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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한국에 꼭 필요, 연구원·스튜어디스 출신 부부가 벌인 일

조회수 2020. 9. 18. 15:3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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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먼지 많은 날 전화통에 불나요", 실외 공기청정 벤치 개발한 이 부부
애프터레인 이윤희·박중현 공동대표
실외 미세먼지 저감 벤치 개발
“누구나 언제든지 맑은 공기 마시는 세상 만들고파”

언제부턴가 맘껏 숨쉴 수 없는 세상이 됐다. 대한민국 수도 서울은 지난 3월6일 세계에서 공기가 가장 안 좋은 도시로 꼽히기도 했다. 2위는 인천이었다. 몰아치는 미세먼지와 황사에서 조금이라도 견뎌보려 마스크를 쓰지만 답답함은 해소할 수 없다.


‘언제부터 이렇게 됐을까’, ‘누가 이 문제 해결 안 하나’. 모두가 생각하는 이 문제를 작지나마 해결해보겠다고 나선 부부가 있다. 스타트업 애프터레인의 공동 대표인 이윤희·박중현씨다. 평범한 맞벌이 부부였던 이들은 2017년부터 실외 미세먼지를 줄이는 실외 공기청정기 사업을 하고 있다. 4월22일 경기도 수원시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에서 만난 이들은 “힘들고 어렵지만 누군가는 해결해야 할 사회적 문제이기에 직접 나섰다”고 했다.

출처: jobsN
박중현 대표(왼쪽)와 이윤희 대표.

평범한 맞벌이 부부에서 스타트업 대표로


부부는 2012년 3월 결혼했다. 대학시절 영어회화 학원에서 만나 사랑의 결실을 맺었다. 남편인 박중현(36) 대표는 대학 졸업 후 2011년 현대차에 연구원으로 입사했다. 차량 램프를 설계하는 일이었다. 자기 사업을 하고 싶어 2014년엔 주말마다 아이디어를 짰고, 차량용 공기청정기를 개발했다. 하지만 판로를 찾지 못해 한 차례 실패를 맛봤다. 2017년엔 휴직하고 카이스트 MBA 과정을 밟았다.


아내인 이윤희(32) 대표는 2008년 진에어에 스튜어디스로 입사했다. 업무 능력을 인정받아 항공사무장 역할을 맡았고 사내 강사 역할도 했다. 결혼 후 아이를 낳으면서 비행 스케줄이 많은 스튜어디스를 그만두고 삼성전자 인재개발원에 자리를 얻었다. 틀에 짜인 인재개발원 업무에 지쳐 2012년엔 삼성전자 협력업체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여성으로서는 드물게 금형 설계팀 업무를 했다.

출처: 애프터레인 제공
서울 마포구청 앞에 설치된 애프터레인의 미세먼지 저감 벤치.

부부가 창업을 결심한 계기는 아이의 병 때문이다. 2013년도 10개월 된 첫 아이가 가와사키병이라는 원인 불명의 급성 열성 혈관염에 걸렸다. 이 병은 5세 이하 영유아가 많이 걸리는 병으로 피부 발진, 고열, 안구 결막 충혈 등의 증세를 보인다. 이 대표는 “아이가 열이 42도까지 5일째 증세가 지속됐다”며 “일주일 정도 지나 호전됐지만, 성인이 될 때까지 관찰해야 하고 심할 경우 협착증 등으로 이어질 수 있어 걱정이 컸다”고 했다.


부부는 병의 원인을 찾다가 한 논문을 접했다. 미국 샌디에이고 대학 연구팀이 작성한 논문으로, 미세먼지가 가와사키병의 한 원인일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중국발 미세먼지 수치가 높으면 미국과 일본, 한국의 가와사키 발병률이 높아진다는 것이었다. “이 연구결과를 보고 답답했어요. 실내 공기질은 그렇다치고 실외 미세먼지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주체가 없잖아요. 아이들의 환경을 바꾸려면 나부터 나서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출처: 애프터레인 제공
애프터레인 직원들과 함께한 박·이 대표.

돌고돌아 미세먼지 저감벤치로


부부는 남편인 박 대표가 카이스트 MBA 과정을 밟던 2017년 7월부터 사업을 시작했다. 경기도 평택의 컨테이너 창고가 사무실이었다. 이 대표는 “처음엔 남편이 창업하고 저는 회사에 다니는 것을 생각해봤다”며 “하지만 많은 어려움에 도전하는 사업 초기 믿고 맡길 사람이 필요하다는 남편 설득에 함께 뛰어들었다”고 했다.


실외 미세먼지를 정화하는 것이 가능할까. 박 대표는 “지구 상에 대기는 8000조톤이다. 이를 전부 다 정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하지만 사람이 활동하는 공간 일부를 정화해 조금이라도 미세먼지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했다. 중국 시안에 있는 100 높이의 공기청정기나 네덜란드의 로테르담 스모그 프리 타워 같이 전체 대기를 정화하는 것보다는 놀이터, 공원 등 사람이 활동하는 장소만 선택적으로 공기 정화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출처: 애프터레인 제공
애프터레인이 개발했던 실외 전시 조형물 공기청정기와 미디어폴 공기청정기 모습.

부부는 여러 형태의 실외 공기청정기를 개발했다. 실외 전시 조형물 안에 청정기를 설치해 공기를 정화하는 장치, 대로 옆에 서 있는 미디어폴(pole)에 공기청정기를 단 장치 등을 만들었다. 하지만 수요가 적었다. 이 대표는 “수요가 없어 사업의 미래를 고민할 때쯤 LH 스마트시티 기획처로부터 실증사업 제안을 받았다”며 “2017년 8월엔 UN 어반 이노베이션 챌린지 시티프리너로 선정되며 이 사업이 꼭 필요한 것이라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했다.


“시장에서 원하는 것은 어디에나 쉽게 설치할 수 있고, 공사가 어렵지 않고 관리가 편해야 하는 것이었어요. 어떻게 하면 관리가 편한 실외 공기청정기를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다 결국 원격관리가 가능한 미세먼지 저감벤치로 아이템을 바꿨습니다.”

출처: 애프터레인 제공
2017년 8월 UN 어반 이노베이션 챌린지 시티프리너에 선정된 애프터레인.

“우리가 미세먼지 해결의 첫 발자국이 됐으면”


부부는 2018년 5월 미세먼지 저감형 공기 청정 벤치를 개발했다. 높이 2.5m, 길이 2m, 폭 1.5m의 완제품 형태의 벤치다. 헤파필터, UV램프, 이오나이저를 통해 미세먼지를 걸러내 벤치 주변 1m는 공기 청정 지역으로 만든다. 공기정화 식물도 설치돼 있고 휴대폰 무선충전 시스템도 탑재돼 있다. 벤치가 알아서 실외 미세먼지 양을 측정하고 미세먼지가 나쁨 수준일 때 자동 가동해 공기를 정화한다. 필터를 교체할 시기가 되면 자동으로 알려준다. 박 대표는 “24시간 가동 시 하루에 나무 105그루와 같은 효과인 4만1472㎥의 공기를 정화한다”며 “한 달 내내 가동해도 전기료는 1만9800원 나온다”고 했다.


독일과 영국 등에서도 벤치형 실외 공기청정기가 있다. 하지만 이 대표와 박 대표는 애프터레인의 제품이 더 한국과 아시아에 적합하다고 했다. “유럽에 있는 벤치는 공기저감 식물을 통해 입자가 큰 자동차 배기가스를 걸러냅니다. 하지만 애프터레인 제품은 입자가 더 작은 미세먼지나 초미세먼지에 맞게 공기 청정기까지 탑재해 설계했습니다.”

출처: 애프터레인 제공
서울 광화문 KT사옥 앞에 설치된 애프터레인의 미세먼지 저감 벤치(왼쪽). 오른쪽은 애프터레인이 개발한 교육용 공기정화기 키트 릴리.

현재 애프터레인의 미세먼지 저감벤치는 서울 마포구청 앞과 서울 광화문 KT사옥 앞, 경기도 수원시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 등 3곳에 설치돼 있다. 이 대표는 “아직은 사업 초기지만 미세먼지가 심각한 날은 ‘사업 잘되고 있는지 궁금해서 전화했다’는 지인들 전화에 전화기가 불난다”며 “입주한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에서 공간 지원을 받는 등 많은 사람의 도움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했다.


올해 애프터레인은 지자체 등과 협업해 다양한 미세먼지 대피소를 제작할 계획이다. 실내 공기청정기, 공기청정기 교육용 키트 사업도 확장할 계획이다. 매출 목표액은 10억원. 이 대표는 “현재 지자체나 기업 등 50여곳에서 문의가 왔고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며 “국내에서 기반을 다진 후 중국이나 동남아 시장도 두드려볼 예정”이라고 했다.

출처: jobsN
이윤희 대표와 박중현 대표.

미세먼지 저감형 벤치로 공기를 정화한다고 해도 그게 과연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까. “우리가 움직여서 미세먼지 저감벤치를 몇 대 더 설치한다고 해서 모든 미세먼지를 다 없앨 수는 없어요. 단지 큰 도약의 첫 발걸음이라고 생각합니다. 달에 착륙했을 때의 첫 발자국도 한 걸음이었지만 인류에겐 큰 도약이었잖아요. 우리를 시작으로 더 많은 업체가 실외 공기정화 시장에 진출하고, 미세먼지 문제가 점차 해결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누구나 언제든지 어디서든 맑은 공기를 마시며 숨쉴 수 있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글 jobsN 김성민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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