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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졸업 후 시작..'단골 1000명' 37살 미용사가 밝힌 수입

조회수 2020. 9. 18. 14:2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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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봉 1억 넘게 번다는 청담동 헤어드레서, 성공의 비결은
컬처앤네이처 김민규 부원장 인터뷰
고교 졸업 후 청담동 미용실서 입문
“스태프만 5년” 후배 2명과 팀 꾸려

국내 미용실의 메카로는 서울 청담동이 꼽힌다. 전국의 수많은 미용실 중 상위 1%로 꼽히는 곳이다. 매달 매출 몇 천만원을 올리는 유명 헤어드레서와 최저임금을 받는 막내급 스태프가 한 공간에서 일하는 곳이기도 하다. 대기업 임원들부터 유명 연예인까지 부와 명예를 거머쥔 사람들이 고객리스트에 즐비하다.


청담동에 한 번 발을 들인 미용사는 절대 나갈 수 없다는 이야기도 있다. “적어도 청담동에서는 돈도 배경도, 낙하산도 통하지 않는 곳이니까” 같은 이유가 들려온다. 바로 내 눈 앞에서 일하던 사람이 스타가 되고 많은 부를 벌어들이는 것을 목격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청담동 헤어디자이너는 어떤 사람일까. 그리고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jobsN은 4월 25일 청담동 유명 미용실인 ‘컬처 앤 네이처’의 김민규(37) 부원장과 인터뷰했다. 그는 화장품 업체 시세이도가 매년 국내에서 4명씩 위촉하는 ‘2019년 시세이도 뷰티크리에이터’이기도 하다. (괄호 안은 편집자 주)

출처: jobsN
26일 서울 청담동 컬처앤네이처 본점에서 김민규 부원장이 고객의 헤어스타일을 점검하고 있다.

어려운 집안 형편에 미용사 결심…2001년 청담동으로


-헤어디자이너가 된 이유는.


“고교를 졸업할 무렵 집안 형편이 어려웠다. 취직을 하려고 여기저기 알아보다가, 당시 내가 패션과 뷰티에 관심이 많고 해서 미용업에 진출하기로 결심했다. 고향(경기 성남)에서 미용학원을 다닌 뒤, 2001년 당대 최고 미용실인 김청경헤어페이스에 스태프로 들어가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청담동이라는 미용 상권은 다른 곳과는 많이 다른 것 같다.


“그렇다. 국내 최고 미용실이 모여있는 지역이다. 그 중에서 소위 프리미엄급이라 불리는 여러 곳 사이에서는 불꽃 튀는 경쟁을 한다. 아무리 부유한 사람이라도 파마 한 번에 30만원, 커트 한 번에 6만원은 비싸다고 느낄 수 있다. 지불하는 가격에 맞는 서비스와 체계적인 관리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감정노동이 심한가.


“그렇지는 않다. 고객들이 다들 ‘선생님’ ‘민규씨’ 등으로 호칭하고, ‘언니’라 부르는 문화가 거의 없다. 손님 스트레스보다는 타 디자이너와의 경쟁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크다.


-수입은 얼마나 되나.


“내가 회사에 벌어들인 매출에서 부가세 등을 빼고 난 금액의 약 45%를 받는다. 재료비와 스태프 인건비는 회사에서 부담한다. 내 수입으로 계산하면 연간 1억원 조금 넘는다.”


-단골은 몇 명인가.


“1000명 정도 된다.”

출처: jobsN
김민규 헤어디자이너.

스태프만 5년 해야 디자이너…사내 심사위원 30명이 평가


-청담동 미용실에서 디자이너급 미용사가 되려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나.


“업체마다 명칭이나 과정이 약간씩은 다르지만, 크게는 대동소이하다. 청담동에서는 스태프를 5년 해야 디자이너로 인정받는다.”


-스태프에도 단계가 있나.


“그렇다. 우리 회사에서는 헬퍼→어시스턴트→주니어→인턴→스타일리스트 등 5단계를 각 1년씩 하는 것이 표준이다. 헬퍼는 샴푸와 각종 보조, 고객 응대 등을 하고, 어시스턴트는 뒷머리 파마·드라이, 염색약 바르기를 할 수 있다. 주니어는 스타일링과 드라이, 파마를 혼자서 진행할 수 있다. 염색과 디자인도 좀 더 발전된 단계로 한다. 인턴은 혼자서 출장가서 미용서비스를 하고 올 수 있다. 숍에서도 디자이너가 마무리 정도만 봐주고 혼자서 다 한다. 스타일리스트는 사실상 디자이너가 된 사람인데, 시험을 통과하지 않은 미용사다.”


-디자이너 시험은 어떻게 치르나.


“숍마다 대개 연 2회씩 자체 시험이 있다. 국가공인도 아니지만, 소위 ‘프로끼리’ 치르는 시험이라 엄청 까다롭다. 우리 숍에서는 파마 말기, 업스타일(머리카락을 위로 올려서 목덜미를 드러나게 하는 헤어스타일), 드라이, 커트, 스타일 창작, 프레젠테이션 등 과목에 대해 30명의 선배 디자이너가 채점한다. 채점은 A·B·C·D 등으로 등급을 매기는데, 채점 평균이 B를 초과해야 디자이너라는 타이틀을 달게 된다. 예컨대 20명이 A, 10명이 B를 주는 식이다.”

출처: jobsN
김민규 부원장.

슬럼프 겪어 캄보디아 봉사도…“봉사활동이라고 못 자르면 화낸다”


김씨는 본인의 표현만 빌리자면 하루 종일 일만 한다. 미용이 좋다고 한다. 업무시간(오전 10~오후 7시)에는 손님들에게 파마나 스타일링 등 미용 서비스를 제공한다. 퇴근 후에는 집에서 소셜미디어를 한다. 모델에게 적용한 새 스타일링을 영상으로 찍은 것을 유튜브에 공유하거나, 영상이나 사진을 포트폴리오처럼 인스타그램에 올리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새벽 2~3시에 자는 일도 다반사다.


-미용 콘텐츠를 만드는 이유는.


“일단 나 자신을 좀더 알리고 싶은 마케팅적 욕구가 있다. 그 외에는 내 미용 철학을 남들과 공유하고 싶고, 또 이게 기록이 돼 나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취미가 있나.


“운동을 하고 싶은데 시간이 없다. 공부도 많이 해야 한다.”


-무슨 공부를 하나.


“새로운 기술을 배운다. 신제품 염색약도 꾸준히 나오고 있고, 트렌드도 빠르게 변한다. 15년 넘게 미용을 했지만, 내 공부량은 요즘이 가장 많다. 주로 해외 잡지를 읽거나 해외 전문가 방한시 세미나에 참석하고, 배운 것을 내 스스로 연습을 통해 실험하고 확인해 본다.”


-일만 하면 힘들지 않나.


“아직까지는 일이 너무 좋다. 물론 매너리즘에 빠진 적도 있다. 내가 돈만 버는 사람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몇 년 전 캄보디아와 인도 등에 헤어 커트 봉사활동을 다녀왔는데, 마음의 힐링을 얻었다.”


-봉사활동 때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캄보디아에는 정말 많은 봉사단체와 구호단체가 온다. 때로는 미용 봉사활동을 오는 분 중에 미용사가 아닌 분도 많다. 그래서 현지인들이 ‘이 사람이 커트를 잘 하는지’를 지켜보는 경향이 있다. 오전에는 머리를 깎겠다고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지만, 한두 명이 커트 서비스를 받는 것을 보고 나서, 이 사람이 잘 자른다 싶으면 서로 나선다. 나 역시 오전 중 테스트를 받고 나서 오후에만 열 명 넘게 커트를 해 준 적도 있다. 한 번 봉사활동 가면 하루 50명 정도 커트를 하고 온다.”


-당신은 누구에게 커트나 스타일링을 받나.


“우리 팀 후배에게 받는다. 나중에 헤어디자이너 교육자가 되고 싶은 욕심도 있어 꼼꼼하게 피드백도 해주는 편이다.”(김씨의 팀에는 총 3명이 있다. 김씨가 디자이너고, 2명의 스태프가 일을 돕는다. 김씨가 일을 알려주고, 2명의 스태프가 배우면서 돕는 구조다.)


글 jobsN 이현택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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