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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이 유지수란 '여성 이름'으로 살았던 이유

조회수 2020. 9. 18. 14:2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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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이 여자 이름으로 살았던 이유

본래 이름을 지우고 새로운 이름으로 다시 태어나는 작가들이 있다. 바로 필명을 사용하는 작가들이다. 필명은 작가가 작품을 발표할 때 사용하는 이름으로 펜네임(pen name)이라고도 한다.


작가들 대부분은 자신의 생물학적 성에 기반한 필명을 사용한다. 남성 작가는 남성 이름을, 여성 작가는 여성 이름을 쓴다. 하지만 몇몇 작가들은 일부러 반대 성별의 이름을 사용하기도 한다. 필명으로 대중을 속인 작가들을 알아보자.


여성 작가에게 남성 이름은 좋은 위장


“8년 넘게 사용한 필명 외에, 나는 사실만을 말했어요”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James Tiptree Jr.)는 ‘가장 남성적인 SF를 쓰는 남자”로 불린 작가였다. 그의 정체는 앨리스 브래들리 셸던(Alice B. Sheldon)이라는 61세 여성이었다. 당시 SF 장르 작가들은 거의 남성이었기 때문에 그녀는 성별을 감추기 위해 미국 백인 남성의 이름을 썼다. 그녀의 성별이 밝혀지자 소설계는 충격을 받았다. ‘팁트리 쇼크’라는 말까지 생겼다.


그녀는 인터뷰에서 “남성 이름은 좋은 위장처럼 보였다”며 “일생 동안 첫 번째 여성으로 너무 많은 주목을 받았다”고 했다. 그녀는 공군 조종사·군 정보원·CIA 정보원 등 다양한 직업에 종사했다. 군대나 CIA에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주목받은 경험이 많아 필명을 남자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그녀는 1974년 ‘접속된 소녀(The Girl Who Was Plugged In)’으로 휴고상을 수상했다.

출처: 아마존 홈페이지 캡처
(왼) 앨리스 브래들리 셸던 작가 /도서출판 아작 제공, (오) 접속된 소녀(The Girl Who Was Plugged In) 표지

2009년 ‘위저드 베이커리’로 등단한 구병모(43) 소설가도 여성 작가임을 드러내고 싶지 않아 남성 이름을 썼다. 그녀는 한 인터뷰에서 공모전에서 계속 떨어지자 이름을 바꿨다고 밝혔다. 20대 때 어느 선생님이 ‘요즘 한국 문학에서 잘 나가는 작가들은 다 여성 작가야. 나는 여성 작가는 공모전에서 안 뽑고 싶을 것 같아’라고 하는 말을 들은 것이다. 그녀는 “공모전을 계속 준비하면서 떨어지고 있었던 저로서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말이었다”며 “지금은 많은 분들이 남성 이름으로 불러주는 것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유명한 이름 버리고 선택한 필명


판타지 소설 ‘해리포터(Harry Porter)’ 시리즈 작가 J.K 롤링은 작품성으로만 평가받고자 남성 이름을 사용했다. 전작의 유명세에 압박감을 느낀 그녀는 로버트 갤브레이스(Robert Galbraith)라는 이름으로 2013년 범죄소설 ‘더 쿠쿠스 콜링(The Cuckoo’s Calling)’을 냈다.


그녀는 “다른 이름을 사용하면서 과한 홍보나 기대 없이 독자들에게 피드백을 받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고 했다. 이후 그녀가 저자였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2달간 겨우 1500부 팔렸던 책이 단숨에 아마존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J.K 롤링이라는 이름도 여성임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서 약자를 사용했다. 그녀는 해리포터를 출간할 때도 남자아이들은 여성 작가가 쓴 책을 읽지 않는 경향이 있다는 출판사의 말에 일부러 이니셜을 썼다.

출처: 창비 홈페이지 캡처
(왼) 구병모 작가 /yes24 홈페이지 캡처, (오) 위저드 베이커리 표지

여성 이름을 빌려 쓴 남성 작가들


남성 작가도 필명으로 여성 이름을 쓴다. 작가 유시민은 과거 ‘유지수’라는 여성 드라마 작가로 활동했다. ‘유지수’란 이름은 시민운동가이자 번역가인 여동생 유시주(58)씨의 이름을 바꿔서 사용한 것이다. 유시민은 1988년 3월 7일부터 4월 11일까지 방송한 MBC 월화 미니시리즈 8부작 ‘그것은 우리도 모른다’ 각본을 썼다. 민주화운동으로 수배 중이던 유시민은 드라마 집필료를 불법 유인물을 만드는데 썼다고 밝혔다. 

KBS 대화의 희열2 캡처

책을 더 팔려고 여성 이름을 쓴 작가도 있다. 영국 중년 남성인 숀 토머스(Sean Thomas)는 원래 톰 녹스(Tom Knox)라는 필명을 사용했다. 하지만 출판사는 그의 새로운 작품을 위해 여성 이름을 사용할 것을 추천했다. 여성 주인공이 내용을 이끌어가는 책은 여성 작가의 이름으로 써야 더 잘 팔린다는 이유였다. 그는 S.K. 트레메인이라는 이름으로 2015년 ‘얼음 쌍둥이(The Ice Twins)’를 냈다. 미국·독일·네덜란드·노르웨이·스웨덴 등에 출간했고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얻었다. 

출처: 숀 토머스 트위터 캡처, (오) 얼음 쌍둥이(The Ice Twins) 표지 /아마존 홈페이지 캡처
(왼) 작가 숀 토머스

좋은 글은 성별을 따지지 않는다. 독자는 작가의 정체가 밝혀졌을 때 오히려 흥미로워 했다. 편견을 버리면 좋은 작품을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사람들의 편견에 갇히지 않기 위해 바꾼 이름이 더 나은 결과를 이끈 것이다.


도서출판 천그루숲 백지수 팀장은 “작가는 성별이라는 프레임을 벗어났을 때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작품에 오롯이 담을 수 있다”며 “독자도 객관적인 시선으로 글을 마주할 때 취향에 맞는 작품을 더 많이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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