피 전문가로 목표를 바꿨다.”

OG.Lab 제공

-WBC에 참가한 계기는.


“2009년 대회 영상을 보고 빠져들었다. 10년 전만 해도 바리스타라는 직업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다. 아르바이트로 바리스타를 한다고 생각했지 전문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그런데 WBC에서는 수많은 관중들이 무대에 선 바리스타 한 명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또 바리스타라는 직업이 존중받을 수 있는 자리인 것 같았다. 내가 커피 전문가를 꿈꾼다면 저 무대에는 꼭 한 번 올라야겠다고 다짐했다.”


-지금 수입은 어느 정도인가.


“일반적으로 바리스타는 최저임금 수준을 번다. 나는 2007년부터 지금 근무하고 있는 모모스커피에서 일했다. 이사로 재직중이라 월급은 다른 바리스타보다 3.5배 정도 높다. 대회 우승으로 처우가 달라지지는 않는다.”

출처: WCE 제공
대회에서 발표 중인 전주연씨.

-앞으로 계획은.


“지금까지는 바리스타나 카페 예비창업자를 대상으로 스페셜티 커피에 대해 알려왔다. 스페셜티 커피란 품질이 좋은 커피를 말한다. 나는 사전적 의미에 더해 커피를 재배한 농가에 판매 수익이 공정하게 돌아가는 커피가 스페셜티 커피라고 본다. 이번 대회 우승을 발판 삼아 커피 산업에 종사하지 않는 일반 소비자에게도 스페셜티 커피를 소개하고 싶다. 또 대기업이 아닌 개인이 만든 스페셜티 커피도 뛰어나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현지 커피 농장에서 직접 농사에 참여할 생각도 있다. 지금까지는 커피 농장을 방문해 원두 맛을 보고 일부를 들여오기만 했다. 앞으로는 커피 재배 농법에 대해 배운 뒤 농부들과 함께 더 좋은 품질의 원두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고 싶다. 그래서 더 ‘스페셜’한 스페셜티 커피를 만들어보고 싶다. 그러면 현지 농가에도 수익이 더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글 jobsN 송영조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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